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와 오줌싸개 / 양선례
검은 고양이가 쳐다본다. 그 앞에 잔뜩 몸을 움츠린 흰 고양이, 차마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 의자 기둥을 방패 삼아 딴청이다. 드디어 행동개시인가. 검은 고양이, 오른쪽 다리를 들어 때린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쫓고 쫓긴다. 도망치던 흰 고양이, 후다닥 캣 타워에 오른다. 위와 아래에서 대치 중이다. 노려보는 검은 고양이. 그 눈길이 부담스러운 흰 고양이, 캣 타워에서 내려와서 꽁지가 빠지게 도망간다. 아차차, 방문이 닫혀 있네. 막다른 길에 몰린 흰 고양이, 다리를 위로 들고 발라당 눕는다. 귀는 젖혀졌고, 꼬리는 축 늘어졌다. ‘어쭈구리, 항복이라구?’ 검은 고양이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둘의 다툼을 지켜보던 내가 슬그머니 안방 문을 열어 준다. 걸음아 날 살려라 방을 나서는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는 ‘밤하늘’. 올해 일곱 살이 된 암컷이다. 전체적으로 검고- 그래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목과 엉덩이 부근에 얼룩덜룩 노란 털이 섞여 있다. 동그란 노란 눈동자가 매력 포인트. 간혹 고고해 보인다고도 하지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 대체로 무서운 인상이라고 말한다. 성격은 까칠해서 누가 만지는 걸 아주 싫어한다. 낯선 이는 물론이고 주인이라도 십 분 넘게 쓰다듬으면 이빨을 드러낸다. 꼬리가 없는 장애 고양이다. 고양이는 어미의 영양분이 부족하면 꼬리가 없거나 짧아진다. 넷째로 태어난 하늘이는 꼬리뼈 흔적은 있으나 밖으로 드러난 꼬리는 1cm도 안 된다.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없는 고양이나 개는 몸짓으로 기분이나 상태를 표현한다. 특히 고양이는 꼬리의 언어가 따로 있다. 꼬리를 수직으로 높이 들고 있으면 자신감과 만족감, 끝이 파르르 떨리면 행복감을 의미한다. 두려움을 느끼면 꼬리를 몸 아래나 옆으로 감싸고, 꼬리를 내린 상태에서 다리 사이로 감추면 굴복의 신호이다. 그런 꼬리가 없으니 하늘이는 울음소리로 의사를 표현한다. 문 열어 줘, 간식 줘. 나 지금 행복해 등의 울음이 각기 다르다. 귀가 발달하여서 숨소리만으로도 주인의 잠이 깼는지 아닌지를 귀신처럼 알아챈다. 하늘이는 아들이, 키우던 고양이를 우리 집에 던져두고 해외여행을 한 달이나 가는 바람에 맡게 되었다. 어느새 우리 집에 온 지 5년이 넘었다. 일 년에 서너 번 오는 원주인도 잠깐만 아는 체하고는 이쁘다고 쓰다듬으면 바로 이빨을 드러내는 ‘도도녀’다.
흰 고양이는 ‘밤미떼’. 밤하늘의 동생이라는 뜻으로 앞 글자는 그대로 따서 지은 이름이다. 큰딸이 4년간 키운 암고양이다. 짧은 털이 부드럽고 고급스럽다. 등에는 둥글둥글한 표범 무늬가, 꼬리에는 갈색과 회색의 줄무늬가 있어 한눈에도 족보 있는 고양이로 보인다. 게다가 동그란 눈이 연한 푸른색이라 신비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마에서 코까지 검은 세로줄이 있어서 흡사 호랑이처럼도 보인다. 사람을 좋아하고- 처음 보는 사람이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는다.- 애교 덩어리에다 순하다. 주인이 안아주거나 자신의 털에 얼굴을 비비는 걸 아주 좋아한다. 말을 시키면 그때마다 꼭 사람처럼 대답도 한다. 물론 딸아이에게만 통하는 마법이지만. 누구라도 한번 보면 마음을 빼앗길 정도의 미모의 고양이인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건 바로 아직도 오줌을 못 가린다는 거다. 아니 못마땅한 감정을 오줌을 싸는 걸로 표현한다. 하늘이만 예뻐하거나, 밖에서 들어온 주인이 자신을 조금 덜 쓰다듬어줬거나, 아는 척하지 않았거나 등 이유도 제각각이다.
