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3월 29일 소백산 능선 (천동계곡 – 희방사)
사니조은 님 고인돌 님
산행코스 : 천동계곡 – 비로봉 – 연화봉 – 희방사
산행거리 : 약 18 km
산행시간 : 약 8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983789
거리 17.7 km
소요 시간 8h 37m 53s
이동 시간 7h 7m 34s
휴식 시간 1h 30m 19s
평균 속도 2.5 km/h
최고점 1,467 m
총 획득고도 1,110 m
난이도 보통
소백산
양산박
아랫녘 너른 들에 봄이 찾아 왔다길래
보고픈 마음 따라 소백산을 찾았다가
차디찬 바람맞고 허둥지둥 돌아왔네
청량리에서 단양가는 7시 20분발 기차를 타려면 집에서 6시쯤 나와야 한다. 오랜만에 하는 기차여행이다. 전철과 기차는 동력이나 구조면에서 차이가 없지만 어감에서 느끼는 여행의 맛은 좀 색다른 것 같다. 전철은 그저 출퇴근할 때 타는 교통수단이고 기차는 좀 먼 곳으로 여행갈 때 타는 교통수단인 것으로 내 나름대로 구분한다.
목요일에 약간의 비가 내린 후 조금 쌀쌀해졌다고 하지만 봄은 이미 아파트 단지까지 깊숙이 찾아왔다. 아파트 단지 앞 도로변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작은 꽃망울이 햇볕을 받고 물을 머금으면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어느 순간 팡하고 터지는 것 같다. 수요일쯤 되면 도로변 전체가 하얀 벚꽃으로 물들 것이다.
서울의 봄 - 봄은 이제 아파트 앞 마당까지 찾아왔다.
왕십리에서 한 번 갈아타고 청량리에 여유있게 도착했다. 때마침 도착하신 고인돌 형님과 어묵을 먹으면서 사니조은 님을 기다린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진행중인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 때문인지 역사 안이 한산하다.
청량리 역사 안이 텅 비어 있다.
중앙선 누리호 기차 안에도 승객이 10명 안팎으로 거의 텅 비어 있다. 모두 여유있게 두 자리씩 차지한채 잠도 자고 스마트폰으로 음악도 듣는다. 조금 지루해지려고 할 즈음 단양역에 도착했다. 비록 소백산에 가기 위해 잠시 들르는 것이지만 단양에는 처음이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데 역무원인지 단양읍에서 출장나온 공무원인지 승객들의 귀에 체온계를 접속시켜 일일이 온도를 측정한다.
단양역에서 내리면서 본 열차 안
다리안으로 가는 택시 기사님에 따르면 단양에는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생기지 않았다 한다. 각 지자체든 개인이든 지나치리 만치 바이러스 예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듯하다. 지난 주에 제주도에 여행갔던 서울 강남 모녀가 바이러스 양성판정을 받으면서 이런 경각심은 더욱 높아진 느낌이다. 미국에 유학중인 딸이 미국내 바이러스 확산 추세로 귀국을 한 모양인데 원래 이들 모녀는 하와이 관광을 할 예정이었으나 미국에서 관광객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자 격리기간(2주)임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여행을 떠난 것이다. 결국 그들이 묵었던 콘도와 상점 등 여러 곳이 폐쇄되고 방역을 실시해야 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시와 관련 업체 등이 입은 피해액이 약 1억원이 될거라며 정식으로 소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이니 사실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돌아다니는 것은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하기에 간단치만은 않은 일이다.
단양 택시가 우리를 텅 빈 주차장에 내려주고 되돌아간다.
10시 30분 다리안에 도착하여 곧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넓은 주차장이 거의 텅 비어 있고 산으로 들어가는 산객도 없어 일요일 소백산 들어가는 길이 한적하다. 2017년 늦겨울에 어의곡을 통해 비로봉에 올라갔다가 이 천동계곡으로 하산한 적이 있어 이 곳 풍경이 눈에 익숙하다. 길 가에 진달래와 생강나무 꽃이 활짝 피었다. 산 길은 계곡을 옆에 끼고 잘 다듬어진 임도로 이어진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차량이 통행할 수 있을 만큼 길이 널찍하다.
천동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 - 다리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다리안이라 부른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그들의 자녀와 손자 손녀까지 한 가족 10여명이 가족 소풍을 나온 모양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방학이 4월 6일까지 연장된데다 또 다시 개학이 미뤄질거라고 한다. 아이들이 집안에 갇혀 있으면 갑갑증이 심해져 가족간에도 불화가 생겨날 수 있으니 이렇게 큰 산으로 뛰쳐나와 하루를 보내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서 이어진다.
