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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고향 안동 원문보기 글쓴이: 옥동새댁
댕기 유형 |
안동 댕기의 개요 및 특징 |
도투락댕기 |
‘도투락댕기’는 어린이용으로 나중에 커서 땋는 ‘큰 댕기’와 같은 형의 댕기를 작게 만들어 끈을 달아 머리가 채 자라지 않은 어린이의 뒤통수에 바짝 달아맨 댕기다. |
말뚝 댕기 |
‘말뚝댕기’는 ‘도투락댕기’ 다음으로 땋는 어린이용 댕기로 ‘제비부리댕기’를 드리기에는 이른 때에 사용한 댕기다. 긴 직사각형의 댕기를 반으로 접어 윗부분에 끈을 달아 뒤통수에 달아맨 ‘댕기머리’다. |
제비부리댕기 |
‘제비부리댕기’는 처녀 총각의 땋은 머리에 드리우던 댕기다. 처녀는 빨강, 총각은 검정이며, 크기는 연령에 따라 다르다. 처녀댕기에는 금박을 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혼인 전까지 ‘도투락댕기’-‘말뚝댕기’-‘제비부리댕기’ 순으로 댕기 모양을 바꾸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앞 댕기 |
‘앞 댕기’는 ‘큰 댕기’와 짝을 이루어 큰비녀의 양쪽 여유분에 적당한 길이로 맞추어 감아 양어깨위에 드리운 댕기머리다. 나비는 5cm내외 이며, 길이는 긴 것은 148cm인 것도 있다. 금박을 했고 양쪽 끝에는 진주, 산호주장식을 했다. |
큰 댕기 |
‘큰 댕기’는 궁중이나 반가에서 신부가 예장(禮裝)할 때 쓰던 댕기로 그냥 ‘도투락댕기’ 또는 주렴(朱簾)이라고도 한다. 금박을 화려하게 하거나 비단색실로 장식하고 둘레를 칠복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것 등 다양한 모양을 냈다. |
고이댕기 |
‘고이댕기’는 서북지방 댕기다. 양쪽댕기 끝을 입체적으로 둥글게 수놓은 독특한 것이었다. 미국의 위스콘신주 호청(윈네바고) 인디언 여자의 댕기는 우리의 전통 '큰댕기' 또는 ‘고이댕기’와 비슷하다. |
쪽 댕기 |
‘쪽댕기’라는 것은 쪽을 예쁘게 찌기 위해 사용하던 댕기로 나이든 사람은 자주, 젊은이는 빨강, 과부는 검정, 상주는 흰색이었다. |
매개댕기 |
‘매개댕기’는 왕비·내명부·외명부들이 큰머리, ‘어여머리’를 할 때 사용하던 ‘속댕기’로 너비 2cm, 길이 30cm 이상 되게 자줏빛 명주에 솜을 통통하게 넣어 긴 끈처럼 만든 댕기다. |
안동여인의 '고이댕기'
그 밖에 궁중상궁(宮中尙宮)들이 치장하던 댕기로서 ‘네 가닥 댕기’와 ‘새앙머리 댕기’가 있다. ‘네 가닥댕기’란 세 가닥처럼 넙적하게 땋는 것이 아니라 지밀상궁(至密尙宮)이 머리를 두 가닥으로 땋아서 네 가닥으로 매는 댕기이며, ‘새앙머리댕기’는 상궁(尙宮)의 새앙머리에 두 가닥으로 매는 댕기다.
안동 댕기에는 또 그 재료에 있어 ‘궁초댕기’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서의 ‘궁초(宮綃)’란 엷고 둥근 무늬가 있는 댕깃감으로 쓰이는 비단인데, ‘궁초댕기’는 댕기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치며 격(格)이 높은 사람이 썼다. ‘궁초댕기’와 관련한 옛 노래 한가락을 소개한다.
이 노래는 ‘궁초댕기’에 얽힌 사연을 회상(回想)하며 부르는 '신고산타령'과 함께 함경도(咸鏡道) 민요의 쌍벽을 이루는 노래이다. 볶는 타령장단에 따라 부르며, 후렴(後斂)이 본 가사보다 긴 것이 특징이다.
