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정충제란 걸출한 논픽션작가가 있다.박정희전 대통령시절 이발사 박수웅으로 부터 한쪽의 지도를 입수한 그는'황금백합작전'의 실체를 파악, 그 이름으로 글을 쓴다.
그 일에 연루된 그는 법적투쟁에 실패함에따라 44개월여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 뒤 여러 인맥을 동원 '실체적진실'로 여긴 부산문현동에 얽힌 금괴와 일제에 따른 무고한 인명살상 사실을 드러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코자 백방으로 노력해 왔다.
그러나 소기의 목적을 이루는데 한계점을 느낀 그는 2011년말 중국에 건너가 '국제사회'에 호소코자 시도 중이다. 지난 3월17일 그는 아래와 같은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정치-사회적 폭팔력을 지닌 이 내용이 과연 독자들에게 어떤 관심과 반향을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다. 오로지 정충제 그의 열정을 가감없이 원문 그대로 공개함으로서 독자들의 이해와 판단에 맡기는 것이 상책이라 여긴다. 내용의 핵심을 짚어 편집자가 붙인이름인즉, 문재인X파일.(매스타임즈, 뉴민주닷컴, 시민옴부즈맨, (사)한국언론사협회 연합취재본부에서는 이문제를 파헤치기위해서 외국에 나가있는 제보자를 연결하여 증거를 수집중에 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충제라는 사람입니다. 좀 자세히 저를 소개합니다. 89년말경에 부산일보에 '지리산은 통곡한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한 적이 있는 작가입니다. 여자빨치산 정순덕을 찾아내어 묻혔던 지리산에 빨치산역사를 파헤쳤던 실화가 기억날것입니다.
부산시 남구 문현동 1219-1번지에 2002년3월2일,직경60cm로 깊이16m의 암반층을 뚫고서 수직구가 완성되었습니다. 목적은 순전히 땅속에 숨어있던 일제어뢰공장의 한가닥을 관통시키기 위함입니다. 이 일이 있고나서 나를 따라다니며 온갖 궂은일을 다 하던 나의 조수 김성태(63세, 경남삼천포출신)가 재주를 부렸습니다. 배신을 일으킨것입니다. 제가 뚫어 찾아낸 지하 수평굴속에 '금'이 없었다면 그런 배신은 생기지도 않습니다. 오뉴월에 똥파리 떼 처럼 도굴단이 결성되었습니다. 그리고나서 현장땅을 싯가에 세배나 주고 사 버렸습니다. 땅을 판 주인인 조규혜(63세)와 정문균(53세) 두 사람도 금도굴에 지분을 나누어주고 도굴단에 합류시켰습니다. 한 패거리가 된거지요. '금'이 없었다면 어찌 이런 일이 생기겠습니까? 저는 죽을 용을 다 짜내어 문현동현장에 금도굴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응답은 없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별 미친놈도 있네'식으로 사건자체를 믿지 않았습니다. 또 경찰등 관련기관들은 이미 도굴단에 매수가 되었는지 들은척도 않았지요. 한국에서는 이전에 이런일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가 없었다고 봅니다. 이런 이유로 고심 끝에 저는 문재인 변호사님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때가 2002년 4월 중순경입니다.
부산 연제동, 법조타운 대로변의 어느빌딩, 4층인가에 '부산'이라는 간판을 붙인 법무법인 입니다. 제 차례가 되었고 문 변호사와 마주앉았습니다. 그때 변호사께서는 발이 드러나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습니다. 발가락이 보이는 발가락양말을 신고 있었지요. 지금도 선명하게 눈앞에 떠 오릅니다. 저는 발가락 양말을 한번도 신어본 적이 없기에 더욱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저가 문 변호사를 찾아간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법무법인 '부산'의 대표변호사는 노무현인데 그는 이미 대통령에 당선되어 청와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문 변호사께서는 서울로 아직 가지않고 계속 그곳에 근무했기에 저가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제 판단으로는 노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측근이 문 변호사라 봤습니다. 조만간 서울로 입성할 것이라 믿은거지요. 그러니 서울로 가시기 전에 문현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굴에 진실을 알리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그리해야 서울에 올라가면 문현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도굴에 진실을 대통령께 소상히 전달할것이니까요.
노대통령께서 알기만하면 금도굴단은 쉽게 일망타진 될것이라 믿었지요. 그것은 대통령이 되기전, 종로보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하고 있을 때의 일 입니다. 저는 그때 그분과 세차례에 걸쳐 직접만나 문현동지하 어뢰공장의 존재여부에 대한 설명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은 문현동에 대해서 훤히 꿰고 있었습니다. 일본군들이 중국에서 약탈해와 숨겨놓았던 '금'이 그때 도굴단을 소탕함으로써 나타날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침체된 부산경제에 큰 활력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국민들은 환호하면서 얼마나 대통령을 칭송하였겠습니까? 시대의 포청천이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세상이 시끄러웠을것입니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찾아간 저를 문변호사께서는 몇마디 들어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버럭 역정부터 냈지요. 그때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문변호사의 안색은 바로 두꺼운 얼음 같았습니다. 저는 사실대로 문현동에서 일어난 금도굴에 진실을 설명하려는데 제말을 끊고 더 이상 듣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말도다 전달하지 못하고 도중에 쫓겨나듯 바깥으로 나온겁니다. 이상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당연히 제말에 귀를 기울여 관심을 표명해야 됐음에도 그 반대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날의 만남은 초면이 아닙니다. 법조타운이 옮겨오기 이전에 경남도청 자리에 있을때 해직교사문제로 상담차 만난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반가워할줄 알았는데 실망이 컸습니다.
그후로 저는 제가 짜낼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고정된 편견의 벽은 너무도 두터워 진실을 알리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2003년12월말경에 경찰청 특수부와 연결되었습니다. 새벽2시경까지 문현동현장에 대한 설명회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날 오전중으로 결재만 떨어지면 즉각 행동을 개시 할것이라 했습니다. 수사관들 모두는 긴장한 낯으로 '대한민국경제를 살리는 사건을 우리가 해결하는구나'고 말 하면서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날고 기는 재주를 가진 도굴단이라해도 이제사 끝장이 나는구나!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결재라인이 경찰청장이 아니랍니다. 그때 처음 알았는데 청와대 민정수석이 한답니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때 특수4계에서 온 연락에 맥이 빠졌습니다. 또 실망입니다. 민정수석이 잘랐다고 했습니다. 바로 문재인 입니다. 문현동과 무슨 원수가 졌나? 억하심정도 유분수지 어찌 이럴수가 있는가! 저는 당신 문재인과의 지독한 악연에 몸서리를 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랬어도 그때는 청와대가 직접 금도굴단과 연결되었으리라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진실을 알았기때문에 지치지 않았습니다. 절망은 없는것입니다.
9전10기의 정신으로 계속해 관계요로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특히 청와대의 문을 집중적으로 두드렸습니다. 아무리 민정수석이 잘라도 청와대를 저는 포기할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노대통령과 저 사이에 문현동을 두고 인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너무도 높은곳에 계시기에 아무리 애를 써도 손이 닿지가 않았습니다.
결국은 청와대 홈페이지를 찾아내고 신문고에 금도굴사건을 정리해 올렸습니다. 연속해서 세번을 올리고 나서야 회신이 왔습니다. 대검찰청에서 직접 착수한다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게 무슨 말입니까? 고작 부산동부지청에서 수사를 할것이라는 통지서입니다. 유사이래 최초의 어마어마한 사건을 최말단 검찰에서 어찌 처리할까 걱정부터 앞섰기 때문입니다. 동부지청에서 불러서 갔더니 수사는 이게 무슨 수사입니까? 새파란 젊은 여자 서기가 주소와 이름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를 물어보더니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장난치는 것 이냐고 항변했더니 '사실관계조사'랍니다.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다음에 또 부른다기에 기다리고 있는데 한달이 지나가도 감감 무소식 입니다. 전화를 걸어보니 사건이 종결되었답니다. 사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고 끝이 난 것입니다. 아이들 장난도 이쯤되면 억장이 막힐 일입니다. 그때의 담당검사는 제주출신으로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은 성균관대학교 출신에 이름은 김원택이라고 기억납니다. 죽어라고 고함치는 소리는 외면하고 형식적인 시늉만 내고서 금도굴을 덮어버린 겁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반복되었는데도 저는 꿈을 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계시는 청와대가 범죄단인 도굴단과 연결된줄은 상상도 못한것입니다. 평범한 일개인인 저가 국가에 권력기관인 국정원, 검찰, 경찰이 총동원되어 문현동 금도굴사건을 봐주고 있다는 것을 어찌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다음에 등장한 해결사는 연합통신에 지방국장 이었던 조양일 입니다. 조양일은 문수석과 경남고등학교를 한 반에서 다닌 절친한 사이라고 했지요. 조양일은 내가 정리해서 전달한 서류뭉치를 들고 문재인을 만나기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문수석이 얼마나 바쁜지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며 투덜거렸습니다. 그때 문수석은 청와대 인근에 단독주택을 얻고 두내외가 생활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문수석의 얼굴을 알아 보기 때문에 접객업소에는 갈수가 없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문수석의 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조양일과 문수석, 부인 모두 세사람입니다. 뜸이 돌자 조양일은 가져간 서류를 보여 줬답니다. 그때 부산 자갈치 시장 신천지 백화점1층에서 다이버숖을 하는 채상훈이 말이 나왔답니다. 문재인씨는 채상훈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지요. 채상훈을 가리켜 '우리부부의 다이버선생'이라고 하더랍니다. 금도굴에 동원되어 제주도 등지로 '금'을 실어 나른 배 탐해호(170t)를 여러번 탔다고 했답니다. 멀리 동해바다 38선과 가까운 곳인 왕돌잠인가 대화퇴 까지도 함께 갔다온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채상훈이 '금'을 도굴할 때 다이버를 지휘한 책임자 입니다. 그날밤 조양일은 문현동 금도굴을 집중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두내외 분은 아무말없이 듣기만 했다지요. 속내를 털어놓지않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조양일이 누굽니까? 평생을 기자로 국장까지 올라간 사람입니다. 눈치만 9단입니다.