천동 탐방 안내소까지 국립공원 관리공단 차량 출입이 가능하다.
탐방 안내소 이후에도 길은 평탄하고 걷기에 편안하다.
여전히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걷는다.
그렇게 기다리던 생강나무꽃은 이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봄날 하늘이 이렇게 맑은 적이 있었던가?
코발트 빛 파란 하늘에 솜털같이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다닌다. 가을하늘을 닮았다. 3월 봄날에 이런 하늘을 본 적이 언제였던가. 이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다 준 선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해 중국에서는 설 연휴를 장기적으로 늘리고 공장 가동을 멈추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공장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의 양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사진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기뻐할 일은 아니더라도 우리 인류 문명이 그 동안 얼마나 자연의 보존에 역행하는 행동을 해왔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선물한 깨끗한 공기
주목 군락지
천동 삼거리에 가까워지자 바람이 차가와짐을 느낀다. 올라올 때 속옷에 배인 땀이 식어 서늘함을 느낀다. 바람에 뭔가 흰 가루가 희뜩거리기에 자세히 보니 눈가루다. 춘삼월 봄날에 눈가루가 날리는 걸 보니 우리가 소백산에 들었슴을 상기시킨다.
‘살아 천 년 죽어 또 천 년’이라는 별명을 가진 주목 군락을 지난다. 주목 군락 초입에 수명을 다 하고 껍질도 다 벗겨진 죽은 주목이 한 그루 서 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저렇게 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목질이 단단하여 앞으로도 또 천 년 동안 저렇게 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길 따라 올라가면서 양편으로 살아있는 주목이 군데군데 서 있다. 나무의 지름이 어림잡아 30 ~ 50센티쯤 되어 보이는데 더디게 자라는 주목으로서는 이정도면 수령이 400년은 된다고 한다. 어쨌든 이들 나무는 조선시대 초에 태어나서 이제까지 살아왔으며 또 특별히 재해가 없다면 4~5백년은 거뜬히 살아갈 것이다. 이런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마저 왜소해질 때가 있다.
소백산에도 양지꽃이 피었다.
참빗살나무
천년을 살고 죽어 또 천년을 이렇게 서 있을란다.
주목 군락지
앞서 빙판길을 조심스레 건너간 고인돌 형님이 아직 눈으로 덮인 음지 숲 속을 가리키며 이 곳이 모데미풀 군락지라 한다. 작년 4월에 횡성의 청태산에서 처음으로 보았던 모데미풀의 최초 자생지가 이 소백산이라 한다. 미나리아재비과 모데미풀속에 속하는 유일한 개체이며 학명은Megaleranthis Saniculifolia Ohwi 인데 1935년 일본인 식물학자 오이 지사부로가 지리산 근처 운봉의 모데미라는 마을에서 발견하여 처음으로 학계에 등재하였다고 한다. Megal 은 ‘크다’는 뜻이고 Eranthis 는 ‘너도바람꽃’을 의미하기에 모데미풀은 큰 너도바람꽃이라는 뜻이다. 아직 얼음이 풀리지 않은 땅에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번에 꽃을 못 보았으니 다시 한 번 찾아오라는 소백산 신령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본다.
모데미풀 군락지
이 음지에 난 길 양쪽으로 모데미풀이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새 싹 하나 올라온다.
비로봉과 연화봉 그리고 천동계곡 이렇게 세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나무데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 전망대에서 우리는 환호를 질렀다. 연화봉쪽으로는 멀리 도솔봉과 흰봉산 마루금이 보이고 비로봉쪽으로는 누런 등허리를 드러낸 능선길이 훤히 보인다. 발 아래 멀리 영주시와 풍기읍쪽에서 골을 타고 올라 온 바람이 몹시 차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 아프도록 시리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소백산에 올라왔슴을 깨닫는다.
소백산 비로봉
소백산은 네 번째 방문이다. 2016년 대학 친구들과 윤이와 함께 철쭉꽃 필 때 처음으로 찾아 왔었고 그 이듬해 겨울(2017년 12월)에 소백산의 악명 높은 칼바람을 맞아보겠다고 찾아왔었다. 그리고 작년 철쭉꽃 필 때 백두대간 산행으로 죽령에서 시작하여 비로봉을 거처 어의곡으로 하산했었다.