저고리 고름 메는 안동여인
안동에서는 어릴 때 재학중인 여자애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미혼(未婚) 여성들이 ‘댕기머리’ 차림이었다. 기껏해야 초등학교(初等學校)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던 당시의 여학생(女學生)들도 졸업과 동시 단발머리를 길러 ‘댕기머리’로 바꾸었다. 당시의 시골에는 미장원(美粧院)도 ‘파머’머리도 없었기 때문에 몇 해 후에 시집을 가려면 마땅히 비녀를 찔 수 있는 ‘댕기머리’를 길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시절 유행하던 안동의 댕기
안동의 자주 댕기
머리숱이 많은 처녀(處女)들의 경우 삼단 같은 머리채를 굵직하게 땋아 붉은 댕기를 달아 왼쪽 어께에 걸쳐 앙가슴위로 척 늘어뜨리면 하늘의 선녀가 따로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의 처녀총각들의 ‘몰래 데이트’를 훔쳐보면 하나같이 총각(總角)들이 상대 여성의 다른 부위(部位)보다는 ‘댕기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안동에서는 이런 예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당시의 경우 동네 혼인(婚姻)은 거의 금기시(禁忌視) 하던 때라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고는 한 동네에서의 결혼이 사실상 불가능하던 때였다. 그리고 '무슨 일'을 저지를 경우 대개의 경우 여성 쪽이 통치마를 뒤집어쓰고 저수지(貯水池)에 뛰어 들거나, 목을 매는 것으로 결판이 나기도 했었다.
그시절 안동여인 머리 따은 모습
때문에 데이트를 하든, 애무(愛撫)를 하든 '마지노선'은 결코 넘지 않았으며, '키스' 역시 거의 금기시 했다. 애무를 해도 기껏 손을 맞잡고 만지작거리거나 '댕기머리'를 쓰다듬는 정도였다. 그만큼 무책임한 행위는 삼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가 거주할 당시까지는 한 동네에서의 연애는 결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안동의 그 시절 연애에서 여성의 '댕기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는 사랑하는 자기 여성에게 대한 애무(愛撫)라기보다는 자신의 손으로 얹어 비녀를 쪽찌어 주고, 그 ‘댕기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고 아끼겠다는 다짐 같은 의식(儀式)이었다.
왼쪽 젖가슴 위로 돌려 걸친 안동 댕기머리
당시의 안동에서 가장 ‘댕기머리’가 길고 윤기 나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이름을 아명을 '김순옥', 호적명을 ‘김정순’이라고 하는데, 처녀때까지는 괘릉리 뒷마을인 신계리(薪溪里) ‘상섶’마을에서 자랐고, 1960년대초 연안리(淵安里)로 출가하여 지금도 연안리 동해남부선 철길 건널목 옆집에 살고 있다. 물론 지금은 그냥 할머니일 뿐이다. 이 누나는 당시 무슨 경염행사(競艶行事)에서 ‘댕기머리’부문 장원(壯元)을 한 일이 있을 정도로 삼단 같은 머리채를 거의 키만큼 치렁치렁 땋고 다녀 수많은 총각들의 마음을 설레게도 했었다.
안동에서 처녀들의 ‘댕기머리’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날은 1년에 두 번씩 있는데, 한번은 정월 대보름날이고, 두 번째는 오월 단오절(端午節) 날이다. 그중에서도 오월 단오절은 그 백미(白眉)에 속한다. 동네 총각들과 장정(壯丁)들이 자신들의 누나와 누이, 그리고 형수(兄嫂)와 제수를 위해 동구(洞口) 밖 느티나무나 소나무에 그네를 매어주면 온 동네 아낙들과 처녀들이 모여 들기 시작한다.
내고향의 뒷산 소나무밭(‘능갓’이라고 함) 북쪽 끝 낭떠러지에 있던 큰 소나무(우리들은 이를 ‘낙락장송’이라고 불렀다) 가지에 해마다 그네를 매어 동네 아낙들이 뛰도록 하였다. 절벽위에 있는 장송(長松) 가지에 맨 그네라 수직에서 30˚정도 궤(軌)를 그려도 개울바닥이 까맣게 내려다보여 심장(心腸)이 약한 아낙들이나 2-3개월째의 임신부(姙娠婦)들은 물론 '간뎅이'가 작은 사내들은 감히 그네 줄을 잡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단오절 안동 아낙들
어쨌든 그네터에는 창포(菖蒲)물에 머리를 감고 동백기름을 곱게 빗은 쪽진 머리의 동네 아낙네들이 장독대 옆에 키워둔 향기(香氣) 짙은 창포를 머리에 꽂고 모여들고, 빨간 ‘댕기머리’를 치렁치렁 땋은 동네 처녀들은 형형색색 물색 치마를 나부끼며 다투어 모여든다. 그야말로 그곳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된다.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쑥이나 산채(山菜)를 짓이겨 떡을 해 먹었고, 더위가 시작된다는 이날에는 부채 선물도 받는다. 망중한(忙中閑)의 한 때에 찾아온 단오절(端午節)에는 동네마다 풍물(風物)소리와 씨름이 행해졌지만,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아낙네들의 그네 뛰는 모습이었다.
