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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등 박지원 소설들 줄거리
1) 마장전
<<연암별집>> <방경각외전>에 실려있으며, 작자가 20세였던 1756년 전후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줄거리
송욱, 조탑타, 장덕홍 등 세 사람이 광통교에 모여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게 되었다. 조 탑타와 장덕홍이 교도에 대해 이야기하자 송욱은 그것이 교태와 교면은 될 지언정 교도는 아니라고 지적하 면서 군자의 교우에 세 가지가 있고 그 처리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하며, 자신은 그 가운데 한 가지 도 못하기에 나이 삼십이 되도록 친구가 없다고 하였다. 송욱의 이야기를 장덕홍은 알아듣자 삼교오수를 일 러주었다. 그러나 조탑타가 이해 하지 못하므로 장덕홍이 자세히 설명해 주며 삼십여년을 국내를 두루 돌아 다녔으나 친구가 없는 것은 화와 원망을 풀어주는데는 우는 것이 신속하나 자신은 울지도 못하고 울어도 눈 물을 흘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장덕홍의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조탑타가 충의로써 사귈 것을 제의 하자 장덕홍은 그의 낯에 침을 뱉으며 말하기를 부자가 인색하다는 말을 듣고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주기를 바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며 친한 사람은 아낄 것이 없기 때문에 충을 실천하는 어 려움을 사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의는 빈천한 자들이 하는 것이며 부귀한 자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조탑타는 친구가 없을지라도 군자의 교도는 하지 않겠다고 하며 세 사람은 의관을 찢고 구면봉발(垢面蓬髮)에 새끼를 허리에 띠고 시중(市中)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 작품은 당시 군자의 미명을 헛되이 향유한 문인 학자군이 교도가 극도로 부패하여 있음을 통탄한 것이 다. 이는 조선의 당쟁이 악화하여짐에 선비의 교도가 다만 명리에 휩슬려 온갖 아첨과 고자질을 일삼는 진 상이 저 시정 하류배의 행위에 지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2) 예덕선생전
열전체(列傳體)의 변체(變體)로 <<연암별집>> <방경각외전>에 실려 있으며 작자 20세 전후의 작품이라 한다.
#줄거리
선귤자에게 예덕선생이라는 벗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종본탑 동편에 살면서 분뇨를 쳐 나르는 역부의 우 두머리 엄행수다. 선귤자의 제자 자목은 그의 스승이 사대부와 교우하지 않고 비천한 엄행수를 벗하는데 대하여 노골적으로 불만의 뜻을 표시한다. 그러나 선귤자는 이해로 사귀는 시교와 아첨으로 사귀는 면교가 오래 갈 수 없는 것이며 마음으로 사귀고 덕을 벗하는 도의의 사귐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대체로 엄행수의 사는 모양은 어리석은 듯이 보이고 하는 일은 비천한 것이지만 그는 남이 알아주기를 구함이 없고 남에게 서 욕 먹는 일이 없으며 볼 만한 글이 잇었도 보지 않고 종고의 음악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 처럼 타고난 분수대로 즐겁게 살아가는 엄행수야 말로 더러움속에서 덕행을 파묻고 세상을 떠나 숨은 사람 이다. 엄행수의 하는 일은 불결하지만 그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우며 그가 처한 곳은 더러우나 의를 지킴은 꿋꿋하니 엄행수를 보고 부끄러워 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 되랴.이에 감히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예덕선 생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3) 광문자전
<<연암별집>> <방경각외전>에 실려 있다. 연암이 18세에 병으로 고생할 무렵, 적적함과 병으로 인한 괴 로움을 견디기 위해 겸인이나 문객, 하인들에게 시정의 기이한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광문에 대한 일화 를 듣게 되었으며 후에 그것을 입전하였다.
