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도시 부산(2)
김 동 현
동래파전도 부산의 명물이다. 찹쌀, 멥쌀과 밀가루를 다시마 육수에 버문 다음 기장 특산물인 조선쪽파와 미나리, 소고기, 굴 등을 넣고 달걀 푼 것을 덮어서 두툼하게 만든 동래파전은 바싹한 맛이 아니라 걸쭉한 게 특색이며 식사대용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각종 해물이 풍성하게 들어가서 식감에다 색감까지 곁들이고 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 삼짓날이 되면 동래부사가 동래파전을 임금님께 진상했으며 일본 사신에게 접대할 정도로 고급요리였다. 일제 강점기 동래부에 속해 있던 기생들이 면천되면서 파전기술을 갖고나와 기생집을 열기 시작했다. 동래파전이 1930년대 들어 동래시장에 등장함으로써 서민들에게 가까워졌으며 “파전 먹으러 동래장에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음식이었다. 기장쪽파는 비옥한 황토엣 바닷바람을 맞아 작지만 색깔이 선명하면서 감칠맛이 나는 특산품이라서 농산물 지리적표시 제105호로 등록되어 있다. 조선쪽파가 출시되는 봄이 제철이며 쪽파가 생산되지 않는 겨울에는 가게가 문을 닫는 곳이 많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자”는 말이 있듯이 파는 장수식품이다.
특히 비오거나 우중충한 날 동래파전과 산성막걸리는 찰떡궁합이라 동래파전을 ‘막걸리 파전’이라고도 한다. 전분이 많은 파전 밀가루와 해물에 들어있는 아미노산, 비타민B는 몸 속 탄소화물 대사를 높여 우울증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최근 중소기업벤처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4대째 손맛을 이어온 부산동래할매파전을 ‘백년가게’로 선정했으며 부산시도 민속음식점1호로 지정했다. 파전 하나에 22,000원에서 40,000원으로 값이 비싼 편이라 그런지 요즘은 내국인 보다 일본 관광객들이 동래파전을 즐겨 찾는다.
기장의 대변항은 남해 미조항, 거제의 외포항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멸치 집산지이다. 싱싱한 멸치회로 유명한 대변항은 조선시대 큰 공물창고가 있는 변방의 포구라는 뜻의 대동고변포(大同庫邊浦)였다. 긴 지명을 줄여서 대변포, 대변항이라고 했는데, 대변초등학교는 학교 슬로건인 ‘푸른 꿈 가꾸는 대변어린이’가 거슬린다고 하여 용암초등학교로 개명했다.
대변항은 부산항과 함께 1876년에 개항한 우리나라 대표 항만이어서 전국 요충지에 세운 흥선대원군의 척화비(斥和碑)가 대변에도 있다.
먼 바다에서 겨울을 지낸 멸치는 봄이 되면 산란을 위해 근해로 몰려온다. 봄 멸치는 길이 15cm나 되는 왕멸치라서 횟감으로 이용하고 가을 멸치는 젓갈이나 찌개용으로 쓴다. 살이 두툼한 봄멸치를 매운양념에 자작자작 끓여서 상추나 깻잎에 싸먹는 멸치쌈밥이나 회무침, 구이, 튀김은 밥도둑으로 통한다.
멸치는 성질이 급해서 잡히면 바로 죽어버리기에 살아있는 멸치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선원들 뿐이라고 한다. 멸치라는 이름에도 사연이 있다. 작아서 멸시를 당한다고 하여 멸(蔑)치라고 하는가 하면, 성질 급해서 금시 죽는다고 하여 멸(滅)치라고도 한다. 멸치는 조류에 따라 그물이 흘러가는 유자망(流刺網)으로 잡으며 대변항은 우리나라 유자망 어획고의 60%를 차지하기에 기장군은 멸치를 군어(郡魚)로 지정했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면서 물살 센 곳에서 자란 대변멸치는 맛이 고소하고 졸깃졸깃한 것이 특징이다.
오영수의 <갯마을>은 이곳 대변 학리에서 멸치 터는 일로 연명해가는 젊은 과부의 애환을 다룬 소설이다. 소설의 첫머리에 나오는 ‘H라는 조그만 갯마을’이 학리를 나타낸다. 울산 언양 출신인 오영수가 해방 무렵에 이곳에서 거주한 일이 있다. <갯마을> 덕분에 이 지역에는 오영수의 문학비가 2군데나 있다.
