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내용을 모르면서 추측만으로 글을 쓸 수 없었다. 왜? 라는 의문만으로 의혹을 증폭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예측이 부분적으로라도 틀리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제 그 이야기를 쓰려한다.
종주의 글, 분노한 댓글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의문이 있었다. 그래서 배재고 홈피를 방문하여 게시판내용과 거론된 선생들의 프로필(사진, 성명, 과목, 전화번호, E-mail 주소)을 열람했었다. 사건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 상세한 프로필(출신고, 나이 등)은 알 수 없었으나 흔적은 찾을 수 있었는데, 그 중에는 학생들의 공방도 있었다. 일일이 열거하기엔 내용이 미흡하다. 다만 학생들 간에도 의견이 편향되어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배전교(배재고전교조교사)가 학교에 요구했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학교에선 어떤 내용을 반대했었는지? 배전교가 이중휘교사를 지목한 이유와 신문에 공개한 내용은 무엇인지? 이중휘교사의
배전교 고소 건은 진행 중인지, 결과가 있는지?
특히, 김종설교사와 이중휘교사간의 폭력사태가 무엇인지? 두 교사가 맞붙은 건지, 어느 한쪽이 패고 맞은 것인지? 맞붙었다면 두 교사모두 문제가 있고, 일방적이었다면 한쪽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또한, 두 교사의 사진을 보니 연령차이가 최소 10년 이상으로 보이던데, 젊어 보이는 교사가 배재고출신이라는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김종설교사를 배전교의 최고령자, 대리시험 건을 방송가에 퍼뜨린 장본인, 배경렬 유도선생의 사위라고 설명한 이유가 무엇인지? (김종설교사의 출신고, 나이를 모른다. 이중휘교사의 나이를 모른다. 배재고출신임은 종주의 글에서 알았다.)
교사간의 폭력사태가 왜 교장실 점거농성으로 이어졌는지? 배전교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이전에도 교장실 점거농성, 또는 유사한 사실이 있었는지? 어떻게 처리했었는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그간의 조치사항은 있었는지?
사립학교법 제3절(징계)의 제61조(징계의 사유 및 종류)에 의하여 충분한 사유가 된다고 판단되는데
방치되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사립학교법 시행령 제21조(교사의 신규채용)에 의거 교사를 채용하는데, 배재출신채용을 반대하는
배전교의 이유가 무엇인지? 그이유가 타당한지?
결코 단순치 않은 사안이고 사태를 수습하기위한 준비시간이 필요하고 설사 준비가 되었더라도 그들의 요구사항 중 타당성 있는 부문에 대해 우리가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
현직교사에게 선배들이 완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그 외에도 꼬리를 무는 의문이 있었지만...
뜻있는 동기(동문)들이 힘을 합하여 실력행사를 하자고 했을 때, 단순한 일이 될 수 없음을 직감하였었다. 오늘 주일을 지키고 오후에야 우리마당에 들어왔다. 종주의 댓글이 있었다. 역시 그런 문제들이 있었구나. 모르는바 아니었지만... 예측한 대로 배재발전을 위한 분명한 개혁을 필요로 하는 시점임에 틀림없다. 작금의 배전교 문제는 작은 부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전교가 학교, 재단, 동창회에 바라는 사항이 있다면, 진정으로 학생들의 참교육을 위한 요구라면 터놓고 받아들이고 설득하자. 그리고 엄하게 꾸짖자. 다행히 총동창회에서 움직인다는 선배님들의 글을 보았다. 또 다행히 우리가 움직이지 않아도 될듯하다. 우리는 타이틀과 권한이 없지 않은가?
“배재공고” 울화통이 터진다. 한영외고 홈피를 방문했다. 종주가 예기한 훌륭한 선배님 두 분을 발견했다. 현재 교장성함과 달라 연혁을 보았다, 그곳에서 두 분의 성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분들은 어떻게 전교조가 발을 못 붙이게 하셨을까? 어떻게 명문으로 만드셨을까?
왜? 우리는?...
배재발전에 중대한 걸림돌이 무엇인가? 배전교가 중대한 문제인가? 그럼 없애보자.
배전교가 중대한 걸림돌인데 왜 지금껏 가만 두었는가? 가만둘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가?
“배재공고”라는 치욕적인 현실에 대하여 모든 동문이 똑같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을 져야할 분들이 계심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항상 배재 홈피를 위하여 노력하는 많은 동기들에게 감사한다.
문제의식을 갖고 동기들의 경각심을 갖게 한 종주에게 감사한다.
사랑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사랑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사랑이라 할 수 없다.
사랑함을 인정하고 방법이 다름을 인정하고 가장 합리적 방법을 찾는 지혜로움을 갖자.
上濁下不淨 : 상탁하부정이라 했다.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깨끗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나는 내 후배들에게 어떻게 맑은 물을 흘려줄 수 있는지 이제야 고민을 시작했다.
부끄럽게도 이제야 말이다. 나서기엔 부족함을 알기에 작은 일부터 하려한다.
댓글목록
황두연님의 댓글
황두연 작성일
동기(동문)들의 오해 없길 바란다. 나는 배재와 관련된 어떤 단체와도 무관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 이다. 그냥 배재를 사랑하는 작은 파수꾼 역할을 할 것이다. 나는 전교조를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편향된 내용으로 아직은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주입식교육을 한다면 결사 반대할 것이요, 진정한 참교육을 위하여 불의에 항거하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적극 찬성할 것이다. 특히 배재와 관련해선 더욱 그렇다. 어느 누구던 배재를 위하여 올바른 소리를 한다면, 아무리 듣기 싫은 쓴소리라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지난 5월 김종찬 선생님께서 소천하셨다. 우리들의 기억속에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자리하고 계신다. 그 분은 양정고를 졸업하셨다. 하지만 배재사랑은 넘치신 분 임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이미 시작 됐는지도 모르겠다. 후배들의 학업성적이 날로 하양추세라면 그 중에서 배재교사로 채용하는데 어려움이 없겠는가? 배재의 정신을 이어받은, 학업성적이 우수한 양질의 교사를 만들기 위해 배재출신이 아니더라도 훌륭한 교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사고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은 아닌가? 우리가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노래하고 영원무궁하도록 노래하여야 할 배재! 150주년, 200주년이 되어 우리가 세상에 없을 때 우리 후배들은 무엇을 노래하여야 하는가? 그들이 "우리선배들은 옛날에 잘 나갔다는데, 우리는..."걱정한다면, 공부열심히 않한 그들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가? 우리가 불러온 자랑스런 배재교가의 의미를 그들도 똑같이 느낄 수 있겠는가? 배재정신만 있어서 되겠는가?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똑똑한, 공부 잘~하는 배재후배들이 많아야 하지 않겠는가? 글이 무거워졌네. 나는, 우리동기들은 치과를 찾기에 별 어려움이 없네. 지역별로 동기, 선후배 의사선생님이 많으니까. 어린 후배들도 그럴 수 있을까? 웃기는 예긴지는 몰라도, 웃을 수 없음은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