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안의 승리
제 1강 은혜, 진품과 모조품
역사적인 배경
이 장을 읽기 전에 먼저 성경 로마서 5장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바로 읽으십시오. 다 읽으실 때까지 이 책은 잠시 그대로 두십시오!
자, 그럼 이제 역사적인 배경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우리가 프로테스탄트 운동 Protestant movement의 유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신교인들 중에 혼란이 있습니다. 특별히 구원관과 같이 중대한 문제에 관하여 혼란을 느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개신교 운동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당연히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종교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사실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신교는 모두 종교개혁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종교개혁 the Reformation이 시작되었던 16세기는 천 년이 넘도록 로마 가톨릭이 종교계뿐 아니라 정치계까지 지배하던 기간이었습니다. 성경의 예언에 따르면 이 암흑기는 1260년간 지속됩니다. 다니엘서 7장 25절과 계시록 12장 6절을 살펴보십시오. 세기를 거듭하는 동안 가톨릭은 정치에 깊이 관여했을 뿐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 더 나아가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지배하려 들었습니다.
이 암흑기 동안에 교회는 평민들이 성경을 접하지 못하도록 금했습니다. 사제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사제가 그들에게 알려 주는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여기시는지, 이 모든 것을 사제에 의존해야만 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사람들의 재산마저 통제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후를 대비하여 하나님의 호의를 얻으려면 소위 면죄부免罪符라는 비용을 지불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죄의 값 요컨대 벌금을 미리 내 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로마서 6장 23절).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는 특히 이 면죄부라는 발상 때문에 무척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종교개혁을 일으키는데 가톨릭 수사를 사용하셨다는 것은 기적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보건데 하나님께서는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더욱 강한 확신이 듭니다. 여러분의 종파가 무엇이든지, 여러분이 어떤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든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로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에 대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지성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는 소중한 자녀들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기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사제를 포함하여 소중한 자녀들을 갖고 계셨다는 사실에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비록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제도 속에 있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듣고자 마음을 활짝 열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비하신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요?
나는 마르틴 루터를 매우 존경합니다. 나는 그가 세련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를 막무가내였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강직한 성격을 좋아합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어떠한 바람이 그를 거슬러 불지라도 진리 위에 굳건히 섰던 용기 있는 루터를 존경합니다. 결국 마르틴 루터가 보름스 의회the Diet of Worms.1521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대부분의 가톨릭 주교들과 유럽의 군주들과 제왕들이 그곳에 배석하였습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잘것없는 이 수사는 아무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그들 모두를 향해 말했습니다. "성경에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는 까닭에 나는 여기 서 있으니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노라"(로마서 1장 17절 참조).
중세 암흑기
중세 암흑기, 천 년이 넘는 세월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암흑' 시대라고 할까요? 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빛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빛이 없었다면 무엇에 대한 빛이 없었다는 말입니까? 특히 어떤 가르침에 대한 빛이 없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암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어떤 특정한 국면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 은혜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인류에게 크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로마교회는 하나님과 그분께서 창조하신 사람 사이에 흑암의 벽을 쌓아 놓았습니다. 교회가 통치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암흑은 더욱 짙어졌습니다. 교회가 은혜의 정의를 이렇게 왜곡시키고 말았습니다. "은혜는 구입할 수 있는 것, 또는 획득할 수 있는 것."
당시 사람들은 만일 충분한 액수를 지불하기만 하면 그들에 대해 기분이 좋아진 하나님께서 연옥에서 보내야할 수천 년의 기간을 감해 주신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운 좋은 소수의 부자들만 죽자마자 연옥에서 풀려나와 더 높은 곳으로 곧장 갈수 있도록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가톨릭 교리 문답은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면죄부의 사용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면죄부를 통하여 충실한 신자들은 죄로 말미암는 현세적 징벌의 사면을 그들 스스로 획득할 수 있다. 또한 연옥에 갇힌 영혼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CCC, 1498단락).
하지만 오늘날도 가톨릭을 포함한 모든 교파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소그룹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오백여 년 전에 마르틴 루터가 찾아냈던 진리 곧 하나님께서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인지를 알려 주는 성경적 증거들을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의 성사와 하나님의 은혜
가톨릭교회에는 그들만의 7대 성사聖. Sacraments가 있습니다. 세례, 견진, 성체 미사, 고백고해성사, 병자, 신품, 혼인, 이 일곱 가지입니다(CCC, 1113단락).
