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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1차 산행
속세가 더 좋아
만수동 -피앗재-천황봉(1058)- 상고암 삼거리-법주사
(초록님께서,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이것저것 바쁘고 특히 추석 쉬러 큰집이 있는 서울로 일찍 올라와 아직 내려가지 못하여 밀린 종주기 중 속리산 1차 구간의 종주기를 대행해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총장님의 지나간 산행기도 다시 보고 그때의 기억과 기분을 정리하여 초록님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들어 드리는 마음에서 22차 종주기를 올립니다.)
원래 계획대로 하면 2주전의 종점인 지기재에서 두 구간을 더 걸어 10월이 되어야 속리산구간에 오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 두 구간을 다음으로 미루고 속리산구간 부터 먼저 타기로 했다. 법주사나 문장대뿐만 아니라 속리산 단풍구경으로 10월의 휴일은 속리산 접근도로와 등산로에 체증이 심하기 때문이다.
속리산의 명성 덕분인지 오늘은 새벽에 떠나는 우리의 노란 버스에 15명의 많은 선수가 모였다. 따님과 둘이서 오손 도손 2주간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신 초록님의 건강한 모습이 더욱 반갑다.
여섯시가 조금 넘었는데 부산을 벗어나는 도로는 벌초 가는 차량으로 정체가 심하다. 추석을 앞두고 조상들의 묘소로 향하는 효심이 도로를 메우고 있다.
오늘의 속리산 1차구간은 갈령을 출발해서 형제봉-천왕봉-신선대-성불암까지 빠르면 8시간 늦으면 10시간은 걸린다. 산행 초입인 갈령까지 9시경에는 도착해야 해지기 전에 산행을 끝낼 수 있을 텐데 도로의 체증이 걱정이다. 청도 휴게소에서 휴식 중 선수들과 의논한 결과 갈령에서 형제봉을 거쳐 피앗재로 가는 2시간정도의 거리는 생략하고 만수동에서 피앗재로 올라가서 천황봉을 거쳐 첫 갈림길이 나오면 바로 법주사로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만수동은 속리산끝자락의 몇 집 안 되는 심심산골 마을이다. 좁은 길을 물어물어 만수동에 도착하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세상과 격리될 정도로 오지인 속리산의 만수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조그마한 마을 만수동! 이곳에 살면 이름그대로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다. 대가람 속리산의 품에 안겨 물도 공기도 맑은데 잘 익어가는 밭의 이삭들을 보니 오래 산다는 말이 빈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수동 집집이 담벼락 밑에 작은 화단을 가꾸어놓았다. 오랜만에 보는 활짝 핀 진홍색의 다알리아 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강렬한 원색의 꽃들이 훤칠하고 아름답다. 사람의 손길로 정성 들여 키운 꽃들이다. 그러나 호월의 대물은 그런 꽃들의 유혹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바다건너 온 교배잡종이 비료 먹고 가꾼 몸매에 아무리 화장 진하게 하고 요염을 떨어 봐도 우리 야생화와 첫 정분을 맺은 그 대물의 순수는 끄덕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하긴 이런 심심 산골마을에 원예종 화단보다는 우리 야생화 밭이 있다면 훨씬 더 아름다울 것 같기도 하다.
만수동 뒤에 우뚝 솟아있는 이 산이 왜 속리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추풍령부터 속리산에 오기까지 여섯 개 구간으로 이어지는 긴 산맥이 백두대간 중 가장 낮은 해발이고 완만한 산줄기라서 마을과 논밭과 시냇물을 품에 안고 사람이 살아가는 세속의 터전이 되었다. 그 터전에서 생명처럼 진지했던 미움과 사랑, 절망과 희망, 슬픔과 기쁨들이 엮어내는 세상의 만사가 덧없는 구름이 되어 수없이 대간마루를 넘어갔다. 그렇게 세속의 터전이던 산맥이 속리산에 와서는 갑자기 높이를 곧추세우고 산위의 산이 되어 세속과 이별하기 때문에 속리산이라는 이름이 된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이름의 유래가 어떠하든 옛날 김시습이 영원히 속세와 이별하려고 덕유산 구천동계곡의 ‘이속대’를 지나 백련사로 들어갔듯이 우리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탈속을 해보고자 속리산에 입산한다.
숲이 조용하다.
2주 전만해도 온통 숲을 메우던 매미들의 함성이 이제 들리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한 생애를 살다가 계절의 순환을 따라 가 버린 그들의 빈자리가 홀연히 사라져버린 문명이 남겨놓은 유적처럼 공허하면서도 엄숙하다.
40분쯤 그리 힘들지 않는 오르막길을 올라 피앗재에 섰다. 원래 계획대로 했다면 갈령에서 형제봉까지 급경사를 올라 여기까지 와야 하는데, 두 시간은 족히 걸리고 힘이 많이 빠졌을 지점이다. 갈령에서 출발하지 않고 만수동에서 피앗재로 오르도록 경로를 줄인 것이 다행이다.