두 녀석이 한집에 산 지 5개월이 되었다. 영역 동물이기에 잘 살아갈지 걱정이 많았다. 미떼가 약 2kg쯤 몸무게가 더 나가기에 하늘이가 치일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하늘이한테 쫓기는 미떼를 날마다 본다. 오래전부터 자신의 영역이었던 거실이나 안방에 미떼가 나와 있는 꼴을 못 본다. 움직이는 대로 감시(?)하다가 어느 순간 쥐 잡듯이 구석으로 몰아 놓고 때린다. 딸아이는 이런 하늘이를 ‘깡패’라고 부른다. 침대 모서리나 책상 귀퉁이에 부딪히면서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미떼를 보면서 처음에는 흐뭇했다. 덩치는 작지만 자기 구역이라고 주인 행세하는구나 싶었다. 솔직히 응원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주눅이 들어 눈도 못 마주치고, 하늘이와 떨어진 의자 끝에 올라가 있거나, 장난감 집에 숨어 있는 미떼를 보면 또 짠하다. 카페 영업이 끝나야 귀가하는 딸아이를 기다리느라고 하늘이 눈치를 봐 가면서도 자기 방에 가지 않고 거실에서 논다.
여름 내내 우리 집에는 이불이 줄줄이 베란다에 걸려 있었다. 이불은 빨기라도 하는데 그럴 수도 없는 메밀 베개는 벌써 몇 개째 버렸다. 남편의 목 베개는 사온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오줌 테러를 당했다. 겨울은 다가오는데 그 감당을 어찌할 것인지 걱정이다. 생김새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미떼는 거리에서 발견되었다. 저리 이쁜 고양이를 버린 주인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개어서 놓으면 그 위에 실례를 해 버리는 미떼의 행패를 피해 우리 집 이불은 의자에 돌돌 묶여있거나, 미떼가 자세를 잡을 수 없게 산처럼 뭉쳐 놓는다. 어떻게든 이불을 지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생긴 묘책이다. 깡패 하늘이 때문에 미떼 마음이 평온해 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힘든 일이 되었다. 지난여름에는 퇴근하여 침대에 놓아둔 천 가방에 오줌을 갈겨 버린 미떼가 하도 미워서 가방을 흔들어가며 화를 냈더니 이후에는 나만 보면 실실 피해 다니더라. 말 못하는 짐승을 또 학대했구나 싶어서 잘해주고 싶다가도 그 결심이 사흘을 못 간다.
매년 약 10만 이상의 생명이 하루아침에 보호자를 잃는다. 휴가와 추석 명절이 낀 주에는 유기견이나 유기묘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늘고 사적 모임이 제한되면서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오히려 커졌다.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동물도 많아졌다. 예쁘고 귀여워서 입양했다가 나중에 늙고 병들거나 치료비 부담이 커지면 유기한다. 동물도 가족이다. 우리 집에는 까칠녀 깡패와 미녀 오줌싸개가 산다.
첫댓글 와!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시는군요. 같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겠어요.
당연히 심심하지는 않은데 일이 많습니다.
집도 엉망이 되어 가고요.
그래도 정 들어서 이쁩니다.
한 마리도 힘들 텐데 두 마리나. 울 양 교장샘, 여러모로 대단하세요.
대강 하고 사는 거지요.
부지런하지도 못한 데다 식구가 늘어서 집에 가도 바쁘네요.
선생님이 더 대단하시지요.
좋은 글 늘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