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학
27.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는
아라한과를 얻지 못한 유학(*1)으로 위없는 유가안은(*2)을 원하면서 머문다.
그는 땅을 땅이라고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3)
땅을 땅이라고 최상의 지혜로 잘 알아 [자신을] 땅이라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4)
[자신을] 땅에서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자신을] 땅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땅이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땅을 기뻐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그는 그것을 철저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설한다."
28. ~ 50. "그는 물을... 불을... 바람을... 존재들을... 신들을... 빠자빠띠를... 브라흐마를... 광음천을...
변청천을... 광과천을... 승자천을... 공무변처를... 식무변처를... 무소유처를... 비상비비상처를...
본 것을... 들은 것을... 감지한 것을... 안 것을... 동일한 것을... 다른 것을... 전체를...
열반을 열반이라고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최상의 지혜로 잘 알아
[자신을] 열반이라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자신을]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자신을] 열반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열반이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열반을 기뻐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그는 그것을 철저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설한다."
(*1) “‘유학(有學, )’이라 했다. 무슨 의미에서 유학이라 하는가?
① 배워야 할 법이 있기 때문에 유학이라 한다. 이런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유학, 유학’이라고들 합니다. 어떻게 해서 비구는 유학이 됩니까?
비구여, 여기 비구는 유학의 바른 견해[正見]을 구족하고, … 유학의 바른 삼매[正定]를 구족한다.
비구여, 비구는 이렇게 해서 유학이 된다.”(「유학 경」(S45:13))
② 그리고 배운다(sikkhati)고 해서 유학이라 한다. 이런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비구여, 배운다고 해서 유학이라 부른다. 그러면 무엇을 배우는가?
높은 계를 배우고, 높은 마음을 배우고, 높은 통찰지를 배운다.
비구여, 배운다고 해서 유학이라 한다.”(A.ⅰ.231)
(*2) ‘유가안은(瑜伽安隱)은 ’yogakkhama(요가케미)의 한역이다.
빠알리어 주석서들에서는 예외 없이 yoga를 속박으로 해석해서
“네 가지 속박들로부터 안전하고 괴롭힘이 없기 때문에 유가안은이다.
이것은 아라한과를 뜻한다.”(MA.ⅰ.41)라고 설명한다.
네 가지 속박은 감각적 욕망, 존재, 사견, 무명의 속박을 말한다.
(*3) “‘그는 땅을 땅이라고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
(so pi paṭhaviṃ paṭhavito abhijānāti)’는 것은 이러한 뜻이다.
그는 땅을 땅의 성질을 통해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
범부처럼 모든 측면에서 전도된 인식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는 아주 특별한 지혜로 안다.
땅의 성질을 놓치지 않고 그것을 무상이라고, 괴로움이라고, 무아라고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MA.ⅰ.41)
복주서는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여기서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abhijānāti).’는 것은
세 가지 통달지와 낮은단계의 도의 지혜로써 잘 안다는 말이다.(MAT.ⅰ.93)
낮은 단계의 도의 지혜는 예류도, 일래도, 불환도의 지혜를 뜻한다.
(*4) “‘[자신을] 땅이라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paṭhaviṃ mā maññī)’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유학에게는 ‘생각한다(maññī).’라고 말해도 안 되고 ‘생각하지 않는다(na maññī).’라고 말해도 안 된다는 뜻이다.
범부는 세 가지 허황된 생각을 하나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생각한다(maññī).’라고 하고,
번뇌 다한 자는 [세 가지 허황된 생각을] 모두 다 버렸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는다(na maññī).’라고 하지만,
유학은 사견에 기인한 허황된 생각은 버렸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줄어든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그를 범부처럼 ‘생각한다.’라고 해서도 안 되고,
번뇌 다한 자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해서도 안 된다.”(MA.ⅰ.4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