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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의 본질은 공유의 효율성이다. 구조는 얽힘이고, 얽힘은 공유되며, 공유되면 효율적이고, 효율적이면 이기고, 이기면 의사결정한다. 공유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척도는 차원이다. 차원이 높으면 공유도가 높다. 보다 효율적이다. 2차원은 1차원보다 효율적이고, 3차원은 2차원보다 효율적이다. 차원은 묶음이다. 묶음 단위로 일한다. 트럭의 한 번 운행에 더 많은 짐을 싣고 간다. 공유도 차이가 세상의 질서를 만든다.
우리가 추적해야 하는 존재의 질서는 자발적 변화에 한정된다. 강제적 변화는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이 결정하므로 추적할 자체 질서가 없다. 자발적 변화는 차원이 낮아지는 형태로만 일어난다는 것이 열역학 2법칙이다. 열역학이 어렵게 여겨지는 이유는 학자들이 2법칙에 자발적 변화라는 조건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역학 2법칙을 어기는듯이 보이는 상황은 반드시 상부구조가 숨어 있다.
마술사가 커튼 뒤에 숨기고 있는 것이 상부구조다. 마술사는 외부에서 개입한 인위적 조작은 숨겨놓고 저절로 변하는 것처럼 연출한다. 모자 속에서 손에서 동전이 계속 쏟아져 나와서 깡통으로 떨어지는 무한동력을 연출한다. 그러나 깡통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면 빈 깡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열역학 1법칙과 환원론은 이 부분을 반영하지 않는다. 열역학 1법칙과 환원론은 변화 속의 불변에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열역학 2법칙과 전체론은 공유에 따른 효율성의 문제를 다룬다. 그것은 일을 시켰을 때 드러난다. 열역학 2법칙과 전체론에는 에너지 개념, 일 개념, 사건 개념, 권력 개념, 인과 개념을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에너지 효율성 요소를 배제했을 때 부분의 합은 전체와 같다. 그러므로 환원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체론과 적용분야가 다를 뿐이다. 1법칙과 환원론은 불변에 주목하고 2법칙과 전체론은 변화에 주목한다.
환원되는 부분과 환원되지 않는 부분을 구분할 때 우리는 막강해진다. 커튼 뒤에 숨겨진 것을 알아낼 때 강력해진다. 상부구조의 개입을 믿을 때 국민을 믿고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 환원론과 전체론은 오히려 통한다. 공세종말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무한동력이 작동한다. 엄마가 밀어줄 때, 국민이 밀어줄 때는, 바이럴 마케팅이 흥할 때는 무한동력이 통한다. 다단계가 한계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수법이 먹힌다.
무한동력의 성공
인간의 관심사는 무한동력에 있다. 무한동력은 없지만 무한동력처럼 보이는 지점들이 있다. 재벌 2세는 무한동력을 하나씩 장만하고 있다. 아무리 사고쳐도 아버지 지갑이 해결해준다. 정용진이 말아먹은 사업 시리즈를 보라. 제주소주, 삐에로쇼핑, 부츠, 쇼엔텔, 레스케이프 호텔, 분스, PK피코크 등등 잔뜩 많은데 이 정도 퍼포먼스라면 무한동력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 어린이는 각자 무한동력을 가지고 있다. 아빠 지갑이 무한동력이다. 뭔가 계속 나온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때까지 인간은 외부의 무한동력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내부가 아니고 외부라는게 중요하다. 무한동력은 외부에 있다. 태양은 지구에게 무한동력이다. 지구가 아무리 에너지를 사용해도 태양이 지구에 보내주는 에너지의 0.0001퍼센트도 사용을 못한다.
징기스칸 입장에서 지구는 무한동력이다. 그냥 가서 빼앗으면 된다. 아무도 막지 못한다. 옛날 어부들은 바다를 무한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어부가 아무리 물고기를 잡아도 바다의 생산력은 인간의 소비력을 앞지른다고 했다. 물론 옛날 이야기다.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고 물고기 씨가 말랐다. 과학자들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냥 무한동력은 없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닌데 내가 눈으로 본 것과 다르다. 분명히 아버지 지갑에서 계속 나오는 것을 내가 봤는데 말이다. 안된다고만 말하지 말고 되는 지점까지는 된다는 사실을 말해줘야 한다. 과학자가 입을 다물면 소비만 하는 청소년과 가정주부는 잘못된 판단을 하기 쉽다. 계를 정하면 유한동력으로 바뀐다. 무한에서 유한으로 바뀌는 지점을 알려줘야 대비할 수 있다.
1. 양질전환은 반드시 상부구조가 있다.
2. 어떤 둘이 충돌하여 공유하면 동력이 발생한다.
3. 외부관계를 내부구조화 하면 자체 엔진이 발생한다.
4. 점입가경, 다다익선, 바이럴은 공격모드에서만 먹힌다.
5. 풍선에 압력이 걸려서 상부구조가 작동하는 시점이 있다.
엔트로피 증가는 뭔가 잘 안된다는 말이다. 허무하다. 안되는건 안되지만 안되기 전까지는 되잖아. 선을 넘지만 않으면 된다. 무한동력은 반드시 상부구조가 있고 어딘가에 종속되어 있다. 점의 무한은 선에서 유한하고, 선의 무한은 각에서 유한하고, 각의 무한은 체에서 유한하고, 체의 무한은 계에서 유한하다. 김민석의 까불기 신공도 끈이 떨어지면 유한동력이다.
