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이제 나는 죽고 그분만이 내 안에 사시기에 ---
ㅡ 오승재 장로의 "나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가" 회고록을 읽고
오성건 장로
오승재장로 소설가와 필자와 만난 지도 어언 오십년이 훌쩍 넘었다.
대학 졸업직후 일명 언론고시 방송계 시험에 합격 첫 근무지로 대전
주재근무로 발령받고 대전KBS와 대전MBC, 군산서해방송 세 방송
사의 심의책임자로 주재할때 대전제일교회에 출석 대전대학 오승재
교수와 함께 찬양대원으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던 오래된 인연
을 갖고있는 인생의 대선배이시다.
그러구러 무정한 세월은 멈추지 않고 살같이 흘러 오승재교수는
구십 졸수가 되었고 필자는 망구를 훌쩍 지나 멀리 미수를 바라보고
있다..오승재장로는 195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제3부두"
로 당선된 원로 작가다. 저서로는 "한국 선교 이야기" "지지 않은
태양 인돈" "일상에서 만나는 예수님" 1,2권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분단의 아픔""오승재 문집, 토기장이가 빚은 질그릇"5권등 다수가
있다.
오승재장로는 한남대학교 교수와 학교법인 대전기독학원 이사를
역임하고 지금은 한국기독교 문인협회 및 한국장로문인협회고문,
창조문예 편집고문,오정교회 은퇴장로로 섬기고 있다.한국문학
비평가협회문학상과 한국장로문학상,창조문예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번에 출간된 "나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가"는 탐욕과 약육
강식과 투기와 싸움 가운데서 살아 남은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함께 살면서 더없는 은혜를 누리며 구십평생을 몸부림
치며 살아온 삶의 현장을 보탬도 덜함도 없이 관조한 심원한 사색
의 회고록이다.
오승재장로는 1933년 7남매중 장남으로 출생, 26살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영예를 얻은 원로작가 답게 미국유학의 어려
운 시기를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았습을 고백하며
그가 세상에 던지는 말은 예리한 창날 같은 날카라움도 있고 삐딱한
세상을 특유의 설법으로 찔러대는 독설 같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의 블랙홀처럼 모든 사유를 강렬하게 빨아 들이기도 한다.어느
문장 회고록인들 가볍게 지나칠수 있을까만 그중 2000년 제1회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눈물 없이는 읽을수 없는 백미중에 압권이다.
오승재장로의 바로 아래 아우인 오영재시인은 16세 중학생때 6.25
전쟁의 거센 회오리 속에서 그의 운명은 너무도 예상치 않게 북한땅
까지 훌쩍 실어다 놓았다.의용군으로 60년을 가족과 떨어져 죽은줄
만 알았던 동생이 어느날 한 신문을 통해 그가 북한에서 전시의 병사
시절과 전후의 노동생활을 거쳐서 북한문단의 정상 영예로운 "계관
시인"이 되었고 1995년말에 "노력영웅"칭호로 북한의 최고 훈장을
받은 주인공임을 알게되었다.그는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울때면
한정동작사 윤극영작곡 "따오기"를 부렀다.
"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따옥따옥 따옥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내 어머니 가신나라 해돋는 나라/
전란기에 훈련 받던 아우 소년이 강진 운동장옆의 탱자 울타리 곁에
서 한살배기 여동생 영숙을 업고 70십리 먼길을 걸어와 아들을 만나
고 무더위속 저녁길로 떠나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정의 뒷모습을 평생
잊지못해 울컥 울컥 토해낸 목맨 감동의 울부짖음이다.
"늙지 마시라 더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세월아, 가지마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 날 까지라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어머니 앞
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 해에 두살씩
먹으리//그다음엔 그다음엔 내 죽어도 여한이 없으리니/어머니 찾아
가는 통일의 그 길에선/ 가시밭에 피 흘러도 아프지 않으리//
인간의 기구한 운명은 한치 앞도 알수없으니 어쩌랴, 오매불망 어머니
를 평생 그리던 북쪽의 아들이 2000년8월14일 제1회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로 찾아왔으나 남쪽의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다 지쳐 그만
1995년4월3일 5년전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추모의 절규를 토해냈다.
"가셨단 말입니까/정녕 가셨단 말입니까/아닙니다, 어머니,어머니!/
나는 그 비보를 믿고 싶지조차 않습니다//
오영재시인은 그렇게 안기고 싶었던 어머니를 여의고 쓴 추모시다.
ㅡ 기어이 안기고 싶어 ㅡ
머리 맡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드린 형님이여/동생들이여/어머니
께서 눈을 감으시기 전에/ 제 이름을 부르지 않습디까/제 사진 보고
싶다 하시지 않습디까/ 제 목소리를 듣고 싶다 하시며 /주름 깊은 눈
가에 이슬이 맺히지 않습디까// 아, 사람들이 바라온 대로/죽어서 가
는 다른 세상이 있고/어머니가 그 세상에서 다시 살게 되신다면/내
어머니 간 길을 찾아 가리다/아이 적처럼 어머니 품에 기어이 안기고
싶어/눈물이 아니라 그 웃음을 보고싶어// 그 세상엔/분계선이 없을
것 아닙니까/콘크리트 장벽도 없을것 아닙니까//
남쪽의 어머니가 더 늙지 마시길 간절히 바라던 북쪽의 아들도,
어머니도 모두 세상을 떠난 지금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 철책위로
주인 잃은 사모곡만 애달프고,그렇게 애타게 그리던 어머니를 여의고
남북이산가족 만남때 어머니의 묘소라도 가고 싶다고 애원했으나
허락이 않되어 그냥 돌아가 소식이 뜸하더니 세상사 높고 파란 하늘
아래 천둥번개 이게 어인일입니까.
조선닷컴에서 오영재시인이 갑상선암으로 2011년10월23일 사망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승재장로는 11월3일 부모님 묘소인 모란
공원에 모여 동생의 추도예배를 드렸다니, 하늘이여,땅이여! 긍휼을
배풀어 주소서,우리는 이 단장의 아픔을 언제까지 견뎌야 합니까?
아,민족 분단의 슬픔이여! 아,인생무상이여!
202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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