# 줄거리
광문은 종로 네거리를 다니며 구걸하는 걸인이였는데 여러 걸인들이 그를 추대하여 두목으로 삼아 소굴을 지키게 하였다. 어느 겨울밤 걸인 하나가 병이 들어 앓다가 갑자기 죽게 되자 이를 광문이 죽인 것으로 의 심하여 쫓아낸다. 그는 마을에 들어가 숨으려 하지만 주인에게 발각되어 도둑으로 몰렸는데 그에 말이 너 무나 순박하여 풀려난다. 그는 주인에게 거적 한닢을 얻어 수표교 밑으로 가서 숨어있다가 걸인들이 버리 는 동료 걸인의 시체를 가지고 있던 거적으로 잘 싸서 서문 밖에 장사 지내준다. 그런데 전에 숨으러 들어 갔던 집 주인이 계속 그를 미행하고 있었는데 광문으로부터 그 동안의 내력을 듣고는 가상히 여겨 그를 어 떤 약방에 추천하여 일자리를 마련해준다. 어느날 약방에서 돈이 없어져 광문이 또 다시 의심 받게 되나 며칠 뒤 약뱡 주인의 처조카가 가져 간 사실이 드러나 광문의 무고함이 밝혀진다. 주인은 광문이 의심을 받고도 별로 변명함이 없음을 가상히 여겨 크게 사과한 뒤 자기 친구들에게 널리 광문의 사람됨을 퍼뜨려 장안 사람 모두가 광문과 그 주인을 칭송하게 된다. 그는 결혼할 연령 이었음에도 결혼할 생각을 않고 있 었다. 그것은 자기처럼 추한꼴을 한 남자를 반겨줄 여인은 아예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었다.그런 어느날 그는 장안에서 가장 이름난 은심이란 기생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방에 있던 기인들은 그의 남루한 행색과 추한 얼굴을 보고는 불쾌해서 상대해주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태연히 상좌에 앉아 기품을 지켰다.그러자 조 금전 까지도 움직일 기색조차 없던 은심이 그의 높은 인격에 감복하여 흔연히 일어서서 그를위해 춤을 추 었다.
4) 민옹전
<<연암별집>> <방경각외전>에 실려 있다. 실존인물인 민유신이 죽은 뒤, 그가 남긴 몇 가지 일화와 작자 스스로 민유신을 만나 겪었던 일들을 엮고 뇌(죽은 사람의 생전의 공덕을 기리는 글)를 붙인 전기이다.
# 줄거리
남양에 사는 민유신은 이인좌의 난에 종군한 공으로 첨사를 제수받았으나, 집의로 돌아온 후로 벼슬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매우 영특하였으며 옛사람들의 기절과 위적을 사모하여 7세부터 해마다 고인들이 그 나이에 이룬 업적을 벽에다 쓰고 분발 하였으나 아무런 일도 이루지 못한다. 70세가 되자 그 아내가 올해 는 까마귀를 그리지 않느냐고 조롱했는데, 민옹은 기뻐하며 범증은 기이한 계교를 좋아했다고 쓰고 태연하 였다. 작자가 18세에 병으로 누워 음악, 서화, 골동 등을 가까이 하며 위안하고자 했으나, 우울한 증세는 풀 길이 없었다. 마침 민옹을 천거 하는 이가 있었서 그를 초대했는데 민옹은 도착하자마자 인사도 나누지 않 고 때마침 피리 불던 이의 빰을 때리며 주인은 기뻐하는데 너는 왜 성을 내는냐고 꾸짖었다. 작자는 웃으 며 악공들을 돌려 보내며 그를 맞이했는데 민옹의 나이는 73세였다. 민옹은 기발한 방법으로 환자의 입맛 을 돋우어 주고 잠을 잘 수 있게 해 주었다. 민옹은 어느 날 밤 함께 자리한 사람들을 마구 골려 대고 있 었다. 그들은 민옹을 궁지에 몰아 넣으려고 어려운 질문을 퍼부었으나 민옹은 끄덕도 않고 대답은 쉽고 막 힘이 없었으며 자기도 자랑하기도 하고 옆 사람을 놀리기도 해서 모두 웃었으나 그는 얼굴빛도 변하지 않 았다. 누군가 해서(海西)에 황충(蝗蟲)이 생겨 관가에서 황충잡이를 독려한다고했다. 이 말을 듣고 민옹은 곡식을 축내기로는 종로 네거리를 메운 칠척장신의 황충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그것들을 잡으려 하나 커다 란 바가지가없는 것이 한이라고 하여 일좌를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어느 날 민옹이 찾아오자 작자는 파자 (破字)로 글을 놀렸다. 그러나 민옹은 놀리는 말을 칭찬하는 말로 바꾸어 버렸다. 그 다음해에 민옹은 세상 을 떠났다.민옹은 역경(易經)에 밝고 <노자>를 즐겨 읽으며 보지 않은 글이 없었다 한다.
5) 김신선전
<<연암별집>> <방경각외전>에 실려 있다. 김홍기라는 인물의 기이한행적에 흥미를 느껴 그를 만나보기 위해 윤생과 신생이라는 겸인을 시켜 찾게 한 때의 사정과, 그가 관동여행을 하면서 그를 찾던 체험을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든것이다. 이 작품은 서술이 매우 사실적이며 문장이 기굴(奇 )하고 특히 문답식으로 전 개되어 특이 할만하다.