무한히 증가하는 것은 바이럴 마케팅이다. 바이럴도 유행의 변화라는 상부구조가 있고 그 흐름에 올라타야 먹히는 것이다. 다단계는 보통 조직원 3천명까지 흥하고 그 이상이면 망한다. 초기 멤버로 가입했다가 7단계 3천명 정도에 도달했을 때 튀면 성공한 먹튀다. 아마 요즘은 이 숫자가 줄었을 것이다. 다단계의 전성기에 이 바닥을 아는 사람은 먹튀로 성공했다.
공격은 하나만 뚫어도 흥하고 수비는 하나만 뚫려도 망한다. 공격이냐 수비냐에 따라 이 기술이 먹히느냐, 먹히지 않느냐가 달라진다. 롬멜이나 패튼의 방법은 공격모드에서만 먹힌다. 공세종말점에 도달하여 보급선이 늘어지고 수비모드로 바뀌면 기술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촉이 좋은 사람은 무한동력이 유한동력으로 반전되어 히틀러가 죽는 시점을 안다.
한때 무한동력을 성공시킨 롬멜, 패튼, 나폴레옹, 알렉산더, 징기스칸, 한니발은 뛰어난 공격수들이다. 반대로 뛰어난 수비수들은 이들을 저지하는 방법을 직감적으로 안다. 웰링턴과 쿠투조프는 그것을 안다.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약점을 안다. 러시아는 동장군과 거리장군, 코사크 장군으로 나폴레옹을 저지했다. 러시아군은 원래 갈수록 점점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짜르가 이것저것 온갖 방법을 다 쓰기 때문이다. 영토가 넓으면 적군이 오는데 시간이 걸리고 광궤와 표준궤가 맞지 않으니 적의 보급이 지연될 동안 대응방법을 찾아내고 마는 것이다. 짜르가 초반에 허둥대지만 이것 저것 모든 방법을 다 쓰다보면 스탈린도 답을 찾아낸다. 우리는 러시아의 방법을 쓰면 된다. 보완수사권 폐지가 시행착오라도 대응방법이 있다.
중국인들도 시간은 우리편이라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다. 일단 버티고 버티면 저것들이 언젠가는 지쳐서 물러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시간에 쫓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무한동력 상부구조>유한동력 하부구조의 전환구조를 아는 사람은 언제나 상황에 맞는 답을 찾아낸다. 지면 지고 이기면 이기더라도 그 상황에서의 최선은 있다.
뛰어난 공격수라도 되는 구조에서만 된다. 영리한 수비수는 공격수가 언제 무너지는지 그 타이밍을 알고 있다. 우리는 공격할 때 무한동력을 이용하여 최대한 먹고 튀면 된다. 수비할 때 유한동력으로 반전시켜 반격의 때를 기다리면 된다. 공세종말점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적의 힘을 빼면서 물러서고 지연전을 할 때와 대반격을 할 때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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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쉽도록 라임을 맞춰야 하는데 환원주의 반대를 전체주의라고 하면 불필요한 해명을 요구받게 된다. 환원론 대 전체론이라고 하자. 구조론으로 보면 체는 ‘계체각선점’에서 두번째 ‘체’에 해당되므로 전체는 이미 완전체가 아니다. 전체를 주장하려면 반드시 인과관계를 반영시켜야 한다. 부분의 합보다 큰 전체는 호흡을 가진 생명이나 발동이 걸린 엔진이다.
완전성이 반영된 진짜 전체를 인식하려면 사건개념, 인과개념, 차원개념, 권력개념이 필요하다. 사건을 격발하는 원인 측의 전체라야 한다. 변화를 일으키는 전체가 진짜다. 변화는 언제나 높은 차원에서 격발되며 낮은 차원에서 수용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제자리걸음은 차원 변화가 없으므로 변화가 아니다. 영구운동은 차원 변화가 없으므로 무한동력이 아니다.
전체성의 문제는 열역학 2법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문제를 우리가 간과하므로 열역학 2법칙이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좁은 학자들의 관심사에 갇혀 있는 것이다. 열역학 2법칙에 해당되지 않는 일은 없다. 우주의 구석구석을 통제하고 있다. 우리는 이 법칙을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열역학 2법칙으로 정치를 평론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이재명, 김민석과 뉴재명 일당이 민주당에 무질서도를 증가시키고 있는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답답한 일이다. 모든 것은 나빠지며 좋아지는 것은 반드시 에너지를 공급하는 상부구조가 있다. 사물은 낡아가고 산 것은 늙어간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의외로 싱싱해지는게 있다면 외부에서 무언가를 접촉한 것이다. 아빠가 입금을 했거나 여친이 전화를 한 것이다.
1. 환원론.. 사건을 배제했을 때 사물은 전체와 부분의 합이 같다.
2. 전체론.. 사건을 반영했을 때 사건의 원인은 결과보다 크다.
