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6.연중12주 금요일 묵상글>
<마태8,2-3>
2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당신과 싸우겠다.”
어느 날 한 사내가 오하이오 허드슨 강물에 올림픽 금메달을 아낌없이 던져 버린다. 그는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권투 선수였다. 강물에 버려진 것은 1960년 미국의 로마 올림픽 국가 대표 선수로 발탁되어 따낸 금메달이었다.
금메달을 따자 클레이는 미국의 영웅이 되었다. 클레이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고향은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페인트공인 그의 아버지는 계단을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하여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클레이는 미국으로 돌아온 뒤 공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을 가장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내 목표였다. 그래서 나는 러시아와 폴란드 선수를 이겼고, 미국을 위해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면서 클레이는 한동안 금메달을 목에 걸고 다녔다. 금메달을 목에 건 채 밥을 먹었고, 심지어는 잠을 잘 때도 목에서 빼지 않았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30)/
그러나 기쁨과 영광은 잠시였다.
어느 날 클레이는 친구 로니와 함께 햄버거를 먹기 위해 백인들이 주로 다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 들어선 순간 클레이는 싸늘한 눈초리를 느껴야만 했다. 백인 불량배들이 클레이와 친구를 노려보면서 욕설을 했다. 심지어 식당 주인은
“난 깜둥이한테는 음식 안 팔아!”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라 흑인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31)/
또 한 번은 불량배들에게 금메달을 뺏길 뻔한 사건도 있었다.
불량배들을 물리치고 클레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오하이오 강으로 갔다.
그리고 미련 없이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 버렸다.
새로운 삶을 살 것을 클레이는 다짐한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32)/
클레이는 이름도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하고, 미국을 넘어 세계의 챔피언에 세 번이나 등극한 그는 흑인 인권 운동, 반전과 평화의 상징이 됩니다. 또한 1960년대 유럽을 대표하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버트런드 러셀도 알리를 지지하며 편지를 보냅니다. “워싱턴의 권력자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당신을 파괴시키려 할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이야말로 더 이상 억압과 공포에 학살당하지 않기로 결심한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대표하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깊은 지원을 당신에게 보냅니다. 영국에 오면 제게 연락을 주십시오.”
알리는 1998년 유엔 개발 계획(UNDP) 친선 대사로, 2005년에는 유엔 오토한 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릅니다.
회고록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챔피언이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갈망, 꿈, 비전이 그것이다.
당신은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더 빨라야 한다.
당신은 기술이 있어야 하고, 의지가 있어야 한다.
기술보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
의지가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42)/
우리는 언제 집중이 잘 될까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꾸로 자신이 필요없는 것을 버리게 되면 집중력이 증대됩니다. 마치 컴퓨터에서 필요없는 프로그램을 제거하면 속도가 빨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클레이를 알리가 되게하고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반전과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은 그의 ‘집중력’과 ‘불의를 향한 저항’,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갈망과 꿈과 비젼’을 가지고 ‘기술과 의지’를 다하며 ‘사람들과 연대’한 데에 있습니다.
동물성, 인간성의 차원에서 노력한 것이지요. 신성의 차원에서는 인간적으로 차별당하는 것에 대해 반항으로 무슬림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흑인 권리 신장 운동가이자 블랙 모슬렘의 지도자 맬컴 엑스의 영향이겠지요.
오늘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치유를 청합니다.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8,2)
우리에게도 공동체적인 측면과 개인적인 측면에서 나병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공동체적 측면은 동물성과 인간성 차원에서는 물질만능주의와 인종차별, 신성차원에서는 절대적인 진리를 상대화시키는 상대주의 입니다. 우리 시대의 나병이지요.
개인적인 측면은 세례로 원죄가 씻어졌지만 원죄의 결과로 인한 죄로 기우는 경향들로 인해 십계명 차원에서 그리고 칠죄종 차원에서 걸려 넘어지는 것이지요. 성령의 도움으로 기도와 정화로 점차로 해방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우선 나의 소중함을 바라보고 알리가 세계 챔피언이 되기위한 갈망과 꿈과 비젼을 가지고 집중력을 발휘했듯이, 미래의 청사진으로써 나의 꿈에 대한 갈망과 비젼, 현실에서는 기술을 갈고 닦고자 하는 의지와 실천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본인에게 맞다면 즐겁고 기쁘게 할 수 있으며 집중력이 발휘된다면 맞는 길이겠지요.
