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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조공 묘지명병서〔孝子趙公墓誌銘幷序〕
조씨(趙氏)는 멀리 세계(世系)가 있다. 시조 휘 천혁(天赫)은 중국에서 진사과에 급제하고 고려(高麗)에서 큰 공훈을 세워서 가림백(嘉林伯)에 봉해졌으니, 자손이 그대로 관향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이어 내려와서, 본조에 들어와 높은 벼슬에 오른 이들이 이어졌다.휘 익(翊)은 군자감 정(軍資監正)이었고, 이 이휘 응공(應恭)을 낳았으니, 황해 도사(黃海都事)이다. 도사공(都事公)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휘 찬(璨)은 호가 신수재(愼守齋)로, 천거되어 세자익위사 세마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차남은운강공(雲江公) 원(瑗)이다. 신수공(愼守公)의 아들 휘 희성(希聖)은 음보로 벼슬하여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이 되었으니, 도의(道義)와 문학(文學)의 세가(世家)로서 우리나라의 명문이 되었다. 참봉공(參奉公)은 전의 이씨(全義李氏)로 사과(司果) 영윤(令胤)의 따님에게 장가들어서 휘 복형(復馨)을 낳으셨으니, 이분이 공이시다.
공은 자가 여방(汝芳)이니, 효성을 타고나서 어버이를 섬김에 사랑과 공경이 도타워서 마음을 받드는 것과 물질로 봉양하는 것을 모두 갖추어 봉양하였다. 출중한 행실과 특출한 일로서 신명을 감격시키기를왕상(王祥)과검루(黔婁)처럼 한 것이 진실로 이루 다 셀 수 없이 많았다. 참봉공(參奉公)이 병을 잘 앓아서 왕왕 위독하였는데, 공은 몸소도규(刀圭)를 잡고서 정성을 다하여 치료하고 간병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의 병세가 갑자기 심해지자, 공은 산을 나와서 약을 짓다가 저물녘 길에서 돌아가는 방법을 잊었는데, 홀연 큰 호랑이가 길 좌측에 엎드려 있었다. 공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르쳐서 말하기를, “정황이 급박하니, 네 비록 이물(異物)이지만 저지해서는 안 된다.” 하였다. 호랑이가 이에 앞으로 나와 머리를 숙이고 꽁무니를 들고서 마치 타기를 청하는 것처럼 하였다. 공이 비로소 그 뜻을 헤아리고서 그 등에 몸을 올려 탔다. 호랑이가 이에 일어나서 가는데, 빠르기가 마치 날아가는 것과 같아서 순식간에 집에 도착하였고, 호랑이는 이에 종적이 사라졌다. 약을 올려서 부친의 병이 나으니, 모두 효성이 감동시킨 것이라 일컬었다.
어버이의 병이 위급해지자 손가락을 베어서 피를 올렸고, 삼년상을 치를 때에 여막에서 살면서 상을 마쳤으며, 아침저녁으로 사당을 뵙고 성묘하였고, 기일에 곡할 때에 처음 상(喪)을 당하였을 때와 같이 하여, 그 슬픔이 이웃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니, 이를 말미암아 명성이 널리 퍼져서 한 도(道)의 사람들이 존경하고 복종하였다. 공의 실제 행실들을 들어서 조정에 알리자, 조정에서 특별히 정려하여서 ‘효자지문(孝子之門)’이라 하였다.
애초에 공의 조고(祖考)이신 도사공(都事公)께서 민세경(閔世卿) 공의 사위가 되었는데, 민공(閔公)이 충주(忠州)에 살면서 고령의 나이에 자식을 잃었다. 그러자 공의 조비(祖妣)께서경강(敬姜)이 집안을 다스렸던 것과 같은 덕(德)을 지니고서산남(山南)이 부모님을 영화롭게 봉양하였던 것과 같은 복을 누리고 있었으나, 친정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뵙고서수수(滫瀡)로 봉양할것을 결심하였다. 그러자 아들인 신수공(愼守公)이판여(板輿)로 모시고서 외가에 가서 모여, 어머니의 마음에 능히 순종하여 외조부를 돌아가실 때까지 봉양하고, 그대로 충주(忠州)에서 살아 후손들이 번창하였다. 이는 실로 신수공(愼守公)의 순전한 효가 이룬 바이자, 공의 지극한 효행이 세상의 모범이 된 것에 연원이 있음을 여기에서 징험할 수 있다.