전체론holism을 어원으로 보면 health, heal, holy인데 이는 제사장이 제단에 올리는 제물을 검사한 데서 나온 말이다. 다리가 부러진 양이나 상처가 난 과일을 제삿상에 올리면 할배한테 쳐맞는다. 신체의 훼손이 없어야 한다. 결함이 없는 제물이 신성한 것이다. 결함이 없다는 것은 공간적으로 모자란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장에서 사건을 격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수컷은 암컷을 임신시켜야 완전하고, 암컷은 새끼를 낳아야 완전하다. 총은 발사할 수 있어야 완전하고, 씨앗은 싹틀 수 있어야 완전하다. 그것은 특별한 것이다. 부분의 합을 넘어서 정보를 전달하고 사건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원인 측은 결과 측 보다 차원이 높아야 한다. 같은 차원에서의 변화는 순환이다. 그것은 진짜 변화가 아니라 제자리 걸음 운동이다.
1. 원인이 결과보다 작을 경우.. 사건은 격발되지 않는다.
2. 원인과 결과가 같을 경우.. 제자리에서 순환되며 변화는 없다.
3. 원인이 결과보다 클 경우.. 차원의 하락을 동반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단순한 에너지 전달은 원인이 아니다. 편지를 보낸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집배원한테 책임을 물으면 안 된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차원이 높지만 집배원은 차원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받은 사람에게 없는 아이디어가 있다. 그 부분을 반영하면 차원이 높다. 당겨진 활에는 에너지가 있고 과녁에 박힌 화살에는 그 에너지가 없다. 차원이 다르다.
정보의 전달은 반드시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있으며 주는 자는 받는 자보다 차원이 높다. 같아도 안 된다. 같으면 주는 자가 아니라 전달자다.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정보전달은 일어나지 않는다. 1차원이 2차원에 무엇을 줄 수 없다. 점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므로 선에 무언가를 제공할 수 없다. 선은 점에 무언가를 줄 수 있다. 선이 끊어지면 점이 생긴다.
열역학 2법칙과 환원 2법칙 혹은 전체론은 같은 것이며 여기에는 반드시 사건 개념, 인과법칙 개념, 차원 개념, 권력 개념이 들어가야 한다. 주는 자와 받는 자는 차원이 다르며 사회에서는 그것을 권력이라고 한다. 권력이 같으면 의사결정이 안 된다. 같은 서울대 애들끼리 모여있으면 뭐가 진행이 안 된다. 심부름 할 사람도 있어야 하고 행동대장 할 졸개도 있어야 한다.
선진국이 일제히 몰락 코스로 들어가버린 이유다. 창업 1세대는 귀족인데 그들은 꼬붕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창업이 가능했다. 지금은 그게 되는 나라가 몇 없다. 미국은 세계에서 인재가 몰려오므로 인도 애들이나 아프리카 애들이 꼬붕 역할을 해준다. 중국은 워낙 덩치가 커서 귀주성, 운남성 애들을 시키면 된다. 일본도 과거에는 그게 되었는데 지금은 망했다.
한국이 잘 나가다가 자빠지는 이유는 구조가 망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돌아가려면 엘리트 10퍼센트, 중간계급 30퍼센트, 하층계급 60퍼센트라야 하는데 그런 구조가 무너졌다. 외노자를 중간계급 시키고 로봇을 하층계급으로 부리는 수 밖에 없다. 무질서도 증가의 법칙을 뚫고 여기서 더 전진하려면 인구를 압도적으로 늘리거나 식민지를 따먹거나 세계화 해야 한다.
선진국이 일제히 식물화 되는 이유는 엔트로피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쉽잖아. 신성로마 제국이 망한 이유는 민족이 18개나 되어 의사결정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이 외노자 유입을 멈추면 딱 신성로마제국 꼴 나는 것이다. 이건 법칙으로 정해져 있다. 인종의 용광로가 인종의 잡탕밥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쇄국주의를 실천하는 즉시 미국은 식물국가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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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 1법칙과 2법칙은 해석하기에 따라 모순될 수 있다. 1법칙은 같다고 하고 2법칙은 다르다고 한다. 1법칙이 공간의 대칭성이면 2법칙은 시간의 비대칭성이다. 뒤섞으면 안 된다. 에너지는 공간에서 더하고 빼면 같지만 시간에서 사용하면 다르다. 에너지를 사용하면 인과관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원인은 결과보다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자원의 배치가 잘못되면 인과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 화살을 거꾸로 매기면 날아가지 않는다. 화살 총량은 변하지 않으나 화살의 명중은 변한다. 과녁에 맞은 화살이 궁수가 쏜 화살보다 많을 수는 없지만 적을 수는 있다는 것이 열역학 제 2법칙이다.
사람들이 이 문제를 헷갈리지 않는 이유는 학자들이 법칙을 둘로 구분했기 때문이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도 같다. 공간에서는 환원되나 시간에서는 환원되지 않는다. 연탄이 낱장으로 열장이나 열장짜리 한 묶음이나 가격은 같다는게 환원 1법칙이다. 그러나 배달을 시키면 어떨까? 요금이 달라진다.
같은 상품도 쪼개서 여러번 배달하면 요금이 올라가므로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부분을 쪼개서 열 번 배달하면 배달료가 비싸고 전체를 합쳐서 한 번에 배달시키면 배달요금이 싸진다. 사람들이 열역학 1법칙과 2법칙의 모순은 전혀 거론하지 않으면서 환원법칙에 대해서는 왜 시비를 하는 것일까?
