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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자동차 전조등
현대문학 기원 중 하나로 평가할 만한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에게 예술은 '인공미(人工美)'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한 에세이에서 '아름다우면서도 있을 법하지 않은 사물들의 창조'를 얘기할 때, 이는 어느 순간 홀연히 나타난 현대 도시의 낯선 표정들과도 관련이 있었다. 얼마 전 캄캄한 밤길을 운전하다가 저 멀리 반대편 차선에서 다가오는 낯선 불빛을 보았다. 그것은 분명히 자동차 전조등임에 틀림없었지만 마치 인간계에 없는 어떤 존재의 치켜올린 하얀 눈매 같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온 그 '눈매'에는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 있는 듯이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낯선 형상이 공격적인 이미지를 드러내면서도 '미적으로'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스카 와일드가 표현한 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있을 법하지 않은 사물들'에 속한 것이었다.
자동차 'LED(Light Emitting Diodeㆍ발광다이오드) 전조등'에 관한 얘기다. 이제는 웬만한 한국 차에도 붙어 있는 전조등이지만, 여전히 이 전조등 하면 떠오르는 것은 독일 자동차 브랜드 A다. 캄캄한 밤 도로에서도 전조등만으로 이 브랜드를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이 사물의 오리지널리티는 A사가 확보하고 있다.
사실 LED 전조등은 높은 효율성을 지닌 첨단 발광 기술의 산물이다. 하지만 기술력만 있다고 이런 사물이 저절로 출현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자동차라는 물건은 대체로 가장 비싼 개인 소유물에 속한다. 말 그대로 '지켜야 할 것'이 많은 '보수(保守)'적인 물건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동차 디자인에서 종래 감각과 단절된 혁신적 이미지가 출현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이미지에도 '창조적 진화'가 있다면, 철학자 베르그송 말마따나 목숨을 건 '생명의 도약'이 필요하다. 이 도약은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 진정성으로 인해 감동을 자아낸다. 그러나 '시늉'이 아니라 정말 목숨을 거는 도약을 하기란 쉽지 않다. 대체로 우리가 사는 방식이란 다른 내일을 위한 모험보다는 오늘의 안전이 주된 관심사가 되기 때문이다. 고도 기술력을 지닌 글로벌 기업이 우리나라에도 몇 개나 생겼지만, 현대 도시의 표정을 바꾸는 전위적 아름다움들은 그래서 아직도 대부분 국산이 아니라 수입품이다.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