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미래
- 인왕산 / 해머링 맨
차용국
인왕산은 서산(西山)이라 불렸다. 경복궁 서쪽 산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세종은 집현전을 설치하고 인재 양성에 힘썼는데, 집현전 학사들은 서산 자락(지금의 통인동 일대)에서 태어난 세종이 어진 임금이 되어주기를 염원하면서 서산을 인왕산(仁王山)이라 불렀다. 세종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어진 임금이 되었고, 과학기술 진흥에 힘썼다. 세종은 인문학과 과학기술을 아우르며 조선을 전성기로 이끌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인왕산(仁王山)을 인왕산(仁旺山)으로 바꾸었다. 찬란한 조선 문화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인왕산(仁王山)이란 이름이 탐탁지 않았고, 조선보다 더 우월한 일제의 신문화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 빼앗긴 산 이름조차 다시 찾으려면 오랜 서러움과 기다림이 따르는 법이다. 인왕산(仁王山)은 199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사직공원 아래 근대식 붉은 벽돌집과 서울시교육청 담벼락을 지나면 성곽은 끊어지고 강북삼성병원이 우뚝 들어서 있다. 1930년대에 지은 근대식 붉은 벽돌집은 독일 선교사 주택이었다. 근처 송월동에 독일 영사관이 있어서 이 일대에는 독일인 거주자가 많았다. “고향의 봄”을 작곡한 홍난파가 말년에 이 집에 살았다 하여 지금 사람들은 홍난파 가옥이라고 부른다.
강북삼성병원 인근은 돈의문 터다. 돈의문은 한양도성의 서대문이었다. 1396년(태조 5)에 도성의 8개 성문과 함께 지었으나 허물고 다시 짓기를 반복한 우여곡절 많은 성문이다. 1413년(태종 13) 서전문으로, 1422년(세종 4) 돈의문이란 현판으로 새로 지으면서 새문 또는 신문(新門)이라고도 불렀으나, 1915년 3월 도로 확장공사로 철거해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신문로라는 지명의 유래로만 기억할 뿐이다.
창의문에서 인왕산 능선을 올라 정상을 찍고 사직공원으로 내려오는 한양도성 성곽길은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진 성문처럼, 정치의 굴곡과 문화의 성쇠가 던적스럽게 얽혀있다.
신문로를 건너면, 흥국생명 빌딩 앞 인도에서 홀로 서 있는 키 큰 해머링 맨(Hammering Man)을 만난다. 스틸 알루미늄에 검은색을 덧칠한 해머링 맨은 높이 22미터, 무게 50톤이 나가는 거대한 조각상이다. 해머링 맨은 미국의 조각가 조나단 브로프스키(Jonathan Borofsky)가 만든 조형예술 작품으로 세계 여러 도시에 설치되어 있다. 미국 시애틀,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일본 도쿄 등 11개 도시가 해머링 맨을 설치했다. 서울 해머링 맨은 2002년 6월 4일부터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 해머링 맨은 거대한 철제조각상이 아니었다. 해머링 맨의 원형은 조나단 브로프스키가 1979년에 발표한 나무조각상으로 ‘워커(Worker, 노동자)’라는 작품이다. 그는 구두 수선공이 망치질하는 사진을 보고 이 작품 창작의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해머링 맨이 도시의 실외 공공장소에 설치되면서 재질과 규모가 바뀌고 이미지에도 약간의 변형이 가미되었다.
서울 해머링 맨의 특징은 동적인 움직임이다. 해머링 맨은 오른손으로 35초마다 한 번씩 망치질한다. 평일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말과 휴일에는 쉰다. 해머링 맨이 망치를 때리는 시간은 부지런한 근로자가 일하는 시간과 비슷하다. 해머링 맨을 도시 공공장소나 빌딩 앞에 설치한 까닭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해머링 맨은 노동의 숭고함과 가치를 상징하는 작품 본래의 의미를 역동적인 몸짓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이 돋보이는 상징성과 역동성에 반기를 들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토록 홀로 서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내리치는 망치질이 안쓰럽고, 그 기계적인 울림이 환청처럼 가슴으로 쓸려오는 뭉클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해머링 맨의 단순 반복적 몸짓이 작품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산업사회의 외로운 삶의 이미지로 클로즈업되어 비치기 때문이다. 가슴을 찌르는 이 복잡한 대립 감정이 철 지난 풍경을 추억하듯 짠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풍경과 서정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것인지 고답(高踏)한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1979년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눈에 비친 도시 노동자상과 그로부터 40여 년이 훌쩍 지난 현재와 미래의 노동자상은 다를 것이고, 노동의 의미와 가치도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탄생하여 보편적인 문화의 이기로 자리를 잡아갈 때, 사람의 삶의 방식과 가치와 제도 등에 변화가 생기고, 결국 사람의 삶의 총체인 문화가 바뀐다. 오래도록 각광받았던 노동의 주역들이 퇴장하고 낯설어 보이는 노동의 주역들이 등장한다.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고대와 중세의 전문적인 지식인이었던 필경사를 역사 속으로 퇴장시키고, 부와 권력을 대중에게 이동시켜 중세의 종말과 근대의 출현을 견인한 것처럼.
지금 인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문명의 다리를 건너고 있다. 4차산업혁명이란 한마디로 디지털 세상이다.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초융합·초지능화를 특징으로 한다. 동종 또는 이종의 정보와 기술을 연결하고 융합하여 유용한 지능을 창출하려면 디지털 속도와 용량이 충족돼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노동의 주역은 누구일까? 디지털 혁명의 시대라고 인류가 터득한 오랜 노동의 관행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혁명의 시대에 부응하여 보폭을 맞춰가는 것은 개인과 집단의 생존과 유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술과 문학 또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과 문학에 대한 인식과 가치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고 느끼는 시각과 감각도 변할 것이다.
빛과 어둠은 만물의 예외 없는 속성이어서 디지털 문명의 여로에도 빛과 어둠의 정반합은 원심력(遠心力)으로 작용할 것이다. 혁명의 조류에 빛의 물꼬를 터서 더 환한 광명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소망은 늘 진행형이라고 하는데 그 해법은 늘 어렵다. 어쩌면 600여 년 전 세종의 혜안(慧眼)이라면 알 수도 있으련만, 지구의 공전을 거꾸로 돌려 그를 만나 고견을 들을 수는 없으니 어찌하랴.
나는 해머링 맨이 두드리는 망치의 동선에 눈을 찍으며 난감하게 바라보았다. 늘 그렇듯이, 무심한 도시의 길거리를 부유하는 생각의 조각들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귀 밝지 못한 나는 미래에 펼쳐질 세상의 깊고 넓은 풍경과 소리를 다 헤아려 보고 들을 수 없어 늘 궁금하다.
여전히 해머링 맨은 말이 없고 망치만 두드린다. 그는 늘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