<Matthew8,2-3>
2 And then a leper approached, did him homage, and said, "Lord, if you wish, you can make me clean."
3 He stretched out his hand, touched him, and said, "I will do it. Be made clean." His leprosy was cleansed immediately.
—//—
<책 소개>
7.금메달을 강물에 내던져 버렸던 무하마드 알리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당신과 싸우겠다.”
어느 날 한 사내가 오하이오 허드슨 강물에 올림픽 금메달을 아낌없이 던져 버린다. 그는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권투 선수였다. 강물에 버려진 것은 1960년 미국의 로마 올림픽 국가 대표 선수로 발탁되어 따낸 금메달이었다.
금메달을 따자 클레이는 미국의 영웅이 되었다. 클레이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고향은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페인트공인 그의 아버지는 계단을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하여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클레이는 미국으로 돌아온 뒤 공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을 가장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내 목표였다. 그래서 나는 러시아와 폴란드 선수를 이겼고, 미국을 위해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면서 클레이는 한동안 금메달을 목에 걸고 다녔다. 금메달을 목에 건 채 밥을 먹었고, 심지어는 잠을 잘 때도 목에서 빼지 않았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30)/
그러나 기쁨과 영광은 잠시였다.
어느 날 클레이는 친구 로니와 함께 햄버거를 먹기 위해 백인들이 주로 다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 들어선 순간 클레이는 싸늘한 눈초리를 느껴야만 했다. 백인 불량배들이 클레이와 친구를 노려보면서 욕설을 했다. 심지어 식당 주인은
“난 깜둥이한테는 음식 안 팔아!”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라 흑인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31)/
또 한 번은 불량배들에게 금메달을 뺏길 뻔한 사건도 있었다.
불량배들을 물리치고 클레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오하이오 강으로 갔다.
그리고 미련 없이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 버렸다.
새로운 삶을 살 것을 클레이는 다짐한다.
“내가 로마에서 가졌던
‘미국을 대표한다.’는 환상은
그때 사라졌습니다.
나는 흑인으로서
멸시받고 있는
켄터키의 고향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때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32)/
클레이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자존심이 샜다. 그는 1942년 1월 17일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캐시어스 마셀루스 클레이 주니어였다.
그가 살던 곳은 특히 인종차별이 심했다. 극심한 차별 대우 속에서도 그는 늘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생각했다. 바로 그것이 그를 자존심 강한 존재로 만들었다.
1954년 10월, 열두 살의 클레이는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동네에서 연례로 치르는 큰 행사에 구경을 나섰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자전거를 밖에 세워 두고 극장에 들어갔다 나와 보니 자전거가 없어졌다. 클레이는 조 마틴이라는 형사에게 자전거를 훔친 사람을 잡으면 “한방 먹이겠다”고 소리쳤다. 형사는 “한방 먹이는 것을 배우려면 체육관에 가라.”라고 농담을 던졌다. 조 마틴은 자신의 돈으로 체육관을 차려 놓고 틈틈이 동네 어린이들에게 복싱을 가르쳐 주던 복싱 코치이기도 했다. 클레이에게 그런 조 마틴의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사각의 링 안에서는 검둥이나 흰둥이나 평등했다. 그래, 권투를 배우자. 이렇게 그의 권투 인생은 시작된다.(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33)/
복싱을 시작한지 6주만에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클레이는 무서운 집념으로 복싱에 빠져들었다. 체력 향상에 좋다는 생마늘을 먹기도 했다. 클레이는 엄청난 집중의 소유자였다. 몰입할 수 있는 힘. 그것이 클레이의 최대 장점이었다. 밥을 먹어도 권투, 잠을 자도 권투, 그의 머릿속은 온통 권투였다.
어느 날 훈련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라디오를 켰는데, 라디오에서 “우리의 헤비급 세계 챔피언, 록키 마르시아노입니다!”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훗날 클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뼈를 통과하는 싸늘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그 말처럼 나에게 큰 영향을 준 말은 없었습니다.”. 그는 18세에 아마추어 선수로서 승승장구한 뒤 1960년 로마 올림픽의 국가 대표 선수로 금메달을 따게 된다.