"내하고 할말, 못할말이 없는사인데, 좀 이상합디다. 문현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했는데도 희다, 검다 말이 없어요. 뭔가 당황스러워하는것이 참 이해할수가 없네요. 설마 그 친구가 도굴단을 ....,연결되었을리 만무하고..."
조양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날 전해준 장면이 떠 오릅니다. 시간이 흐른지금 그때 조양일이 골똘히 생각하면서 내 뱉은 말이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도굴단과 연결되었을리 만무하고'가 아닙니다. '바로 도굴단과 한 패거리로 붙었던것'입니다.
기자의 눈을 피하기가 어려웠겠지요. 그만큼 예리했을테니까요. 더욱 친한 친구사이라니 숨소리만으로도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나에게서 지분10%를 주겠다는 공증을 받고나서야 문현동사건 해결에 뛰어들었고 돈도 참 많이 썼습니다. 좋은 머리를 굴려 작업을 했기 때문에 소득도 많았지요. 도굴단의 두목 백준흠에게서 금도굴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서류와 사진을 한가방 가득 입수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입니다. 조양일이 날 이끌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부산법조타운에 법무법인 또 '부산'입니다. 이번에는 대표 변호사가 키가작은 젊은분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과 조양일은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던 모양 입니다. 나는 그 젊은 변호사에게 문현동에 대해서 설명 했습니다. 한참 듣고있던 변호사가 저에게 도전적으로 말했습니다.
"문현동에서 '금'이 나왔다고 했는데 '금'을 한조각이라도 가지고 있어요?"
조롱과 시비가 반반씩 섞인 말투였습니다. 도굴단의 편을 드는지 도굴단이 노린 핵심을 거론하며 복장을 질렀습니다. "'금'도 없는데 어찌 세상사람들이 믿겠어? 아무도 믿을사람이 없을거야!"
도굴단이 도굴을 감행하게된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라고 봅니다. 도굴단이 가장 앞세우고 있는 이유를 들어 핀잔 하고 야유한다면 깊이 생각해 볼 문제였습니다. 그의 말대로 '금'이 한조각 내 수중에 있었다면 미쳤다고 그를 찾아가겠습니까? 변호사는 능글능글 약까지 올리는듯 어디까지나 시빗조로 빈정거립니다. '금'도 없으면서 '금'이 도굴되었다면 이 세상천지에 누가 당신말을 믿겠소? 이것은 도와주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는 말이고, 오히려 도굴단의 빈정거림을 대변한다고 봐야지요. 마치 수사기관에 신고한 강도 피해자 앞에서 증거가 없으니 어쩔수없이 풀어 주었습니다. 그 강도는 다시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해놓고 다른 일당을 시켜 두들겨 패는 짓이나 같은 격입니다. 그때 도굴단의 편을 들던 변호사 정재성은 뒤에 알고보니 노무현의 조카사위 였습니다. 노무현과 문재인이 다 청와대로 올라가자 법무법인 '부산'을 맡아 경영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충제를 가만히 놔두어서는 안되었을 것입니다. 저를 두고 이렇게 생각했겠지요. 사방을 들 쑤시고 다니니 송충이 씹은 맛입니다. 언론에 간간히 문현동이 터져나오니 귀찮아 죽을 맛이었을 겁니다. 그때마다 소방수를 동원하고 물을 뿌려 진화를 했기때문에 일회용으로 끝을 낸것만 벌써 여러번째 입니다. 이리하여 결국은 저를 잡아 넣기로 작정했던 것이지요. 그리해야 조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저는 2005년9월6일 부산동부지청 서범준이란 애송이 검사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억울한 옥살이를 시작했고 무려44개월이나 징역을 살았습니다. 판결문을 보면 그 재판이 얼마나 ''개판'' 이었는가 잘 말해 줍니다. 검사 서범준의 공소장은 제 맘대로 완전 창작해 낸 소설입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판사 박종훈의 판결문입니다. 공소장과 판결문이 한자도 틀리지 않고 꼭 같다는 것은 무얼 말합니까? 미리 각본을 짜놓고 그 틀에 맞춰 억지징역을 살린것입니다. 한 구절만 인용하면 '부산 문현동일대에는 일본군이 판 어뢰공장도 없고 또 일본과 관련된 어떤 굴도 존재하지 않는데, 정충제가 사기를 칠 목적으로 박대통령 이발사인 박수웅이 보물을 찾던 실패한 굴을 일본굴 이라고 투자자 들을 속이고 금편을 편취했다.' 이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제가 2002년3월2일 완성한 지하 16m 수직구아래 수평굴의 정체가 중요하다고 강조 하였던 것입니다. 육군사관학교 지하 무기고 담당 토목과교수 김 모대령의 감정도 묵살되고 전문기술사 둘의 감정서도 묵살되었습니다. 심지어 대학교수들의 소견서도 묵살해 버린것이 그 좋은 예가 됩니다. 그렇다면 엉터리 감정을 한 이상의 전문가들도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하는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분들이 정확하고 정직하게 감정 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니 ''개판''이라는것이지요.
공소장이나 판결문대로 정말 박수웅이 실패한 굴로 사기를 쳤다고 할것같으면 뭣이 억울 합니까? 하나도 억울 할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미친 놈이라도 억울하다고 하지 않을것입니다.
제가 판 굴은 그때 박수웅이 실패한굴로 사기쳤다는 그굴이 아닙니다. 그 굴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굴인데 억지로 몰아 버리는데는 아무리 똑똑하고 재주가 좋아도 당 할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제가 주장하는 굴에서는 지금도 도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옹벽 위에 살고 있는 동네 주민들이 그걸 증명 할것입니다. 깊은 밤중에 방바닥 밑의 지하에서 굉음이 진동 한답니다. 집이 흔들리고 굉음이 진동한다는것은 바로 무슨 일인가 땅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민들은 수차에 걸쳐 관계기관에 민원을 넣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압니다. 중국에서 약탈해 온 금은 다 꺼내 처분하였습니다. 이제 수십톤씩 나가는 청동기물을 직경60cm 구명으로 꺼집어 올릴수 없기 때문에 조각조각 쪼개어 내는 작업을 하는것입니다.
지하어뢰 공장 속에는 지금도 중국에서 약탈 해와 숨겨둔 금동불상 36좌가 있습니다. 중국에 세번째 국보인 2m70cm에 달하는 비취로 만든 어마어마한 불상도 있습니다. 그것은 도굴두목 백준흠이 만든 지하어뢰공장의 내부도면 속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 비밀지도가 제 수중에 입수되어 있는데 그 것이 다 말해줍니다. 있는 위치까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걸 근거로 자신있게 폭로 하는것입니다. 물론 이런 보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당시 일제는 한반도 전체에 징용령을 내려 죄없는 조선청년 들을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그중 진해해군부로 끌고간 청년들 중 해방이 되고 나서 한사람이라도 살아돌아온 사람이 없습니다. 이 점은 국가기관인 일제 피해자 진상규명위원회(이하 '항재위')가 더 잘 알것입니다. 왜 살아 돌아간 사람이 없나? 이것은 당시 일제는 청년들을 살려서 고향으로 보낼수가 없었습니다. 살려서 보내면 당장 돌아서서 어뢰공장을 찾아 낼 것입니다. 그 속에 중국에서 약탈해온 보물을 숨겨놓았는데 그리된다면 헛수고입니다. 이래서 산채로 45년5월말쯤에 1,000여명의 죄없는 목숨을 지하에 몰아넣고 생 매장을 시킨 거지요. 실제로 도굴단의 두목 백준흠이 지하에 내려가 두개골을 세어 봤답니다. 무려 980개라고 백준흠에게서 직접 들은 사람이 그걸 증언 했습니다.
