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릉이 뭔지, 의릉, 복릉 ... 이런 거 찾아보다가 ...정조가 현륭원 만들고 사도세자 이장한 것을 채제공이 만사를 지었는데
정조가 세자때 대리청정하는 것을 축하는 것을 아버지사도세자가 그걸 보았다는 이 구절
세자가 대리(代理)하는 일로 하례를 받던 날 대조(大朝)가 협실(夾室)에 거둥하여 그 광경을 굽어보았다.
아호~ 아버지의 정이란 저런거란 말인가? 눈물 남
또 한 곳 - 눈물 또 남
어디? 여기
왜?
하례날
사도세자가 바위에 혼자서 ...
석양 무렵 바위 위에 처량하게 앉아 계셨지 / 石上蒼涼坐夕陽 - 여기 개뭉클 ...
게다가 번암이 한 글자마다 눈물 줄줄 흘린다는 표현 아~ 맘 아퍼라 ...
번암집 제17권 / 시(詩)○희년록 상(稀年錄上)
사도 장헌세자의 개장에 즈음한 만사〔思悼莊獻世子改葬輓〕
을묘년(1735, 영조11) 정월의 일을 공경히 생각건대 / 恭惟乙卯月之正
이극문이 열리며 백일잔치가 열렸었네 / 貳極門開百祿呈
밤을 이어 빛나는 서성(瑞星)을 모두 우러러보고 / 連夜有星皆仰視
팔방에 환호하는 소리 없는 날이 없었지요 / 八方無日不歡聲
하늘이 친히 보듬어서 이 땅에 보내셨으리니 / 維皇親抱應相送
젖을 겨우 떼자마자 어른처럼 의젓했다오 / 阿保纔離儼若成
다투어 말하길 계가 훌륭해 우를 계승해서 / 爭道啓賢能繼禹
만년토록 온 누리에 태평 시대 오리라 했네 / 萬年寰海占昇平
두 번째〔其二〕
원단에 대리하기 위해 동위를 열었나니 / 元春代理敞銅闈
서기 어린 고릉 위에 아침 햇빛 찬란해라 / 瑞氣觚稜上早暉
심결을 조석으로 응당 주고받는 관계이니 / 心訣晨昏應授受
종묘는 반석 위에 갈수록 더욱 빛나리라 / 宗祧磐石轉光輝
천안이 옆에서 보며 끝없이 기뻐하고 / 天顔傍視歡無極
일표가 새로 임하매 위엄 있고 의젓해라 / 日表新臨儼有威
한곳에서 빈대하며 이성을 자주 뵙는 일은 / 賓對一堂頻二聖
예로부터 역사적으로 대단히 희귀하였다오 / 古來靑史事全稀
세자가 대리(代理)하는 일로 하례를 받던 날 대조(大朝)가 협실(夾室)에 거둥하여 그 광경을 굽어보았다.
세 번째〔其三〕
눈물지으며 생각건대 당년의 성유가 길었는데 / 泣憶當年聖諭長
소신이 명을 받들고서 세자궁에 달려갔었지 / 小臣承命詣春坊
뜰 한복판에서 도승지를 인접하고 나서 / 庭心引接知申事
석양 무렵 바위 위에 처량하게 앉아 계셨지 / 石上蒼涼坐夕陽
공경히 휘언을 받들건대 모두 손억하는 말씀 / 恭奉徽言皆遜抑
상세히 명의에 입각하여 함께 상의했더랬지 / 細將明義與商量
전일에 종용히 모신 적이 없지 않았지만 / 非無前日從容侍
이때에 한 분 원량(元良)임을 참으로 알았다오 / 到此眞知一有良
네 번째〔其四〕
덕합(德閤)에서 동틀 녘에 강연을 마치자 / 德閤凌晨已講筵
대조가 칭찬하시고 진신 사이에도 전해졌지 / 大朝稱譽搢紳傳
인자한 명성이 탕천의 길에 끊이지 않았고 / 仁聲不盡湯泉路
성상의 훈계도 《자성편》으로 항상 온화하였다오 / 至敎常溫自省編
간흉이 남몰래 모함을 했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 奈有奸凶謀暗地
성주가 자비롭게 처분할 여지도 없지 않았건마는 / 非無聖主作慈天
최마를 입고 날마다 궁문 밖에 엎드려 계실 때 / 縗麻日伏宮門外
미신의 피눈물 흘리는 그 심정을 누가 알았으랴 / 誰識微臣涕血漣
다섯 번째〔其五〕
죽포의 슬픈 울음소리 구의에 감돌고 / 竹浦哀鳴繞九嶷
육룡이 오신 곳에 저녁 구름 드리웠네 / 六龍來處暮雲垂
송백은 종천의 눈물을 빠짐없이 흩뿌리고 / 杉松遍灑終天淚
창해도 땅에 사무친 비애를 씻기 어려워라 / 滄海難澆徹地悲
효친의 그 생각이 실로 국민을 감동시켰나니 / 孝思實爲黎庶感
애수에 젖은 그 모습을 어찌 시신만 알았으랴 / 慽容奚但侍臣知
노심초사하며 보낸 이십팔 년의 세월이여 / 憧憧廿八年光內
자나 깨나 임금님은 다짐함이 있었느니라 / 寤寐宸誠有所期
여섯 번째〔其六〕
수원의 길상한 기운이 날로 피어올랐나니 / 隋城佳氣日英英