결혼하면 이렇게 비녀를 찌른다.
곱게 간직한 한복(韓服)을 선보이는 날, 창포향기(菖蒲香氣)로 치장을 곱게 한 아낙네들이 하늘높이 그네를 뛰면, 새하얀 속치마가 바람결에 흩날렸고, 저고리 앞섶 속으로 동그스름한 ‘흰박’이 보일 듯 말듯 숨바꼭질을 한다. 이 모습이 선녀(仙女)가 아니라면 무엇을 선녀라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배꼽 티’나 거무죽죽하고 쭈그러진 배꼽을 무슨 치장이라도 되는 양 천박(淺薄)하게 들어 내놓고 돌아 다니는 따위와는 원초적(原初的)으로 비교가 안된다. 유행이든 ‘나발’이든 심미적(審美的) 차원을 너무나 달리 하기 때문이다.
결혼한 아낙은 머리를 올린다.
‘붉은 댕기’ 길게 늘여 허공(虛空)에 붓글씨라도 휘갈기듯 출렁이던 ‘분례’ 누나의 삼단 같던 댕기머리, ‘금박댕기’ 곱게 묶어 유난히 예뻐 보였던 아랫집 새댁의 모습을 넋을 잃고 올려다보던 동네의 장정(壯丁)들도 며칠 전부터 정성들여 그네 만든 보람을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꽃망울 댕기
안동에서는 밤늦은 시간까지 느티나무 아래에는 처녀총각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져 보름달은 아니지만, 밝은 달빛이 고왔던 기억이 새롭다. 처녀가 밤꽃 향기를 짐작하면 '숫처녀'가 아니란 말이 있기도 했지만, 단오(端午)날은 늦은 밤까지 처녀들의 외출(外出)이 묵인되기도 했었다. 이런저런 그 시절의 단오날은 애틋한 감정(感情)으로 설레는 날이었다. 이제는 일정한 지역에서 전해오는 단오절(端午節) 행사 소식만 접하게 될 뿐 아무것도 하는 것도, 보이는 것도 없다.
느티나무 아래 처녀 총각
(영화 ‘뽕’에서 배고픈 동생들을 위해 남의 집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를
훔치다가 들킨 댕기머리 처녀가 자신의 몸으로 죄값을 치르기 전의 모습이다)
안동의 정월대보름 ‘널뛰기’도 이젠 옛 풍경(風景)이 되고 말았다. 그 옛날 그네 터가 있던 마을에는 아낙네들은커녕 여자애들조차 종적을 감추어버렸기 때문이다. ‘댕기머리’ 나부끼며 새하얀 속치마를 펄럭이며 널을 뛰던 그 시절 아낙네들과 큰 애기들은 그 ‘댕기머리’가 백발(白髮)이 되어 지금도 더러 살고는 있지만, 땅 한 평에 100만원을 넘어선 지금의 시골에서는 널뛰기 장소조차 구하기 힘든 세월이 되어버렸다.
널뛰는 처녀들
고향의 널뛰는 여성들
옛적 안동은 남자들도 총각 머리를 땋았다. 그리고 지게 멜빵도 짚으로 머리 땋듯이 땋았다. 우리들의 고향에서는 이를 '미끈'이라고 했다. 지게 멜빵을 ‘미끈’이라고 한 것은 짚은 쌀이나 벼를 '미(米)'로 표현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미(米)의 짚으로 만든 것이라서 ‘미끈’이라고 했다는 것인데 확실한 고증(考證)은 없다.
그시절 고향의 처녀
그러나 지게의 멜빵을 ‘미끈’이라고 지칭한데는 심오한 심미적 의미가 숨겨져 있다. 우선 ‘지게’라는 말은 본래는 '지개'였다. 그리고 자연현상의 하나인 ‘무지개’는 ‘지개’에서 파생된 말이다. ‘무지개’는 ‘안개(霧)로 만든 지게’라는 것으로 이때의 ‘무지개’는 지게 위에 얹는 아치형태의 ‘바지게’ 모양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지게의 모양에서 위쪽의 아치형태인 ‘바지게’가 ‘무지개’처럼 벌어져 있다면 그 아래에 ‘미끈’은 무엇일까.