이러니 저는 결사적으로 수평굴의 정체를 밝히기위해 동분서주 할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앞에서 말한 대학교수, 기술사등 세명의 소견서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무엇이 답답해서 제 편을 들고 거짓 소견서를 작성할수는 없습니다.
권력의 작용이란 무서웠습니다. 흑과 백은 누구라도 구분이 가능한 일 입니다. 빤하게 보이는 이것조차도 보물을 통째로 삼키겠다고 바꿔치기 한 것입니다. 저를 지치게해서 김을 빼고 저에게서 약점을 파악하기위해 조양일을 이용했습니다. 노무현의 조카사위 정재성을 만나고 온 직후 조양일은 발을 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노골적으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문재인이 때문에 입장이 난처한데 어찌 이 일을 더 이상 할 수 있겠소?' 부산에 가기전 이미 조양일은 변했던 것이지요. 공증해준 지분10%도 포기 한다면서 문현동에서 멀어져 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나서 2005년 봄입니다. 항쟁위, 초대사무국장 변호사 최봉태는 부산 문현동현장에 부하 둘을 출장 보냈답니다. 문현동 현장에 지하어뢰공장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파악해 보라고 했다지요. 어뢰공장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속에 분명히 유골이 재여 있다는 말도 무게를 싣게 되는것입니다.
갔다온 직원들의 복명서에 따라 윗선에 보고할 보고서를 만들었답니다. 윗선이 또 청와대 민정수석 이었습니다. 보고서의 요지는 '일제어뢰공장이 존재할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징용자 유골이 재여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으니 확인을 해 볼수 있게 결재를 해 주십시요' 이런 내용이었답니다. 주무관청에서 최종결재권자인 상급부서에 결재를 올렸다면 응당 OK 싸인을 받는 것이 관례입니다. 아니다 다를까, 이번에도 문재인이 또 잘라버리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이전에 문현동과 문재인의 관계를 전혀 알 수가 없는 최봉태는 기가 막혀서 한동안 많이 투덜거렸답니다.
이 말은 최봉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제피해자 연합회 관계자가 최봉태로 부터 직접 듣고서 저에게 전해준 말 입니다.
마치 가위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던 듯 문현동만 올라오면 인정사정 없이 자르는 것이 청와대 민정수석의 주된 업무 였습니다.
문재인씨! 당신은 참으로 뻔뻔하고 양심도 없는 인간입니다. 어찌 함경도 아바이로 피난민의 후예인 당신이 부산바닥에서 인권변호사를 했는지 당신의 두얼굴에 가래침을 뱉아주고 싶소.
역사에 대한 작은 의혹 한점이라도 사실 여부를 확인 해 보는것이 항쟁위 직원들의 마음 가짐일 것입니다. 설령 이러한 제보가 대한민국 국토가 아니고 외국이라고 해도 예외는 될 수 없습니다. 해당국가의 협조를 얻어 땅을 파고 확인해 보는것이 맞는 말 입니다. 조사하겠다고 하는데 하지 말아라! 한데는 분명히 까닭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민정수석의 책상위에 어뢰공장의 존재여부에 대한 정답이 있었나요? 존재여부를 판단해 볼 수 있는것은 항쟁위 설치규정에 의거 강제로 현장의 수직구 속으로 들어 가는것입니다. 그리고 수평굴의 정체를 알아보는것으로 시작해야 됩니다. 수평굴이 박수웅이 판 굴인가? 아니면 일제때 굴인가는 전문가가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박수웅이 실패한 굴이 아니라는 것을 구별해 내는것은 간단합니다. 첫째 화약발파의 흔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박수웅은 현행법에 의거해 화약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외 굴의 생긴모양, 방향, 길이 등만보면 당장에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이로써 박수웅이 굴이 아닌것이 밝혀지면 관련된 사람 모두를 출국정지 시키고 굴비 엮듯 착착 잡아들여야 됩니다. 금도굴의 진상은 당장에 밝혀 질것이고 배후세력도 더 이상 숨을곳이 없을것입니다. 비로소 진실은 제 자리를 찾고 그 동안 피 맺힌 세월이 눈녹듯 원한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죽도록 고생해서 문현동 입구에만 서면 당신 문재인은 가위를 들고 기다리다가 싹뚝!싹뚝!문현동을 잘랐습니다.
인생10년을 소모하며 죽기살기로 찾아낸 보물을 통채로 집어 삼켰습니다. 세상을 속이고 최초발견자 정충제를 바보만든 장본인이 바로 당신 문재인 인것 입니다.
어떤 국가기관도 그 많은 '금'을 몰래 독차지 할 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청와대 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알고도 가만 있는지 몰라서 가만 있는지 이명박 정권은 참으로 바보멍청이 정권입니다. 유사이래 처음인, 이 건 한건만 밝힌다면 정권을 문재인이 만든 민주통합당에 넘겨주지 않아도 됩니다. 도둑놈들을 비호한 파렴치한 금도굴에 공범이 만든 민주통합당은 그 즉시 공중분해될것입니다. 왜 그걸 모르는지 억장이 무너집니다.
진실이란 아무리 숨겨려고 애써도 숨길수가 없습니다. 죽일려고 해도 죽지가 않는다고 배웠습니다.2010년4월 초순경 부산 YMCA 총무가 당신에게 단행본 1권을 갖다 준적이 있지요? 그 책의 제목이 바로 '황금백합작전'입니다. 그 책의 저자는 바로 접니다. 저는 책 5권을 묶어들고 부산 YMCA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청와대로 가기전 당신은 부산 YMCA 이사였습니다. 그걸 알아낸 저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꼭 그 책을 당신에게 전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4권은 총무가 알아서하고 1권만 문재인에게 전달해 주라고 한것입니다. 그후 전달되었는지 확인해 보니 전달 되었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읽어봐서 알겠지만 그 책에 노무현과 당신이름은 실명으로 등장시켰습니다. 이미 그때 당신을 도굴단과 공범이라고 세상에 알렸습니다. 당신의 반응을 측정 해 보기위해 일부러 책을 전달해 주었던것입니다. 그랬는데도 당신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청장 조현오는 고소하면서 왜 진작 고소할 대상인 나에 대해서 가만 있었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당신의 공범들인 백준흠, 김성태가 다 알아서 할것이기 때문에 그랬지요? 민정수석 자리를 이용하고 막강한 권력을 동원해 검찰, 법원을 주물렀지요. 그래서 무고한 저에게 옥살이를 시킨 장본인도 당신이고요, 국정원을 동원하여 문현동에 금을 빼돌린것도 당신입니다.
지금부터 국정원이 문현동에 개입된 내용을 말씀드립니다. 뜻밖에도 국정원에 안전과장이란 사람이 포착되었습니다. 일개 평범한 국민이 국정원에 안전과장이란 직책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안전과장이 뭐하는 자리냐? 알아보니 국정원 소속에 시설이나 장비따위를 관리하는 부서랍니다. 김민수(48년생)라는 자가 안전과장인데 전라도 광주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가 관리하는 안가에서 두목 백준흠을 보호해 준다는것도 알았습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호해주고, 위치추적기 까지 달아주었다지요. 그외 또 해준것이 뭡니까? 두목 백가놈이 입이싸서 나불거렸기 때문에 그 말이 제귀에 들렸습니다. 확인해 보니 틀림 없었습니다.
백가놈이 2004년11월달에 서울 서초동에서 지리산까지 납치를 당한적이 있었습니다. 또 그런일이 생기면 큰일 납니다. 다 들통이 나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혀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고, 국가안보에 사용되는 중요시설인 안전가옥이 여관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호텔입니까?