사실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인류는 사물의 열역학 1법칙과 사건의 열역학 2법칙도 모르지만 공간의 환원 1법칙과 시간의 환원 2법칙에 대해서도 모른다. 열역학은 법칙을 둘로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모순을 발견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환원법칙도 공간법칙과 시간법칙으로 나누면 무모순이다.
환원 1법칙 - 전체와 부분은 공간에서 환원된다.
환원 2법칙 - 전체와 부분은 시간에서 환원되지 않는다. (공유에 의한 효율의 차이)
열역학 1법칙 - 공간의 사물은 좌우가 대칭이다.
열역학 2법칙 - 시간의 사건은 원인과 결과가 비대칭이다.
사물은 환원되지만 사건은 환원되지 않는다. 불변은 환원되지만 변화는 환원되지 않는다. 공간은 환원되지만 시간은 환원되지 않는다. 공간의 왼쪽 오른쪽은 같지만 시간의 과거와 미래는 다르다. 원인과 결과는 차원이 같지 않다. 원인은 결과보다 차원이 높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한 차원 더 높다.
간단하다. 1+1과 2는 값이 같다는게 환원 1법칙이다. 이 경우는 전체는 부분의 합과 같다. 그러나 점 둘과 선 하나는 다른 것이다. 점 둘을 합치면 선이 되지만 점 둘과 선은 차원이 다르다. 점은 둘이라도 0차원이고 선은 짧아도 1차원이다. 이것은 초등학생도 알겠다. 부분과 전체의 합은 차원이 다르다.
열역학 1, 2법칙과 환원 1, 2법칙은 같은 법칙인데 인간들이 다르다고 믿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2법칙에 인과관계가 작동하고 있고 원인과 결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른다. 같은 차원에서는 사건이 격발되지 않는다. 남녀 두 사람은 0차원이고 부부 두 명은 1차원이다. 무엇이 다른가?
남녀 두 명은 그냥 두 명인데 부부 두 사람은 아기가 생겨서 조만간 세 명으로 늘어난다. 아는 척 하는 사람은 많아도 진짜 아는 사람은 없다. 원인과 결과는 차원이 다르다. 열역학 2법칙은 차원 문제다. 엔트로피 증가는 차원의 감소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차원 감소가 있다는 사실을 학자들은 모른다.
원인은 사건을 격발한다. 결과는 격발된 원인을 집행한다. 원인은 공유하고 결과는 공유하지 않는다. 모든 변화는 공유에서 일어나고 사유에서 종결된다. 결혼하면 공유하므로 아기가 생기고 이혼하면 사유하므로 아기가 안생긴다. 환원법칙은 열역학과 완전히 같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차원이 높다.
조립된 자동차가 1차원이면 분해된 자동차는 0차원 부품들의 집합이다. 부품들의 집합과 완성차는 당연히 가격이 다르다. 그 차이는 조립에 드는 비용이다. 조립된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면 2차원이고, 보험에 가입하고 번호판을 받으면 3차원이고, 도로 위를 운행하면 4차원이다. 변화는 차원을 바꾼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차원이 높다. 엔트로피 증가는 차원의 감소다. 자발적 변화는 차원의 감소 형태로만 일어난다. 엎어진 물과 그릇에 담긴 물은 차원이 다르다.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은 차원이 다르다. 활시위에 매겨진 화살과 그냥 화살은 차원이 다르다. 차원이 같으면 변화가 아니라 순환이다.
순환논증의 오류는 차원을 바꾸지 않고 변화를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차원의 변화가 있어야 순환 논증의 오류를 피한다. 밥은 똥의 원인이지만 똥은 밥의 원인이 아니다. 밥이 똥보다 차원이 높다. 똥도 거름되어 다시 밥이 되잖아 하는 억지는 피곤하다. 그건 태양이 개입했다.
사건은 원인과 결과가 대칭되어 1 단위를 이룬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는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지 않는다.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면 반드시 추가 에너지 투입이 있으므로 그 경우는 별개의 사건으로 분류해야 한다. 추가 에너지 투입이 없다면 변화가 아니라 순환이므로 역시 논외가 된다.
인공지능의 창발성은 차원의 차이 때문이다. 반도체를 많이 썼다고 차원이 증가한게 아니고 정보는 원래 차원이 있다. 총알을 많이 쌓아놓으면 터지는 수가 있다. 총알이 많아서 터진게 아니고 많은 총알 중에 하나가 우연히 뇌관을 건드려서 터진 것이다. 차곡차곡 쌓으면 아무리 많아도 안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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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의 집합으로 설명된다. 이 명제는 맞으면서 틀렸다. 공간은 환원되나 시간은 환원되지 않는다. 고장난 시계는 분해해보면 된다. 문제는 이 법칙이 고장난 시계에만 잘 들어맞는 법칙이라는 점이다. 살아있는 생물을 분해하면 죽는다. 생명이 사라졌다. 생명은 환원되지 않는다.
1. 공간의 대칭성.. 공간은 환원된다.
2. 시간의 비대칭성.. 시간은 환원되지 않는다.
