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먹는 권력, 사기 치는 재벌, 억눌리는 인간,
그 속에서 꽃피우는 사랑과 진실
지금껏 발표한 작품 가운데서 ‘황폐한 집’을 좋아하는 독자가 가장 많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온 ‘작은 도릿’에도 똑같은 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치현실과 사회현실에 대해 정치인이나 평론가나 학자보다 많은 진실을 말한다.” 칼 맑스
“영문학의 거장! 살아 숨쉬는 인물들!” - 옥스퍼드 대학
“중산층의 애환을 그린 영문학의 백미!” - 톨스토이
프랑스는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혁명 전통’이 있다면, 영국은 명예혁명, 청교도 혁명, 산업혁명 등,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혁명 전통이 있다. 반면에 독일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 영국과 프랑스를 쫓아가려 애쓰는 가운데 다양한 농민전쟁이 발발한다. 따라서 프랑스는 민중계몽을 추구하는 계몽주의 전통이 강하다면, 영국은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전통이 강하고 독일은 관념론과 변증법이 발전한다. 찰스 디킨스 작품에는 영국 특유의 경험주의와 합리주의가 그대로 배어난다. 다양한 군상이 살아가는 모습을 심층 분석해서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방법으로 독자 스스로 옳고 그름을, 나아가 가장 바람직한 삶을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영어를 아름다운 운문으로 엮어서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시인이라면, 디킨스는 산문을 정확하고 정교하게 풀어내며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이야기꾼이다. 디킨스 작품은 현란하며, 귀족의 속물근성에 대한 풍자는 사악할 정도로 익살맞다.
디킨스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첫째,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절대기준으로 삼는다는 것, 둘째, 억압하는 인간 제도를 비판하고 억압당하는 인간을 옹호한다는 것, 셋째, 각종 신화에 담긴 내용을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상징으로 활용한다는 것, 넷째, 실재 인물을 심층 분석해서 작품 등장인물로 삼는다는 것, 다섯째, 작품 대부분을 분권 형식으로 월간지에 연재해, 독자와 끊임없이 호흡하려 애쓴다는 것, 여섯째, 일반명사를 이름으로 사용해서 등장인물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는 것, 일곱째, 화려한 문장으로 캐릭터를 묘사하고 풍자하는 실력이 탁월하며, 그래서 만연체 문장이 많다는 것이다. 제대로 번역하지 않으면 맛을 잃는 건 물론 오역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함정이 작품 곳곳에 가득한 것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나라였다. 디킨스는 작가로 성공해 번듯한 마차를 타고 저명인사와 교류하면서도 대다수 서민이 진흙탕을 밟고 힘겹게 살아가며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영국 최고 전성기의 아픈 그림자를 직시해서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당시에는 다섯 살 어린애가 공장에서 열두 시간씩 일하고도 겨우 동전 몇 닢을 손에 쥔 채 집으로 돌아가니, 노동자 평균수명은 스물여덟 살이었다.
디킨스는 가난한 사람을 깊이 동정하고, 사회적인 악습에 반격하고,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사로 작성하고 소설에 담았다. 칼 맑스가 “정치 현실과 사회현실에 대해 전문 정치인이나 정치 평론가나 학자보다 많은 진실을 말했다”고 평할 정도였다. 초기 소설은 풍자가 강하지만 후기 소설은 치밀한 구성과 사회비평이 돋보인다.
디킨스는 서민성과 사회 현안에 대한 성찰이 누구보다 탁월하다. 서민은 디킨스에게 환호하고 디킨스는 서민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니, 디킨스가 말하거나 발표하는 내용마다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작은 도릿’은 찰스 디킨스가 중후반기에 집필한 작품이다. 생전에 “발표한 작품 가운데서 제일 많은 독자가 좋아한 작품”이었다.
작품은 마르세유 감옥에 갇힌 죄수 두 명으로 시작해, 주인공이 감옥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끝난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에 갇혀서 평생을 살아간다는 걸, 그 감옥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온전한 인간으로 완성된다는 걸 상징한다.
작가가 바라본 인간은 신성에 합당한 인간 유형부터 신성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인간 유형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며, 대부분은 그 중간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간다. ‘작은 도릿’은 감옥에서 태어나고 성장해도 그 영혼은 감옥에 갇힌 적이 없으며, 영국 최고 부자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머들’은 감옥에 갇힌 적이 없으나 그 영혼은 평생을 감옥에 갇혀서 살아가다 죽는다.
‘클레넘 마님’은 억울한 삶을 복수하겠다는 감옥에 갇히고, ‘캐스비’는 자비와 위선을 무기로 돈벌이에 몰두하는 감옥에 갇히고, ‘바너클 가문’은 특권 유지라는 감옥에 갇히고, ‘헨리 가우언’은 허무주의로 가장한 이기주의라는 감옥에 갇히고, 도릿 선생은 비굴한 과거라는 감옥에 갇히고, 머들 부인과 페니는 사교계라는 감옥에 갇히고, 제너럴 부인은 예의범절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하나같이 독특한 트라우마로 세상을 바라보니, 그 삶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찰스 디킨스는 ‘작은 도릿’이 가장 비참하게 살면서도 자신을 희생하고 가족에게 헌신하는 자세에서, ‘클레넘’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려 노력하는 삶에서 ‘완성된 인간형’이자 ‘자유로운 영혼’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