공은 백형(伯兄)을 아버지처럼 섬겼고, 이것이 동당(同堂)의 친족들에게까지 미쳐서 지극히 돈독하고 화목하기를 힘썼으며,조상을 높이고 종통(宗統)을 공경하는의리를 더욱 깊이 유념하였다. 평소에 항상 스스로 단속하여서, 먼저 덕행에 힘쓰고 그런 뒤에 문예(文藝)를 닦아 선조의 아름다움을 능히 이어서,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흠모를 받고 중히 여겨졌으니, 백형(伯兄)과 이름을 나란히 함에 서로 겸손하게 사양하였다. 만년에 곤지(昆池) 가에 헌(軒) 하나를 짓고서긴 베개를 함께 베고 큰 이불을 함께 덮고서함께 즐거워하면서 시를 읊으며 자적하여인(仁)과 지(智)의 취향에 묵묵히 계합되었으니, 모두들 ‘조 처사(趙處士)’라고 일컬으면서 말하기를, “옛날에도 효도하고 우애하는 행실을 지닌 이가 있었으나, 조씨(趙氏) 가문의이난(二難)과 같은 경우는 드물다.”라고 하였다.
현종(顯宗) 을사년(1665, 현종6) 10월 16일에 별세하였으니, 태어난 기유년(1609, 광해군1) 9월 5일로부터 57세가 된다. 충주의 팔봉산(八峯山) 뒤 공산(公山)의 해좌(亥坐)에 장례하였다. 배위(配位)는 단양 우씨(丹陽禹氏)로 직장(直長) 극의(克儀)가 그 선고(先考)이시다. 묘에 합부(合祔)하였다. 5남을 낳았으니, 경완(景完)ㆍ경우(景遇)ㆍ경환(景煥)ㆍ경관(景觀)ㆍ경민(景敏)이고, 딸은 이민부(李敏溥)에게 시집갔다. 정진(正震)ㆍ정행(正行)ㆍ정오(正五)ㆍ정구(正九)는 경우(景遇)의 소생이고, 정한(正韓)은 경환(景煥)의 소생이며, 정태(正泰)는 경관(景觀)의 소생이다. 증손과 현손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공이 별세한 후에 여러 번회겁(灰劫)을 겪느라 공사(公私)의 문헌들이 소실되어 남은 것이 없게 되었으니, 유고(遺稿) 또한 풍부하였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애석하도다. 그러나 징험할 것이 없는 데서 징험한다면 이것이 바로 믿을 수 있는 것이 되니, 주워 모아서 엮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공의 족손(族孫)인 상서(尙書) 덕윤(德潤) 씨가 정려기(旌閭記)를 지어서 대를 이은 아름다움을 서술하고 기이한 행적을 적었는바, 이는확실한 사실로서 전할 수 있는 것이니, 어찌 많을 필요가 있겠는가. 공의 6대손인 재희(在煕)가 나를 종유하면서 묘도(墓道)에 새길 묘지명을 요청하니, 그 정성이 간곡하여 병을 무릅쓰고 명(銘)을 짓는다.
만 가지 선과 백 가지 행실이 / 萬善百行
모두 효에서 비롯되네 / 咸源於孝
효와 제는 인을 행하는 근본이니 / 孝悌爲仁
근본이 확립되면 도가 생기네/ 本立生道
가림의 영기가 빛나 / 嘉林炳靈
대대로 행의가 독실하였네 / 世篤行義
아, 공이여 / 吁嗟乎公
선대의 아름다움을 능히 이었도다 / 克紹先懿
옥을 잡고 가득 찬 그릇을 받들 듯이 하여/ 執玉奉盈
그 품부 받은 바를 온전히 하였네 / 用全其受
지극한 정성이 귀신을 감동시켜서 / 至諴格神
믿음이 금수에 미쳤네 / 孚及猛獸
종신토록 근심을 안고서 / 抱終身憂
그리워하고 마음에 품었네 / 婉戀懷袖
《효원》에서 하나하나 꼽아보건대 / 歷選孝苑
왕찬체가 으뜸이었네/ 讚諦爲首
공을증자라고 하더라도 / 公謂曾子
또한 지나치지 않을 것이네 / 亦未有餘
빛나는 정려문이여 / 煌煌旌楔
그 문려에 정표하였네 / 表厥門閭
내가 바라던 바가 아니니 / 非我思存