복잡한 것이 단순한 것의 집합으로 설명되는 경우는 에너지가 없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창발성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단순한 것의 집합에 없는 것이 갑툭튀 하여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공간의 물질은 단순한 것의 집합으로 설명되지만 시간의 에너지는 단순한 것의 집합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환원법칙이 틀렸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맞을 때는 맞으므로 써먹을 때 써먹어야 한다. 낱낱이 따져봐야 한다. 복잡성은 무엇이고 집합은 또 무엇인가? 단순하다는 말은 피상적인 관찰에 따른 주관적인 느낌이다. 과학을 이 따위로 하면 안 된다. 집합은 에너지의 성질을 모르면서 얼버무리는 말이다.
우리는 단순한 것을 원자로 가정하고 집합에 대해서는 얼버무린다. 세상의 근원은 공간의 3차원 원자가 아니라 시공간의 4차원 에너지다.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통념적인 원자개념은 원리적으로 오류다. 관측자인 인간의 개입에 의해 오염된 것이다. 진실을 말하자. 복잡한 것은 공유결합이다.
공유는 에너지다. 움직이는 것은 공유된다. 집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공유하기 어렵지만 차는 움직이므로 공유할 수 있다. 자동차 한대를 낮에는 엄마가 쓰고 밤에는 아빠가 쓴다면 이득이 있다. 공유하면 효율성을 얻고, 효율적이면 이기고, 이기는 것이 의사결정한다. 우리는 그것을 에너지라고 한다.
1. 막연한 생각 - 원자의 집합
2. 구조론 진실 - 에너지 공유
에너지는 공유되므로 분해되지 않는다. 공유 효율의 척도가 차원 개념이다. 원자의 쪼개지지 않는 성질이 사실은 에너지의 공유하는 성질이다. 원자도 쪼개면 쪼개지는데 쪼개면 공유결합이 해체되므로 환원되지 않는다. 세상은 쪼개지지 않는 원자의 집합이 아니라 쪼개면 환원되지 않아서 곤란해지는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집합이라는 얼버무리는 말을 쓰면 안 된다. 에너지의 방향성은 단순한 것의 집합으로 설명될 수 없다. 에너지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차원인데 차원은 단순하지 않다. 차원은 공유되는 정도의 차이다. 에너지는 더 많은 공유에서 더 적은 공유의 일방향으로 움직이며 그 반대로 가는 역주행은 없다.
1. 틀린 생각 - 전체는 부분의 집합이다.
2. 구조 진실 - 전체는 더 높은 차원이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왜 작아졌을까? 공유를 잃었기 때문이다. 부품을 조립하다가 나사를 잃어먹은 사람이 '왜 가벼워졌지?' 하고 묻는 셈이다. 건물은 벽돌의 집합이다. 그런데 모르타르는? 모르타르는 벽돌 두 장이 공유한다. 건물은 벽돌들의 집합이 아니라 벽돌 + 모르타르 + 노동력이다.
우주공간에서 벽돌만으로 건축할 수 없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의해 우주공간에 모아둔 벽돌은 흩어진다. 지구에는 중력이 접착제 역할을 하지만 건축에는 중력에 맞서는 노동비용이 청구된다.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환원법칙이 맞다. 일이 문제가 된다. 변화가 문제다.
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의 집합으로 설명된다는 대전제가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단 우리가 법칙을 잘못 적용하고 있다. 수정하면 된다. 공간으로 한정할 때 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의 집합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복잡이 뭔지, 단순이 뭔지, 집합이 뭔지 하나도 모른다.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구조다. 구조는 자원의 공유결합이다. 공유결합은 외부 작용에 대해 2가 1로 행세한다. 2가 1 노릇을 하므로 환원되지 않는다. 2는 쪼갤 수 있는데 1은 쪼갤 수 없다. 원자는 물질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걸로 치자는 제안인데 쪼개져야 환원되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다.
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의 집합이 아니라 단순한 것의 공유결합이다. 공유순서대로 조립해야 한다. 많은 경우 복잡한 것을 분해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해결되지 않는 것은 집합이다. 집합은 공간의 사정이 아니다. 결합의 순서와 방향이 있다. 순서대로 조립해야 하므로 시간이 걸린다. 공간은 쪼갤 수 있는데 시간은 쪼갤 수가 없다.
공간은 좌우가 대칭이지만 시간은 전후가 비대칭이다. 전기는 한 방향으로 흐른다. 혈관의 피는 동맥에서 나와 정맥으로 들어가며 그 반대는 없다. 우리는 전기와, 자기와, 혈류와, 강물이 비대칭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안다. 공장의 조립라인은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라인이 역주행을 하면 곤란해진다.
권력은 왕에서 귀족과, 기사와, 평민을 거쳐 농노로 내려오고 그 반대는 없다. 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의 집합으로 설명된다는 생각은 공간의 대칭성에 한정되며 시간의 비대칭성에 의해 부정된다. 구조로 보면 다른 세계가 결린다. 환원과 비환원을 정확히 나누어 환원법칙을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것은 구조다. 구조는 공유다. 공유는 효율성이다. 효율은 이긴다. 이기면 의사결정한다. 자발적 변화는 닫힌계에 압력이 걸렸을 때 공유결합을 일으켜 단순한 것이 집합된다. 즉 가만 두면 집합되지 않고 매우 까다로운 결맞음의 조건을 지켜야 비로소 단순한 것이 조립되어 집합되는 것이다.