이후 흑인으로서의 뼈저린 설움을 경험한 클레이는 금메달을 허드슨 강에 던져 버리고 세게 챔피언의 꿈에 도전하게 된다. 그는 루이빌 스폰서 그룹과 계약을 맺은 뒤 프로로 전향했다.
그리고 악착같이 권투에 매달렸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34)/
1964년 2월 25일, 미국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 비치 컨벤션 홀에서 그는 세계 챔피언으로 등극한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그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라고 말했고, 실제 경기에서도 우아한 스텝과 강력한 펀치로 챔피언을 쓰러뜨렸다.
WBA(세계 권투 연맹)와 WBC(세계 권투 평의회) 세계 헤비급 통합 챔피언 ‘소니 리스턴’은 무서운 선수였다.
리스턴은 최연소로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고, 사상 처음으로 두 번이나 헤비급 왕좌에 오른 플로이드 패터슨을 두 번 모두 1회에 KO로 누른 막강한 선수였다. 그의 주먹은 상대방의 뼈를 으스러뜨릴 정도로 강했다.
리스턴은 기본기도 탄탄했고, 완벽한 수비와 맷집을 보유한 훌륭한 선수였다. 레프트 잽은 강력했다. 상대들이 모두 경기 초반에 쓰러졌다.
애송이 캐시어스 클레이도 1회전을 버티면 잘한 것이라고들 했다. 당시 인기 코미디언이었던 재키 클리슨은 <뉴욕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리스턴이 클레이를 1회 18초 만에 KO시킬 것이다.”라고 예상하기도 했다.(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35)/
그러나 클레이는 나비처럼 빠르고 우아했다.
리스턴의 주먹을 요리조리 피했다.
3회전 중반이 되자 지치기 시작한 리스턴에게 클레이의 왼손 잽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챔피언은 큰 주먹을 날리며 경기를 끝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클레이의 주먹은 날카로워졌다.
결국 챔피언의 오른쪽 눈두덩이 째지고, 7회전 시작 종이 울렸으나 챔피언은 나오지 못했다.
클레이의 TKO 승이었다.
클레이는 자신의 패배를 예측한 링사이드의 기자들을 향해 자신의 승리를 외쳤다.
“나는 왕이다! 세상의 왕이다.”
I am the king, The king of the world!
복싱 역사에 가장 위대한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위대한 챔피언’이 된 것은 단순히 권투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특별한 그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끊임없는 반항의 정신이었다.(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36)/
세계 챔피언에 오른 클레이는 흑인 인권 지도자 맬컴 엑스 등과 파티를 가진 뒤 다음 날 아침, 경기가 벌어진 컨벤션 센터에서 기자 회견을 했다. 클레이는 챔피언이 됐으니 앞으로는 말보다 행동으로 미국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자 한 기자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클레이와 흑인 이슬람교도들과의 관계를 캐물은 것이다.
이 단체의 대표적인 지도자 맬컴 엑스는 흑인들이 백인들의 착취와 탄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장봉기를 해야 한다는 말도 거리낌 없이 했다.
클레이는 이 기자의 질문에 사실대로 자신이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파장은 엄청났다.
*맬컴 엑스
미국의 흑인 권리 신장 운동가이자 블랙 모슬렘의 지도자. 원래 이름은 맬커 리틀이었으나 이슬람 신앙에 귀의하면서 알 수 없다는 뜻의 엑스(x)를 자신의 성으로 삼았다. 흑인들이 받는 차별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며 블랙 내셔널 리스트 운동을 펼쳤다. 1965년 2월 21일, 뉴욕에서 열린 인종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집회에서 연설 중 총격을 받고 피살당하였다.(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37)/
다장 클레이의 아버지 클레이 시니어가 반발하고 나섰다. 그는 흑인 이슬람교도들이 자신의 아들을 속인 것이라고 분개하며 자신은 결코 이름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64년 3월
흑인 이슬람교도의 지도자인 에리자 무하마드는 클레이에게
‘무하마드 알리’
라는 새로운 이름을 직접 지어 주게 된다.
