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으로 도배한 화려한 천수각, 오사카성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지은 오사카성(城)은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로 불린 절터에 1583년부터 축성하기 시작, 본채는 1년 6개월 만에 완공했습니다. 일본에서 성 안에 천수각(天守閣)을 세운 것은 오다 노부나가의 본거지였던 아즈치(安土)성이 처음이었습니다. 토요토미는 오사카성에 두 번째 천수각을 지으며 아즈치성을 능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5층 누각 전체를 금과 은으로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졸부가 죽으면 일장춘몽도 사라지는 법, 조선 침략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토요토미가 죽은 뒤 1614년 겨울과 이듬해 여름에 벌어진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막판 대공세로 오사카성은 폐허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도쿠가와 막부의 직할령으로 바뀌었던 오사카성은 3대 쇼군(將軍) 도쿠가와 이에미쓰(徳川家光 1604~1651) 시절 각 지역 영주들에게 공사를 할당하여 복원했습니다. 이때 외부에서 보기에는 5층(내부는 6층)인 높이 58.5m의 천수각도 다시 세워졌습니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쌓은 성 외곽의 석축은 영주들의 충성심 경쟁으로 각 지역에서 잘빠진 돌만 골라 옮겨온 것이었습니다.
오사카성은 세 번이나 벼락을 맞았습니다. 1931년이 되자 철근 콘크리트로 완공한 천수각을 중심으로 전체 면적 약 106㏊의 오사카성 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현재 천수각은 8층의 전망대를 빼고는 마치 토요토미 히데요시 역사박물관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거듭된 파괴와 복원공사 탓으로 성채의 원형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매화정원에서 바라본 오사카성
오사카성 매화정원
금으로 치장한 오사카성
오사카성 천수각 용마루 양끝에 다는 장식기와 사치가와라(용머리에 물고기 몸을 한 상상의 동물)
천수각(天守閣)의 천수라는 이름은 전주(殿主) 전수(殿守)나 종교적인 천주(天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유럽식 성에 비하면 아성(牙城, keep, donjon)에 해당한다.
용마루의 사치가와라와 후세토라(먹이를 노리는 자세의 호랑이)
오사카성(大阪城)은 나고야 성(名古屋城), 구마모토성(熊本城)과 함께 일본의 3대성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