1. 틀린 가정 - 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의 집합으로 설명될 수 있다.
2. 바른 가정 - 복잡한 것은 닫힌계에 압력이 걸려 조립된 공유결합이다.
어디까지 환원되고 어디서 막히는지 알 수 있다. 환원은 공유에서 막힌다. 원자는 쪼깨지지 않는게 아니라 쪼개면 공유가 사라져서 원자의 성질을 잃으므로 함부로 쪼개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세포를 쪼개면 생명이 죽는다. 의사가 수술을 해도 세포는 쪼개지 말아야 한다. 혈액순환은 건드리지 말자.
환원되지 않지만 많은 경우 환원되는 척 한다. 엔트로피는 증가되는데 감소되는 척 한다. 증가와 감소가 대칭되는 척 한다. 무한동력은 없는데 무한동력인 척 속인다. 그 경우 반드시 상부구조가 있다. 환원되는 척 하는 것은 배후에 물주가 있다. 아이의 배후에 엄마가 있다. 지구의 뒤에 태양이 있다.
개인의 뒷배는 집단이다. 크게 세력을 이루고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판하게 된다. 환원되지 않으면서 환원되는 척 위장하기 때문이다. 환원되는 것으로 착각했다가 뒤통수를 맞는다. 그 지점이 공세종말점이다. 잘 나가다가 딱 막히는 지점이 있다. 무한동력이 유한동력으로 바꿔진다.
턱 없는 짓을 해도 일정한 한도 안에서는 성공한다. 거짓말도 한 두 번은 성공한다. 삼 세번은 속이지 못할 뿐이다. 아기가 똥을 싸도 엄마 앞에서는 괜찮다. 환원되면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시절로 되돌릴 수는 없다. 보톡스와 태반주사를 맞고 위고비를 먹으면서 젊음을 위장한다.
속임수가 될때까지만 되고 선을 넘으면 안되는게 문제다. 차원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 0차원에서 환원되지 않으면 1차원을 헐어야 한다. 1차원에서 막히면 2차원을, 2차원 3차원을 거쳐 4차원에서 막히면 공세종말점이다. 더 이상은 허물 수 없다. 논에 물이 없으면 윗 논의 물꼬를 헐어야 한다.
계단식 논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더 이상은 어쩔 도리가 없다. 궁극적으로 환원되지 않지만 차원을 따라 정렬하면 환원되는 지점까지는 환원된다. 사회에 계급질서가 존재하는 이유다. 구조를 알면 불리해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비를 기다리며 버틸 수 있는 한도까지 버티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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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은 에너지의 방향성을 추적하는 방법으로 미래를 예견하고 변화에 대응하는 이론이다. 에너지는 정해진 길을 가므로 우리는 사건의 다음 단계를 예측할 수 있다. 세상은 변하지만 변화의 규칙은 불변한다. 우리는 변화 속의 불변을 이용하여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지도를 보는 방법이다. 좌표를 중심으로 봐야 하는데 우리는 눈에 띄는 표지에 매몰되는 실패를 저지른다. 큰 건물이나 높은 산을 기준으로 길을 찾으면 동서남북이 틀려서 망한다. 객체 자체의 내재적 질서를 중심으로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그것은 특별히 훈련되어야 하는 깨달음의 눈이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환원주의다. 환원주의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이용한다. 부분의 합은 전체와 같다는 대전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양자역학 시대에 환원주의는 해체된다. 그러나 환원주의 아이디어는 유효하다. 환원주의를 대하는 인간의 방법론이 틀렸다.
많은 경우 내부를 잘게 쪼개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답이 찾아진다. 환원주의는 틀렸는데 왜 우리는 환원주의에 의존하고 있을까? 입자의 환원주의가 아닌 에너지의 환원주의가 필요하다. 사물의 환원주의가 아니라 사건의 환원주의가 필요하다. 원자 환원주의는 틀렸지만 구조 환원주의는 유효하다.
세포가 부분이면 생명은 전체다. 생명은 세포의 합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포도 쪼개진다. 궁극적인 단계까지 나아가면 최후의 단위에 도달하지 못하고 희미해진다. 그것이 양자역학이다. 원자를 쪼개고 소립자를 쪼개면 또 무엇이 나온다. 거기서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작다는 모순을 만난다.
부분은 원자인가? 아니다. 원자의 존재는 인간의 희망사항이다. 최후의 입자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없다. 양자역학의 최종 결론은 우주는 시뮬레이션이라는 대전제를 가리키고 있다. 갈수록 아리송해진다. 구조론의 답은 변화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은 원자가 아니라 변화다. 세상은 변화의 합이다.
1.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으므로 기계론 환원주의는 거짓이다.
2. 부분이 변화이면 변화의 합인 부분의 합+결맞음은 전체와 같다.
3. 변화는 움직이고 움직임은 방향이 있고 합은 방향의 결맞음이다.
원자는 원리적으로 없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변화의 결맞음이다.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작은 모순의 발생 이유는 부분을 불변으로 놓는 오류 때문이다. 계속 쪼개면 최후에 불변의 요소가 나온다는 근거는 없다. 계속 쪼개면 최후에 변화가 나온다. 부분의 합이 전체가 되려면 결맞음이 필요하다.