땀을 식혀주는 가을바람이 상쾌하다.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나무들도 가을바람의 장단에 맞추어 활개춤을 추며 신이 났다.
천황봉을 향해 좁은 능선길을 걷는다. 이 능선은 경상북도 상주시와 충청북도 보은군의 경계선이다. 오랜만에 백두대간 종주팀을 여럿 만난다. 싱싱한 청춘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피앗재부터 고도를 높여가는 능선 길 좌우에 며느리밥풀꽃 군락이 유난히 많은 것이 신기하다. 붉은색 며느리밥풀꽃이 우리보다 앞장서서 천황봉으로 계속 행진하고 있다. 시집살이 고달팠던 경상도와 충청도 옛 며느리들의 애환이 이 능선에 모두 모여, 서러움의 증거인양 하얀 밥풀 두 알씩을 물고 천황님에게 하소연 하러 가는 모양이다. 그 붉은 행렬에 방해가 될까봐 조심하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경사가 좀 급한 곳을 올라도 시원한 바람이 땀을 먼저 식혀준다. 등산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오늘 처음 완주하는 영철이 부부도 생각보다 잘 걷는다. 이 정도의 거리를 문제없이 잘 걷는 것을 보니 백두대간의 나머지 구간도 완주 할 수 있을 것 같다.
11시가 조금 넘어가자 모두 배고파한다. 그러나 좁은 능선이 계속되어 우리 15명의 점심상을 펼 만한 넓은 곳이 없다. 적당한 자리를 찾으며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선을 계속 걸어간다. 천황봉을 저만치 위에 두고 15명이 겨우 앉을 만한 능선이 나왔다. 점심상을 펼친다. 비집고 앉아보니 반은 경상도에 반은 충청도에 앉은 꼴이다.
오늘은 갈 길이 멀어 중식 후 취침을 생략한다. 곧 출발하여 천황봉을 향해 마지막 깔닥고개를 약 30분 동안 힘들여 오른다. 3년 전에 이곳을 오를 때 무척 고생한 기억이 나서 오늘 우리 선수들 특히 영철이 부부가 걱정이 되었으나 산의 풍광이 좋고 가을바람이 시원해서 그런지 별 문제없이 잘 오른다. 시야가 트이는 첫 바위전망대에서 뒤를 돌아보니 오늘 생략한 형제봉이 많은 아우들을 거느리고 저 멀리 서있다. 다음에 우리들이 언젠가는 올라야 할 봉우리다. 형제봉과 멀어지며 드디어 속리산 정상 천황봉에 올랐다.
갑자기 시야가 사방으로 트인다. ‘한남금북정맥’이 서쪽으로 자세를 낮추며 뻗어가는 것이 보인다. 한강과 금강을 가르는 산맥이다.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 날에 ‘금남호남정맥’이 함양의 영취산으로부터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대간에서 뻗어가는 정맥을 여기 천황봉에서 두 번째로 보는 셈이다.
대간의 등줄기에서 가지 친 산맥들, 산맥과 산맥 사이를 흐르는 강, 강이 만든 수계, 수계가 일구어 놓은 들판과 마을들, 그 모든 것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속세가 발아래 펼쳐진다. 속리산은 법주사와 많은 부속암자를 거느린 대 가람이다. 큰 바위 작은 바위 모두 대가람 속에 좌정하고 앉아 법열에 들어있다. 시집살이 고달팠던 며느리밥풀꽃의 붉은 한탄도 이곳에서는 한 점 구름이요 한 줄기 바람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속세를 떠나 불계에 와 있는 것이다.
잠간이라도 속세를 떠나고자 힘들여 올라온 사람들로 좁은 천황봉이 붐빈다. 구름 탄 신선흉내도 잠시 우리는 곧 하산을 위해 천황봉을 떠난다. 주능선을 조금가다 상고암 삼거리에서 법주사 쪽으로 하산해야한다. 법주사를 벗어나야 다시 우리가 사는 속세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천황봉이 너무 붐벼 꺼내지 못했던 정상주를 상고암삼거리에서 신선주마시듯 한잔씩하고 출발한다.
내려올수록 참나무보다 적송이 많아진다. 적송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나무다. 검은 철갑을 두른 거친 소나무나 소슬바람에도 잎을 뒤집으며 가볍게 흔들리는 참나무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적송들의 가지가 붉은 단청 같이 우아한 빛을 내며 깊고 푸른 솔숲을 만들어 놓았다. 청량한 숲에서 솔 내가 향긋하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무에게도 그들의 품격인 수격이 있다면 적송의 수격이 단연 으뜸일지 모른다. 거대한 중량을 속리산에 내려놓고 억년의 침묵으로 묵음수행중인 바위들, 그 묵묵한 좌정 옆에 저토록 어울리는 나무가 적송 말고는 또 있겠는가? 바위들의 억년 침묵과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적송의 격조를 새기며 속리산을 내려온다.