어찌 명예를 돌아보겠는가 / 肯恤名譽
준양시회하여서 / 遵養時晦
초연히천유하였네 / 脫然天遊
시종일관 도를 따라서 / 與道終始
운명을 편안히 여겨 근심하지 않았네 / 安命不憂
자손들번창하여/ 孫曾詵詵
문호에 가득하네 / 充衍門楣
여기에서 징험할 수 있으니 / 卽玆可驗
천도는 선인에게 보시하네 / 天道報施
이로써 선을 권면하니 / 聊以勸善
후인에게 이를 남겨주었네 / 後人是貽
나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 如我不信
이 비명을 볼지어다 / 視此銘詩
孝子趙公墓誌銘幷序
惟趙氏遠有代序。始祖諱天赫。中中朝進士。樹大勳於麗朝。封嘉林伯。子孫仍籍焉。自是蟬嫣。入本朝簪組相襲。至諱翊軍資監正。生諱應恭黃海都事。都事公擧二男。長諱璨號愼守齋。薦拜洗馬不就。其次雪江公瑗也。愼守公男諱希聖。蔭補軍資監參奉。以行義文學世家。爲左海名閥。參奉公娶全義李氏司果令胤之女。生諱復馨。是爲公也。公字汝芳。亦性於孝。事親愛敬篤摯。志物俱養。出常之行。卓類之事。所以感格神明。如王祥黔婁者。固不勝計焉。參奉公善病。往往而㞃。公親執刀圭。殫誠救護。一日癠候猝劇。公出山製藥。昏徑忙返。忽有大虎伏路左。公不少懾。諭曰情急勢迫。爾雖異物。不宜相梗。虎乃進前。低頭高尻。有若請騎然。公始揣其意。騰身其脊。虎乃起行。其疾如飛。瞬息抵家。虎仍無迹。進藥而瘳。咸稱孝感。疾革斮指進血。居憂廬墓終喪。晨昏拜廟展墓。哭諱如袒括。哀動鄕隣。由是聲聞暢蔚。爲一路所歆服。擧公實行聞于朝。特旌其閭曰孝子之門。始公祖考都事公。爲閔公世卿女婿。閔公居忠州。卲齡喪子。公祖妣有敬姜主家之德。享山南榮養之福。而决意歸寧。用供滫瀡。愼守公奉板輿往聚外氏。克順慈心。終養外翁。仍家于忠。後承繁衍。寔爲愼守公純孝攸致。而公之至行範世。可驗其所自也。公事伯氏如父。施及同堂諸親。務盡敦睦。尤惓惓於尊祖敬宗之義。居恒自律。先德行而後文藝。克趾先美。爲幷世所欽重。而與伯氏齊名。互相推讓。晩年構一軒于昆池上。長枕大被。與共湛樂。唫哦自適。默契仁智之趣。咸稱以趙處士曰古亦有孝友之行。而尠有如趙門之二難也。顯宗乙巳十月十六日卒。距其生己酉九月十五日。爲五十七歲。葬于忠之八峯後公山亥坐。配丹陽禹氏。直長克儀其考也。墓祔。擧五男景完,景遇,景煥,景觀,景敏。女適李敏溥。正震,正行,正五,正九。景遇出。正韓景煥出。正泰景觀出。曾玄以下不記。公歾後屢經灰劫。公私文獻。蕩然無遺。遺稿亦富而不傳。惜哉。然徵於無徵。是爲可信。以其無掇拾累列也。且公族孫尙書德潤氏。爲著旌閭記。述世美而敍異蹟。玆可以傳信。亦奚以多爲哉。公六代孫在煕從我遊。謁隧道之文。其誠悃款。力疾而爲銘曰。
萬善百行。咸源於孝。孝悌爲仁。本立生道。嘉林炳靈。世篤行義。吁嗟乎公。克紹先懿。執玉奉盈。用全其受。至諴格神。孚及猛獸。抱終身憂。婉戀懷袖。歷選孝苑。讚諦爲首。公謂曾子。亦未有餘。煌煌旌楔。表厥門閭。非我思存。肯恤名譽。遵養時晦。脫然天遊。與道終始。安命不憂。孫曾詵詵。充衍門楣。卽玆可驗。天道報施。聊以勸善。後人是貽。如我不信。視此銘詩。
[주-D001] 휘 익(翊):
조익(趙翊, 1474~1547)으로,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익지(翊之)이다. 1504년(연산군10)에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군자감 정(軍資監正)에 이르렀다.
[주-D002] 휘 응공(應恭):
조응공(趙應恭, ?~?)으로,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숙형(叔亨)이다. 1543년(중종38)에 진사시에 급제하고 같은 해에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황해 도사(黃海都事) 겸 춘추관 기주관(春秋館記注官)에 이르렀다.