존재를 쪼개면 나타나는 것은 공간을 점유하는 원자가 아니라 공간을 이동하며 시간이 흐르는 변화다. 원자 환원주의와 구조 화원주의 차이는 시간을 반영하느냐에 있다. 부분의 합에는 시간이 없다. 사건의 순서가 없다. 바둑을 해체하면 최후에 바둑알로 환원되는게 아니라 바둑알과 기보로 환원된다.
변화에는 방향이 있으므로 전체는 부분의 합에 없는 결맞음이 있다. 공간의 방향과 시간의 순서라는 질서가 있다. 방향과 순서를 합치면 결맞음이다. 레고블럭도 방향이 맞아야 조립된다. 이 부분을 간과하므로 전통적인 환원주의와 기계론적 사고는 틀렸다. 결맞음을 반영한 구조 환원주의가 필요하다.
원자 환원주의 - 전체는 부분의 합과 같다.
구조 환원주의 - 전체는 변화의 결맞음(방향과 순서)과 같다.
원자 환원주의는 틀렸지만 구조 환원주의는 옳다. 구조론은 자연계의 모든 현상을 물리학으로 환원시킨다. 사회학은 심리학에 기대고, 심리학은 뇌과학에 기대고, 뇌과학은 생물학에 기대고, 생물학은 화학에 기대고, 화학은 물리학에 기대고, 물리학은 수학에 기댄다. 수학은 구조론의 질서로 환원된다.
우주에 에너지의 질서가 있을 뿐이다. 변화의 질서가 있을 뿐이다. 낮은 단위에서 모르는 것은 높은 단위에서 답을 찾는다. 방향이 문제다. 원자 환원주의는 잘게 쪼개면 답이 나오지만 구조 환원주의는 크게 합쳐야 답이 나온다. 합쳐야 에너지 공급자인 결맞음이 일어난다. 원인은 결과보다 커야 한다.
활은 화살보다 크다. 원자론이 화살을 들고 활을 찾는 관점이라면 구조론은 활을 들고 화살을 매기는 관점이다. 관심의 방향이 다르다. 원자론은 잃어버린 레고블럭 조각 하나를 찾지만 구조론은 설계도를 찾는다. 설계도에는 전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먼저 틀을 정하고 내부를 채워넣는 관점이다.
원자론 - 작은 것이 답이다.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라.
구조론 - 큰 것이 답이다. 잃어버린 설계도를 찾아라.
차원을 쪼개면 0차원 점에 도달한다. 점은 더해도 점이다. 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반대로 차원을 합치면 사차원 계에 도달한다. 계는 닫힌계 내부에 밸런스의 축과 대칭을 갖춘다. 닫힌계 내부에 압력을 걸어주면 밸런스의 복원력이 작동하므로 우리는 미래를 예견하고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다.
자연계의 모든 자발적 변화는 무너진 밸런스를 복원하는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변화는 결맞음에서 멈춘다. 그러므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불변은 알 수 없지만 변화는 알 수 있다. 변화는 동력을 소모하므로 공세종말점에서 멈춘다. 잃어버린 동전이 어디까지 굴러가는지 안다. 오르막에서 멈춘다.
원자론은 쪼개기 관점이다. 차원을 쪼개면 점에 막혀서 허무해진다. 점은 쪼갤 수 없으므로 어떻게 해볼 수 없다. 거기가 막다른 절벽이다. 거기서 막힌다. 차원을 합치면 객체 내부의 자체 엔진이 찾아진다. 내재적 질서가 있다. 에너지의 방향성이 있으므로 사건의 다음 단계와 진행경로를 알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명백해진다. 바둑을 처음부터 다시 두어보면 초기 단계에서 포석이 잘못되어 승부가 결정된 것을 깨닫는다. 변화의 결맞음을 조립하여 차원을 높여가면 완전성이 드러난다. 우리가 찾는 답은 완전성에 있다. 물질 원자가 단위가 아니고 변화의 완전성이 단위다.
원자론 관점 - 작은 알갱이가 단위다.
구조론 관점 - 에너지를 품은 큰 완전성이 단위다.
완전성은 씨앗이다. 씨앗은 작아도 우주를 품는다. 배아와 배젖이 있다. 있을 것은 다 있다.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포함한다. 장차 꽃이 되고, 잎이 되고, 열매가 되고, 뿌리가 되고, 줄기가 될 싹수가 숨어 있다. 싹수를 보고 우리는 그 사람이 크게 될 사람인지 평범하게 살아갈 사람인지 알아낼 수 있다.
닫힌계 안에 내재적 질서가 있다. 축이 대칭을 장악하고 압력을 조절한다. 축이 공유되는 효율성으로 대칭의 상대를 이긴다. 이기는 팀을 따라가면 우승팀을 맞출 수 있다. 진 팀을 따라가봤자 인천공항으로 출국해서 자기나라로 귀국해 버리므로 얻는게 없다. 언제나 사건의 결맞음을 따라가야 한다.
우리는 하부구조로 내려갈수록 단순해진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상부구조로 올라설수록 단순해진다. 기슭에서는 복잡하지만 정상은 단순하다. 말단의 일처리는 복잡하지만 정상의 일처리는 단순하다. 기업의 총수를 만나면 5분 만에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원자론이 말단직원이라면 구조론은 총수다.
