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으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단어는 '부대'다.
줄줄이 이어지는 군부대의 폐쇄성과 옛 '삼팔선'(북위 38도) 북쪽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화천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만들어 왔다. 북한강 상류가 휘감고 도는 이 '물의 도시'는 지난 15일 서울춘천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딱 30분만큼 가까워졌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이용해 화천으로 갈 경우 선택은 두 가지다. 시간은 비슷비슷하다.
고속도로 끝 춘천분기점까지 가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46번 국도 춘천 방향으로 가다 화천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첫 번째 방법이다.
거리는 전과 비슷하지만 시속 100㎞로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 두 개를 지나 국도로 갈아타기 때문에 시간은 대폭 준다.
강일나들목에서 43㎞ 정도에 위치한 강촌나들목으로 나가 북으로 향하는 5번 국도로 갈아탈 경우 거리는 101㎞. 시간은 2시간 정도로 비슷하지만 거리는 15㎞ 정도 준다.
취향에 따라 골라가면 되는데, 강촌나들목을 이용하면 연료 소비가 줄어든다.
고속도로 개통을 앞둔 9일 찾은 화천은 맑고 조용했다.
춘천에서 화천으로 가는 길 오른편엔 내내 물길이 따라왔다.
북한강, 파로호, 평화의 댐, 만산동 계곡, 용담계곡….
군청에서 받은 관광지도를 펼쳤더니 사방팔방이 물이다.
오죽하면 군 이름이 '빛나는 내'란 뜻의 '화천(華川)'일까.
잔잔한 호수와 강 주위를 서성이는 구름은 깊고 진지해 보였다.
'동국여지승람'에 고려 말·조선 초 학자 이지직(李之直)이 적은 "화천은 구름이 가까워서 옷이 젖을 정도"라는 묘사가 떠올랐다.
"화천에서 평화의 댐으로 가는 아흔아홉 구비 길목 해산('해 뜨는 산'이란 뜻이다)을 이 고장 사람들은 신산으로 숭배한다…반세기 동안 인적이 없어 곤충류와 조류가 풍성하며 계곡엔 열목어와 수달이 놀고 산엔 이따금 호랑이가 출몰한다고 언론에 보도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화천군청이 있는 화천읍에서 460번 지방도를 따라 평화의 댐으로 향하는 고개 중턱 해산 전망대에서 만난 표지의 '호랑이'란 단어에 시선이 콕 박혔다.
북한과 가깝다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통행이 금지되는 산길이 많고, 그래서 깊은 '원시'를 아직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평화의 댐'을 향해 고도(高度)가 높아질수록 두꺼운 붓을 힘주어 눌러 느릿느릿 그린 듯한 산은 겹겹이 두꺼워졌다.
북으로 향하며 비무장지대를 성큼성큼 넘어 금강산으로 이어질 재안산 수리봉 백암산 등 산맥의 줄기는 기운 세 보였다.
▲ 강원도 화천 파로호 낚시터. /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화천군청에서 지방도를 따라 약 32㎞를 가면,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평화의 댐'에 도착한다.
댐 바로 옆에 위치한 물문화관(033-480-1532·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321-4·http://pyeonghwa.kwater.or.kr)의 한 자료에는
'한때는 애물단지, 이제는 보물단지'라고 표현해놨다.
1980년대 초 학교에서 '평화의 댐 성금 모으기'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30대, 40대들은 이 댐의 탄생에 얽힌 오싹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금강산에 커다란 댐('임남댐'. 당시에는 '금강산댐'으로 불렸다)을 만들어 유사시 이를 터뜨리면 63빌딩이 3분의 2나 물에 잠기므로 이를 막기 위해 그 아래 더 커다란 댐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로 정부는 '평화의 댐'에 1987년 착공한다.
북한강 상류에 넘어진 삼각기둥 모양으로 콘크리트벽을 세워 만든 댐은 다행히 20년 넘게 애초의 목적을 수행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지금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라는 관광지로서의 새 임무를 수행 중이다.
해산을 오르며 터널 세 개를 통과한 차는 길이 601m에 달하는 댐 위를 달리게 된다.
댐 한가운데 설치된 작은 전망대에 서면 한쪽으로 낡은 철교(鐵橋)와 깊디깊은 진초록 물이, 반대쪽으론 빠른 물살이 마을을 휘감아 돌고 있는 '비수구미'(飛首龜尾·화천군청 관광정책과 김세훈 과장은 "이름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지만 봉황의 머리나 거북이의 꼬리를 닮았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했다)가 내려다보인다.
'평화의 댐 저수량 26억3000만㎥·임남댐 저수량 26억2000만㎥'이라는 표지가 '금강산댐보다 더 큰 댐'이라던 이 댐의 거대한 사이즈를 드러낸다.
베이징올림픽 수영장 약 105만2000개가 들어갈 크기의 콘크리트 조형물은 댐이라기보단 끊어진 한반도를 상징하는 설치 예술품처럼 고고한 자태다.
'평화의 댐'에서 '비수구미'라는 이정표를 따라 올라온 길과는 다른 좁고 울퉁불퉁한 굽잇길을 10여분 내려가 산기슭에 닿았다.
비수구미는 주변에 물이 차오르면 차로 닿을 수가 없어서 마을 주민에게 미리 전화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깊디깊은 산간 마을이다.
'평화의 댐'을 둘러싸고 출렁이는 산들이 호수처럼 맑은 하늘과 어우러진 싱싱한 '날풍경', 호랑이가 하품하며 어슬렁거린들 전혀 놀라울 것 없어 보였다.
