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1) 하느님의 사랑과 공의,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
요즘 교회를 찾아오는 성도들이 어떤 설교를 좋아하는지 아는가? 대략 이렇게 세 가지라고 알려져 있다. 첫째, 마음에 아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은혜스러운 설교, 둘째, 그렇지 않으면 아주 재미있는 설교, 셋째로는, 은혜도 없고 재미도 없는 설교라면 짧은 설교.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러한 세 종류의 설교를 오랜기간 동안 듣다 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그리스도인들이 현실 생활에서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삶의 원칙에 대하여 무지한 그리스도인들이 된다. 하느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다시 말하면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게 된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7,21). 아버지의 뜻을 모르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신앙임을 깨달아야 한다. 설교자의 질은 떨어졌고, 믿음이 시들어 값싼 구원론에 매몰된 믿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오늘날 현대 교인들이 거부감을 갖는 단어들이 몇 개 있는데, 율법, 계명, 순종, 행함, 성령세례 등과 같은 용어들이다. 이런 단어들을 자주 사용하는 신부나 목사나 교인들을 보면 아주 쉽게 ‘율법주의자’라고 몰아세운다. ‘율법주의’라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결단코 율법주의가 아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율법이나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웬만하면 다 구원해 주신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분명히 “하느님은 사랑이시라”(1요한4,16)는 말씀과 함께 하느님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1베드2,23)라는 말씀이 나온다. 독자 여러분은 이 두 성경절을 어떻게 조화롭게 설명하시겠는가? ‘사랑’ ‘공의’ ‘심판’ 이 세 단어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현실적인 삶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이번 글, 하느님의 사랑과 공의, 그리고 심판에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공의, 그리고 심판’이라는 주제로 진리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오늘날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사랑 이외의 공의와 심판에 대해서는 잘 알지를 못하고 있다. 이제 이 글을 자세하게 잘 읽어보시고 기독교 신앙의 중추와 같은 이 문제에 대하여 올바른 지식을 얻으시기를 기도드린다.
알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