이 성사들은 은혜가 신도들에게 미칠 수 있도록 교회가 고안한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 성사들을 "은혜의 효험 있는 징표로써 이를 통하여 신령한 생명이 나누어지게 된다.”라고 보고, 이 성사들이 그 신도들에게 은혜를 수여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죄를 인정하는 고백성사에 참여하면 '상당한 용서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이 성례전의 역할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의 원천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 원천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한 분만 계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디모데전서 2장 5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장 12절).
여러분이 알다시피 프로테스탄트의 전통을 이어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부어 주시는 문을 활짝 여셨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가톨릭은 사람의 행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호감을 가진다고 믿는 그런 체제입니다. 그러므로 가톨릭의 체제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이 체제는 인간의 행위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이라는 율법주의적 체제 아래 태어난 이들은 빛을 받을 기회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체제 자체를 계속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회 교인들도 이런 면에서 그들 나름대로 갈등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솔직히 파헤쳐 봅시다. 나는 주저 없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만일 '값없는 은혜에 대하여 설교한다면 어떤 지역에서는 돌에 맞을 각오를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마저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누군가 값없는 은혜에 대한 복음을 듣고는 이렇게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희망을 보았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실제적으로 다가옵니다. 이제야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로우신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교회의 의자에 앉아 있다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는가 하면, 누군가는 아마 돌을 집어 들려고 할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어느 안식일 예배 후 교회를 나서려는 즈음에 어떤 여성도가 큰 소리로 내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빼 놓으셨습니다."
“네? 지금 한 시간 동안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중요성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 그녀가 쏘아붙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해야 할 부분은 말씀하지 않았잖아요."
"글쎄요."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집사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부담스럽지만, 만약 집사님이 혼자의 힘으로 무엇을 하여 하나님의 은혜나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즉시 이 자리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셔야 합니다.“
자, 이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십시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올바로 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해방되었고 자유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거침없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른 이들은 그런 사람들을 자유주의자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값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누구에게나 값없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값없는 은혜를 발견했다고 해서 이를 믿는 자들이 자동적으로 자유주의 진영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마치 모든 율법을 파괴하려고 설치고 다닐 위험 인물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실한 왈덴스인들
은혜에 대한 의견 충돌은 초대 그리스도교회에는 생사간의 투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진리의 빛은 거의 꺼져갔습니다. 왈덴스인들 Waldenses처럼 극소수의 부류들만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로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믿는 불굴의 신앙 때문에 박해를 피해 동굴 속에 숨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신실한 사람들마저도 결국에는 타협을 하고 말았습니다. 속고 만 것이었습니다.
왈덴스인들은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 남부 지역에 걸쳐 높은 산 골짜기에 숨어 살았습니다. 협곡으로 들어가는 좁은 입구는 방어가 쉬운 입지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교황의 전령이 왈덴스인들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만일 가톨릭 대표를 그곳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한다면 그들에게 종교적인 자유와 해방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황의 밀사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유와 해방을 잃어버렸습니다. 매우 슬픈 이야기입니다.
유럽에서 진리의 빛은 거의 꺼질 듯했습니다. 진리를 깨달은 신도들이 신세계를 찾아 떠났던 대 이동이 없었던들 빛은 정말로 꺼져버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빛이 꺼지도록 방관하지 않으셨습니다. 소수의 신도들이었으나 충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신세계로 보내서 진리의 빛이 절대로 꺼지지 않게 하셨고, 오늘날 마지막 때에 그 진리를 다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종교개혁은 예수님의 생애, 죽음 그리고 부활 이래로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단일 사건이었습니다.
사천 년 간이나 이교의 어두움에 둘러 싸였던 이 세상에 예수님께서 빛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 사람들은 거짓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노한 하나님을 진정시키려면, 다시 말해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려면 그들은 가능한 모든 일을 해야만 한다고 가르친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가공할 만한 진리의 모조품입니까!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대한 진리를 얼마나 왜곡시켰습니까!
내용
복습
1. 암흑기 동안 기존의 가톨릭교회는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의 영적인 생애를 통제하려고 했습니까?
2. 하나님께서는 어떤 유형의 사람들을 그분께로 이끌어 그분의 뜻을 성취하는데 사용하실 수 있을까요?
3. 누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시작하였습니까?
4. 기나긴 암흑기 동안에 어떤 빛이 감추어져 있었습니까?
5.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대한 진리에서 왜곡된 내용은 무엇입니까?
6. 은혜의 유일한 원천은 무엇입니까?
7.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 이래로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단일사건은 무엇이었습니까?
*묵상을 위한 질문
여러분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보십시오. 혹시 진노한 하나님을 달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총과 의를 얻기 위하여 여러분은 무엇인가 행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는 선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