▲ 강원도 화천 붕어섬유원지. /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화천 그 밖에 여행거리
'평화의 댐' 부근 세계 평화의 종은 세계 각국 분쟁지역에서 수집한 탄피를 모아 2008년 10월 완성한 거대한 금속 종이다.
1만관(37.5t) 규모의 종 중 날개 모양으로 된 1관(3.75㎏)을 따로 분리해 두었는데 통일되는 날 본체와 합칠 예정이라고 한다.
종을 쳐볼 순 없고 종 앞 버튼을 누르면 녹음된 종소리를 들려준다.
1944년 화천댐 건설로 생긴 파로호는 호수 주변에 난 어느 길을 달려도 아름다운 창 밖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만만한 드라이브 코스를 선물한다.
곳곳의 낚시터에선 쏘가리, 잉어 등 민물고기가 잡힌다.
호수 서쪽 파로호 안보전시관(033-440-2563·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215―6·매주 월, 화요일 휴관)은 한국전쟁에 관한 자료와 모형을 전시한다.
'추석은 왔건마는 고향은 멀고 멀어' '유엔 쪽으로 넘어오라' '집안에 전염병이 있다고 하고 팡래하라(돌아오라)' 같은 전쟁 당시 전단지 속 선전 문구들이 오랜 비극의 상처를 드러낸다.
전시관 옆 파로호 전망대엔 2층짜리 정자와 예쁜 두 개의 벤치가 있어 시원한 물 바람 즐기며 호수를 내려다보기 제격이다.
화천군청 남서쪽 붕어섬에선 8월 1~16일 물의나라 화천 쪽배 캠프가, 사내면 사창리 일대에선 8월 7~9일 물의나라 화천 토마토축제가 열린다.
화천군청 관광정책과 033-440-2544~6 http://tour.ihc.go.kr
3시간 7분, 점심 때 춘천 가서 막국수 먹고 오는 시간
“요즘 음식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점심 때 춘천에서 막국수 먹을까?’라는 말을 농담처럼 해요.”
레스토랑가이드 ‘블루리본’ 편집장 김은조씨 말이다.
15일 개통한 서울~춘천고속도로 때문에 나오는 소리다.
서울 강일IC를 출발해 춘천 조양IC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단 38분이란 게 서울~춘천고속도로측 설명.
물론 길이 막히지 않고, 전 구간을 최고제한속도인 시속 100㎞로 달린다는 가정하에서다.
가정대로만 할 수 있다면 점심 때 춘천 가서 막국수 먹고 온다는 말이 아주 허황된 소리는 아닌 듯싶다.
과연 실현 가능할까?
지난 13일, 정식 개통을 이틀 앞둔 서울~춘천고속도로를 직접 달려봤다. 목적지는 춘천 ‘유포리막국수’.
▲ 춘천 소양호.
▲ 서울~춘천고속도로 춘천 방향 시작점.
12:25 유포리막국수_소양댐주차장에 낮 12시 15분 도착했다. 예상 도착시각보다 10분이나 이르다.
평일이어서인지 교통체증이 거의 없었던 덕분이다.
이번 춘천행 목적이 막국수로 점심식사하기였으므로 바로 차를 돌려 유포리막국수로 향했다.
낮 12시25분, 서울 강일IC를 출발한 지 1시간25분 만에 막국수집에 도착했다.
▲ 유포리막국수
돼지고기 편육(1만원)과 막국수(5000원)를 주문했다.
뜨거운 면수(국수 삶은 물)가 가득 담긴 주전자와 열무김치가 먼저 나왔다.
면수에 간장을 조금 타 마시고 있으니 반짝반짝 윤이 나는 편육이 접시 가득 담겨 나온다.
따뜻하고 말랑하고 쫄깃하고 고소하다. 새우젓에 찍어 열무김치를 곁들여 편육을 거의 비울 즈음 막국수가 등장한다.
큼직한 냉면그릇 안에는 메밀국수가 듬뿍 담겼다.
고명은 김가루와 깻가루, 고춧가루와 파를 넣은 진한 간장양념이 전부다.
함께 나온 높은 흰색 플라스틱 주전자에 맑은 동치미 국물과 무가 가득 담겼다.
이 집 막국수는 고기 육수를 사용하지 않고, 동치미 국물만 부어 담백하게 먹는 게 특징이다.
질기지 않고 뚝뚝 끊기는 국수는 메밀향이 구수하다. 유포리막국수 (033)242-5168
14:07 강일IC_낮 12시42분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귀경길에 올랐다.
조양IC에 도착하니 오후 1시22분. 40분 걸렸다. 내비게이션에 조양IC가 아직 등록돼 있지 않아 약간 헤맨 탓이다.
강일IC에 돌아온 시각은 오후 2시7분. 45분쯤 걸렸다. 38분 주파는 역시 힘들었다.
오전 11시 서울을 출발, 춘천에서 막국수를 먹고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3시간7분.
시간에 쫓기며 빡빡하게 사는 서울의 직장인에게 평일 점심을 춘천에서 먹고 돌아온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기존 서울~춘천 여행에 비교하면 이동 거리와 시간이 훨씬 단축된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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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춭천을 대표하는 유포리 막국수~ 발도 굵은것이 질기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아주 촌스러운맛 변함없이 30여년을 즐긴 음식이네요.. 서울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샘밭 막국수가 좋구요~ 그리고 부안 막국수는 메밀젬병이 아주 맛갈 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