철마다 다른 모습으로 맞이하는 소백산은 이번에도 또 다른 모습이다. 비록 봄꽃이 피지 않았지만 칼바람이 자고 있고 하얀 구름을 이고 있는 고즈넉한 모습이다. 비로봉 정상으로 오르는 데크길에서 하산하는 몇 명의 산님들을 만났을 뿐 전체적으로 한산하다.
앞서 간 고인돌 형님이 주목감시초소에서 우리를 부른다. 초소에서는 비로봉 아래 넓은 지역에 자라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 244호로 지정된 주목(Yew Tree)군락을 감시하는 곳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약 30,000 그루의 주목이 비로봉 정상 부근에 자라고 있었으나 무분별한 벌목으로 인해 현재는 수령 200 ~400년 된 주목이 약 1,500 그루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주목 숲을 보호하기 위해 이처럼 감시초소를 만들어 놓았다.
주목감시초소
초소에서 바라본 주목 군락지
이 감시초소는 그러나 보통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 겨울이면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이 소백산 능선길에는 강추위를 피할 수 있는 시설이 전혀 없다. 그러다 보니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유일하게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시설인 주목감시초소에 들어가 잠시 몸을 녹이며 식사를 한다. 약 3평 남짓한 나무 바닥은 산꾼들이 남겨놓은 아이젠 자국으로 많이 파여 있다. 겨울날 라면 끓이는 김이 자욱한 어둠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고 또 앉을 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선 채 음식을 먹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가 초소로 들어가자 앞서 와 있던 다른 팀이 식사를 마쳤는지 자리를 비워준다. 그 널찍한 곳을 독차지하고 우리는 준비해온 버너에 불을 붙여 물을 끓였다. 거기에 서울에서 사온 어묵을 잔뜩 넣고 끓여 먹으니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커피와 과일로 디저트까지 즐기다 보니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비로봉에서 바라본 영주 풍기 방면
국망봉 상월봉 방면
연화봉 방면
소백산 정상은 비로봉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은 산에서도 진행된다.
주목 군락지 윗쪽으로는 분비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오후 3시가 넘었다. 원래 6시 10분에 희방사 역에서 출발하는 청량리행 열차를 탈 계획이었으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비로봉 정상에 올라 인증사진을 남긴다. 우리가 올라오자 부부 두 명이 삼가 주차장쪽으로 내려가고 우리 사진을 찍어준 남자 한 명마저 하산하고 나이 그 큰 비로봉 정상을 우리 세 사람이 독차지해버렸다. 평소 주말이면 수 많은 산객들로 붐비던 곳이다. 사방을 돌며 시원한 조망을 감상하고 나서 국망봉 방향으로 능선길에 있는 작은 암봉까지 다녀왔다.
연화봉
오후 4시가 다 되어간다. 이제 하산해야 한다. 연화봉을 향해 종종걸음을 옮긴다. 이 거대한 소백산에 우리 세 명만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냥 두고 내려가기가 좀 서운하다. 내려가면서 멋진 조망처가 있으면 잠시 서서 감탄하고 또 탄복하길 몇 번이던가.
제1연화봉에서 연결되는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왼편에 작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1994년 즉 약 20년 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설명해 놓았는데 한 눈으로 봐도 차이가 선명하다. 1987년 우리나라에서 1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정비작업을 실시한 모양이다. 그 때 당시에는 산을 찾는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정된 등산로 구분이 없다 보니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등산로 주변을 훼손한 흔적이 역력하다.
제 1 연화봉에서 내려서며 바라본 능선길
나무 계단을 내려와서 조 앞쪽에 팻말이 있고 그 곁에 참빗살나무 여러 그루가 자란다.
달라진 소백산의 모습
연화봉에 이르기 전에 만나는 음지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이 쌓여 있었던 듯 아직도 잔설이 조금씩 비친다. 이 곳이 또 다른 모데미풀 군락지라고 한다. 이 곳은 모데미풀만이 아니라 각종 야생화가 철따라 피고 지는 곳이기도 한 모양이다. 작년 5월 말 이 곳을 지나가면서 보았던 연령초, 큰앵초 그리고 감자난초와 두루미풀, 풀솜대 등 여름 야생화 군락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연화봉
바로 아래 소백산 천문대가 있고 멀리 기상관측소 및 통신 중계탑 그리고 대피소가 있는 제2연화봉이다.
