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109)
《살살이꽃이 피었습니다, 김상희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오늘 같이 청명한 가을날에는 코스모스 피어있는 둑방길을 한없이 걷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런 가을날
에는 어김없이 귓가에 맴도는 노래가 있다. 김상희가 부른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이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같이 초조하여라/
단풍 같은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바람 미워서 꽃 속에 숨었나.”
가사는 지극히 단순하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가을의 정취와 인간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느다란 줄기 위에 연분홍과 흰색, 연보랏빛 꽃잎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흔들리고, 그 길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이 노래는 수년 전 갤럽 조사에서 ‘가을 하면 생각나는 노래’ 1위를 차지했을 만큼, 우리 정서 속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하중희가 작사하고 김강섭이 작곡한 이 곡은 1967년 발표되었다. 김상희는 1961년 KBS 전속 가수로 데뷔한 뒤 서정적인 노래들로 사랑을 받았다. 고려대 법대 재학 중에 가수로 활동하며 ‘학사 출신 가수’로 불렸던 그는, 집안의 반대로 본명 대신 예명을 쓰며 한동안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치적 이유로 1980년대에는 방송 활동에 제약이 많았지만, 그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여전히 가을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노래의 작사가가 어린 딸을 잃은 슬픔 속에서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가사를 썼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가사에 배어 있는 기다림과 한숨, 숨고 싶은 마음은 그런 깊은 상실의 그림자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코스모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kosmos에서 왔다. 질서, 조화, 우주를 뜻하는 말이다. 스페인 선교사들이 멕시코 고원에서 이 꽃을 처음 보았을 때, 꽃잎이 중심을 향해 가지런히 배열된 모습이 우주의 질서를 닮았다고 여겨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꽃 코스모스의 이름은 18세기 말 스페인의 식물학자 카바니예스가 붙였다고 알려져 있다. 멕시코에서 건너온 씨앗이 마드리드 왕립식물원에서 꽃을 피웠고, 여덟 장의 꽃잎이 가지런히 둘러선 모양을 보고 '질서와 조화'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다. 한 송이 꽃에서 우주의 질서를 읽어낸 눈이 있었던 셈이다.
우리 땅에 들어온 코스모스는 '살살이꽃'이라는 순우리말 이름도 얻었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을 그대로 옮긴 이름이다. 같은 꽃을 서양은 질서로, 우리는 바람결로 읽었다. 하나는 머리로 보고 하나는 몸으로 느낀 이름이다.
한국에서 코스모스의 꽃말은 ‘소녀의 순정’이다. 가을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가녀린 모습이 수줍은 소녀의 마음을 닮았다는 해석이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청아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피어나며, 짧은 가을을 온전히 살아내는 모습이 순수함과 인내, 소박한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서양에서는 질서와 조화, 평화, 균형을 의미하고, 어떤 문화권에서는 친절과 자립, 회복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꽃이 척박한 토양에서도 꿋꿋이 피어나는 생명력이 그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가을의 대표적인 꽃으로 여겨지며 축제가 열리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귀뚜라미 울음과 함께 가을의 전령사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은 꽃이 거대한 우주와 이름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칼 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cosmos)'는 “코스모스(cosmos)는 과거에 있었고, 현재에 있으며, 미래에 있을 그 모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세이건은 별의 탄생과 죽음, 생명의 기원, 인류의 위치를 이야기하며, 우리가 '별의 먼지(starstuff)'에서 왔음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코스모스(cosmos)의 일부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가 아니다”라는 그의 선언은, 가을 들판의 작은 꽃 앞에서 새삼 울림을 준다. 꽃의 이름인 코스모스와 우주의 코스모스가 겹치는 순간, 한들거리는 꽃잎 하나하나가 우주의 질서를 축소해 놓은 듯하고, 그 길을 걷는 인간의 한숨과 기다림 또한 광활한 시간과 공간 속의 한 점으로 느껴진다.
우주를 처음 이 이름으로 부른 이는 피타고라스라고 전해진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세계는 아름다워서 질서가 있고, 질서가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었다. 오늘날 영어의 '코스메틱(cosmetic, 화장품)'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점도 재미있다. 아름답게 가지런히 하는 일이 곧 코스모스의 일이었던 것이다.
동양의 '우주(宇宙)'도 결이 비슷하다. '회남자'에 따르면 사방과 위아래를 '우(宇)', 지나간 옛날과 다가올 오늘을 '주(宙)'라 하였다. 공간과 시간을 한데 묶은 말이다. 서양은 질서의 아름다움을, 동양은 시공의 넓이를 먼저 본 셈인데, 둘 다 사람이 사는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집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닮았다.
결국 코스모스에 대한 성찰은 경외감에서 시작해 사랑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광대한 우주 속에서 지극히 미미한 존재이지만, 그 거대한 우주를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성과 호기심을 지녔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고, 별의 먼지로서 다시 별을 바라보는 인류의 여정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우리는 코스모스라는 거대한 바다에 띄워진 작은 돛배와 같지만,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멈추지 않고 질문할 때, 이 작은 존재는 우주만큼 커다란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가을은 하늘이 높고 공기가 맑아 시선이 멀리 닿는 계절이다. 멀리 볼수록 마음은 오히려 제자리를 찾는다. 복잡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늘 카오스(혼돈ㆍ무질서) 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코스모스 핀 길 위에서는 잠시 질서의 세계에 들어선다. 해야 할 일의 순서가 가려지고, 놓치고 있던 것들이 보인다.
속도에 쫓기는 시대일수록 느리게 흔들리는 것들의 가치는 커진다. 김상희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은 걸음을 늦추라고 말하는 노래이고, 코스모스는 걸음을 늦춘 사람에게만 제 얼굴을 보여주는 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가을, 가까운 코스모스 꽃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 노래를 한 번 들어 보시길 권한다. 발밑의 작은 길이 어쩌면 가장 큰 우주로 이어져 있을지 모른다.
'꽃 한 송이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한 곡의 노래에서 인생을 읽으며, 한 번의 산책에서 행복을 배우는 것'이라고,
이 가을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은 그렇게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온다.
'행복은 어쩌면 저 멀리 도착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걷고 있는 바로 이 길 위에 피어 있는 것'이라고도 힘주어 설하고 있다.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첫댓글 [추억의 가수] 82년 젊은 시절 김상희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https://youtube.com/watch?v=H3KP8gGwmLA&si=XfTa_u9EeA8M6j9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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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구행모와 모란꽃 하모니카 연주회 "코스모스 피어있는길"
https://youtube.com/watch?v=wdYg3cIyH_I&si=qWh2oHW8JLqZ7q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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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한들한들피어있는길
우리들의 향수같은 곡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