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초범인가?
"재판장님, 이번이 처음이오니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절도범 몰염치가 재판장에게 자비를 호소했다.
"정말 초범인가?" 판사가 확인을 위해 물었다.
"네. 정말 처음입니다." 몰염치가 능청을 떨었다.
"알았다. 2주일 후 판결을 선고하겠다."
웬걸? 그 이튿날 검사는 피고인에 대해 사기죄를 추가로 기소했다.
참고로, 각 죄의 법정형은 다음과 같다. 절도죄는 6년 이하의 징역,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이와 같이 여러 개의 죄에 대해 한 번에 재판을 받을 경우, 형기를
결정, 선고하는 방법은?
① 모든 죄의 법정형을 합산하므로 본건에서는 징역 16년까지
할 수 있다.
② 가장 무거운 사기죄에 2분의 1까지 가중하므로 15년까지 할 수 있다.
③ 가장 무거운 죄와 가벼운 죄를 배재하고 중간의 죄를 기준으로 하므로
징역 6년까지 할 수 있다.
정답
② 가장 무거운 사기죄에 2분의 1까지 가중하므로 15년까지 할 수 있다.
설명
수사나 재판의 실무를 살펴보면 동일인의 여러 개의 범죄는 모두 동시에
기소하고, 동시에 판결하게 된다. 이것이 피고인에게도 유리하고, 재판에
있어서도 편리하다. 이처럼 동일인이 범한 두 개 이상의 범죄를 '경합범(
=실체적 경합범)이라고 한다. 경합범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수죄다.
가령A라는 피고인이 절도죄, 강도죄, 폭행죄를 범했다면 이 세 개의 범죄는
경합범이 된다. 그렇다면 법관은 두 개 이상의 범죄를 판결에서 어떻게 처리
하는가? 다시 말하면 두 개 이상의 범죄를 재판함에 있어서 형(刑)을 어떻게
정하는가?
우선 이 형(刑)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형법에서 각 죄마다 정해놓은
법정형(法定刑)이다. 가령 형법 제250조의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둘째, 법정형이 두 개 이상인 경우, 법관은 반드시 먼저 그중 하나를 선택해
야만 한다. 가령 살인죄의 피고인을 동시에 징역형에도 처하고 사형에도
처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법관은 사형이나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 징역형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다음 선택된 형을 놓고 법률이 정한 가중이나
감경이라는 작업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살인 피고인에 대해 유기 징역형을
선택했다고 할 때 피고인이 미수범이었다면 감경할 수 있다. 감경할 때에는
그 선택한 형의 2분의 1까지 할 수 있다. 이처럼 법관이 여러 개의 법정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후 법률이 정한 가중이나 감경의 작업을 마친 경우의 형을
처단형이라고 한다.
셋째, 법관은 처단형에서 다시 구체적으로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선고할 형을
정한다. 예를 들면 살인 피고인에게 법정형에서 유기 징역형을 선택하고, 다시
참작할 정상(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않거나, 피고인이 깊이 진심으로 뉘우치거나,
전과가 없는 초범인 때 이러한 모든 사정들)이 있어서 이를 참작한 결과 피고인에게
10년의 징역형을 최종적으로 정했다면 이'10년의 징역형'이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부과되는 형이 된다. 이것을 선고형이라고 한다.
이처럼 법관은 법정형의 범위 내에서 선고형을 정할 수 있는 형벌의 선언자인 것이다.
경합범의 형을 정한다는 것은 바로 처단형을 정하라는 의미다. 경합범을 동시에
재판할 경우 그 처단형은 다음과 같이 정해진다.
첫째, 경합범 중 가장 중한 죄의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금고)'일 때에는 가장
중한 죄의 법정형이 처단형이 된다. (예를 들면 살인죄와 절도죄의 경합범을 동시에
재판할 경우, 살인죄의 법정형에 사형이 있으므로 사형이 처단형이 된다. 물론 이때에도
선고형은 달라질 수 있다.)
둘째, 경합범의 각 죄의 법정형이 사형, 무기가 아니고 같은 종류의 형이 규정된 경우에는
가장 중한 죄의 법정형의 장기나, 다액에 그 2분의 1까지 가중한다.(예를 들면 사기죄와
절도죄의 경합범을 동시에 재판할 경우에 사기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유기 징역형이고
절도죄는 6년 이하의 징역형이므로 법관은 중한 죄인 사기죄의 징역형의 장기인 10년에
2분의 1까지, 즉 5년까지 일단 가중하게 된다.) 다만 징역형을 가중할 경우에도 가중된
유기 징역형에 50년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즉 최고 50년까지만 가중할 수 있다는 제한
이 있다.(형법 제42조)
셋째, 경합범의 각 죄에 정한 법정형이 무기 징역이나 무기 금고 이외의 서로 다른
종류의 법정형이면 이때는 병과한다. 즉 서로 다른 법정형을 선택해서 함께 처단형을
정할 수 있다.(예를 들면 간통죄와 도박죄의 경합범을 재판할 경우에 간통죄의 법정형은
2년 이하의 징역형이고, 도박죄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므로 법관은 간통죄에
대해 징역 1년의 형과, 도박죄에 대하여 300만 원의 벌금형으로 처단형을 동시에
정할 수 있다.)
피고인에게 최종적으로 내려지는 선고형은 이처럼 법률이 미리 정해놓은 법정형의 범위
내에서 법관이 그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형의 가중이나 감경의 작업을 거친 처단형에서,
다시 법관이 정상을 참작하는 복잡한 과정을 걸쳐 형성되는 것이다.
결론
동일한 피고인이 범한 절도죄, 사기죄는 판결이 확정되지 아니한 경합범이다. 이를 동시에
재판하는 경우, 각 죄의 법정형은 같은 종류의 징역형이므로 법관의 처단형은 사기죄의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 징역 15년까지이다. 단, 법관은 이때 처단형을 그대로
선고할 수도 있고, 정상을 참작하여 처단형을 감경하거나 또는 가중하여 다시 선고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