[주-D003] 운강공(雲江公) 원(瑗):
조원(趙瑗, 1544~1595)으로,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백옥(伯玉), 호는 운강이다. 1572년(선조5)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조 좌랑, 삼척 부사(三陟府使), 승지(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주-D004] 왕상(王祥):
삼국 시대 위(魏)나라 말엽부터 서진(西晉) 초기까지의 인물로,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겨울에 생선을 드시고 싶어 하시기에 강에 가서 옷을 벗고 얼음을 깨고 들어가서 고기를 잡으려고 하자, 잉어 두 마리가 얼음 위로 뛰어나왔다고 한다. 《晉書 卷33 王祥列傳》 《小學 善行》
[주-D005] 검루(黔婁):
남제(南齊)의 효자로 알려진 유검루(庾黔婁)를 말한다. 유검루가 잔릉 현령(孱陵縣令)이 되었는데, 현에 부임한 지 10일도 못 되어 갑자기 놀라서 온몸에 땀이 흐르므로 이상하게 여겨 벼슬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 유이(庾易)가 병에 걸려 있었다. 의원이 “병의 차도를 알려면 변을 맛보아야 하는데, 변이 달면 병세가 더하고 쓰면 형세가 호전된다.”라고 하자, 검루는 직접 변의 맛을 보았는데, 그 맛이 달고 미끄러우므로 더욱 근심하고 괴로워하였다. 이에 저녁이 되면 매양 북극성에 머리를 조아리고 자신이 대신 죽기를 축원하였다. 그러자 하늘이 감동하여 그달 그믐까지 아버지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었다고 한다. 《南史 卷50 黔婁列傳》 《小學 善行》
[주-D006] 도규(刀圭):
약(藥)의 양(量)을 헤아리는 기구로, 모양이 규(圭)와 비슷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주-D007] 경강(敬姜)이 …… 것:
경강은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대부였던 공보 목백(公父穆伯)의 아내이자 공보 문백(公父文伯)의 어머니로, 일찍 과부가 되었으나 아들을 잘 교육하고 근검하게 집안을 다스려서, 현숙하며 예(禮)를 잘 아는 여인으로 알려졌다. 《國語 魯語下》 《小學 稽古》
[주-D008] 산남(山南)이 …… 것:
산남은 당(唐)나라 때에 산남서도 절도사(山南西道節度使)를 지낸 최관(崔琯)을 말한다. 최관의 증조모인 장손 부인(長孫夫人)이 나이가 많아 치아가 없어 밥을 먹지 못하였는데, 최관의 조모인 당 부인(唐夫人)이 시어머니인 장손 부인을 효성으로 섬기면서 젖을 먹여서 곡식을 먹지 않고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였다. 병이 위독해지자 장손 부인은 집안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며느리의 은혜를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으니, 며느리의 자손들이 모두 며느리처럼 효도하고 공경하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小學 善行》
[주-D009] 수수(滫瀡)로 봉양할: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다. ‘수수’는 전분을 음식에 섞어 부드럽게 만드는 조리법의 일종으로, 《예기(禮記)》 〈내칙(內則)〉에서 부모를 음식으로 봉양하는 방법을 말하면서 “근(堇), 환(荁), 분유(枌榆)의 날것과 말린 것을 잘 조리하여 부드럽게 하고 기름진 것으로 맛있게 한다.[堇荁枌榆免薧, 滫瀡以滑之, 脂膏以膏之.]”라고 하였다.
[주-D010] 판여(板輿):
부들방석을 깔아 푹신하게 만든 노인용 가마를 이른다.
[주-D011] 조상을 …… 공경하는:
《예기(禮記)》 〈대전(大傳)〉에 “사람의 도는 부모를 친애하는 것이니, 부모를 친히 하기 때문에 조상을 높이고, 조상을 높이기 때문에 종통을 공경하고, 종통을 공경하기 때문에 종족을 수합한다.[人道親親也, 親親故尊祖, 尊祖故敬宗, 敬宗故收族.]”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2] 긴 …… 덮고서:
형제간에 우애가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당 현종(唐玄宗)이 우애가 깊었는데, 이에 대해 “상이 평소 우애하여서, 근세 제왕들 중에 여기에 미칠 수 있는 이가 없다. 처음에 즉위하여서 긴 베개와 큰 이불을 만들어 형제와 함께 잤다.[上素友愛, 近世帝王莫能及. 初卽位, 爲長枕大被, 與兄弟同寢.]”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資治通鑒 卷211 唐紀 玄宗 開元2年》
[주-D013] 인(仁)과 지(智)의 취향:
《논어》 〈옹야(雍也)〉에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仁者樂山, 知者樂水.]”라고 보인다.