백인이 흑인 노예에게 지어 준 ‘진흙(clay)’이란 뜻의 이름은 거부하고 그는 무하마드 알리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획득한 뒤 이슬람교로 개종, 본격적으로 흑인 인권 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다음,
이번에는
징집 거부로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한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38)/
1967년 4월 28일 알리는 징병 위원회로부터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거부했다. 그 대가는 너무도 혹독하여,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겼고, 선수 자격 정지를 받았으며, 법원에 기소되었다. 당시 법에 따르면 징집 거부는 보통 징역 1년 6개월 형이 선고됐지만 알리에게는 무려 5년 형이 내려졌다. 여권을 압수하고 타이틀도 박탈했다.
알리는 “흑인 인권도 보장하지 않는 나라가 누구를 위해 전쟁을 하느냐.”면서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당신과 싸우겠다.”고 외쳤다.
1960년대 유럽을 대표하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버트런드 러셀도 알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워싱턴의 권력자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당신을 파괴시키려 할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이야말로 더 이상 억압과 공포에 학살당하지 않기로 결심한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대표하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깊은 지원을 당신에게 보냅니다. 영국에 오면 제게 연락을 주십시오.”
*버트런드 러셀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로 기호 논리학을 집대성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다양한 철학적 경력의 길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 다루고 있는 주제도 광범위하다. 특히 기호 논리학을 이용하여 철학의 여러 문제에 접근한 방식은 20세기 철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수학 원리>>, <<철학의 제 문제>>, <<정신 분석>> 등의 저서를 썼으며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39)/
베트남에서는 일주일에 평균 1,000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미군의 폭격과 작전에 의해 죽어 가고 있었고 매일 100명의 미군 병사가 전자하면서 전쟁에 반대하는 세계인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알리는 단순한 떠벌이 권투 선수가 아니었다.
그는 흑인 인권 운동,
반전과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반전 여론이 높아지면서, 대법원은 알리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3년 동안 그는 권투를 하지 못했다.
나이도 이제 30대에 접어들었다.
그는 굴하지 않고 다시 글러브를 끼었다.
이후 1971년 조 프레이저와의 재기전에서 패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3년 후,
결국 프레이저를 누르고 재기에 성공하고,
1974년 10월 30일,
막강한 주먹의 조지 포먼과 챔피언 타이틀을 두고 격돌하게 된다.
이 게임에서 8회에 카운터펀치를 날려 승리한다.
화려한 재기였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40)/
그러나 선수로서의 정점은 곧 하강을 의미했다. 그는 1978년 레온 스핑크스에게 타이틀을 뺏겼다가 다시 탈환하지만 1980년 래리 홈스에게 지면서 타이틀을 영원히 잃게 되고, 1981년 트레버버빅과의 경기의 패배를 끝으로
링에서 사라졌다.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성화 점화자로 나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41)/
생애 통산 61전 56승(37KO) 5패,
세계 헤비급 역사상
플로이드 패터슨에 이어 두 번째로 잃었던 타이틀을 되찾고,
최초로 세 번씩이나 헤비급 왕좌를 지낸
무하마드 알리.
회고록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챔피언이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갈망, 꿈, 비전이 그것이다.
당신은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더 빨라야 한다.
당신은 기술이 있어야 하고, 의지가 있어야 한다.
기술보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
의지가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42)/
무하마드 알리
1960년 로마 올림픽 권투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
1964년 세계 권투 협회(WBA) 헤비급 챔피언.
1971년 북미 권투 연맹(NABF) 헤비급 챔피언.
1974년 세계 권투 협회(WBA) 헤비급 챔피언.
1978년 세계 권투 협회(WBA) 헤비급 챔피언.
1981년 현역 은퇴.
1998년 유엔 개발 계획(UNDP) 친선 대사.
2005년 유엔 오토한 평화상.
*1960년 로마 올림픽
제17회 올림픽으로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열렸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경기 장면이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되었고, 전광판과 전자 계측 장치가 등장하는 등 볼거리를 제공했다. 맨발로 마라톤에 출전한 아베베가 큰 인기를 끌었고, 열여덟 살의 미국 권투 선수 클레이(무하마드 알리)가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대회이기도 하다. 사이클 선수인 덴마크 옌센이 약물을 복용하고 출전했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 대회부터 도핑 테스트를 실시하는 계기가 됐다. 모두 67개국에서 5,0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였으며 소련이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