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토장정82-1 (2023. 04. 07) 인제군
14.5km (서해 : 845.6km, 남해 : 817.7km, 동해 677.1km 누리 85.8km 합계 : 2,426.2km)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 서화면 서흥리 - 천도리)
벚꽃이 피고 지고 봄날은 왔었는데 갑자기 추위가 와 버렸다.
꽃샘추위가 아니다.
“꽃이 필 무렵 때의 추위”,
“초봄에 날씨가 풀린 다음 다시 찾아오는 일시적인 추위” 라는
사전에 나와 있는 그런 추위가 아니다.
꽃이 피고 지고 날이 풀리다 못해 늘어져 에어컨을 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추워졌다.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아니고 우리가 장정하는 것을 방해 “장정추위”이다.
오늘 장정을 시작하는 용대리 정자문교차로에서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산길로 들어선다.
44번 국도를 따라 원통을 돌아 양구로 갈 수 있지만 우리는 산으로 가로질러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길은 포장도로에서 서서히 경사가 가팔라진다.
겨울잠을 자고 갓 일어난 개구리들이 힘든 우리를 약 올리며 웃어댄다.
이곳 개구리들은 울음소리가 우리가 아는 그런 소리가 아니다.
어찌 들어보면 새소리 같기도 하고 내 생각에는 그저 약 올리며 웃는 소리 같다.
우리가 넘어가는 고개는 말고개이다.
지금 말고개를 관통하는 터널이 공사 중에 있다.
우리는 이제 오른쪽으로 꺾어서 고개를 넘어가는 오래된 길로 들어선다.
막 진달래가 피기 시작한 이 길은
군 생활 산위 진지로 올라가던 길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넘어가던 길 같기도 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정감 있는 길이다.
꼬불꼬불 고갯길 옆에는 주인 없는 두릅이 막 간난아이 손바닥 같은 새순을 펴려고 한다.
보기도 아까워 그냥 두고 왔지만 계속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그 쌉쌀한 맛이 입안에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말고개는 높이가 약 690미터이다.
“국가숲길 백두대간트레일 2구간 말고개길”의 중간이라는 표시판이 서있다.
표시판을 보니 오늘 우리의 장정과 코스가 겹쳐있다.
아침에 남겨온 옥수수 막걸리 한잔을 나누워 마시고 조금은 좁아진 숲길을 따라 내려오니 서화면 서흥리로 접어든다.
서흥리로 들어와 조금 더 내려오니 말바위 터널 반대편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 지난겨울부터 쌓였던 눈이 얼음이 되고 그 얼음이 “아직도 봄은 멀었다오." 하며 붙어있다.
거기서부터 다시 포장도로를 만나서 계곡을 따라 계속 내려온다.
계속의 차가운 물은 큰소리를 내며 내려간다.
기온을 내려 세웠지만 이틀간 전국에 내린 비가 계곡의 물소리를 “그래도 봄은 온다.” 큰소리를 치게 만들었다.
메밀국수와 감자전 그리고 수육에 막걸리로 점심을 하고 논장교를 건너 인북천을 따라 장정은 계속된다.
인북천은 제법 큰 하천이다.
휴전선에서부터 남쪽으로 흘러 이곳을 지나 원통에서 북천을 합류시켜 소양강으로 흘러간다.
하천변으로 “강원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잘 만들어 놓아 편하게 그 길을 따라 양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이제 서하면 천도리다.
인북천 변에는 지금 매화가 피고 벚꽃이 피고 생강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
서울의 추위는 꽃샘추위가 아니지만 이곳의 추위는 꽃샘추위가 맞다.
올해 봄은 서울에서 한번 꽃구경 인제에서 두 번째 꽃구경을 하는 꽃구경 호강이다.
꽃구경에 정신이 없었는지 아님 세찬바람에 눈을 감았는지
다리를 건너지 않고 계속 직진하여 막다른 곳까지 와버렸다.
바로 앞이 가야 할 곳인데 더 나아갈 수 없다.
한번 간 길은 다시 가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장정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