# 줄거리
김신선의 속명 홍기(弘基)로 16세에 장가들어 단 한번 아내를 가까이 해서 아들을 낳았으며 화식(火食)을 끊고 벽을 향해 정좌한지 두어 해 만에 별안간 몸이 가벼워졌으며 그 뒤 각지의 명산을 두루 찾아다녔다. 하루에 수 백리를 걸었으나 5년만에 한번 신을 갈아 신었고 함한곳에 다다르면 더욱 걸음이 빨라졌다. 그 는 밥을 먹지 않아 사람들은 그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겨울에 속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 부 채질을 하지않았다. 남들은 그런 그를 신선이라 불렀다. 키는 7척이 넘었으며, 여윈 얼굴에 수염이 길었고 눈동자는 푸르며 귀는 길고 누른빛이 났다. 술은 한 잔에도 취하지만 한 말을 마시고도 더 취하지는 않았 고 남이 이야기하면 앉아서 졸다가 이야기가 끝나면 빙긋이 웃으며, 조용하기는 참선하는 것 같고, 졸(拙) 하기는 수절과부와 같았다.어떤이는 김홍기의 나이가 백여살이라고도 하고 어떤이는 쉰 남짓 되었다고도 하며 지리산에 약을 캐러 가서 돌아오지 않은지가 수십년 이라고도하고 어두운 바위 구멍속에 살고 있다고 도 했다.
그 무렵 박지원은 마침 마음에 우울병이 있었는데 김신선의 방기(方技)가 기이한 효험이 있다는 소문을 듣 고 그를 만나 보고자 윤생과 신생을 시켜 몰래 탐문해 보았으나 열흘이 지나도 찾지 못하였다. 윤생은 김 홍기가 서학동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갔으나 그는 사촌집에 처자를 남겨둔채 떠나고 없었다. 그 아들 에게서 홍기가 술,노래,바둑,거문고,꽃,책,고검(古劒 )따위를 좋아하는 사람들 집에서 놀고 있으리라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았으나 아무데도 없었으며 창동을 거쳐 임동지의 집에까지 찾아갔으나 아침에 강릉을 떠나갔 다는 말만 듣는다.다시 복(福)을 시켜서 찾아 보았으나 끝내 만나지 못했다.이듬해 박지원이 관동으로 유람 가는 길에 단발령을 넘으면서 남여를 메고가는 어떤 스님으로부터 "선암에서 벽곡 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며 또한 그날밤 장안사에 승녀들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여러날을 지체하여 선 암에 올랐을 때에는 탑위에 동불(銅佛)과 신발 두 짝이 있을 뿐 이었다.
6) 양반전
<<연암별집>> <방경각외전>에 실려 있다.
# 줄거리
정선의 한 양반이 살고 있었는데 어질고 독서를 좋아 하였으며, 군수가 도임하면 반드시 그를 찾아가 예 를 표하였다.그러나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관곡을 꾸어먹은 것이 여러해가 되어 1,000석에 이르렀다.관찰사 가 군읍을 순행하다가 관곡을 조사해 보고 크게 노하여 그를 잡아 가두라고 명하였다. 양반의 형편을 아는 군수가 차마 가두지 못하였으나 또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무능함을 푸념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부자가 관곡을 대신 갚고 양반을 사겠다 하며 양반을 찾아간다. 양반은 기뻐서 허락 하였다. 군수가 놀라몸소 가서 그 양반을 위로하고 경위를 물어 보려는데 양반은 전립에 짭은 옷을 입고 땅에 엎드 려 소인이라 자칭하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이었다.경위를 알게된 군수는 짐짓 부자의 행위를 야단스 럽게 기리고 나서 이런 사사로운 매매는 소송의 단서가 되므로 문권을 만들어야 한다고 명하고 관아로 돌 아와 모든 고을 사람들을 불러 놓고 문권을 만들었다.그러나 매매계약서에 양반으로서 지켜야하는 허례허 식인 신분상의 강령을 듣더니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 같다며 자신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고쳐달라고 청 하므로 다시 문권을 만들었다.두번째 문권은 양반들의 비인간적인 수탈임을 듣더니 양반을 하지 않겠다며 머리채를 흔들며 달아나서는 평생 양반이란 소리를 입에 담지 않았다.
7) 우상전
<<연암별집>> <방경외전>에 실려 있으나 끝부분이 떨어져 나가 전하지 않는다. 영조 때 실재하였던 역 관 이상조(일명 이언직)가 죽자 그의 행적과 남긴 시를 모아 엮은 글로 열전체(列傳體)의 변체(變體)로 쓰 여졌다.