해거름 무렵에 법주사 가까이 왔다.
범종이 울린다. 길옆에 서 있는 키 큰 소나무와 참나무들도 숲속으로 펴져가는 종소리를 들으며 엄숙히 도열해있다. 모정보다 더 깊고 부처님같이 자애로워 보이는 푸른 호수가 산 밑에 누워있다. 울창한 나무들이 너도나도 울타리 둘러주는 그 잔잔한 수면위에 속리산의 그림자가 내려와 있다. 산이 겪어온 풍상과 사연들을 차곡차곡 퇴적하고 있을 깊은 호수가 품에 안긴 산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평화스런 풍경이다.
은은히 들려오던 범종의 마지막 여운이 가을바람을 따라 속리산의 침묵 속으로 사라진 후 8시간의 탈속을 끝낸 우리는 옥교수를 따라 맛 집으로 갔다. 해가 사라진 어둠속에서 번쩍이는 네온이 속세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옥교수는 강산이 한번 바뀌는 것보다 더 오래전에 왔다던 식당의 위치와 음식 맛을 귀소본능을 가진 연어처럼 잘도 기억하고 있다. 월매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아주머니들이 산해진미 가득한 음식상을 춘향이 태운 가마 모시듯 정성스레 방으로 들여온다. 수 십 개의 접시에 진열된 음식들이 옥교수의 추억대로 과연 별미다. 법계에서 하루의 탈속을 끝내고 이제 막 속세로 돌아와 그 별미를 탐하던 우리의 식욕은 곧 오르가즘에 빠지고 말았다. 그날 밤에 잊지 못 할 속세의 행복을 책임져주신 옥교수님, 심옹님! 고맙습니다.
대간거리 6km, 걸은 거리 8.6km, 걸린시간 6.5시간
2007/9/9
첫댓글 내 일찍부터 능선따라님의 문재가 뛰어남을 알고 있었지만..산의 정기가 필력에 더해져 이젠 능선따라 가듯 물 흐르듯 거침이 없는것 같아요!!
속리산! 능선생의 산행기에서 궁상맞은 며느리 밥풀때기풀도 우뚝솟은 봉우리도 좌정한 바위도 잘 차려입은 나무도 고요히 내려앉은 호수도 하나같이 속세를 떠나 깨달음을 얻고자 법음에 귀 기울이는 듯 하니 그곳은 대 가람임이 분명하다. 능선생이 속세로 돌아와서 빠졌다는 오르가즘은 곧 속리산 산행에서 깨달은 법열이 이어진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일상에서나 산행중에서나 여여하게 즐거워하는 능선생이 부럽다.
능선따라의 산행기에는 인생에 대한, 자연에 대한, 그의 철학이 배어나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다 읽고 나면 잠시동안 사색에 잠기게하는 마력도 있다. 목마른 나그네들에게 조건없이 목을 축여주는(단,술은 빼고) 그런 옹달샘이 되어주길 바란다!
능선따라님에게 부담을 주는 것인지, 능력발휘의 기회를 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뛰어난 감각과 훌륭한 문장은 대단합니다.
능선따라님의 글을 읽고 싶은 것은 통찰력이 담긴 사색과 사물을 보는 눈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뛰어넘는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굳이 산행기를 안쓰려는 의도는 모르겠지만, 입맛이 변해버린 독자들에게 다시 식상한 식단을 차려야 하는 나의 처지가 실로 난감하다.
초록님 우린 매일 3끼만 먹여주면, 반찬도 필요 없고요 밥만 있으면 됩니다.
초록님의 산행기는 언제 먹어도 구수한 된장이고 시원한 숭늉입니다. 물리지 않고 식상하지 않는 그 산행기를 많은 팬들이 그리워합니다.
글에도 성(性)이 있는가? 하고 누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초록님의 산행기에는, 같이 산행하고 있는듯이 느끼게하는 여성으로서의 섬세함과, 잔잔히 이끌어주는 모성에 의한 포근함이 있읍니다(수주버서 댓글을 맘되로 못올려서 그렇치). 우리 산행기의 독자들은 입맛이 변한게 아니고요, 양(兩)성의 훌륭한 산행기에 행복에 겨워하고 있는것 입니다. 부동산팀에 다른분을 포함 두분이 계신다는것은 실로 우리의 긍지가 아닐수없읍니다. 우리의 모또처럼 "오랫동안 징그럽게 어울릴수 있도록" 초록님의 계속된 노고도 정중히, 간절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초록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