'댕기머리'와 '바지게'와 '미끈'
(영화 ‘뽕 9탄’의 스틸에 나오는 댕기머리 모습. 짚으로 땋은
지게의 ‘미끈’과 댕기머리는 같은 '땋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무지개’와 색동저고리를 상징(象徵)하는 ‘바지게’ 아래로 양쪽으로 늘어트려 땋은 ‘미끈’은 한 쌍의 남녀를 상징하는 쌍갈래 ‘댕기머리’로 해석되고 있다. 기능적(機能的)으로는 새끼줄보다 땋은 ‘미끈’이 넓어 어깨가 덜 결리도록 되어 있지만, 미학적(美學的)으로의 ‘지게’는 하나의 ‘색동(무지개) 저고리’ 아래 두 갈래의 땋은 머리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지게’는 총각의 경우 그것을 지고 가는 자신과 자신이 그려보는 처녀의 모습 그 자체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길게 머리를 땋고 '댕기'를 달아야 제격인데, 짧은 생머리에 메단 것이라 전혀 볼품이 없다)
안동의 전통 ‘댕기머리’의 의미를 다른 측면에서 다시 조명(照明)해 본다. ‘댕기머리’는 우선 세 가닥의 머리 결을 서로 얹어 땋은 끝에 붉은 헝겊으로 묶는다. 그리고 붉은 댕기는 검은 밤하늘에 해가 돋는 것을 상징(象徵)하고,
댕기에 금박(金箔)을 했거나 빛나는 보석(寶石)을 달았던 것은
검은 하늘의 별을 의미했다고 할 수 있다.
안동의 댕기는 옷고름과 대님, 그리고 남자의 상투 매는 것과 함께 입체적(立體的)으로 이해해야 한다. 바지 끝을 접어 묶는, 즉 대님과 그 위쪽 허리춤의 띠를 매는 것은 바지의 세 가닥의 끝을 각각 묶는 일종의 ‘세 가닥 바지’를 각각 매는 ‘댕기’와 같은 것이다.
안동 고향사람들이 ‘댕기머리’를 땋아 늘어뜨리는 것은 총각과 처녀시절을 의미한다. 그리고 남자가 장가를 갈 때 '댕기풀이'를 하는 것은 그 댕기를 풀어서 상투를 쪼아 묶기 위한 의식(儀式)과도 같은 것이었다. 여기에서 잠시 대중가요 ‘진도아리랑’ 가사를 음미해 본후 '댕기풀이'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내고향님들께서도 잘 아시는 대로 ‘댕기풀이’란 관례(冠禮 ; 성년식 ; 아이가 어른이 되는 예식으로 남자는 '갓'을 쓰고 여자는 '쪽'을 찌는데, 열대여섯 살에서 스무 살에 행하였음)나 혼인을 하고 나서 동무들에게 한 턱 내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자가 관례를 치르면 그 동안 땋아서 늘어뜨리고 다니던 머리를 틀어서 상투를 올리게 되고, 혼인(婚姻)을 하면 마찬가지로 여자의 머리를 올려 주게 된다. 이렇게 되면 총각, 처녀가 모두 어른이 되는데, 이 때 땋은 머리를 묶고 있던 댕기를 풀게 된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안동에서는 자신과 신부(新婦)의 댕기를 푼 신랑이 친구들에게 한 턱 내는 일을 ‘댕기풀이’라고 하는데, ‘댕기’라고는 구경도 하지 못한 요즘 세대들은 신랑(新郞)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 신부 양쪽 다 친구들에게 한 턱뿐만 아니라 2차 3차 턱까지 치르고 있다. 그나마 그것도 진정한 ‘댕기풀이’의 의미(意味) 자체를 모르는 그냥 ‘술 퍼마시기’에 불과하다.
연보라치마 입고 문턱넘을 때도 사뿐히
‘댕기풀이’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결혼 후 10년 안에 절반이나 헤어지는 지금의 세태는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과도한 '댕기풀이'로 쓰린 아랫배를 움켜쥐고 남태평양과 동남아로 신혼여행을 떠난 커플 중에는 귀가길에 제각기 자기 집으로 가버리는 커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