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진 그레고리오 신부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요한 1서 2,12-17 루카 2,36-40
보물찾기
어릴 때 보물섬이야기는 꽤나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소풍가서 보물찾기에 열을 올리고 여기저기 뛰어 다니던 생각이 납니다.
오늘 복음에 한나라는 예언자는 나이가 들어 84세 보물 중에 보물인 주님을 뵈옵고
시메온과 같이 이 아이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은 찾던 것을 찾으면 기뻐고 행복해 집니다.
나도 80이 넘어서 귀한 보물을 발견하였으며 사람이 보물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엘리사벳 집 성모영보 수녀원의 노인수녀들이 모여 수도생활을 하는
여덟 분의 수녀와 함께 미사를 드리면서 저분들이 우리 교회의 보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나이 같이 80이 넘은 수녀들, 얼마 전 까지 자기가 맡은 일이 있어 활발하게 일 하시였으나
지금은 힘이 없고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저 수녀들이 한 일 돌보던 사람들
이제 주님의 길만 찾아 완성에 이른 수녀님들을 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수녀님들은 50년 이상 수도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내공에 쌓으며 살아오셨기에
얼굴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살고 있고
그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면서 보물찾기 행사에 발견되는
보물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세상에 귀한 사람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찾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다른 이들의 약점만 찾고 장점을 보지 않으려하여
손에 잡인 것이 보물인줄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바다 길을 밤중에 걷다가 웬 장애물이 발에 걸려 보니
돌이 가득 찬 보따리를 보고 다른 사람이 걸려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돌을 집어 바다에 던지다가
해가 뜨면서 마지막 잡은 돌을 빛에 비추어 보니 광채가 나는 다이야몬드 여서
마지막 돌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도 무엇을 늦게 깨달아도 늦은 것이 아닙니다.
몸이 늙고 병들어도 주님을 만나 기쁘고 행복하게 살면 그것이 찾아 해매던 보물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영을 받아 각자가 보물이 되어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살게 하도록 기도합니다.
분도회 이석진 그레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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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대 마르코 신부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루카 2,36-40
기나긴 기다림의 성취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치러진 마리아의 정결예식과 아기 예수의 봉헌예식을 통한
예수의 공현(公顯)을 마무리하는 부분이다.
예언자 시메온에 이어 예언녀 한나가 등장한다.
남녀를 차례로 등장시키는 기법은 루카복음의 특징에 속한다.
특히 예수를 따라 다니며 도왔던 여자들(8,1-3),
겨자씨의 비유에 이어 누룩의 비유에 등장하는 여자(13,18-21),
잃은 양의 비유에 이어 잃은 은전의 비유에 등장하는 여자(15,3-10), 마티아를 비롯한
12사도와 함께 있었던 마리아와 여인들(사도 1,13-14) 등의 대목이 그렇다.
예언녀 한나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남편을 잃고 84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내면서
성전에 몸담아 밤낮 없이 단식과 기도로 하느님을 섬겨온 사람이다.
그녀의 나이가 84살인지 아니면 과부생활이 84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성서원문을 따른다면 한나는 과부로 84년을 살았다. 따라서 그녀의 나이는
구약에서 105살을 살았던 유딧처럼 대략 104-105살로 추정된다.(유딧 16,23 참조)
과부로서의 한나의 삶은 구차하고 가난하기가 이를 데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경건했을 것이다. 가난한 자가 하느님을 먼저 공경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한나는 오늘을 보기 위해 84년을 기다려 왔다.
따라서 안나의 삶은 가난하고 경건한 사람들의 모범이다.
이스라엘의 가난하고 경건한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임박한 메시아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던 자들이다.
한나는 이들을 대표하는 자로 묘사되며 나아가
모든 그리스도교적 과부들의 가난하고 경건한 삶을 이끌 수 있는 모범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그녀가 시메온의 팔에 안겨있는 아기 예수를 메시아로 알아보았고,
시메온의 예언을 밖으로 배달한다.
루카는 한나가 어떤 말로 사람들에게 메시아의 도래를 알렸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것은 시메온의 예언이 어떤 말을 덧붙일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메온은 아기 예수를 두 팔에 안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었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루카 2,29-32)
예언녀 한나도 시메온처럼 평안히 눈감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언자 시메온의 말씀과 메시아로서의 예수 아기에 관한 이야기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전해진다.
이 말은 예수의 탄생사건이 그 자체로서 세상의 구원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의 탄생으로 말미암은 메시아의 현존에 대한 의식의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기 예수도 메시아로서의 자의식을 키워가야 하며,
동시에 세상 또한 메시아와 그 현존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 때까지는 예수도 세상도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시간은 성령의 시간이다.
성령 하느님만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고 계시며,
성령 하느님만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또 선포하는 일을 도와주실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공동체는 가난하고 경건한 예언녀 한나처럼
성령 하느님께 자신을 열고 구원의 날을 기다리며 이에 합당한 자신을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부산교구 박상대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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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정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
루카 2,36-40
영원한 세상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사막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우거진 야자수와 맑은 샘물이 있어서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좋은 쉼터가 되었습니다.
노인은 야자수 그늘 아래서 목마른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샘물을 떠 주는 것으로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그네들이 물을 마시고 나서 몇 푼의 동전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극구 사양을 했지만, 동전이 쌓여가면서 욕심이 생겨
나중에는 동전을 안 주는 사람들에게는 당당하게 동전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더 많은 물을 나오게 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샘터를 최신 시설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샘물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주변의 야자수가 샘물을 빨아들인다고 생각하고 야자수를 모두 베어버렸습니다.
얼마 후에 야자수 그늘도 없어져 버렸고 샘물은 말라 버렸습니다.
노인은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 1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1요한 2, 15.)
위의 예화에서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떠주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던 노인이
동전이 쌓여 가면서 더 많은 동전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고
이 끝 없는 욕심이 결국노인을 눈멀게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재물에 눈이 멀게 되면 하느님을 내 마음에 모실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을 모실 수 없으면 그것이 곧 죽음입니다.
세상을 극복하는 사람은 얼마만큼 우리 자신의 욕심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우냐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부자연스럽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세상은 지나갑니다.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 17.)
영원한 세상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마산교구 박태정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