명당으로는 삼한에서 겨룰 곳이 없었어라 / 吉地三韓莫與京
연이 맑은 하늘에 꽂혀 꽃잎을 활짝 벌리고 / 蓮揷晴空開朶迥
용이 큰 들판에 서려 구슬을 밝게 품었도다 / 龍盤大野抱珠明
인정이 비처럼 운다 한들 장차 어떻게 미치리오 / 人情雨泣將何及
성의를 하늘이 알아주어 일이 마침내 이루어졌네 / 誠意天知事竟成
복을 구함이 정직해서 복을 받을 수 있으리니 / 求福不回能受福
봄날이 오면 과질이 언덕에 가득 돋아나리라 / 春來瓜瓞滿原生
일곱 번째〔其七〕
동궁의 온궁 행차 그때의 일이 아련하나니 / 春宮溫幸事依依
나룻배 석양에 도착한 것이 아직도 기억나네 / 尙憶津帆到晩暉
눈에 가득한 강물은 예전 그대로 흐르는데 / 滿眼江流猶自在
재실이 또 남으로 돌아가니 마음 아파라 / 傷心梓室又南歸
하늘 나직한 도성의 아침 경치 희미하더니 / 天低京闕迷晨望
길 익숙한 산성에선 저녁 안개가 걷혔도다 / 路熟山城斂夕霏
뇌사의 옛 신하가 지금도 죽지 않아서 / 雷肆舊臣今不死
명정 한 글자마다 눈물 줄줄 흘립니다 / 銘旌一字淚千揮
천신(賤臣)에게 광중(壙中)의 명정(銘旌)을 쓰라고 명하셨기에 이렇게 말하였다.
[주-D001] 을묘년 …… 열렸었네 :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 이선(李愃)이 을묘년 1월 21일 후궁인 영빈(暎嬪) 이씨(李氏)의 몸에서 태어나 백일이 되는 날에 영조의 정비(正妃)인 정성왕후(貞聖王后) 서씨(徐氏)의 양자(養子)로 입적되며 원자(元子)로 정해진 것을 말한다. 이극문(貳極門)은 동궁(東宮)의 정문이다. 동궁의 서연(書筵)인 중희당(重熙堂)의 남문을 중화문(重華門)이라 하였는데, 그 문의 남쪽에 이극문이 있었다. 이극은 임금 다음으로 높다는 뜻으로, 세자를 가리킨다.
[주-D002] 다투어 …… 했네 : 사도세자가 영조의 뒤를 이어 성군이 되리라고 모두 기대했다는 말이다. 하우(夏禹) 이전에는 왕위를 현신(賢臣)에게 선양(禪讓)하는 전통이 있었으나, 우왕(禹王)이 죽은 뒤에는 왕이 생전에 후계자로 내정했던 익(益) 대신 왕의 아들인 계(啓)가 훌륭하다고 백성들이 그에게 귀의하여 “우리 임금의 아드님이다.[吾君之子]”라고 찬미하면서 그를 왕으로 옹립했는데, 이로부터 왕위 세습 제도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보인다.
[주-D003] 동위(銅闈) : 구리 문이라는 뜻으로, 동궁(東宮)의 문을 가리킨다. 한(漢)나라 때 태자궁의 문 이름을 동룡문(銅龍門)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문루(門樓)에 구리로 장식한 용[銅龍]이 새겨져 있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주-D004] 고릉(觚稜) : 궁궐 지붕 모서리의 기와등[瓦脊]이 사각형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모양을 말하는데, 보통 높은 궁궐 지붕 혹은 서울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주-D005] 천안(天顔) : 영조를 가리킨다.
[주-D006] 일표(日表) : 태양의 의표(儀表)라는 뜻으로, 제왕의 모습과 거동을 비유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새로 대리청정하게 된 세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주-D007] 눈물지으며 …… 달려갔었지 : 당년의 성유(聖諭)는 1749년(영조25) 왕세자의 대리청정을 태묘(太廟)에 고하고 팔도에 전교를 반포한 것을 말한다. 이해 1월 22일 영조가 선위(禪位)의 봉서(封書)를 승정원에 내리자 사도세자가 황급히 측근을 불러 상의한 내용과 27일 영조가 정식으로 교서를 전국에 반포한 내용이 《영조실록》 25년 1월 기사에 상세히 나온다.
