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은 자라고 있었네! / 최종호
6월 하순부터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1학년 아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특수학급 학생을 제외하면 같은 학년에서 유일하게 특별 교육을 받는 셈이다. 글을 모르니까 국어 시간에 앉아 있어도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따로 마련된 교실에서 공부한다. 1학기에는 한 주에 두 번씩 왔으나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담임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2학기에는 세 번으로 늘렸다.
이 녀석은 여전히 오기가 바쁘게 “배 아파요.”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그러면서 교실을 돌아다니며 놀 거리를 찾는다. 강압적으로 자리에 앉혔다가는 시선을 다른 곳에 둔 채 묵비권으로 일관한다.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다.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시간이 지나도 앉지 않으면 그제서야 할 수 없이 “너, 뭐 하러 왔어? 공부하러 왔으면 앉아야 할 거 아니야.”라고 하면 “잠깐만요.”라는 말 한마디로 끝이다.
고집도 세다. 한 번은 특별 관리하고 있는 학생도 같이 있었는데 그가 강제로 자리에 앉혔다가 큰 사달이 났다. 그 날은 교실에서 종이접기를 했는지 만든 작품 하나를 들고 있었다. 5학년이 그것을 빼앗은 다음 "앉으면 주겠다."라고 하니까 그 녀석은 빨리 내놓으라고 했다. 둘이서 옥신각신하다 힘으로 제압당하자 울기 시작했다. 분했는지 씩씩거리며 의자를 하나씩 모두 손으로 넘어뜨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한 시간이 지나갔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오자마자 무엇을 발견했는지 의자를 들고 4단짜리 자료함 앞으로 갔다. 그러더니 제일 위 칸에서 수모형을 꺼내려다 제지를 당했다. 또 둘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하도 한심해서 계속 지켜만 보았다.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교실로 가라고 했더니 필통을 내 팽개치고 울면서 나갔다. 더 이상 안 되겠기에 담임을 만나고 싶었다. 필통을 들고 뒤따라갔으나 수업이 끝나지 않아 교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잠시 뒤, 문밖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빈대도 낯짝이 있지!’ 바로 들어오지 못하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들어와.”라는 말이 떨어지지가 바쁘게 그 수모형을 꺼내서 무얼 만들고 있다. 시작종이 울리자 담임한테서 아이를 찾는 전화가 왔다. 빨리 가라고 했더니 나가려다가 말고 고개를 내밀며 “선생님, 오늘 뭐 배웠어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어의가 없었다. “배우기는 뭘 배워? 자리에 앉기나 했냐?” 그대로 보낼 수 없어 그날 목표로 삼았던 ‘ㅚ’와 ‘ㅝ’를 급하게 가르쳤다. 고마운지, 아니면 혼자 가기 쑥스러워 그런지 녀석은 나랑 같이 가자고 해서 교실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날 오후, 퇴근을 늦추고 담임을 만났다. 그 동안 있었던 이런 저런 얘기를 한 다음, “12월까지 글자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받침까지는 그럭저럭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니 선생님도 나름 노력하고 있는 듯했다. 1학기 내내 자음을 공부하는 데 그쳤는가 보다. 흥미도, 별다른 진전도 없어 새로운 자료를 꺼냈는데 카드에 적힌 글을 읽어서 깜짝 놀랐단다. “받침은 안 배웠기에 아는 것을 바탕으로 추측해서 읽었을 겁니다.”라고 했더니 그래도 선생님의 덕이라면서 고맙다는 말을 거듭했다. 안타깝고 서운했던 마음이 일순간 고마운 마음으로 바뀌었다.
이 녀석은 가르치기가 참 쉽지 않다. 주의력도 산만하다. 7월 중순의 어느 날, 자석 글자판으로 모음을 공부하려는데 놀려고 하는 속셈이었는지 글자를 막 빼낸다. 낱글자 이름을 말하며 그러라고 했더니 그제야 시키는 대로 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가 없어졌다. 아이의 특성을 알고 혹시나 해서 가져간 『한글이 그크끄』를 들이댔다. 이는 자음과 모음을 익힐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처음 보는 것이라 그런지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ㅣ’(기본모음을 시간마다 복습한다.)가 있는 쪽을 펴서 ‘이게 뭐야?’라고 물었더니 ‘네모 상자’라고 한다. 안 되겠기에 자석 글자 ‘ㅣ’를 가리키며 물었더니 자신 없는 목소리로 ‘이’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것도 ‘이’야.” ‘ㅡ’도 자석 판으로 익혔다. 그런 다음에 조금 전 그 책을 활용했다. 투명판에 두껍게 쓰여 있는 ‘ㅣ’와 ‘ㅡ’를 가리키며 뭐냐고 물었는데 제대로 맞혔다. ‘박사네!’라고 했더니 갑자기 일어서서 큰 텔레비전 쪽으로 갔다. “선생님, 이건 ‘ㅡ’.”, 의자의 다리를 가리키며 “선생님, 이건 ’ㅣ’.”라고 한다. 물병, 필통, 전선, 칠판 유리창 등등 계속해서 시간이 끝나도록 반복했다.
이 녀석과 수업다운 수업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매시간 어떻게 수업을 전개할지 고민해야 한다. 계획을 열심히 세웠더라도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시간 작으나마 물을 준 덕분인지 카드에 적힌 설명글을 읽었다고 해서 기뻤다. 물이 다 빠진 것 같지만 시루에서 콩나물은 자라고 있었나 보다. 그나저나 갈 길은 먼데 해찰만 하니 걱정이다.
첫댓글 아이고, 교실 분위기가 눈에 선합니다.
제가 맡은 아이는 아예 교실에 오지 않기도 합니다.
자기 반 복도에서 기다리다 데려오는데 가지 않겠다고 버팁니다.
그러면 아무도 못 말립니다.
'이'와 '으'를 끊임없이 반복하던 바로 그 녀석이군요.
조금씩 나아진다니, 다행이네요.
제목이 멋집니다.
선생님의 고충이 글에 그대로 보이네요. 그런데 전 선생님과 아이의 실랑이가 너무 재밌는데요. 선생님 바람처럼 끝나길 응원합니다.
선생님, 글 너무 재밌습니다.
왜 애들은 'ㅡ'와, 'ㅣ'를 헷갈려 할까요?
신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