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과산’에서 다소곳이 피여나는 치부의 ‘꽃’
로투구진 응암촌 규의농장 농장주 심규의의 치부 노하우
산골에서 나서자란 심규의(35세)가 고향에 대한 감정은 복잡했다. 1997년 초중을 졸업하자마자 ‘도망’치듯 빠져나온 고향, 산 밖에는 어떤 풍광일가 하는 호기심에서였지만 마음속 한 구석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늘 자리잡고 있었다.
제한된 학력, 고향을 떠난 그가 생계를 위해 했던 건 고된 로동,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지 않으면 식당 복무원,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돌아오는 건 생활을 겨우 유지할 정도의 수입 뿐이였다. 야무진 꿈에 비해 현실은 잔혹하기만 했다. 그렇게 4년을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은 건 2001년, 고향인 로투구진 응암촌에 돌아와 기회를 찾기로 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당면가공업의 발전 비전이 괜찮다는 것을 발견한 심규의, 가족들과 론의한 끝에 20여만원을 모아 당면가공공장을 꾸렸다. 초창기 엄격한 품질 통제와 성실 경영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환영받던 심규의네 당면 제품이였지만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부족한 데다 관건기술을 파악하지 못한 등 원인으로 공장의 생산 능률이 급격하게 하락, 공장을 오픈한 지 1년 만에 파산이라는 쓴맛을 보게 된다.
당면공장의 경영실패는 심규의에게 창업의 어려움 그리고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인식하게 했다. 그 후 3년간 심규의는 창업자금을 모으는 한편 수많은 창업사례들을 공부하며 스스로를 련마했다.
2005년, 거듭되는 조사를 거쳐 심규의는 과일재배업의 발전공간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실패의 아픔을 겪었던 그인지라 조급하게 사업을 시작하기보단 재배업에 필요한 기본 상식, 지식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사과배를 재배했던 경험이 있는 아버지가 저에겐 ‘스승’이 돼줬죠.”
다시한번 창업의 열의가 생긴 심규의는 책을 통해 과일재배 기술을 습득하는 건 물론 아버지의 가르침 아래 실천도 착실하게 해나갔다. 그러나 창업의 길은 언제나 그렇듯 순탄치 않았다. 타지에서 2만그루 사과나무 묘목을 매입해 3년간 열심히 가꿨지만 가짜사과나무인 것이 발견됐다. 다시 판매업자를 찾았지만 돌아온 건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 ‘재수 없었다.’는 자기위안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넘어졌지만 악착같이 다시 일어났다. 심규의는 매번의 좌절을 경험과 교훈을 쌓는 기회로 삼았다. 수년 동안의 좌절 그리고 재시도 끝에 심규의는 과수재배 기술과 시장가격 규률을 보란 듯이 파악해냈고 이젠 40헥타르 면적에 사과나무, 자두나무, 개암나무 등 다양한 과일을 재배한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로 성장했다.
심규의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예전에 훈춘의 셀렌사과농장을 고찰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스스로 과일을 채집하는 데 관심이 있더군요.”
그가 과일채집과 농촌관광을 접목한 농가정원을 구축한 계기가 됐다.
“해마다 국경절련휴면 채집체험 한 부분에서만 매일 2만여원의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무척 뿌듯한 심규의의 소개이다.
초창기의 어렵고 망연하기만 했던 창업 햇내기에서 이젠 창업의 달인이 되기까지 심규의는 19년의 시간으로 고향을 푸르게 했고 향촌관광을 발전시켰으며 ‘화과산’에서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치부의 ‘꽃’을 피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