[주-D008] 인접(引接) : 세자가 신하를 접견하는 것을 말한다. 왕이 신하를 접견하는 것은 인견(引見)이라고 한다. 세자가 대리청정할 때 입시(入侍)는 입대(入對)로, 전지(傳旨)는 휘지(徽旨)로, 계의윤(啓依允)은 달의준(達依準)으로, 계사(啓辭)는 달사(達辭)로, 계본(啓本)은 신본(申本)으로, 계목(啓目)은 신목(申目)으로, 상소(上疏)는 상서(上書)로, 백배(百拜)는 재배(再拜)로, 상전(上前)은 세자궁(世子宮)으로 칭한다. 《增補文獻備考 卷85 禮考 敎令》 《景慕宮儀軌 卷3 己巳代理儀》
[주-D009] 원량(元良) : 지극히 선량하다는 뜻으로, 세자를 가리킨다.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한 사람의 원량이 있으면 만국이 바르게 된다고 했는데, 이는 세자를 이른 것이다.[一有元良, 萬國以貞, 世子之謂也.]”라고 하였다.
[주-D010] 덕합(德閤) : 사도세자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접하며 정무를 처리하던 덕성합(德成閤)의 준말로, 왕의 정전(正殿)과 같은 의미를 지닌 곳이다.
[주-D011] 인자한 …… 않았고 : 사도세자가 환곡(還穀)을 조정하고 형편에 따라 세금을 줄여 주며, 대전(代錢)과 방납(防納)을 금지하는 등 민생 경제 위주의 선정을 펴자, 백성들이 몹시 기뻐하여 사도세자의 온천 행차 때에 환호했던 것을 말한다. 사도세자는 1760년 7월 18일 다리 종기가 곪아 터진 습창(濕瘡)을 치료하기 위해 온궁(溫宮) 즉 온양(溫陽) 행궁(行宮)에 도착하여 16일간 요양한 뒤 8월 4일에 귀경하였다. 《溫宮事實》 《溫泉日記》
[주-D012] 자성편 : 《어제자성편(御製自省篇)》이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가르치기 위해 경사(經史)의 내용 및 자기의 일상적인 생활과 개인적 느낌 등 수기치인(修己治人)에 관련된 요목을 간추려 만든 제왕학(帝王學)의 교재로, 1746년 본편이, 그리고 1759년 속편이 만들어졌다.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시작하자 영조가 그를 경연으로 불러 경연관에게 《자성편》의 장구를 읽게 하고 직접 훈계하기도 하였다.
[주-D013] 최마를 …… 때 : 사도세자가 1762년 5월 24일부터 윤5월 13일까지 시민당(時敏堂) 뒤뜰 월대(月臺)에서 석고대죄한 것을 가리킨다.
[주-D014] 죽포(竹浦)의 …… 드리웠네 : 사도세자를 양주(楊州) 중량포(中梁浦) 옆 배봉산(拜峯山)의 수은묘(垂恩墓)에 장례 지낼 때에 영조가 친림한 가운데 정조의 비통해하는 심정을 묘사한 것이다. 수은묘는 정조 즉위 직후에 영우원(永祐園), 그리고 이장할 때에 다시 현륭원(顯隆園)으로 격상되었다. 죽포는 영우원 부근의 마을 이름으로, 울음소리는 정조의 비애를 가리킨다. 정조가 나중에 그 원릉(園陵)을 참배할 때에, 전농리(典農里), 답심리(踏尋里), 청량리(淸涼里), 죽포리(竹浦里) 등의 마을에서 부역(賦役)에 응한 백성들에게 미두(米斗)를 지급하게 한 기록이 보인다. 《日省錄 正祖 10年 3月 29日》 구의(九嶷)는 순 임금의 묘역인데, 여기서는 영우원을 가리킨다. 구의(九疑)라고도 한다. 육룡(六龍)은 어가(御駕)로, 영조의 행차를 말한다. 옛날에 천자의 수레는 여섯 마리의 말이 끌었는데, 8자(尺)의 말을 용이라고 불렀던 데에서 유래하였다.
[주-D015] 종천(終天)의 눈물 : 몸을 마칠 때까지 이어지는 슬픈 눈물이라는 뜻으로, 죽을 때까지 비통함이 계속되는 부모상에 대해 쓰는 표현이다.
[주-D016] 노심초사하며 …… 있었느니라 : 1762년 사도세자를 영우원에 안장하고 1789년(정조13) 7월 수원 화산(花山)의 현륭원으로 이장(移葬)할 때까지 28년 동안 정조의 불안했던 심정과 마음속의 결의를 표현한 것이다.
[주-D017] 과질(瓜瓞)이 …… 돋아나리라 : 왕족들이 끝없이 벋어 나가 번성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과질은 큰 오이와 작은 오이 덩굴을 뜻한다. 《시경》 〈대아(大雅) 면(綿)〉에서 주(周)나라 족속이 번성하는 것을 비유하여 “끝없이 벋어 나가는 큰 오이 작은 오이 덩굴이여.[綿綿瓜瓞]”라고 노래한 데에서 유래하였다.[주-D018] 뇌사(雷肆) : 서연(書筵)과 같은 말로,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별칭인데, 여기서는 당시 왕세자였던 사도세자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