세상은 단순한 것의 복제다. 단순한 것은 내부에 변화를 갖추고 있다. 그것이 완전성이다. 세상은 단순한 원자의 집합이 아니라 내부에 자체 질서를 갖춘 완전성의 복제다. 하나의 세포는 완전하다. 세포는 분열해도 완전하다. 원자 내부에 아무 것도 없지만 완전성 내부에 복제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에너지는 생겨나지 않으므로 변화를 설명하려면 원래부터 변화가 있었다는 대전제를 인정해야 한다. 여기서 관점이 달라진다. 이후 완전히 다른 길로 가게 된다. 불변이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변화가 구조에 의해 가지런해지면 그것이 불변이다.
우주는 내부에 질서를 갖춘 완전성의 복제다. 구조는 변화의 단위, 의사결정의 단위다. 구조는 돌멩이처럼 죽어있지 않고 세포처럼 살아있다. 내부에 충분히 갖추어져 있으므로 외부의 간섭 없이 능동적으로 변화를 격발한다.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자연의 저절로 움직이는 것에는 모두 구조가 있다.
존재의 기본 단위는 당겨진 활처럼 화살이 매겨져 있고 겨낭된 총처럼 총알이 장전되어 있다. 외부의 영향이 없이 내부 모순에 의한 의사결정은 척력의 형태로 일어난다. 우주의 근원은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려고 하는 척력이므로 가만 두면 점점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다.
인력은 척력 둘의 결맞음이다. 인력은 결맞음이라는 특별한 조건을 충족해야 하므로 자발적으로 조립되지 않는다. 인력을 성립시키려면 반드시 상부구조를 두어야 한다. 2층이 무너지는 형태로만 1층은 저절로 건축된다. 외부의 개입에 의해서만 인력은 성립한다. 무한동력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다.
세상이 복잡한 것은 중복과 혼잡 때문이다. 중복과 혼잡을 제거하면 구조가 남는다. 세상은 구조다. 우리가 구조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관점의 오류 때문이다. 관측은 주체와 객체의 대칭이다. 대칭은 축의 공유다. 관측자와 객체가 서로 공유한다. 외부 관측자와 대칭되며 객체 내부 자체 대칭이 깨진다.
관측에 의한 오염이다. 모든 관측은 오염된다. 내부의 축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밖에서 건드리면 부부관계가 깨진다. 오염시키지 않고 관측할 방법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내부에서 스스로 관측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고 활몸이 활시위를 당기고 활시위가 화살을 날리면 된다.
구조는 내부구조다. 객체 내부에 자체 엔진이 되는 의사결정 구조가 있다. 외부 영향을 받는 가변적 관계를 내부의 고정된 구조로 바꿔보는 관점의 훈련이 필요하다. 관측자를 배제하고 객체 자체의 규칙성을 찾아내는 내재적 관점을 획득해야 한다. 깨달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오직 밸런스다.
밸런스의 복원은 인력이다. 언밸런스는 척력이다. 우주의 모든 힘은 궁극적으로 척력이며 인력은 척력의 교착이다. 원자나 소립자는 척력의 교착이다. 입자의 겉모습은 인력이지만 객체 내부에는 척력이 도사리고 있다. 우주의 근원은 척력의 언밸런스이며 세차운동을 통해 자체 질서를 획득한다.
행성이 타원궤도를 돌며 조금 빨라졌다 느려졌다 한다. 언밸런스가 겉보기 밸런스를 얻는 방법이다. 모든 행성은 본질에서 언밸런스이나 세차운동의 타원궤도에 의해 겉보기 밸런스를 이룬다. 언밸런스 둘이 나란하면 관측자에게는 밸런스다. 언밸런스 + 언밸런스 = 밸런스다. 척력 + 척력은 인력이다.
1. 척력 + 척력은 인력이다.
2. 언밸런스 + 언밸런스는 밸런스다.
3. 언밸런스가 밸런스로 위장하는 것은 세차운동이다.
4. 모든 밸런스는 내부에 언밸런스의 결맞음을 숨기고 있다.
5. 우주 안의 모든 힘은 밸런스의 복원력이므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인력은 언밸런스 둘의 결맞음이 만든 겉보기 밸런스다. 내부에 언밸런스를 숨기고 있으므로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우주가 본질에서 척력이기 때문이다. 밸런스가 깨지면서 거리가 멀어져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다. 자연계의 자발적 변화는 척력 뿐이다.
우리는 에너지의 방향성을 추적하여 미래를 예견하고 변화에 대비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잘게 쪼개는 환원주의 방법은 원리적으로 틀렸지만 잘게 쪼개다보면 우연히 답이 찾아진다. 쪼개다보면 합쳐지는 방법의 설계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그것을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찾아낸다.
1. 환원주의는 틀렸지만 우리는 환원주의로 성과를 낸다.
2. 우리는 환원주의로 잘게 쪼개다가 우연히 답을 찾아낸다.
3. 잘게 쪼개다가 우연히 합치는 설계도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4. 구조론은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통해 필연적으로 답을 찾는다.
5. 부분에서 전체로 발산은 틀렸고 전체에서 부분으로 수렴은 옳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