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터에 물들다
김미순
<여수, 터에 물들다> 는 여수 갈무리문학회의 다섯 번째 동인지다. 처음 갈무리 문학회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여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만든 문학회다. 임호상, 박점덕(박해미), 최향란, 강영경, 내가 혈기 왕성하게 시작하였다. 처음에 우리가 쓴 시를 내가 가진 구식 타자기로 딱탁 쳐서 쓰고 복사해서 합평회를 하였다. 그러나 대학때 나는 산문에 집중한다고 모임에서 나왔다. 그 이후 강영경이 서울에서 생활하느라 함께 하지 못 하였다. 지금은 박혜연과 하병연, 우동식 성미영, 황영선, 송정현, 서수경, 이생용 회원들이 자리를 메꾸고 있다.
38년이 훌쩍 지나오면서 갈무리문학회가 여수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름을 내게 되었다. 신춘문예에서 당선한 시인 (하병연)도 생겼고, 회원 거의 다가 알아주는 잡지사의 추천으로 등단하고, 시집도 냈다. 벌써 두권 이상의시집을 낸 시인도 여럿이다.(하병연, 우동식, 박혜연)
이 동인지를 받고 참 감회가 새롭고 반가웠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박혜미 시를 제일 먼저 찾아읽었다, 그럼 그렇지. 박해미 시인은 우리 주위의 환경과 소소한 일상을 소박하게 그려내는 시(덕충동 가을, 동산동 83번지, 두꺼비, 터를 잡다, 영락공원 등)를 아주 잘 썼다. 아름다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최향란 시도 못지 않게 잘 쓴다. (찬엽이, 용주리에 기대기, 진달래 연가) 하병연 시인은 누가 뭐래도 갈무리문학회의 최고 시인이다. 사물을 보는 시선이 섬세하고 따뜻하고 표현도 아름답다. (돌산 갓밭에서, 섬달천 바다에 묻다) 우동식 시인은 자신의 생각을 조단조단 풀어내는 힘이 남다르다. 역사의식이 확실하고 여러가지 주제를 녹아내는 인내력도 있다. (자산공원,감도마을) 성미영시인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을 풀어내는데 남다른 소질이 대단하다. 표현도 색다르게 민요풍이나 판소리로 노래한다. (충민사 풍소, 비손, 반야용선 등) 이생용, 서수경, 황영선, 송정현 시인도 시가 제법 읽을 만했다. 박혜연 시인의 길어진 호흡을 담아내면서 시적 감수성이 안정을 찾아갔다.그러나 역사의식이나 지역적인 독특함을 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차원적인 수준이었다. (' 윤형숙 열사의 터를 찾아' 를 황영선의 '사람' 과 비교하여서 )
아무튼 내가 어설프게 평가했지만 갈무리문학회 동인들의 시가 예전보다 한층 새로워지고 시적 형상화가 잘 이루어졌다. 하지만 산문에 약간의 소질이 있는 내가 주의깊게 읽은 것은 김민영씨의 소설이다. 희귀성 어류 '아로와나' 다. 아쿠아리움에 근무하는 주인공이 직장동료 수혁을 만나 벌어지는 일이다. 수혁은 고래를 잡으러 외국으로 떠나고 그의 월급으로 일억이 넘는 아로와나를 구입하고 집에서 세끼를 해결하며 사치를 한다. 그녀는 돈이 떨어질 때 횟집을 내고 주식을 하라는 수혁의 친구에 몹시 불안해 한다. 조금의 돈으로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시달리면서 수혁이 주고 간 시계의 목숨을 끊고 조용히 바다를 바라본다. 물욕에 빠져 사랑이나 진실된 약속을 저버리는 주인공의 반성이 조용히 독자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등장하는 사람도 세 명이고 벌어지는 사건도 간출한 이 소설이 짧으면서도 주제가 확실히 드러나서 읽기에 좋았다.
소설을 써 보는 게 어떻겠냐는 주위 사람들의 말이 아직 실력이 안 된다고 거절해 왔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이렇게 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대하소설을 쓰기에는 호흡이 짧아 안되지만~~
이 번에 발간된 갈무리문학회의 동인지를 꾬꼼히 읽어보고 많은 감동과 배움이 있었다. 가까이 사는 시인들의 발걸음을 따라가기에 아직 내 발걸음이 느리지만 늦지 않음을 기대하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