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택영(1876 - 1935)은 해풍부원군이라고 불린다.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장인이다. 그의 딸은 순종이 태자 시절이던 1904년에 순종과 결혼하여 순정효황후가 되고 윤택영은 왕의 장인이 된 것이다. 순종의 첫 번째 부인인 민씨가 33세에 세상을 떠난 후 순종에게 시집을 간 윤택영의 딸은 불과 13살밖에 되지 않는 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윤택영은 왕의 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순종보다 두 살 어렸다.
이 어린 장인은 딸이 태자이던 순종의 동궁계비로 간택되는 치열한 경쟁을 뚫는 과정에서 상당한 빚을 진 모양이다. 대한매일신보 09년 5월 28일자 기사에는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여러 가지 빚진 것으로 빚쟁이의 독촉을 받아 심히 곤란을 받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거니와 근일에 들은 즉 전후 곤란한 사정을 황제폐하께 아뢰고 처분을 기다린다더라"라고 보도하고 있다. 조선의 오백년 사직이 바람 앞의 촛불과 같아 그렇지 않다도 심적 고통이 컷을 순종에게 철없는장인은 매일 빚갚아 달라고 보챘다 하는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의 형 윤덕영과 함께 한일합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던 인물이다. 합방된 후에는 일본으로부터 후작 작위를 얻고 은사금 50만 원을 하사 받아 급한 채무를 상환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도 늘 호화생활을 즐겨 빚은 다시 300만원으로 불어나 결국 베이징으로 도피까지 했단다. 무분별한 호화생활로 가산을 탕진하고 큰 빚을 진 조선 귀족은 그를 포함하여 33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총독부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창복회라는 재단까지 설립해 이들의 부채를 탕감하는 작업을 맞겨야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