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
춤추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나는 몸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내면 깊숙한 곳에는 춤추고 싶은 본능이 숨어 있다. 춤은 육체로 쓰는 시다. 언어를 정제해서 배열해야만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는, 인간의 욱체로 쓰는 춤이다.
지난 2009년세상을 떠난 독일 출신의 세계적 무용가이며 안무가인 피나 바우쉬가, 죽기 얼마전 암 투병을 할 때 촬영된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독일어 원제 TANZTRAUME]는, 춤이라고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평범한 남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나의 무용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타리이다.
피나 바우쉬는, 1940년 독일에서 출생하여 현대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탄츠테아터라는 장르를 만들어 세계 현대무용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다. 그녀에게는 현대 무용의 거장이라는 칭호가 뒤따라 다니지만, 피나 바우쉬는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며 낯가림이 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를 통해 우리는 피나 바우쉬가 말년에 어린 학생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국내에도 번역된 요헨 슈미트 저 [피나 바우쉬-두려움에 맞선 춤사위]라는 책에도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열정적이면서도 꼼꼼하고 세심하면서도 낯선 사람들 앞에 자신을 쉽게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수줍은 성격의 피나 바우쉬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피나 바우쉬는 독일의 소도시인 부퍼탈에 정착해서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이끌고 기존의 무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혁신적이며 도전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는 독일 부퍼탈 인근의 12개 학교에서 온 46명의 학생들이 10개월동안 피나 바우쉬의 실험적 작품 중 하나인 [콘탁트호프]를 배운 후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콘탁트호프 KONTAKTHOF]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을 뜻하는데, 독일 속어로는 [매음굴] 즉 사창가를 의미하기도 한다. 피나 바우쉬는 1978년 12월 [콘탁트호프]를 처음 공연한 이후, 무용관 연극, 음악과 언어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는 이 작품을 자주 공연했었는데 특히 일반인들을 캐스팅해서 이 작품을 공연하는 모험을 하기도 했었다.
2000년에 피나 바우쉬는, 65세 이상의 노인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댄서들을 데리고 [콘탁트호프]를 공연했으며 이 공연은 수많은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와 언론의 관심을 모으며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는 2000년 아마추어 댄싱팀에 이어서, 이번에는 젊은 청소년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댄싱팀으로 다시 [콘탁트호프] 공연에 도전하는 것을 안네 린셀과 라이너 호프만 감독의 다큐멘타리팀이 촬영한 것이다.
[콘탁트호프]는 남녀가 처음 만나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2000년도에 공연된 65세 이상의 노인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팀에 비해,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에 나오는 젊은 청소년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팀이 조금 더 예민하고 어색하며 까다로울 수 있다.
낯선 남녀가 조금씩 서로의 장벽을 허물고 친밀감을 표시하며 사랑과 두려움, 그리움과 외로움, 좌절과 공포 그리고 때로는 공격성이나 잔인함까지도 몸으로 드러내는 난이도 높은 이 작품을, 젊은 청소년들은 10개월동안 피나 바우쉬를 중심으로 한 부퍼탈 탄츠테아터 안무가들의 지도를 받으며 소름끼치게 표현해낸다. 아이들 중에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전쟁 중에서 인종학살을 경험한 소녀도 있고, 성장하면서 한 번도 타인을 사랑한다고 느껴 보지 못한 소녀도 있다. 서로에게 무관심해 보이는 아이들이 어느 순간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하나싹 열고 낯선 또 하나의 자신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영화 후반부에 배치되어 있는 실제 [콘탁트호프] 공연 장면이다. 전문적 훈련을 받지 못한 청소년들이지만 10개월동안 그들은 너무나 큰 변화를 이루어낸다. 키도 각각 다르고 생김새도, 피부 색깔도 다르지만, 움직임을 통해 육체의 언어로 어떤 의미를 만들어가는 순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미 피나 바우쉬의 공연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 도입부와 엔딩 시퀀스에 소개되면서 전세계 영화팬들을 매료시킨 바 있다. 특히 [그녀에게]에서 피나 바우쉬는 직접 출연하여 [카페 뮐러]와 [마주르카 포고] 등 자신의 대표작 중 몇몇 장면을 보여준다.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에서는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처럼 피나 바우쉬가 직접 춤을 추는 장면은 볼 수 없지만, 그녀가 어린 학생들과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며 지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척 기대돼요. 믿고 있어요. 잘못될 일은 없어요. 아이들은 최선을 다했고, 그들을 사랑해요. 실수해도 괜찮아요. 그냥 대견할 뿐이예요."
피나 바우쉬는 살아 있을 때 인터뷰를 통해서 어린 청소년들과 함께 [콘탁트호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피나 바우쉬는 1979년 [봄의 제전] 2000년 [카네이션] 2003년 항구 도시 리스본을 소재로 한 [마주르카 포고] 등을 한국에서 직접 공연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LG아트센타의초청으로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으며 2005년에는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영화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는 제 61회 베를린 영화제 공식 초청되었으며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이 영화의 감독에는 두 사람 이름이 공동으로 올라가 있다. 라이너 호프만은 촬영감독이고 실제 기획 및 연출을 맡은 사람은 안나 린셀이다. 그녀는 피나 바우쉬 무용단이 있는 부퍼탈에 살고 있으며 예술 문학비평가로 활동하면서 독일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