도둑놈을 보호해주는 국가 정보원! 국가안보와 상관있습니까? 이렇게 요상스러운 일을 제가 모두 알아버린겁니다. 안전과장인 김민수는 확인되지 않은 다른 국정원 동료 둘 까지 대동하고 백가놈과 술집에서 희희덕거렸다지요. 그 술집 이름이 강남구청 인근에 고급룸싸롱, 하필이면 이름도 '터널'입니다. 터널의 사장 한진순이 모든것을 다 털어놓았기 때문에 제가 잘 알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국정원에 안전과장이 김민수란것은 연합통신 지방국장 조양일이 알아낸 사실입니다. 터널에서 상대한 거물이 또 한사람 더 있습니다. 전 해병대사령관이 그분입니다. 백가놈이 문현동에서 빼낸 '금'을 문재인이 탔던 170톤 탐해호에 싣고, 숨길려고 제주도까지 수십차례 다녔습니다. 그리하여 제주도의 해안경비를 맡고있는 해병대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끌어들인자가 MBC 싱글벙글쇼의 진행자 강석입니다. 강석이 해병대출신입니다. 강석이 앞장서서 백가놈에게 김명환중장을 붙혀준 것입니다. 강석은 그 댓가로 얼마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거액을 받아 광진구 자양동에 '스파헬스'라는 엄청난 규모의 목욕탕을 샀답니다.(이 헬스크럽에서 코메디언 김형곤이 죽었다)
도둑놈 주제에 귀신잡는 막강한 해병대사령관을 친구 만나듯 예사로 만나 술을 마신것이 코메디 입니다. 둘은 만날때 마다 발렌타인 30년 산만 마셨다고 미모의 주인 한진순이 말했습니다. 김장군은 두주 불사형으로 맥주잔에 가득 따라 맥주마시듯 원샷으로 털어 넣었답니다. 백가놈은 홀짝홀짝 입에 잔을 대는 시늉만 했는데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주변을 두리번 거렸답니다. 술이 취한 모습은 한번도 보지 못하고 언제나 쌩쌩했는데 특이한 행동은 안절부절 주위가 산만했다는 말도 했습니다. 불쌍한 놈입니다. 얼마나 불안했길래 그리 했을까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국정원과 귀신잡는 해병대가 번갈라 서너달간을 '터널'에서 살다시피 했다지요. 그럴때마다 바깥출입문 셔트를 내렸답니다. 그들 귀하신 몸들만 나타나면 다른 손님은 일체 받지 않았답니다. 국정원직원 셋은 백두목으로 부터 청나라때 도자기 두점,세점씩을 선물 받았답니다. 도자기는 청나라때 것이 가장 비싸다지요. 이것이 어디서 났을까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문현동어뢰공장 속에서 나온겁니다. 한진순이 말한것 뿐만 아니고 전화녹취록이 모든 진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최고 권력의 지시에 가장 민감한 기관입니다. 권력에 입김과 밀접한 곳이지요. 국가안보의 대들보 국정원과 이토록 두목 백가놈이 깊이 연결된것은 무얼 말해줍니까? 청와대의 지시가 없이는 어찌 백준흠을 국정원에서 멕여주고 재워주었겠습니까? 이런 썩은나라가 이 세상천지에 또 어디에 있을것입니까?
한때는 충성을 다 바쳤던 배신의 주역 김성태 입니다. 덩치가 황소만한 이 놈은 표리부동한 인간의 전형입니다. 문현동의 '금'을 매개로 백준흠과 만난 이 놈은 백준흠이 청와대와 접목되자 백가를 신처럼 떠 받들었답니다. 2002년3월2일, 수직구가 완성된이후 나는 그런것도 모르고, 도대체 무식한 이 놈이 뭘 믿고 저토록 안하무인격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때 까지도 미몽속을 헤메고 다녔습니다. '머슴살이 하던 놈이 하루아침에 집주인을 쫓아내고 오늘부터는 내가 이집주인이요'하듯 기고만장한것은 누굴 믿고 저러나? 그때 그 놈이 나에게 큰소리치며 당당하게 한말이 한마디 있습니다.
"형님! 제 말을 듣지 않으면 나중 두고두고 후회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지분20%을 달라는 협박입니다. 백가놈이 노무현 쪽과의 접묵을 자신있게 말하니까, 내가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면 백가놈이 하자는 대로 청와대를 끌어 들이겠다는 나에게 보내는 최후 협박성 통첩 이었던것입니다. 그때 그놈이 한마디 더 한말이 생각 납니다.
"후회 할 짓은 하지 마시요!"
훈계하듯 한마디 던지고 비웃으며 그 놈은 돌아서 갔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놈이 뱉고 간 이말은 두고두고 녹음되어 귓전을 때렸습니다. '후회 할 짓을 말아라!' 막상 당하고 나서 세월이 흐르니 그때 그 놈이 던지고 간 이 말 두마디가 가슴을 후려쳤습니다. 그때 내가 이놈의 요구를 수용했드라면 징역살이도 하지 않았을것인데..., 또 처자식의 눈에서 눈물을 쏱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솔직히 도둑놈의 말을 듣지 않은것을 후회 할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만약 그때 내가 그 놈이 하자는대로 순순히 응했다면 저는 쥐도새도 모르게 황천객이 되었을것입니다. 어떤식으로 든지 백가놈은 나를 제거 했을것입니다. 이럴때는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구나! 하늘이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견디어 낸 세월입니다. 수직구를 판 업자, 전 수산 중공업 회장 박주탁(64세)의 꼬임에 내가 넘어가 도굴단의 일원이 되었다면 어찌되었을 까요? 이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들통날것이고 이름 앞에 '도둑놈'이란 수식어를 달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 자식들이 세상사람들로 부터 손가락질 받게 하지 않은것만 해도 천만 다행입니다. 도둑놈 김성태 위에는 두목 백준흠이 있습니다. 그 위에는 청와대에 경찰권,검찰권을 떡 주무르듯 행사하던 문재인이 있었지요. 또 그위에 최고 높은 어른은 죽은 노무현 입니다.
이런등식이 성립되는 순간, 소눈깔같은 퉁방을 눈알을 두리번거리던 천생타고난 도둑놈 김성태가 큰소리 치고간 말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우스운 일입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어 대한민국이 서글퍼 웃는 웃음이 더 우습 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다 같이 태어나 살고 있는데도 저에게는 이 조항이 너무도 먼 곳에 있는 듯 느껴집니다. 국가 권력의 잘못 적용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것입니다. 도둑놈을 편드는 나라,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국가권력이 잘못 적용 되는것은 마치 조직폭력배가 나라를 다스리는것이나 다름 없지요. 그래서 지도자는 철저히 도덕성을 검증해서 잘 뽑아야 저 같은 불행한 사람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권익위원회? 인권위원회? 아무소용이 없는 세금만 축 내는 기관입니다. 찾아갈 곳이 그곳 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도 마이동퉁인 곳이 이 두곳이었습니다. 문현동 금 도굴사건에 비호 세력은 대한민국에 촘촘한 그물망처럼 널리 퍼져있기에 그랬던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해결될 수가 없다는 판단에서 저는 어쩔수 없이 중국행을 선택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에서 이 글을 씁니다. 딸자식의 결혼식이 임박해 오는데 참석못하는 애비는 눈물로 통곡합니다. 황금백합작전이라는 문현동 금도굴을 폭로하는 책을 낸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2011년12월20일 인천에서 중국행 배를 탔습니다. 그리고 이틀뒤에 '체포영장'이 발부된것을 알았습니다.
문현동 현장에 수직구 하나를 뚫을때 까지 걸린시간이 10년입니다. 지하를 투시하는 능력이 없는 인간이다 보니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피와 눈물과 한숨과 고뇌와 번민의 세월 입니다.
이렇게 소원하던 구멍 하나는 결국은 뚫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도둑놈 김성태가 그때 처음 한 말이 '형님 놀라지 마이소, 인자부터 고생끝! 행복시작입니다.' 물속에 잠긴 지하16m 수평굴 속에 첫 장면을 보고 전화로 전해온 말입니다. 황토색 마다리 포대가 꽉 들어차 재여 있고 포대 마다에는 일본식 한자가 세자씩 찍혀 있었습니다. '伊藤忠'이 세자입니다. 나중 다이버가 내려가 마다리포대속을 뜯어보니 '금조각'이 들어 있었답니다. 이러고나서 지분을 가르는 과정에서 배분문제로 다툼이 벌어졌고 배신으로 바뀐겁니다. 백가놈이 나타난 싯점이 바로 그즈음 입니다. 백가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김성태 그 놈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렇게 날뛸수가 없었습니다. 도굴은 현재도 진행형으로 계속되고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문현동에 바친 내 인생의 21년은 어디서 찾습니까?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처럼 이리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이게 뭡니까?