[주-D014] 이난(二難):
난형난제(難兄難弟)와 같은 말로, 덕행과 학문이 뛰어난 형제를 가리켜 이난이라고 한다. 후한(後漢) 때 진식(陳寔)의 여섯 아들 가운데 진기(陳紀)와 진심(陳諶)이 가장 덕행이 뛰어났는데, 하루는 진기의 아들 진군(陳群)과 진심의 아들 진충(陳忠)이 각기 자기 아버지가 낫다고 다투다가 조부에게 묻자, 진식이 “원방은 형 되기 어렵고 계방은 아우 되기 어렵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원방은 진기의 자이고, 계방은 진심의 자이다. 《世說新語 德行第一》
[주-D015] 회겁(灰劫):
보통 겁회(劫灰)라고도 하는데, 여기서는 전란(戰亂)을 가리킨다. 우주가 한 번 생성해서 존속하는 기간을 1겁(劫)이라 하고, 겁이 다하면 세찬 불길이 하늘과 땅을 태우는데, 여기서 생겨난 재를 겁회(劫灰)라 하는바, 이는 곧 재앙을 뜻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에 곤명지(昆明池)를 파니 땅속에서 검은 재가 나왔는데, 서역(西域)에서 온 승려 축법란(竺法蘭)이 이를 보고 겁회라고 하였다. 《高僧傳 卷1 竺法蘭》
[주-D016] 확실한 …… 것:
《춘추》 환공(桓公) 5년에 “봄 정월 갑술ㆍ기축에 진후 포가 죽었다.[春正月, 甲戌, 己丑, 陳侯鮑卒.]”라고 하였는데,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 “어찌하여 죽은 날짜를 두 개나 기록하여 죽었다고 하였는가? 《춘추》의 의리는 사건이 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 그대로 전하고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스러운 것 그대로 전하기 때문이다.[卒何爲以二日卒之? 春秋之義, 信以傳信, 疑以傳疑.]”라고 하였다.
[주-D017] 효와 …… 생기네:
《논어》 〈학이(學而)〉에, 유자(有子)가 말하기를 “군자는 근본을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면 도가 생겨난다. 효와 제는 그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라고 하였다.
[주-D018] 옥을 …… 하여:
부모님을 공경히 받드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제의(祭義)〉에 “효자는 마치 손에 옥을 잡고 있는 것 같이 하고, 가득 찬 그릇을 받들고 있는 듯이 하며, 공경하고 삼가서 마치 들고 있는 것을 이기지 못하듯이 하고 장차 잃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한다.[孝子如執玉, 如奉盈, 洞洞屬屬然, 如不勝, 如將失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9] 효원에서 …… 으뜸이었네:
《효원(孝苑)》에 전하기를, 당(唐)나라의 효자(孝子) 왕찬체(王讃諦)가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어, 땅을 다져서 봉분을 완성하기까지 20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았는바, 검남(劍南) 지방의 효자 16명을 뽑아 아뢰게 하였는데, 그중 왕찬체가 가장 처음에 있었다고 한다. 《淵鑑類函 卷271 孝三》
[주-D020] 증자:
공자의 제자인 증삼(曾參)으로, 효행에 뛰어났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증자는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섬겼다고 할 수 있으니 부모님을 섬길 때 증자와 같이 하는 것이 좋다.[若曾子, 則可謂養志也, 事親若曾子者可也.]”라고 하였다.
[주-D021] 준양시회(遵養時晦):
때에 따라 힘과 덕을 기르며 자신을 숨김을 이른다. 《시경》 〈주송(周頌) 작(酌)〉에 “아, 성대한 왕사로서 도를 따라 힘을 길러 때로 감추어 크게 밝아진 뒤에야 이에 큰 갑옷을 쓰셨도다.[於鑠王師, 遵養時晦, 時純煕矣, 是用大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22] 천유(天遊):
정신이 아무런 구속 없이 자연 속에 노니는 것으로, 《장자》 〈외물(外物)〉에 “사람의 마음에는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천유가 있다. 방에 공간의 여유가 없으면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다투고, 마음에 천유가 없으면 여섯 개의 감각을 담당하는 기관이 서로 싸운다.[心有天遊. 室無空虛, 則婦姑勃豀, 心無天遊, 則六鑿相攘.]”라고 하였다.
[주-D023] 번창하여:
원문의 ‘선선(詵詵)’은 많은 모양으로 자손이 번창한 것을 가리킨다. 《시경》 〈주남(周南) 종사(螽斯)〉에 “메뚜기가 많이 모였으니, 마땅히 네 자손이 많겠구나.[螽斯羽, 詵詵兮, 宜爾子孫, 振振兮.]”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성신여자대학교 고전연구소ㆍ(사)해동경사연구소 | 김성은 (역)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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