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마주할 용기와 시체 팔이

[보스꼬]

진실을 마주할 용기와 ‘시체 팔이’

  한국사회에서 유행하는 말 중 하나가 소위 ‘시체 팔이’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이 죽었을 때, 평소에 그들에게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그 상황을 이용해서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거나 정의감을 표출하면서 마치 자신은 억울하고 힘없는 사람의 편에서 노력한다는 인상을 주고 그 상황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시체 팔이와 관련된 기사들

  이러한 ‘시체 팔이’와 동일한 경우는 아니지만 유사한 경우의 옛 유학 시절 한 사건이 떠오른다.

  파리 유학 시절 때 겪었던 일이었다. 당시 파리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의 종종 센강에서 시체가 되어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죽음의 원인이 복잡한 한인사회의 구조와 당시 유학생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어떤 한인 범죄조직과 연류되어 있어서, 그 죽음의 전말을 밝히고 범인을 잡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파리 경찰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골치 아픈 일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극단적 선택’ 즉 ‘자살’로 종결짓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날 도저히 자살이라고 추정하기 어려운 한 한인 학생의 죽음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센 강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이 학생은 아름다운 아내와 예쁜 어린 두 딸을 둔 가장이었고, 불문학을 전공하고 있었으며, 한국의 가족 상황도 매우 양호하였던 누구나가 부러울 수밖에 없는 그러한 유학생이었다. 은행 빚도 없고, 건강상의 문제도 없고, 가족 불화도 없고, 학교에서 공부 문제도 전혀 없는, 게다가 곧 있을 박사학위 논문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자살할 이유’가 1도 없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타살로 추정하고 수사가 진행되었으나, 범인은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다. 당시 새로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이 파리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파리 경찰은 어떻게든 김대통령의 방문 이전에 그 사건을 종결짓고 싶어 했다. 그리고 김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파리 주재 한인 대사와의 인터뷰 내용이 프랑스 공영방송에서 있었다. 이런저런 정치적인 담론이 오갔고, 당연히 최근 발생하고 있는 유학생들의 센강 투신 사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있었다. 참으로 답하기 애매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파리 대사가 명백한 실수를 하였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한국인들은 매우 감상적인 측면이 있다. 술 한 잔 마시고 센강의 잔잔한 물결을 보면서 너무나 감상적이 되어서 여러 가지 인생의 문제들을 쉽게 해결하기 위해 강물에 풍덩 뛰어드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에펠탑이 보이는 센강변

  자국의 대사가 ‘자살’이라고 하니, 결국 경찰들도 ‘자살’로 사건을 종결지워 버렸다. 유가족들과 지인들은 이 문제를 좌시하지 않았다. 결국 그 대사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로 좌천되었다고 했다. 아마도 그 대사는 어차피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이고, 대통령이 파리에 도착하기 이전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파리 경찰청과의 모종의 딜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대사는 보다 큰 이익을 위해서 작은 이익을 희생하자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사건의 핵심은 결국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 자기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을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셈이 되었다. 억울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도 너무 고통스러운 일인데, 결국 ‘자살’을 했다는 누명까지 썼으니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처럼 한 개인의 불행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은, 이 말이 진실을 밝히고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한, 오히려 2차 가해가 된다. 그래서 한 불행 앞에서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없다면 그 불행에 대해서 말해서는 안 된다. 그 진실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이고 힘겨운 것이라고 해도, 진실을 마주하는 것만이 불행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최대한 문제해결에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항상 불행한 일들이 발생한다. 사회구조가 왜곡되고 있을 때, 이 구조상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불행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 ‘이태원 사건’ ‘군부대 사건’ ‘젊은 알바생들의 죽음’ ‘교사의 극단 선택’ 등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은 ‘의료사태’ ‘대학의 통폐합’ ‘직장의 구조조정’ ‘지방의 학교 및 지방 사회의 소멸’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발생하는 많은 불행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불행들은 그 원인이 되는 출발점이 한 개인이나 집단 혹은 정치 등이 문제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가 정신적 게으름을 통해 혹은 의도적으로 구조적인 모순을 방치한 까닭에 발생하는 복합적인 문제의 결과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하는 불행들은 그 원인을 그 진실을 제대로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흔히 유튜브 등에서 이러한 불행들을 너무 쉽게 말하고 있다. 진실을 파해치고 문제의 진정할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그것을 말해야 돈을 벌거나 인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쉽게 말하고자 한다.

  이것이 곧 ‘시체 팔이’라는 말이 상징하는 일들이다. 남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시체 팔이’인 것이다. 오늘날 너무 자주 이러한 일들을 목격하게 된다. 정치권에서 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일상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마치 한탕주의처럼, 메뚜기들처럼, 세간의 이목을 끌고, 돈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건 휩쓸고 지나가고, 또다시 세간의 이목을 끌고 돈이 되는 다른 주제가 나타나면 그것을 휩쓸고 지나가고, 이렇게 철학도 이념도 없이 그냥 돈과 유행을 쫓아서 메뚜기들처럼 몰려다니는, 정신이라고조차 할 수도 없는 ‘집단 이성’이 오늘날의 소위 엘리트라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물론 당연히 이러한 흐름에 강한 반대정신을 가진 엘리트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꼭 필요한 격언은 “진정으로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없다면, 결코 남의 불행을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