# 줄거리
일본 관백이 새로 취임하여 주변을 정리하고 각종 기예(技藝)와 문사(文士)를 모아 달련을 시킨후 우리나 라에 사신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다.조정에서는 사신 일행을 엄선하여 보냈다. 일본사람들은 서화(書畵) 와 사장(詞章)을 좋아하여 그것을 우리 사신 일행에게 얻기 위해 중보(重寶)를 아끼지 않았다.우상은 역관 의 자격으로 수행하였으나 문장으로 격찬을 받았다.그들은 우상에게 난제와 강운(强韻)으로 궁지에 몰아 넣 고자 했으나 그는 미리 지어 놓은 듯이 즉시 응대를 하여 그들을 놀라게 하였다. 우상의 문장이 이와 같이 뛰어났음에도 신분이 역관이기 때문에 새삼 사람들이 그의 문장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항 시 그것을 슬퍼하였다. 연암이 우상과 면식은 없으나 그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시를 보여 주면서 이 사람 만은 알아 주지 않겠는가 했는데, 연암은 희롱으로 보잘 것 없다고 했더니 그는 화를 냈다가 다시 탄식하 며 내가 앞으로 얼마나 살겠느냐 하며 죽었는데, 그의 나이 27세였다고 한다.
8) 호질
<<열하일기>> <관내정사>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은 형식에 있어 전기체를 완전히 탈피하였으나 순정하지 못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동음어를 교묘하게 활용하고 민담과 전설을 삽입하면서 생략과 압축으로 완성되 었다.
# 줄거리
대호(大虎)가 사람을 잡아 먹으려 하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의원을 잡아 먹자니 의심이 나고 무당의 고기는 불결하고 독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청렴한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하였다. 이 때 고을에 도학으로 이름이 있는 북곽선생이라는 선비가 동리자라는 젊은 과부와 정을 통하는데, 그녀의 아들들이 의심을 하여 어머니의 방을 에워싸고 들이쳤다. 그러자 북곽선생은 허겁지겁 도망쳐 달아나다가 분뇨 구덩이에 빠졌다. 겨우 머리만 내놓고 발버둥치다가 기어나오니 이번에는 사람을 잡아 먹으려던 큰 호랑이가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호랑이는 더러운 선비라며 탄식하고 유학자의 위선과, 아첨, 이중인격 등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 하였다. 북곽선생은 정신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목숨만 살려주기를 빌다가 머리를 들어보니 호랑이는 보이 지 않고 아침에 농사일을 하러 가던 농부들만 주위에 서서 그의 행동이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조심하는 것 이라고 변명 하였다.
9) 허생전
<<열하일기>> <옥갑야화>에 실려 있다.
# 줄거리
허생은 남산아래 묵적골의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집에 살고 있었다.그는 독서를 좋아 하였으나 몹시 가난하여 아내가 삯바느질을 하여 살림을 꾸려 나갔다. 굶주리다 못한 아내가 푸념을 하며 과고도 보지 않을면서 책은 무엇 때문에 읽으며 장사 밑천이 없으면 도둑질이라도 하라고 대든다.허생은 책을 덮고 탄식하며 문을 나선다. 한양에서 제일 부자라는 변씨를찾아가 만냥을 꾸어 안성에 내려가 과일 장사를 시작하여 폭리를 얻고, 제주도에 들어가 말총장사를 하여 맣은 돈을 번다. 그 뒤, 어느 사공의 안내를 받아 무인도 하나를 얻어 변산에 숨어 있는 도둑들을 설득하여 각기 소 한 필과 여자 한 사람씩 데려오게 하고 그들과 무인도에 들어가 농사를 짓는다. 삼 년 동안 거두어 들인 농산물을 흉년이 든 일본에 팔아 백만금을 얻게 된다. 그는 섬사람을 모아 놓고 이 섬은 땅이 작은 데다 자신 또한 덕이 부족함으로 이 섬을 떠난다고 하고, 외부로 통행할 배를 불 태우고 50만금은 바다에 던져 버린 뒤 글 아는 사람을 가려 함께 본토로 돌아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남은 돈 10만금을 변시에게 갚는다. 허생은 집을 떠날 때의 모습 그대로 남산 아래 오두막으로 돌아온다. 그는 변씨가 돈을 돌려 주려고 하여도 받지 않으며 호구 할 정도의 식량만 주고, 술을 가져가면 즐겨 마시면서 변씨에게 돈을 번 까닭을 이야기한다. 변씨로부터 허생의 이야기를 들은 이완 대장이 변씨를 데리고 허생을 찾는다. 허생은 이완에게 와룡선생을 천거하고, 종실의 딸들을 명나라 후손에게 시집보내고, 강남을 정탐하고 국치를 설욕할 계책을 세우겠냐는 물음에 이완이 모두 어렵다고 하자 화가 난 허생은 칼을 찌르려 하자 이완은 피하여 달아났다. 이튿날 다시 그를 찾아갔으나 이미 자취를 감추고 집은 비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