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각오의 믿음으로, 천하무적의 신앙인으로 살게하소서
(시 22:1-18)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오늘의 본문은 '다윗의 시(诗), 인도자를 따라 아앨렛 샤할에 맞춘 노래'가 표제(标题)다. '야앨렛 샤할'이란 '곡조(曲调)의 이름'으로 여겨진다. 이는 난외(栏外)에 '사슴이란 곡조에'라고 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이 시는 다윗이 실제적으로 겪은 고통의 삶을 고백한 시로,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메시야의 예언시(预言诗)'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 시에 담겨진 내용은 다윗 사후(死後) 약 일천년(一千年)이 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서 그대로 이루어졌다.
시인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绝叫)하여 하소연했다. 이는 훗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 외치신 말씀과 같다(마27:46).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서, 마치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과 같은 극한 고난 중에서 고통스럽게 부르짖는 기도다. 계속하여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탄식하듯이 부르짖는다.
극심한 곤고함 중에도 시인의 기도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었다. 따라서 '내 하나님이여'라 부르며,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였다'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부르짖어 기도했음을 고백한다. 그는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 응답받지 못했지만,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라며,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고 더욱 신뢰함을 나타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라며,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라 증거했고,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로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고백했다.
이런 믿음이 오늘의 성도, 특히 내게 꼭 필요한 믿음이다.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마치 하나님께서도 외면하시듯이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하나님의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 그런 믿음이 절실(切实)한 시대를 살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나라꼴이 형편없게 된 작금(作今)의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믿음인 것을 깨닫게 했다. 왜냐하면 세상이 제아무리 제멋대로 꼬이고 엉킬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런 일들을 통해서도 당신이 섭리하신 뜻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라 하여 철저하게 자신을 부정한다. 더불어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것,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것 하나이다'라고 탄원(叹願)한다. 이는 시인이 자신의 곤고한 처지를 마치 비관(悲观)이라도 하는 듯이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인이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가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심을 은연 중에 고백하여,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은혜를 구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또한 본문은 예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그대로 이루어졌다(마27:39~44).
시인은 더욱 더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신뢰했다. 그래서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라며,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라 했다. 이는 전인적(全人的)인 신앙고백이다. 젖먹이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주께 맡긴 바 된 생애를 살았음을 간증한다. 이런 믿음으로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라 기도하며,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라고 고백했다. 이로써 오 직 하나님만이 자기를 도울 수 있다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를 나타냈다.
시인은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내가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라 하여, 자신이 여러 가지 일들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증거한다. 따라서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라며,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라고 고백했다. 이는 당면한 현실의 곤고함으로부터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기도로, 마치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연상하게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마지막 날 밤에 겟세마네로 가시면서,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부르짖어 기도하셨다(마26:37~39). 예수님의 기도가 얼마나 처연했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될' 정도였다(눅22:44).
시인은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라 고백했다. 이는 자기에게 고난을 안겨주는 자들의 잔혹함이 얼마나 심한지에 대한 고발이다. 따라서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라 하여, 견디기 벅차게 여겨지는 고통스러움을 고백하며,'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하여, 고난의 끝은 죽음인 것을 예상하여 받아들였다.
시인의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함에 있어 세상에서 당하는 어떤 고난과 역경도,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믿음이 꺾이지 않을 것을 증거한다. 이것이 일사각오(一死觉悟)의 믿음이다. 따라서 오늘의 본문에서 나는 인생에 한번 죽는 것을 당연한 일이며,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세상에서 어떤 고난과 역경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천하무적(天下无敌)의 신앙이 되게 함을 깨닫게 했다.
[기도] : 오늘도 제게 필요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로 하여금 일사각오의 믿음으로 천하무적의 신앙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목숨 바쳐 주님께 충성을 다하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세상에서 당하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넉넉히 감당하며 살게 하옵소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불꽃 왕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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