지하에 밀차레일의 길이만 삼십리도 더 된다는 일제어뢰공장은 지금쯤 개발되어 부산에 관광명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와 연신 황금알을 쏱아놓고 갈 것입니다. 실제로 문현동지하 수평굴 속을 감정한 서울마포에 한자엔지니어링 대표 진수웅(73세)께서는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스페인의 지브랄타 해협에 가봤지. 영국군들이 2차 대전때 파놓은 지하요새거든, 굉장해 어마어마하게 넓은 지하굴인데 말이야, 음악당도 있고, 레스트랑도 있고, 별거 다 있어.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 들이 어찌나 몰려오는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야! 내 생각에 말이야 문현동은 지브랄타보다 더 넓을것 같애."
재여져 있던 '금'은 침체된 국가경제를 살리는데 큰 활력소가 되었을것입니다. 남북의 대치 속에서 한반도통일에 대한 촉매제로 문현동은 큰 역활을 했을것입니다. 세계에서 두번째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입니다. 중국에 국보3호 비취불상(2m70cm)이 그속에 있습니다. 백준흠이 만든 비밀지도에 그 위치가 상세히 표시 되어 있습니다. 이 비취불상을 인양해 올리고 중국에 돌려주면 68년만에 돌려받은 중국은 감격할 것 입니다. 이래서 남북관계에서의 주도권을 우리한국이 거머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지나간거지요. 죽은 노무현! 살아있는 문재인! 그대들 두사람은 이래서 바로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국민전체의 '공공의 적'이 됩니다. 능지처참해도 분이 풀릴 일이 아닙니다. 만고천추에 민족반역자인 그대들은 갈아마셔도 시원치가 않을것입니다.
2010년1월중순, 금도굴사건을 세상에 폭로하는 책 '황금백합작전'이란 단행본 한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로부터 20여일쯤 지날즈음, 두목백준흠이 출판사에 사장을 협박하는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앞서 2005년봄에 뉴시스통신사에 사회부장 김병헌이 문현동 금 도굴사건에 관련해 5번이나 기사를 내보낸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도굴단의 이름을 모두 실명으로 썼는데도 고소를 하지 않았던 놈 들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출판사 측에서 이름을 한자씩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우겨 한자씩 바꾸었는데도 트집을 걸어온 것이지요. 그 만큼 책 출간에 겁을 먹은겁니다. 출판사사장과 저는 백준흠일당에 의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출판사 사장은 오라는 날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달랐습니다. 겁없이 나타났다가 또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없는죄도 날조해 내고 총각도 처녀로 바꿔치기하는 대한민국에 수사기관입니다. 까딱 잘 못하면 영원히 문현동의 진실이 빛을 못 볼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저는 지금까지 잠수함 신세입니다.
앞서2003년도에 경남산청경찰서에서 조사 받을때 일 입니다. 백준흠이 수사과 책상위를 뛰어 다니는 난동에 가까운 소란을 부렸습니다. 그런 그를 수사관들은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잔뜩 위축되어 뭔가 겁을 집어 먹은 표정들이었지요. 오히려 백준흠에게 잘 못 보일까봐 절절 기는 모습에 저는 당혹감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2004년도에 그때의 해답을 알고 저는 쓴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탁종수(48년생)라는 해병대출신의 깡패가 용산역앞에 있습니다. 이 자가 백준흠의 말을 믿고 2002년5월에 오천만원을 빚내어 백준흠에게 투자했습니다. 1%지분을 받은것은 도굴단이 만든 지분 배정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내가 가지고 있다). 이자가 제한테 월경 귀순해 왔습니다. 그리해서 탁종수가 모든걸 다 털어 놓았던것입니다. 경찰청 높은 나으리께서 직접 산청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답니다. 백준흠이 편을 들어주라고 지시를 한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말로만 법치국가이지 문현동에 대해서는 '마피아의 나라'입니다. 저는 그때 탁종수가 말해 준 그 경찰나으리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나으리 역시 정권의 실세인 청와대 문재인이 시키는대로 충실히 따른하수인에 불과 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지요. 경찰권, 검찰권을 제 하고싶은대로 주무를 수 있었던 문재인, 당신말고 이 세상천지에 누가 백준흠이 같은 도독놈을 봐줄 놈이 있을까요? 당신네들 패거리가 살기위해 백준흠을 방치할수 없었던것이지요. 청렴하고 선량한척,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 '야누스'가 바로 당신의 진면목이 아닌가요? 뒷전에 숨어서 권력의 칼을 휘두르며 온갖 더러운 지시와 공작을 주도한 장본인인 당신을 어찌 내가 모를까요? 무서운 빨치산도 파헤친 정충제가 아닙니까? 그밥에 그나물이라고 한가지만 보면 저절로 전체를 알 수가 있지요. 단적인예가 2012년 1월10일에 터져나온 정윤재 사건입니다. 민주통합당이 출범 한 직후 입니다. 정윤재가 누구냐? 당신 문재인의 심복똘마니가 아닙니까? 청와대에까지 데리고 다닌 의전비서관이지요. 이 자가 은행으로 부터 뇌물을 챙겼다고 검찰에 구속된 겁니다. 그 뉴스를 멀리 중국에서 보고 당신의 향후 속셈을 간파했습니다. 4월총선에 사상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고 여세를 몰아 12월대선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전초전으로 민주통합당을 만드는데 막후에서 주도적으로 조정했지요. 문현동에 '금'을 처분한 비자금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을테니 자금은 걱정안해도 될것이고, 대표 간판주자로 내세운 사람이 한명숙입니다. 노무현 시절에 국무총리도 시켜봤고, 또 초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겨 봤기 때문에 믿을수 가 있지요. 이래서 이 여자를 전면에 내 세웠지요? 당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문현동에 의혹을 영원히 지우개로 지울테니까요.
노무현의 죽음을 저는 타살이라 봅니다. 문현동 금도굴 사건에 대입시키면 답은 간단히 풀립니다. 비자금을 꼬불친 대통령이 어디 한 둘 입니까? 두꺼운 뱃짱과 끈질긴 뚝심이 노무현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노무현이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약한 사람은 절대로 승부수를 던질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은 죽기아니면 살기로 승부수를 던졌고 이것이 주효했습니다. 그래서 운 좋게 대통령에 당선 되었던거지요. 그런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는 자살하지 않습니다. 밀림이 나타나도, 사막이 가로 막아도 능히 헤쳐나갈수 있기때문입니다. 이래서 나는 노무현이 타살 당했다고 보는겁니다. 대검중수부에 끌려가 이인규로부터 문현동에 대해서 심한 압박을 받았습니다. 두번째 끌려가면 다 들통날것입니다. 이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 뿐입니다. '도마뱀 꼬리 자르기'. 이래서 대통령노무현은 희생양이 되었던것이라 봅니다. 전체를 살리기위해 개인을 잘라버린 배후에 무서운 당신이 있었다고 보는데 당신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팽' 당한 점에서 보면 노무현이나 저나 피차일반으로 둘다 문현동에 피해자가 됩니다. 다만 틀린점이 있다면 노무현은 죽었고 저는 살아있다는 차이는 있습니다. 결론은 '노무현이 자살했나? 타살인가?'에 대한 답은 문현동 수평굴 속에 있습니다. 이 의문만 풀리면 모든 문현동에 의혹도 해결됩니다. 세간에 떠 돌아다니는 쓸데없는 논쟁과 유언비어도 사라질것입니다. 또한 저역시 떠돌이 생활에 광야를 졸업하고 따뜻한 가정으로 귀가 할수가 있습니다. 빨리 집에 들어가야 아내의 두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 줄 것이 아닙니까?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제 주장에 진위여부만 검증하면 간단히 끝납니다. 문현동에 촛점을 맞추고 제가 2002년3월2일 완성한 수직구속으로 들어가 보면 모든 해답이 나타날것입니다. 맞다, 틀리다 말만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백문이 불여 일견'이란 말처럼 지하16m 수평굴 속만 살펴보면 다 알수 있습니다. 돈도 얼마 들지 않습니다. 이 일을 왜 못합니까? 국민의 세금으로 존재하는 항쟁위가 있지 않습니까? 항쟁위 설치규정을 적용하면 어떤사유지라도 다 들어갑니다. 수직구에 콘크리트로 막았다고 해도 문제없습니다. 뜯어서 따라 들어가면 됩니다. 큰공사도 아니고 며칠 걸리지도 않을 겁니다. 그리한다고 결정되면 저는 그 즉시 광야에서 사랑하는 대한민국으로 당장에 날라가겠습니다. 대신 도굴단들이 지분을 갈라먹은 배정표에 있는 명단에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된 도독놈들은 빠져 나갈수 없도록 출국금지 조치는 해놔야 됩니다. 다시 잡아 올려면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들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문재인 당신은 이글을 보는 즉시 나, 정충제를 고소 하십시요. 관계당국에서 신변의 안전만 보장해 준다면 저는 즉시 귀국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시킬 것입니다. 이리하여 당신과 나는 전국민의 시선을 법정으로 모으고 공명정대하게 '시시비비'를 따져 봅시다. 금도굴 배후에 당신과 노무현이 관여 했는지는 당장 밝혀 질것으로 확신 하기 때문에 자신 합니다.
