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다니든 교회에 다니든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종교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성경이든 불경이든 다 내려놓고, 자신의 맑은 정신으로 물어보십시오.
답은 그 물음안에 들어 있습니다.
과일에 씨앗이 박혀 있듯이 질문 속에 답이 다 들어 있습니다. 질문을 통해서 답이 스스로 드러납니다.
무엇이 종교의 본질인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의 본질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종교가 아닌지를 스스로 알고 나면 승려나 사제, 혹은 목사나 책 들이 더 이상 우리를 속일 수 없습니다.
스스로 묻지 않기 때문에 남의 설교나 설법에 현혹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물어서 스스로 해 답을 얻는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속일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 놓일지라도 환상이나 허상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교회와 사원에서 실상이 아닌 특정한 상징을 섬기고 있기 때문 에 다른 신앙을 지닌 사람들끼리 분열되어 반목하고 있습니.
상징 그 자체가 무슨 진리입니까? 십자가든 불상이든 그 밖의 무엇이든,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상징일 뿐입니다. 그 자체가 무슨 실상입니까? 그런데 그것을 섬기고 있습니다.
종교의 틀 속에 갇힌 사람들은 어떤 상징을 종교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다투고 싸우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신은, 부처나 보살은, 혹은 진리는 그런 곳에는 없습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노랗게 도금해 놓은 법당 탁자 위에 놓인 것은 부처가 아니라 불상입니. 내 마음이, 내 순수한 마음이,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내 본래 마음 자체 가 부처입니다.
날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바로 이 마음, 미워했다가 좋아했다 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화하는 이 마음, 이것이 바로 도입니다.
도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일상생활의 이 마음, 이 중생심, 이 갈등, 온갖 얽히고설킨 이 마음이 도입니다. 일상성을 벗어나서 우리가 기댈 것이 무엇입니까?
너무 일상성에만 안주하기 때문에 자꾸 탈출하려는 마음이 생긴다고 했는데, 그 하루하루의 삶 자체가 도의 세계입니다. 진리 의 세계입니다. 이 밖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여성이 있습니다. 그 여성이 산중에 있는 큰스님 을 만나러 갔는데, 삼천 배를 해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이렇게 말 했다고 합니다.
"제까짓 것이 무슨 선지식인가? 자기들이 아이를 낳아 보았나. 살림살이를 해 보았나? 무엇을 안다고 절을 받나?"
제가 그 말을 듣고 '진짜 관세음보살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산중에 앉아서 뭐라고 떠드는 관념적인 소리들에 속지 마십시오. 그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집에서 복잡 미묘한 이 마음을 한 고비 한 고비 참고 견디면서 넘어가는 것, 그것이 정진이고 종교입니다. 어려운 불경 구절, 성경 구절에 종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성 속에, 내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진리는 신성한 것이고, 일상의 삶은 격이 낮은 것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그렇게 스님들이, 신부들이, 목사들이 주장합니다. 그래야 대접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추상적인 진리를 깨달으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진리는 우리들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진리는 삶의 순간적인 움직임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순간적인 우리들 마음의 움직임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절에 다니고 교회에 다니고 성당에 다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근본적으로 진리를 배웠다면 집 자체가 절이 되고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놓인 그 장소에서 진리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진리는 우리들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삶의 순간적 인 움직임들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일상성에서 벗어난 그 자체만 가지고 안주해선 안 됩니다. 다시 눈을 뜨라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중생 노릇도 하고 부처 구실도 합니다. 부처가 따로 있고,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성인이라 하더라도 24시간 성인일 수는 없습니다. 어떤 범부라 하더라도 24시간 계 속 범부일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범부이면서도 성인 노릇 할 수 있고, 때로는 성인이면서도 범부보다 못한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 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음을 올바르게 쓰는 일을 삶의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종교란 무엇입니까?
종교학자들은 거창하게 이야기하지만, 종교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선한 마음입니다. 강물처럼 살아서 끝없이 흐르는 자비심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그 자비심을 순간순간 남에게 펼치는 일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이고 수행입니다. 참선하고 명상하고 기도하는 것은 본래의 자기 마음을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바르게 쓰기 위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절이 무엇이고 성당이 무엇이고 교회가 무엇인지 몰라도 상관 없습니다.
자기가 본래 지니고 있는 마음을 그렇게 선하고 단순하게, 순간순간 이웃들과 나누어 가질 때 그것이 진정한 종교입니다.
그 밖의 어려운 이론, 관념적인 것에 갇히지 마십시오. 그런 것에 속지 말고, 하루하루 이 마음 안에서 캐내시기 바랍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내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곧 신이라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부딪치고 상처 받는 이 마음, 평상심이 곧 도라는 것입니다. 진리라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의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p334~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