대변항은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100대 아름다운 어촌에 들어 있다. 느지막한 봄철, 멸치떼를 안고 도는 은빛물결에 햇볕이 쏟아지면 눈이 시리도록 부신다. 해안가 식당에 앉아 싱싱한 멸치회를 맛보면서 멸치 터는 모습을 보면 삶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그물에서 튀어나오는 은빛 비늘이 푸른 창공에서 춤추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멸치 터는 일은 노동강도가 매우 높은 극한작업이라 요즘은 동남아인들이 힘든 일을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기장 하면 미역을 빼놓을 수 없다. 궁정에서 왕후가 출산했을 때 첫 번째 밥상에는 기장미역국이 올라갈 정도로 기장미역은 임금님 진상품이었다. 요즘은 양식미역이 주류를 이루지만 기장에는 해녀들이 바위에 붙은 자연산 돌미역을 채취하고 있다. 기장미역은 조류가 세고 수온이 낮은 북방형이어서 줄기와 이파리가 좁고 두터운 편이다. 기장 미역은 국을 끓이면 잘 풀어지지 않아 “쫄쫄이‘라고 하며, 생으로 먹으면 오들오들 식감이 좋다.
중국집에서나 만날 수 있는 완당이 부산의 별미이자 향토음식으로 정착한지 70년이 넘는다. 1947년 서구 부용동에서 시작하여 남포동에 자리잡은 18번 완당집은 3대로 이어지는 부산의 대표 노포다. 각종 해물로 맛깔스럽게 우려낸 육수와 함께 얇은 습자지처럼 하늘거리는 작은 만두가 후루룩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므로 “구름을 마신다”고 표현한 묵객도 있다. 밀가루 반죽 두께가 0.3mm도 안 되는 완당피가 끓는 육수에 50초 정도 담겨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대나무 발그릇에 담아나오는 졸깃한 면발의 발국수도 완당과 잘 어울린다.
김해서 부산으로 편입된 대저동은 짭짤이 토마도로 유명하며 ‘부산의 덴마크’로 불린다. 대저는 낙동강과 바닷물이 만나 퇴적한 삼각주 지역이라 염분이 높고 미네랄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작으면서도 야무지며 당도가 높으면서 짭짤한 대저 토마토는 별도의 종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9월에 파종하여 2월에 수확하는 동안 추위를 견디면서 발육이 억제되어 단단하고 선명한 색깔로 영그는 것이다. 대저토마토는 원산지를 표시하는 특산물로 인정받아 값도 일반 토마토보다 2배나 비싸다.
그러나 부산시가 낙후된 서부지역에 에코델타시티와 신도시 주거지를 조성함으로써 짭짤이 토마토 농민들이 대거 밀려나고 있다. 대저에서 생산된 토마토가 아니면 지리적 표시제인 대저토마토도 사라질 판이다.
싱싱한 해산물이 많은 부산에는 이 밖에도 조방낙지, 꼼장어, 짚불장어구이, 복국, 회국수, 회백반, 멸치쌈밥, 해물라면, 세꼬시(뼈째회), 씨앗호떡 등 특유의 별미들이 수두룩하다.
최근 부산은 커피향 넘치는 도시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19년 4월 보스톤에서 열린 제20회 세계바리스타대회에서 부산 모모스커피의 전주연실장이 바리스타 챔피언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55개국의 대표가 참가한 보스톤 경연에서 전주연씨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여성으로서는 세계 2번째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전주연씨는 우승소감에서 “부산을 커피도시로 만들어서 세계 커피 애호가들이 부산으로 찾아오게 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라고 밝혔다.
온천장역 2번 출구 근처에 있는 모모스 커피점의 나무문을 밀고 들어서면 무성한 대밭이 먼저 반긴다. 세계 80여개 커피농장을 직접 방문하여 고품질 생두를 구입하고 있다는 모모스에서는 파나마의 에스메랄다 핸드 드립 커피 한 잔에 15,000원을 받는다. 부산대역 아래 온천천 일대는 커피와 디저트 중심의 라라라페스티벌이 열리며 전주연 바리스타의 특별강연도 곁들인다. 이로써 부산은 시애틀, 도쿄, 멜보른과 같은 세계 유명 커피도시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커피가 우리 생활 속에 자리잡은 것은 6.25 때 유엔군을 통해 인스턴트 커피가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커피 맛은 신선한 원두가 좌우하는데 우리나라 원두 수입의 90%가 부산으로 들어오므로 부산은 커피의 메카가 되었다. 부산시는 2020년 바다를 배경으로 경관과 맛을 겸비한 유명 커피집 35곳을 선정하여 ‘낭만카페 35선’ 가이드북으로 소개했다. 군 부대 옆이라 인스탄트 커피가 처음으로 등장한 서면에는 전포카페거리가 유명하며 ‘부산커피박물관’도 있다. 박물관에서는 세계 각국의 진기한 커피머신를 구경하면서 각종 커피를 시음할 수 있다. 전포 카페거리는 젊은층 감각의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고 해외관광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하자 서울의 이태원처럼 국제거리로 변해가고 있다. 미국의 CNN방송은 2017년 전포 카페거리를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 중 하나로 선정했는가 하면, 뉴욕타임스는 2017년 꼭 가봐야 할 세계명소 중 하나로 선정했다. 부산은 전포카페거리 외에도 부산의 대학로인 경성대, 부경대 주변과 동래의 생태하천인 온천천 주변에 카페거리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겨울철 부산의 진미는 북태평양에서 산란을 위해 가덕도로 몰려오는 대구에서 찾는다. 조선시대 왕실 진상품에는 가덕서 잡은 건대구, 반건대구, 대구 알젖, 수컷의 이리젖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가덕대구 한 마리, 포항대구 열 마리하고 안 바꾼다”는 말도 있다. 입이 크다고 해서 이름을 얻은 대구는 고니의 암컷보다 이리의 수컷이 더 귀하며 대파와 무만 넣어 끓여도 뼛속까지 시원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대구는 탕도 좋지만 바닷바람에 꾸덕꾸덕 말린 대구포는 쫀득쫀득 술안주로 일품이다.