대한민국 만세!라고 우리나라 좋은나라라고 목청이 터지도록 만세를 부를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합니다. 이리되는 날, 문현동 지하에 1,000여구 중음신들도 좋아서 춤을 출것입니다. 갑갑한 지하의 차거운 물속에서 드디어 풀려나는 구나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억울하게 생매장 당한지 햇수로 68년만에 생매장 당한 의문의 진실이 모두 드러날테니 말입니다.
안녕하십시요.
(뒷장에 도굴단의 명단을 공개 합니다. 이글의 진실을 인정 받기 위함 입니다.)
2012.02.13
대륙의 광야에서 정 충제
일제지하어뢰공장 최초발견자 정충제는
2002년3월2일, 문현동1219-1번지에 수직구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상황은 숨이 막힐정도로 급박하게 전개됩니다. '금'이 발견되지 않고서는 이런일이 생길수가 없는일입니다. 그 세달간의 일정을 간략히 요약합니다.
3월16일 지하4m부터 물에포화, 도굴주범 김성태와 자갈치 시장입구 신천지 백화점에서 다이버 숖을 운영하던 다이버 채상훈이 의기투합. 일제 Sony카메라로 수직구 속을 촬영, 지하16m아래 수평굴 속의 첫장면 일본식 한자'伊藤忠'이 찍힌 황토색 마다리포대 발견, 꽉 들이차 재여 빈틈이 없었다.
3월17일경 김성태와 찰떡궁합으로 두목 백준흠 합병. 서울신사동에서 활동하는 두목 백준흠이 채상훈의 소개로 등장.
3월20일경 김성태는 마다리 포대속을 확인하니 '금편'이 들어있다고 했음.
3월27일경 도굴주범 김성태는 최초발견자 정충제에게 도굴을 제의. 정충제 일언지하에 거절.
4월5일 서울시청 후원에서 도굴단들 정충제 납치기도. 배신이 일어 났음을 인지.
4월28일 현장땅 주인인 조규혜, 정문균으로 부터 광주에 김홍랑이 550평중 300평을 싯가의 세배를 주고 매입. 나머지 250평의 지주 정문균은 땅을 팔지 않고 스스로 도굴단에 합류.
5월13일 도굴단이 결성. 부산시 남포동 피닉스 호텔회의실에서 임시주총개최. '법인'포세이돈 살베지 결성. 각자 금도굴에 대한 지분배정.
5월28일 문현동 현장에서 '고사'지냄. 서울에서 큰 무당 10여명동원, 청와대 여성담당 비서관 신필균 참석, 서울경찰청 차장 김기영 참석.
도굴단의 명단
1. 백준흠()금도굴지분 7%배당. 도굴단의 두목이다. 이 자가 정치권과 접목시킨 장본인, 한국사회체육회 산하 항공스포츠연합회 회장이란 직책이 있었다. 노무현과 같은 동호인으로 서로가 잘 알고있는 친밀한 사이였다.
2. 김성태() 금도굴지분 8%배당. 경남 삼천포가 고향이다. 나이트클럽을 경영하여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아 창원으로 이주. 이후 창원공단에서 기계부품공장을 경영하다 부도. 백수건달로 부산조방앞에서 죽마고우 조읍규(돌팔이 치과의사)를 도와 주며 연명하다. 정충제를 만남. 뒤에 알고보니 시장에 좌판을 하는 불쌍한 아주머니 들에게 춤을 가르쳐주는 춤선생으로 불쌍한 여자들에게서 돈을 갈취하는 제비생활을 했음이 밝혀짐.
3. 김명주() 금도굴지분9%배당. 도굴주범김성태의 장녀다. 이것 하나 만으로도 김성태가 한 짓(?)을 증명할 수가있다. 아무직업도 없는 미혼의 딸에게 '금'도 나오지 않았는데 왜 9%라는 지분을 배정 했겠나? 음흉한 이 도독놈은 자신의 친구, 후배, 딸까지 동원하여 자신의 몫을 분산한 것이다. 금융불량자로 자살 일보직전에서 재벌로 변신하려 시도하려는 속셈을 알수 있는 대목이다. 딸에게 왜 9%를 배정했는지 집중적으로 추궁하면 금도굴의 실상을 당장 파악 할 것이다.
4. 채상훈() 금도굴지분6%배당. 자갈치 시장입구에 있는 신천지 백화점1층에서 다이버 샾운영. 해군 UDT출신으로 다이버계에서 알아주는 실력자. 김성태는 문현동현장에 수직구가 완성된직후 이 자를 우연히 만났고, 이후 백준흠과 연결시켜 날개를 달게 되었다.
5. 류동우() 금도굴지분5%배당. 경남남해, 설천면 출신이다. 자신의 부친이 설천면장을 했다는것을 가문에 훈장으로 자랑한다. 자랑하는것이 하나더 있다. 자신의 친동생이 숭실대학교에서 정년을 마친 경제학자 유아무개라고 동네방네,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한다.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2대 국회의원이었던 윤병호란 자랑도 빠지지 않는다. 부산대신중학교1회졸업생. 경남상고를 거쳐 성균관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5선국회의원이었던 고 최치환 의원의 비서로 20년이상을 국회에서 보냈다. 수직구가 완성될 당시는 고양시 행신역앞에서 24평아파트에 거주했다. 미혼인 딸들이 넷이나 우글거렸는데 도굴단에 따라가서 팔자를 고쳤다. 딸 넷 모두를 무궁화다섯짜리 특급호텔에서 호화판으로 연속 시집보냈단다. 축의금도 사절했다니 참석했던 하객들은 '어디서 돈이나서 벼락부자가 되었나?'의아스러워 했다한다.
6. 김성호( 금도굴지분12%배당. 인천, 부평에사는 이 자를 최초발견자 정충제는 사실상모르는 사람이다. 뒤에 알고 보니 탐해호(170톤)의 선주로 탐해호를 도굴단에게 제공하는 댓가로 12%의 지분을 받았다고 했다. 탐해호는 애당초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동력자원 연구소 소속인데 IMF가 오면서 매각했고 채상훈이 이 배를 운영하다 삼애인더스 이용호게이트에 연루되는 바람에 쫄딱 망해 김성호에게로 팔려간 배 였다. 문현동에서 도굴한 '금'을 제3의 장소까지 운반 은닉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배가 필요했을것이다. 이리하여 12%라는 많은 지분을 배당 받은것이다. 그때의 항적부를 조사해보니, 탐해호는 2002년8월부터 부산에서 제주도, 또 부산에서 서해안에 군산, 또 동해안에 후포등을 집중적으로 다닌것이 파악되었다. 이것도 문현동에서 도굴된 '금'을 새벽마다 청소차가 싣고 갔고, 청소차는 정박중인 탐해호에 옮겨 싣고서는 이상의 세군데에다 집중적으로 운반해 숨긴것으로 추정된다.
7. 김홍랑() 도굴지분5%배당. 현장땅 300평을 싯가의 세배쯤 주고 2002년 4월 28일 등기이전. 청와대 안주인인 이희호여사의 전속기공사라고 했음. 가족은 전남광주시 치평동 금호아파트에 살고 자신은 일주일에 반은 서울 압구정등에서 '명상원'이란 기공치료소를 운영. 이때 박계동 전의원이 약 2년반 정도 이 여자에게서 기공수련. 박계동의 말에 의하면 그 당시 월세 줄 날만 되면 돈이 없어 쩔쩔 맸다는데 지금은 고급벤츠 외제승용차에 110평 짜리 최고급아파트에 부천에 수천억짜리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함.
8. 탁종수() 금도굴지분1%배당. 일명 '탁대령'으로 불리고 있으나 실제는 해병대 사병출신. 2002년당시 평소알고지내던 백준흠으로 부터 문현동에 금도굴을 듣고 오천만원을 빚내어 백준흠에게 투자. 이 자에게서 문현동 도굴에 실상을 들은적이 있다. 도굴은 주로 자정부터 새벽세시까지 진행되었다고 했다. 현장땅의 공중에도 그물망까지 쳤다함. 그것은 혹시라도 항공촬영을 피하기위해서 였다함. '금'은 일부는 바깥으로 인양되고 대부분의 '금'은 더 깊은곳으로 숨겼다고 했음. 그때 이 자가 나에게 증표로 써준 확인서가 그걸 말해준다. 용산역 앞에서 건달로 지내는데 가족도 없다고 했다.
