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떠난 푸른빛의 기억이 갇힌 방으로 들어간다 형광등 불에 달궈진 자갈과 모래알들이 바닥에 깔리어 전갈이 지나는 길을 만들고 있다 마른 바람이 눈에 익거나 때로는 낯선 발자국들을 지우는 한낮에는 미세한 먹이사슬들이 잠깐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하얗다 종일 내리쬐는 빛은 벽에 박힌 나무들의 뿌리와 그걸 바라보는 죽은 새들의 밥상과 좁은 틈새를 뚫고 머리를 든 작은 벌레들의 핏줄까지 하얗게 만든다 한번이라도 불빛에 닿은 것들은 제 본래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오후가 저물 때면 변색의 관성은 더욱 강해져 누구도 아침을 기억하지 못한다 방의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나갈 수 없다 아무렇게나 발을 들여 놓았다가 깊은 사막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풍에 갇히어 돌아설 수 없다 여전히 문은 굳게 닫혀 있고 표정이라고는 창백한 빛뿐인 고요한 방이 암흑 속을 빠르게 날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 분명 하루가 지난 거 같은데 눈을 뜨면 다시 그 자리에 와 있고 녹색이 사라진 방으로 계속 나비들이 날아 들어온다
출처: 경남신문(www.knnews.co.kr)
숲을 떠난 푸른빛의 기억이 갇힌 방으로 들어간다 형광등 불에 달궈진 자갈과 모래알들이 바닥에 깔리어 전갈이 지나는 길을 만들고 있다
방은, 아파트는 자갈과 모래알들이 모여 지어집니다. 그 틈새로 전갈이 지나가지요.
푸른 숲, 강을 떠난 나무와 모래와 자갈이 모여져 만들어졌지만, 인간에 의해 변형된 방이 있습니다.
마른 바람이 눈에 익거나 때로는 낯선 발자국들을 지우는 한낮에는 미세한 먹이사슬들이 잠깐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하얗다 종일 내리쬐는 빛은 벽에 박힌 나무들의 뿌리와 그걸 바라보는 죽은 새들의 밥상과 좁은 틈새를 뚫고 머리를 든 작은 벌레들의 핏줄까지 하얗게 만든다
그런 방에도 가끔 바람이 불고 흔적이 드러나지만, 하얀 형광등 불빛에 모든 것들이 하얗게 변하고 죽은 새들과 벌레들조차도 하얗게 변합니다.
한번이라도 불빛에 닿은 것들은 제 본래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오후가 저물 때면 변색의 관성은 더욱 강해져 누구도 아침을 기억하지 못한다
인간의 욕심이 뻗쳐진 곳에는 모든 것들이 변색되고 제 색을 잃어버립니다. 그 방에는 더 이상 본래의 모습들이란 없습니다.
방의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나갈 수 없다 아무렇게나 발을 들여놓았다가 깊은 사막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풍에 갇히어 돌아설 수 없다
인간은 그 방으로 들어가지만 우리가 만든 삭막한 사막 같은 방에 갇혀 있습니다.
여전히 문은 굳게 닫혀 있고 표정이라고는 창백한 빛뿐인 고요한 방이 암흑 속을 빠르게 날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자연 속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우리는 돌아가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창백한 방에 갇힌 숲이, 자갈이, 돌이, 모래가 숨 쉬고자 하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이상하다 분명 하루가 지난 거 같은데 눈을 뜨면 다시 그 자리에 와 있고 녹색이 사라진 방으로 계속 나비들이 날아 들어온다
우리가 온 곳이 어디일까요? 바람이 불고 흙이 있는 자연이지요. 자연에 순응해야 합니다.
데자뷔 현상입니다. 언젠가 본 듯한, 경험한 듯한 일이 일어납니다. 우린 자연에서 왔으니까요.
깜깜한 어둠이라도 시인은 그래서 나비가 계속 날아오는 꿈을 꿉니다.
사실 우리 방을 살펴보면 우린 숲에 살고 있지요. 나무 책장과 의자와 책상과 그리고 책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모두 자연에서 온 것들이지요. 언젠가 누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책이 사라질까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숲에서 왔으니까요?' 숲에서 온 푸른 것들은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환경적 입장에서 해석을 해 보았습니다. 시가 전달하려는 내용이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강력한 권력에 대한 생각을 적었을 수도 있습니다. 전에도 말했듯, 시가 시인을 떠나면 독자의 것이 되지요. 제 감상문도 여길 떠나면 독자들의 몫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심하다고 해요. 감기 조심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