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환 {사상의 꽃들} 15에서
지우개 녀 연필 씨
이원형
너의 잦은 실수가 나를 분주하게 한다
너의 오류가 나의 생업이라는 아이러니
너의 헛점으로 생겨난 나는 너의 후사일까
너는 잘못을 감추려 하지 나는 지워버린다
애간장이 탄다구? 나는 똥 쌀 지경이야
너의 허방 앞에서 트위스트 트위스트
춤이라도 추랴
뒷처리는 나의 몫이니
둥싯둥싯 각을 지울테다 향기는
바람에게 던져주고 모난 사람 같은 모과의 둥긂을 닮아갈테다
누가 닳았다를 닮았다로 읽어버린다면
배 다르고 씨 다른 나는
너와 체위를 바꿔가며 덜커덩거리는 비둘기호 같은 필통 속에선 한통속이 될 수 있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동지애를 발휘하겠다
너보다 한 발 늦게 현장에 도착하지만
뒷수습은 나의 몫
손발이 닳도록 싹싹 비비지
간 쓸개 오장육부까지 내줘야할지 몰라
근묵자흑이더군
닳는 것까지 닮아버렸구나 자꾸
닮아간다 말하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닮음의 끝을 보여주겠다
이래 봬도 뒤끝 있는 여자야
대부분의 소설이나 영화는 주연배우가 영웅(남자)이고, 조연배우는 어딘가 모자라거나 꼭지가 덜 떨어진 어릿광대일 때가 많다. 돈키호테와 산초판자의 관계가 그렇고, 로빈슨 크루소와 프라이데이의 관계가 그렇다. 또한 헤라클레스와 필로크테테스의 관계가 그렇고, 오딧세우스와 양돈지기의 관계가 그렇다. 이 조연배우들은 주연배우를 더욱더 돋보이고 훌륭하게 만들기 위한 보조적인 인물들이지만, 그러나 때때로 이 조연배우들이 주연배우가 되어 상하계급의 질서와 그 모든 가치관들을 전복시켜 버린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부처에 의해 브라만계급의 가치관이 전복된 것이고, 예수에 의하여 구약 속의 유대인 귀족들의 가치관이 전복된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는 사농공상의 최하천민인 상인계급이 그 옛날의 귀족계급을 몰아낸 시대이고, 인간평등과 여성해방이란 구호 아래 인류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성상위현상이 도래한 시대라고 할 수가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품이 문자라면 연필은 문자를 기록할 수 있는 가장 획기적인 필기도구라고 할 수가 있다. 이제는 연필의 기능은 펜과 만년필, 볼펜과 컴퓨터의 자판에 의하여 매우 작고 부차적인 것이 되고 말았지만, 그러나 한때는 가장 찬란하고 번쩍이던 시대도 있었던 것이다. 연필은 인간의 사유와 상상과 감정을 기록하고, 역사와 전통을 가능케 했던 주연배우이며, 그 사유와 오기誤記를 바로 잡을 수 있었던 매우 유용한 필기도구라고 할 수가 있다. 연필이 필기의 역사의 주연배우라면 지우개는 그 연필의 잘못이나 오기를 바로 잡는 조연배우이자 보조적인 도구라고 할 수가 있다.
이원형 시인의 [지우개 녀와 연필 씨]는 주연배우인 ‘연필의 역사’를 지우개의 역사로 전도시키고, 조연배우인 지우개(여성, 아내)의 입장에서 연필의 역사(남성, 남편)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희극의 진실’을 전개시켜 나간다. “너의 잦은 실수가 나를 분주하게 한다/ 너의 오류가 나의 생업이라는 아이러니/ 너의 헛점으로 생겨난 나는 너의 후사일까”라는 저주받은 운명에 대한 한탄이 그것이고, 이 저주받은 운명은 “너는 잘못을 감추려 하지 나는 지워버린다/ 애간장이 탄다구? 나는 똥 쌀 지경이야”라는 어릿광대의 천역으로 그토록 끈질기고 오랜 악연으로 이어진다. 너의 허방 앞에서 나는 트위스트를 추듯 뒤처리를 다 해야 하고, “누가 닳았다를 닮았다로 읽어버린다면” “배 다르고 씨 다른 나는/ 너와 체위를 바꿔가며 덜커덩거리는 비둘기호 같은 필통 속에선 한통속이 될 수”도 있고, 따라서 “악어와 악어새 같은 동지애를 발휘”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연필은 주인이고, 지우개는 하녀이다. 주인은 남편이고, 하녀는 아내이다. 모든 일심동체의 부부가 배 다르고 씨 다른 남남이듯이, 너와 내가 똑같이 닮은 점은 ‘닳아간다’(죽어간다)는 점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필기도구의 역사에서 연필과 지우개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로 기록될 수도 있겠지만, 그토록 끊임없는 자기희생과 학대를 감당해야 하는 지우개의 입장에서는 이제까지의 연필의 역사는 성차별의 역사이자 인간 학대의 잔혹사에 지나지 않는다. “너의 잦은 실수가 나를 분주하게 한다”, “너의 헛점으로 생겨난 나는 너의 후사일까”, “애간장이 탄다구? 나는 똥 쌀 지경이야”, “누가 닳았다를 닮았다로 읽어버린다면/ 배 다르고 씨 다른 나는/ 너와 체위를 바꿔가며 덜커덩거리는 비둘기호 같은 필통 속에선 한통속이 될 수 있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동지애를 발휘하겠다”, “너보다 한 발 늦게 현장에 도착하지만/ 뒷수습은 나의 몫/ 손발이 닳도록 싹싹 비비지/ 간 쓸개 오장육부까지 내줘야할지 몰라/ 근묵자흑이더군/ 닳는 것까지 닮아버렸구나 자꾸/ 닮아간다 말하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닮음의 끝을 보여주겠다”, “이래 봬도 뒤끝 있는 여자야”라는 너무나도 날카롭고 예리하며, 그 아름답고 멋진 시구들은 ‘지우개의 입장’에서 그 구구절절한 역사성과 현실성을 얻게 된다. 모든 적대자들(반대파들)인 남성마저도 굴복시키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나 악마마저도 설득시킬 시적 표현, 즉, 이원형 시인의 ‘시적 승리’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희극의 전개 방법에는 N. 프라이의 말대로,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 번째는 반동적인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발견과 화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첫 번째의 반동적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법은 그 주연배우를 최하천민인 인간 망나니로 전락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의 ‘발견과 화해’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은 반동적 인물들을 개과천선시키고, 그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가게 된다. 이원형 시인의 [지우개 녀와 연필 씨]는 이제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부부관계가 되고, 일부종사와 여필종부의 희생물에 지나지 않았던 ‘지우개 녀’의 원한 맺힌 저주감정에 의해 그 파탄을 맞이하게 된다. ‘근묵자흑’은 먹을 가까이 하면 먹물이 묻는 것처럼 그들이 부부관계의 인연을 맺고 오래 살았다는 것을 뜻하고, “닳는 것까지 닮아버렸구나 자꾸/ 닮아간다 말하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닮음의 끝을 보여주겠다/ 이래 봬도 뒤끝 있는 여자야”라는 시구는 남성중심의 시대에 끝장을 내고, 여성중심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선전포고이자 그 신호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자유는 불평등에 기초해 있고, 민주주의는 소수지배원칙에 기초해 있다. 여성해방은 인간평등에 기초해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여성상위시대라는 불평등을 초래한다.
뒤끝 있는 여자, 즉, 지우개 녀는 고개의 숙인 남자, 즉, 연필의 모든 역사를 지우고 새로운 세상, 이제까지의 전무후무한 여성시대를 창출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