9. 하진수() 금도굴지분8%배당. 경남, 함양군 백전면 출신으로 함양농고를 졸업했다. 2002년 당시에는마포, 불교방송국옆에서 지리산 흑돼지라는 식당을 경영. 이 자의 큰아들이 불구자다. 김성태와는 친구로 지내는데 2002년6월경 현장에서 김성태와 대판 싸움이 붙은적이 있다. 하진수는 김성태에게 일금 1,000억원을 요구했고 놀란 김성태는 1,000억이나 어디에 쓸것이냐고 고함을 질렀단다. 하진수 왈, 자신의 아들이 장애인이니 자신의 꿈이 장애인 협회 회장이 되는것이라고 응수했단다. 일천억정도는 있어야 회장이 될것이니 내놓으라고 어름장을 놓았단다. 일천억이 누구네집아이 이름정도 되는것에 놀라지 않을수가 없다. 그후 식당을 접고 완전 고급사람이되어 날린다는 말이었다.
10. 정문균() 금도굴지분 3.5% 배당. 경남 거창군 출신인데 참으로 뻔뻔하고 악질이다. 내가 완성했던 수직구속에 총 여섯번을 들어갔는데 그럴때마다 이 자가 못들어가게 괴롭힌 것은 말도 못한다. 도굴이 완료되고 근처에 존재하던 박수웅이 굴인것처럼 위장, 변조 했기때문에 정체를 알기위해 결사적으로 여섯번이나 들어갔다. 그것은 가처분 신청재판에서 일부승소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자가 백준흠등 도굴단 몰래 도굴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나중 들통이나고 김성태, 백준흠등과 대판 싸움을 벌인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했다. '내 땅에서 내가 건져 먹는데 네놈이 무슨 상관이냐?'면서 뱃짱을 내민것이다. 어이가 없는 백준흠과 김성태는 이런 정문균을 죽일수도 그냥 둘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한다. 몇번이나 붙었는데 대판으로 싸울때는 실제로 정문균이 금 도굴을 신고하겠다면서 남부경찰서 정문앞에까지 갔다온 적도 있다고 했다. 물론'쇼'였겠지만 진짜로 다털어 놓았다면 문현동금도굴은 저절로 해결된 뻔 했을리란 생각이다. 도굴단끼리 서로 도둑놈이라고 멱살잡이를 했다니 참으로 요질복통할 일이 아닙니까? 문현동 일대에서는 소문이 나기를 이자가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말이 파다하다.
11. 김임권() 금도굴지분1.5%배당. 2002년 3월2일,수직구가 완성되고 4월초순경 뜻 밖에도 서울에 수산중공업 전 회장 박주탁이 찾아왔단다. 박회장과 김임권은 경남 남해군 창선면 출신으로 그곳 중학교 동기생이다. 서로 입에든것을 꺼내어 나누어 먹을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죽마고우이다. 김임권은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 입사하여 칠,팔년 잘 다니다가 거금을 횡령한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적이 있었다. 횡령한 이유는 고향에서 고생하는 부모형제를 위해 자신의 한몸을 던져 희생했단다. 공양미 3백석에 팔려간 심청이처럼, 거금을 빼돌려 꼬불채 두고 대신 몸으로 때웠으니 이 자도 이쯤되면 평범하지는 않다. 그후 부산에 와서 수산업에 종사했는데 성공하여 거부가 되었다. 이럴때 박주탁이 찾아왔고 전후 사정을 얘기하면서 자신이 부도 맞아 어쩔수 없이 중국으로 도망쳐야 되겠다고 실토했단다. 그리고서 문현동에서 '금'이 나왔는데 자신의 몫으로 3%가 배당되었다고 하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단다. 15억원을 주고 그 보름후에 다시 15억을 주었다고 본인에게서 직접 들었다. 도합30억원을 주는 대신 담보로 문현동 금도굴지분1.5%를 박주탁에게서 받은것이다. 도피자금이 급히 필요했고 문현동 금을 저당합히고 30억원을 마련한것이다. 까만 벤츠S600을 타고 나타났는데 얼마나 젊게 보이던지 50대초반의 청년같았다.
12. 이원화() 금도굴지분1.5%배당. 서울송파구 문정동래미안 아파트에서 이 자를 찾아냈다. 수산중공업에 전 관리이사다. 그러니까 박주탁이 가장신임하는 심복이었다. 얼떨결에 불려나온 이 자는 내 앞에서 덜덜 떨기만했다. 내 정체를 알고서 어쩔줄 몰라하면서 더듬거리며 한 말이 '회장님이 시키는데로 한 죄 밖에없다'는 것이었다. 뭣을 시켰느냐고 다그치자 강남구 신사동 어느빌딩에 반 지하에 가서 지분배당장부에 1.5%를 받고 서명날인 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회장님이 중국으로 가시기전에 금도굴에 1.5%를 대신 맡아 관리하라고 했단다. 심장마비로 곧 쓰러질까 내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신사동어느빌딩의 반 지하가 바로 백준흠이 있던 명신빌딩지하 사무실인것을 나는 잘 안다. 나도 배신이 일어나기전 그 곳에서 이원화처럼 서명날인한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현동의 지하어뢰공장속의 '금'은 이처럼 요란했다. '금'이 나오지 않았다면 박주탁회장이 어찌 도굴단에게 붙어 이처럼 지분을 배당 받았을리 없는 노릇이다. 이 점에 각별히 주목해야 된다. 박회장은 지금 서울구치소에서 징역을 살고있는데 36개월중에서 이제 14개월이 지났다. 원체 '빽'이 좋으니까 아마 잘하면 금년 광복절 특사로 나올것 같은데 그 안에 문현동사건이 해결되어야 할것이다. 그래야 도굴단에 고문으로 취임했던 '맛'을 박회장이 볼것이니까.
13. 김인순( 금도굴지분1.5%배당. 도굴주범 김성태의 친여동생이다.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통이 매우크다. 자신의 오빠 김성태의 권유로 나에게 오천만원을 투자했는데 실제 내가 받은돈은 이천만원 남짓이다. 나머지 삼천만원은 도둑놈 김성태가 배달사고를 친것이다. 배신이 일어나고 김인순을 만났을때 김인순이 한 말이다. '우리오빠는 머리가 나빠 성공(도굴)하지 못할겁니다. 아마도 백준흠인가 하는 사람의 꾀임에 넘어간것같아예' 김인순은 법정에 증인으로 와서도 거짓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끝까지 진실의 편에서 자신의 오빠를 옹호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것을 볼때, 도굴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음을 내가 인정하는것이다. 그후 김성태가 배당을 해주었는지 궁금하다. 주관이 있는 정직한 여자였다.
14. 이숙자 할머니 미상, 금도굴지분1.5%배당. 이 할머니는 재일동포로 일본 동경에 살고 있는 분이다. 우연히 김성태가 부산에서 이 분을 알게되고 '어머니' '어머니'라고 하면서 똬리를 틀었다. 도둑놈 김성태는 아무라도 이익이 될상 싶기만 하면 '어머니'였다. 이 놈의 18번이다. 이 할머니를 얼마나 많이 이용했기에 문현동 금도굴 사건에까지 끌어들여 마치 이할머니가 나를 고소한것처럼 꾸몃다. 자신이 아들이니까 대리인으로 고소를 한다는것이다. 그후 부산에 이숙자를 잘 아는 어떤 분(연락처 있다)이 일본에 직접알아보니 이숙자할머니는 문현동의 배신을 전혀모르고 내가 김성태에 의해 사기죄로 구속된줄도 모른다는것을 알았다. 순전히 김성태가 꾸며 내어 조작한 사건이 바로 문현동에 금도굴 사건이었고 나는 김성태가 꾸며낸 거짓말로 작살이 났던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숙자할머니도 이 사건에 큰 피해자임이 분명하다.
15. 조규혜( 금도굴지분1.5%배당. 현장땅 550평중300평에 지주였다. IMF때 평당 80만원씩에 한진중공업으로부터 불하를 받을때 건축폐기물업자. 10번 정문균과 550평에 공동지주가 되었다. 그러나 정문균은 끝까지 땅을 고수했고, 조규혜만7번 김홍랑에게 명의를 변경해준것이다. 그리하여 애당초 배당받은 지분 6.5%중에서 5%는 땅의 권리를 새로 취득한 새지주 김홍랑에게 넘겼다. 그래서 나머지지분1.5%만 가지게 된 것이다.
16. 정재호 금도굴지분1%배당. 17번 정관제와 친구사이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정관제가 김성태에게 포섭되어 부산현장에 따라갈때 함께 따라간 친구가 정재호다. 그러니까 정재호는 2002년4월5월, 6월까지 세달동안 금도굴현장에 산 증인이다.
