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정교
<삼국사기>를 보면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19년(76C), 궁궐 남쪽 문천蚊川 위에 월정교月精橋, 춘양교春陽橋 두 다리를 놓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현장에 배 모양의 교각만 전해지고 있었으나 오랜 고증을 통해 누교樓橋(교각 윗면이 누각과 지붕으로 구성된 다리)를 복원했다.
발굴 조사 결과, 월정교는 길이가 60.57m이며 교각 사이에서 불에 탄 목재와 기와가 출토돼 교각 위쪽이 누각樓閣과 지붕으로 연결된 다리였을 것으로 확인됐다. 동쪽 약 700m 상류에 센 물살에 견딜 수 있도록 배 모양의 교각뿐만 아니라 다리의 규모와 축조 방법, 석재의 색깔, 재질까지도 유사한 춘양교가 위치하고 있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얽힌 유교楡橋(느릅나무 다리)의 흔적도 월정교 19m 하류에 보존돼 있다. 월정교는 신라의 문화적 수준과 교량의 축조 기술, 의장, 교통로 등 신라 왕경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통일신라의 문화적 품격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남천 위에 세워진 누각 다리(蚊川樓橋)’ 월정교는 주야로 단청누교의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월정교는 ‘형산강 8경’(2016)에 선정됐고 월정교와 춘양교지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제457호)으로 지정, 보전되고 있다.
금장대
금장대金藏臺는 형산강과 시가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은 경치가 빼어나 경주의 하늘을 지나가는 모든 기러기들이 반드시 쉬어간다(金藏(丈)落雁)는 경주 삼기팔괴三奇八怪 장소 중 한 곳이다. 금장대 아래 형산강의 본류인 서천과 북천이 만들어 낸 예기청소藝妓淸沼는 경주가 고향인 소설가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巫女圖>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자비왕 때 한 여인이 왕과 연회를 즐기는 도중에 실수로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자연의 아름답고 영원함과 유한한 인간의 삶, 과거를 통해 오늘을 경계하며 시를 읊조리던 공간이었다.
또 임진왜란 때 경주성慶州城 수복 정찰기지 역할을 하였고, 왜군들이 물러났을 때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던 곳이기도 하다. 선사시대 경주인들의 주술적 기원을 담고 있는 얼굴, 동물 등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암각화岩刻畵도 발견됐다.
‘맑고 탁 트이고 우뚝한 금장대’(金藏淸曠)는 형산강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형산강 팔경’에 선정됐고, 석장동 암각화는 경상북도 기념물(1994)로 지정, 보전되고 있다.
“동도의 전한 자취 찾아 두루 돌아왔지만
고요한 하늘에 새도 지나지 않는구나
오직 금장대 아래로 흐르는 물이 있어
봄바람에 오히려 옛 연기 물결 띠 되어 흐르네”
- 권위權暲(1552~1630)
- 제78차 국제펜대회 금장대 시낭송회 개최 기념 푯말(2012.9.12)에서
동도명기 홍도 추모비
임은 한 송이 붉게 핀 복숭아꽃이었다.
어두운 곳에 두어도 스스로 발광하는 구슬처럼 뭇 꽃의 시샘이 따사로웠다. 세상의 풍랑은 거칠고 사나웠으나 임은 한 시대의 한恨을 온몸으로 감싸 안은 채 고결한 삶을 잃지 않았다.
임의 본명은 최계옥崔桂玉(1778~1822)이며, 홍도紅桃는 정조대왕이 내린 별호이다. 아버지는 최명동崔鳴東이고 어머니는 경주 관기官妓 출신이다. 재주와 미모가 빼어난 임은 십여 세에 시를 외며 음악을 깨쳤고, 스무 살에 궁궐 상의원에 들어가 독보적인 노래와 춤으로 명성을 떨쳤다.
임은 정조대왕의 장인 박준원朴準源의 외부外婦가 되어 십여 년 같이 살았고, 그가 죽은 뒤 경주에 내려와 악부樂府의 사종師宗으로서 후진을 양성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병이 깊어졌을 때, 임은 모든 재산을 어려운 친척이나 이웃에 나눠주고 죽으니 마흔다섯 살이었다.
형제산 아래인 경주시 도지동 산672번지에 안장하였고, 1851년(철종2) 경주 풍류객과 교방教坊 제자들이 정성을 모아 묘비를 세웠다. 지인知人들이 묘소를 관리해 오다가 1990년 8월에 비로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러나 주변이 개발되면서 2005년 11월에 산화散華하여 건천읍 영호공원에 합동 안치하기에 이르렀다.
덧없는 세상변천이 너무나 야속하였고 떠도는 고혼孤魂은 의지할 데 없었다. 이에 임의 넋을 위로하고 아울러 문화인의 아름다운 동산을 가꾸고자 이곳 금장대 아래 이 비를 건립한다.
- 2016.4.16 동도명기東都名妓 홍도추모사업회紅桃追慕事業會
경주 석장동 암각화
이 암각화는 석장동錫杖洞의 금장대 바위벽에 새겨진 그림이다. 이곳은 경주를 두르는 서천과 북천이 만나 형산강을 이루는 곳으로 예부터 경치가 좋아 ‘예기청소’라고 불렸다. 암각화는 두 하천이 만나는 곳의 북쪽 바위벽에 있다.
총 99점으로 확인된 그림들은 조금씩 형태를 달리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모양은 칼 손잡이, 동물 발자국, 도토리, 꽃의 형태이다. 도토리나 꽃 모양의 그림은 다른 지역의 바위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석장동 암각화만의 특징이다.
그림의 크기는 작은 편이고 ‘선 쪼기’와 ‘선 갈기’ 수법을 사용했다. 이 암각화는 청동기 시대 작품으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