5시 40분 마침내 죽령으로 내려가는 길과 희방사 하산길과 갈라지는 연화봉에 도착했다. 춘분을 지난 햇살은 아직도 산마루 위에 남아 있어 지나온 능선길을 환히 비춘다. 그리고 죽령 방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대 건물이 발 아래 보이고 좀 떨어진 곳에는 기상관측소 건물이 있는 제2연화봉이 보인다. 제2연화봉에는 최근 개소한 대피소가 있는데 시설이 깨끗하고 편리하다는 평가다.
희방사
앞으로 갈 길을 내 스스로 가늠할 수 없지만 길 안내를 맡은 고인돌 형님이 앞장서고 사니조은 님과 나는 부지런히 그 뒤를 따른다. 연화봉에서 희방사까지 2.5 km 급격한 내리막이다. 특히 희방사에 이르기 바로 전 깔딱고개는 거의 수직에 가깝다. 하지만 좁은 길에도 야자열매 껍질로 만든 매트를 깔아놓고 경사가 심한 곳에는 나무데크 계단이 있으며 돌계단이 있는 곳에도 옆으로 쇠난간을 설치해 놓아 걷는데 불편함이 없다.
깔딱고개
시간에 쫒겨 희방사(喜方寺) 관람은 하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 계곡 끝 벼랑 아래 거대한 건물 하나만 덩그라니 앉혀진 모습이다. 선덕여왕 12년 (643년) 태백산 심원암에서 수도하던 두운(杜雲)이 이 곳에 있는 천연동굴로 옮겨 수도정진하고 있던 어느 날 동굴앞에 호랑이 한 마리가 찾아와 앞발을 들고 입을 벌린 채 흔들어대는데 입 안을 보니 여인의 비녀가 꽂혀 있던 것이었다. 이에 두운이 비녀를 빼내어 주자 호랑이는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마 후 호랑이는 다시 찾아와 기절하여 의식이 없는 여자를 동굴 앞에 두고 떠나갔다. 여인이 의식을 찾자 사연을 물으니 그 여인은 계림(鷄林)의 호장(戶長)인 유석(留石)의 딸로서 얼마전 혼인식을 마치고 신방에 들었는데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기분이 들면서 정신을 잃었다고 하였다. 이에 두운은 동굴안에 싸리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기거하다가 기운을 차린 유석의 딸을 데리고 마을로 내려갔다. 딸이 죽은 줄만 알았던 유석은 반가움과 고마움에 두운이 머물던 동굴 앞에 절을 지어주고 계곡에는 철다리를 놓아주었다 한다. 계룡산 남매탑에 엃힌 전설과 매우 닮았다.
희방사 부도탑
희방사
희방사 아래 계곡에는 유석이 설치했던 철계단이 현대식으로 개조하여 속세와의 끈을 이어주는 듯하다. 그리고 다리 아래에는 희방폭포가 있다. 어두운 계곡에서도 하얗게 부서지는 물줄기가 장엄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자리잡은 희방사는 이 폭포로 인해 그 이름이 만방에 더욱 빛나는 것 같다.
희방폭포
폭포 아래 작은 다리를 또 건너자 고인돌 형님이 바위 위에 나 있는 나무를 가리킨다. 노각나무다. 나무의 표피가 매끄럽고 얼룩무늬가 나 있는 것이 마치 사슴뿔(鹿角)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는 오히려 늙은 오이(노각) 표면처럼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특산종인 노각나무는 재질이 단단하여 목기(목기)를 만드는 재료로 각광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지리산과 가야산 그리고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전라도 어느 산에선가 본적이 있지만 꽃이 핀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 사진으로 보면 산목련(함박꽃나무)처럼 생겼는데 아무래도 올 해 노각나무 꽃이 피는 6, 7월에 다시 한 번 찾아와야겠다.
노각나무
희방사 주차장에 오니 오후 7시다. 날이 저물어 주변이 어두워진다.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큰 도로까지 내려가면서 기차 시간을 알아보니 8시 15분 풍기역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있다고 한다. 택시를 부르고 큰길에 나서니 금방 택시가 도착했다. 풍기역 앞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조금 여유있게 기차를 탔다. 11시에 청량리 역에 도착하자마자 각자 인사할 겨를도 없이 헤어져 전철로 갈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자정이 조금 못되어 집에 도착하여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다.
풍기역에서 8시 15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탔다.
첫댓글 다음에 제2연화봉 대피소에서 ㅎ.
주말에 대피소 자리 잡기 쉽지 않아요. ㅎ 차라리 국망봉 근처에서 비박하는 것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