부산의 입맛이 일본에 건너가 크게 성공한 경우도 있다. 일본 최대 명란젓 회사인 후쿠야(富久屋)의 창업자 가와하라 도시오(川原俊夫)는 1913년 초량에서 태어나 부산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30대 초반까지 부산에서 살았다. 패전 후 큐슈 하카다에 가서는 어렸을 적 부산에서 즐겨먹던 매운맛의 명란젓 김치가 그리워, 1949년 초부터 매운 맛을 약간 줄인 일본식 명란젓을 개발해서 팔기 시작했다.
일본은 일반적으로 명란젓을 ‘타라코(鱈子)’라고 하는데, 후쿠야는 매운 명란젓에 ‘멘타이코(明太子)’라는 부산에서 부르던 이름을 붙였다. 다시마, 가다랑어 등을 우려낸 조미액에 명란을 담아 만든 일본식 순한 맛이 기본이지만, 부산식 아주 매운맛의 ‘돗까라’ 제품도 있다.
알라스카와 북해도의 혹한에서 자란 명태알을 더운 지방에서 요리하여 하카다의 대표 특산물이 된 멘타이코는 일본 전역에서 크게 각광받고 있다. 후쿠오카 캐널시티에 본사가 있는 후쿠야 홈페이지의 회사소개 글은 “후쿠야 멘타이코 기원은 한국이다”로 시작하고 있다.
명태는 가장 이름이 많은 생선이다. 갓 잡이 올린 명태는 생태, 얼리면 동태, 어린 것은 노가리, 낚시로 잡으면 조태, 그물로 건지면 망태, 말리면 북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 황태, 하얗게 마르면 백태, 검게 마르면 먹태, 꾸들꾸들 말리면 코다리 등 60여가지의 이름을 갖고 있다. 그만큼 우리 조상이 명태를 즐겨 먹었다는 뜻이다.
일본의 명란젓에 자극받은 부산의 장석준은 1993년 덕화푸드를 창업하여 명란젓개발 외길을 걸어오면서 대한민국 최초로 수산제조가공 분야 명장이 되었다. 이제는 아들 장종수가 소금, 고춧가루, 마늘을 넣은 조선명란을 복원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명란젓은 명태알에 단순히 소금을 넣은 젓갈류가 아니라 염장식품으로 발전시키면서 미식으로 브랜드화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함경도서 잡은 명태를 싣고 와서 보관하던 북선창고(후에 남선창고로 개명) 흔적이 초량시장 인근에 있다. 명태가 가득 쌓여 있었기에 ‘명태고방’으로 통했다.
30여년 전부터 기후짐변화로 동해안의 명태가 사라졌지만, 원양어획에 의존해야 하기에 입항장인 부산이 명란젓 가공의 최적지가 된 것이다. 부산의 명란젓은 2006년 부산명품 수출수산물로 공인되었으며 덕화명란은 2011년 ‘청주로 빚은 저염명란’으로 수산물 브랜드 금상을 받았다.
한국에도 팬이 많은 일본의 먹방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인 이노가시라 고로 역을 맡은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松重豊)가 2019년 말 후쿠오카에서 쾌속선을 타고 2시간만에 부산을 찾아왔다. 그는 “이 맛은 일본에서는 먹을 수 없지”라면서 낙지와 곱창, 새우가 주 재료인 해산물 전골 ‘낙곱새’를 감칠나게 먹는 장면이 방영되자 채 한 달도 안 되어 도꾜 신오쿠보에 똑 같은 메뉴가 등장했다.
부산의 맛은 해산물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영남의 젖줄’이라는 낙동강 뱃길따라 예로부터 내륙의 각종 토산품이 수운(水運)의 요지인 구포나루로 몰려들었다. 물류중심지로서 선박과 인부들이 법석이던 구포나루터에 이제는 대형 아파트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