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베드로 호영
이 베드로는 근본 이천(다른 기록에는 인천 구월로도 나옴) 사람이니, 어려서 부친은 죽고 모친과 누이 (즉 성녀 아가타)와 한가지로 성교를 봉 행하더니,본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하니,그간 겪은 근고(勤苦)는 어찌 다 말하리오? 나이 차차 장성함에 열심이 점점 간절한지라. 남이 일컫기를,
"전후 딴사람이 되 었다.”
하더라.
유(방제 파치피코) 신부가 보시고 그 위인이 충직노실(忠直老實)함을 기리시고,성교회의 일을 돌보게 하시더라. 언어와 동정이 절조가 있고, 매양 집안사람을 훈회하며,여러 교우를 제성 권면하니 모두 탄복하는 이 많더라.
을미 (1835) 정월에 남매가 잡히니라. 피착하기 전 수일에 꿈을 꾸니, 누군가가 함께
“과거 보이는 구경을 가자.”
하기로,가 볼 새,
“누가 과거를 하였다.”
하는데, 기이한 풍류 소리를 들을러니,곁의 사람이 이르되
“네가 과거를 하였다.” 하거늘, 괴이히 여겨 대답하되,
“내가 어찌 과거를 하였단 말이냐?”
그 사람의 말이
"너는 임금께 가까운 신하를 사귀어 과거를 하였다.”
하기로,자기 몸을 본즉 몸에 풍류 소리가 젖었는지라. 인하여 잠을 깨 어 마음에 이상히 여 겨 다른 교우더 러 말한즉,
“아마 치명할 꿈인가……?” 하더니, 수일 만에 잡힌지라.
관가에 이르러 포장 왈,
“너희들이 천주학을 한다는 말이 옳으냐?”
답,
“과연 그러하여이다.”
“배주하고 당을 대라.”
하니,
“천주는 우리들의 대군 대부시라 배반치 못하옴고,당을 대면 입으로 남을 상하게 하는 일이 되나이다.”
하니, 주뢰,주장에 살이 떨어지고 팔이 부러지고 전신을 임의로 쓰지 못하나, 안색이 여상하고 도리를 강명하니 , 포장 왈,
“너, 말로 배주하기가 어렵거든 크게 글자를 하나 써줄 것이니, 점을
찍거나 침을 뱉으면 배주하는 줄로 알고 놓으리라.”
“만만코 못하나이다.”
하니, 또 혹독한 형벌을 하며 왈,
“너 , 만일 아프다는 소리를 하면 배주하는 일로 알리라.”
그 혹형이 오죽하리오마는,참고 견디어 희미한 소리도 내지 아니하 고,고양(芸羊)같이 받는지라. 또 결박하여 공중에 달고 무수 난타하며 법외의 형벌이 혹독함을 어찌 다 기록하리오? 전신이 모두 다 상하고 뼈 가 드러난 곳이 많으나,배주 못할 의리와 당을 못 대는 연유를 명백히 말하며 종내 굴치 아니하니, 밤낮으로 괴로이 조르다가 할 일 없어 이
(移)형조하여 전옥(典楊0으로 나리오니 , 거의 죽을 모양이라. 장처(杖 處)는 농즙이 흐르고,몸을 임의로 움직이지 못하더라. 형관이 결안을 받 을 새, 형문 3차에 중장하고 ‘사학(邪學)’으로 죄안을 정하거늘, ‘천주 정교(正:敎)’ 로 설명하여 반일을 힐난하다가 우격으로 다짐을 받으니라.
4년을 옥에 있어 항상 대재를 지키고 병고를 감수 인내하며 , 순실하고 양선한 표양이 외면에 드러나니,옥졸들이 다 칭찬하고 구수(久囚) 1인 이 귀화하여 영세하니라. 그 누이 아가타와 한가지로 서로 제성 권면하 며 위로하여 “동일 치명하자.”
하더니,기력이 자진하여 병이 들매, 임종 예비를 타당히 하며 왈, "칼 아래 죽기를 원하였더니 막비주명 (莫非主命)이라.” 하고, 재옥 4년,무술(1838) 10월 초 8일에 안연히 선종하니,연이
36세요,때는 천주강생 후 1838년이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