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의 한분인 김구 선생이 택견의 명수였다고 하면 아마 매우 놀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인 백범일지(白凡逸志)에는 분명히 그가 택견의 고수임을 연력히 드러내는 대목이 있다. 선생이 스물 한 살되는 해인 1896년 삼남(三南)에 의병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가는 길에 안악군 치하포(安岳郡 치河浦)에서 우연히 변장을 한 일본군 대위 쯔치다를 만나게 되었다. 이놈이 필시 국모(명성황후)를 시해한 범인의 일당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선생은 놈을 죽여 원수를 갚으리라 결심한다. 그러나 상대가 칼을 가진 자객이요, 거기다가 열일곱 여덟살되어 보이는 총각 하나가 시중을 들고 따라다니고 있는데 자신은 적수공권(赤水空拳)이었다. 계책을 궁리한 후에, 맨손으로 그 일본인에게 덤벼든다. 그 장면을 백범일 지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때가 왔다 하고, 서서히 일어나 '이놈!'소리를 치면서 발길로 그 왜놈의 복장(腹臟)을 차니, 그는 거의 한 길이나 되는 계하에 나가 떨어 졌다. 나는 나는듯이 쫓아내려가 그 놈의 모가지를 밟았다. 삼간 방문 네 짝이 일제히 열리며, 그리로 사람들의 모가지가 쑥쑥 내밀어졌다. 나는 몰려나오는 무리를 향하여, '누구나 이 왜놈을 위하여 감히 내게 범접하는 놈은 모조리 죽일테니 그리 알아라!'하고 선언하였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발에 채이고 놀렸던 왜놈이 몸을 빼쳐서 칼을 번쩍거리며 내게로 덤벼들었다. 난느 내 면상에 떨어지는 그이 칼날을 피하면서 발을 들어 그의 옆구리를 차서 거꾸러뜨리고 칼을 잡은 손목을 힘껏 밟은즉 칼이 저절로 언 땅에 소리를 내고 떨어졌다. 나는 그 칼을 들어 왜놈의 머리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난도를 점점이 쳤다.
이때 김구 선생이 발질은 택견의 는질러차기, 곁치기, 혹은 째차기 등의 기법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잘 연마된 일본군 장교의 검술을 맨손으로 당해내는 데는 단순한 용기와 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특히 옆구리를 차서 거꾸러뜨렸다는 이야기는 택견의 기법이 차서 넘어뜨리는 발질을 주 로하고 있다는 점과도 일치하고 있다. 김구 선생은 소년시절에 통감(通鑒) 사략(史略) 등의 병서(兵書)를 독학하였던 점을 생각하면 무예(武藝)에 대한 관심이 많았을 것이고 따라서 당시 민간에 성행하던 택견을 익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