17. 정관제 금도굴지분1%배당. 최초발견자인 나의 친동생이다. 5형제중에서 둘째인데 참 가슴아픈 불쌍한 나의 형제다. '금'이란 이토록 무섭다. 형제간의 정도 아무소용 없도록 눈을 멀게 했다.
18. 조동철() 금도굴지분1%배당. 서울시청에 근무하는 현직 공무원이다. 2002년5월초에 두목 백준흠에게 현금3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마케팅과에 있었고 최근에는 자전거담당관실에 근무하였다. 7급 공무원에게 현금3억원이란 평생을 근무하고 정년퇴직을 했다고 하더라고 퇴직금 수령액이 3억원이 안될텐데, 한달에 월급을 얼마나 모아야 3억원이 되는가? 이것이 금도굴의 실체를 보여주는 사례다.
19. 정성제() 금도굴지분1%배당. 본래는 아마츄어 권투선수다. 그때는 부산에서 자가용 운전수를 하고 있을때다. 17번 정관제가 꼬드겨 데리고 들어갔다. 권투선수라니까 백준흠이 겁을 집어먹고 얼른 1%주고 합류시켰다. 과연1%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세상이 부끄럽다. 나의 네째동생이다.
20. 김강호() 금도굴지분1%배당. 2번 김성태의 고향이 경남 삼천포이다. 김성태 직속 고향후배로 김성태를 무척 따랐다. 삼천포 시장의 전속운전사로 오래 근무했다. 교활한 김성태는 1%를 이 자에게 주고 얼마를 받아먹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21. 나현철( 금도굴지분1%배당. 박대통령의 이발사 박수웅이 굴을 팔때 종사하던 인부. 힘이 얼마나센지 '나장군'으로 통했다. 김성태는 이 나장군을 매수하여 나를 죽일려고 살인까지 교사했다. 1심재판정에서 해병대 출신의 나현철이 이러한 시실을 폭탄선언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판사 박종훈은 이를 채택하지 않고 묵살 해 버렸다. 이랬으니 재판이 아니고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이것 하나만 봐도 금도굴이 나타난다. 증인 심문조서를 보면 사실여부가 입증될것이다.
22. 송재성() 금도굴지분1%배당. 이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파악할수도 없었다. 짐작컨데 아마도 백준흠에게 투자를 한 사람인것 같다.
23. 조읍규() 금도굴지분0.5%배당. 돌팔이 치과의사로 부산조방앞에 시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기술이 얼마나 좋은지 일본사람 단골들이 입소문을 내어 손님이 많이 왔다. 김성태는 여기에 빌붙어 손님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했다. 경남 삼천포 출신으로 김성태의 죽마고우다.
24. 임여순() 금도굴지분0.5%배당. 23번 조읍규의 처.
문현동 지하어뢰공장속에 재여있던 '금'은 최소한 1,000톤이상이라고 나는 시종주장했다. 현재싯가로 쳐서 약600조 쯤 된다. 이 많은 '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조사만 하면 금방파악 될것이다.
2002년5월13일 오후 3시에 부산 남포동소재 피닉스 호텔회의실에서 도굴을 하기위한 법인을 만들고 임시 주주총회를 하였다. 회사이름은 (주)'포세이돈 살베지'다. 대표이사 백준흠, 고문 박주탁, 김홍랑, 류동우였고 감사에는 임여순, 전무이사 김성태, 상무이사 조읍규, 상무이사 채상훈이 선임되었다. 이때 도굴단이 지분을 갈라 배정했는데 그 서류일체가 내 손에 입수되어 있기에 도굴단의 명단을 세상에 폭로하는 것이다.
결론
문현동 금도굴사건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크게 네가지로 압축할 수가 있다. 그 첫째이유는 지하 16m에 존재하는 수평굴이 물속에 포화되어 있는 점이다. 깊은 물속에 잠겨 있기에 진실을 쉽게 은폐할 수 있고 또 거짓말로 호도할수도 있었다. 둘째로 황토색 포대에 씌여진 伊藤忠 글자가 찍혀 있던 그림이다. 그속에 들어있던 금편이 내 수중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하나, 하필이면 박대통령의 이발사 박수웅이 실패한 굴이 근처에 존재하고 있었던 점. 이 세가지를 최대한 악용하여 도굴단들은 거짓말로 악 선전을 편 것이 세상사람들을 속이는데 주효한 것이다. 또 한가지, 대한민국에 기자들은 전부가 바보멍텅구리 들이었다. 고작 땅속16m, 아무리 물에 잠겨 있다고 달랑도둑놈들의 악선전을 곧이 곧대로 믿고 외면했으니 바보멍청이들이 아닌가? 아무리 이런일이 한번도 없었다고해도 예외는 꼭 있을수 있는데, 조금만 귀를 기울여 진실을 찾았다면 이 일은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언론도 크게보면 같은 공범자들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상의 네가지가 대한민국을 망쳤다.
지금, 내가 촛점을 모으는 것은 단 하나다. 2002년 3월2일, 내가 판 직경60cm 수직구 속으로 다시한번 들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지하 16m 수평굴의 정체를 공개적으로 따져보는 것이다. 공소장이니 판결문의 내용처럼 박수웅이 실패한 굴이 아니고 실제 일본군들이 판 굴이 맞다면 문제는 그때부터 달라진다. 날 기소한 검사, 서범준의 공소장도 엉터리 임이 그로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 박종훈의 판결문도 엉터리 임이 인정될 것이다. 순전히 '금'을 독차지 하기 위해 짜고친 고스톱이라는 것을 세상사람들이 알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수평굴속에 모든 진실은 하나하나 나타나기 시작한다.
내가 주장하던 조선인 강제 징용자 유골 1,000여구도, 또 중국에 국보3호라는 비취불상, 그리고 북경원인두개골화석 또 있다. 금 1,000톤, 금 불상 36좌, 또 청나라 도자기등 셀수 없는 진실이 제 모습을 드러낼것이다. 국민의 의혹이 증폭되고, 그리하여 최고권력자의 의지만으로 어렵지 않게 시행될 수가 있다. 항쟁위가 앞장서서 항쟁위 '설치규정에 의거' 강제로 수직구속으로 들어 갈 수가 있다.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고 알 권리를 충족하는 차원에서 이 일은 꼭 성사되어야 한다. 이리만된다면 시간은 보름이면 충분하고 경비도 얼마 소요되지 않는다. 특히 소요되는 경비 일체를 국가예산으로 하기 어렵다면 내 개인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조건이라도 좋다.
국민적인 시선을 집중해 하루속히 수직구 속으로 들어가야만이 대한민국은 비로소 문현동에 붙잡힌 발목을 풀고 밝은 미래로 힘차게 나아 갈 것이다.
문현동 지하어뢰공장 최초 발견자 정 충제
엉터리 대한민국
전국일제피해자 연합회라는 전국규모의 단체가 있다.이 단체에 공동대표로 김인성(70세)이분은 전 의원 박계동 과 주도하여 지난 2011년8월12일 광화문 신문로에서 대대적인 집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집회가 열린것은 정부 관련기관인 대일항쟁조사위원회가 그곳에 있기때문이다.(이하 항쟁위라 한다) 항쟁위의 책임자는 검사출신으로 정부부처의 차관급에 해당한다. 항쟁위가 최초로 생긴것은 2005년 3월인데 그때는 노무현정권때이고 초대 책임자는 전기호로 대학교수 출신이다. 그아래 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사무국장으로 변호사출신인 최봉태가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문현동사건을 해결학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항쟁위라는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태평양전쟁희생자 유족회 회장인 양순임이라는 여자를 설득하여 항쟁위에 정식으로 공문을 제출하도록 한것이다. 문현동 지하에 유골이 재여 있으니 조사해 달라는 국민으로서 당연한 요구를 제기한것이다. 내가 할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발바닥이 닳도록 동분서주 하였다. 그 일환으로 경제정의 실천연합회(이하 경신련)을 만드는데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조선족교회 목사 서경석을 찾아가 그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매달렸다. 그리하여 서경석이 문현동 지하 어뢰공장에 대해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에 뛰어들었다. 그때 서경석은 자신의 후배(고등학교,대학교)라는 검찰총장 송정수 까지 찾아가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두번이나 퇴짜를 당한적이 있는 )문현동 관할 검찰청인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에서 다시 수사가 시작될수 있도록 작용한것이다. 그런데 그때 수사가 너무도 일방적이고 편파적이었기에 대검찰청 자문위원이란 직함까지 있었던 서경석이 동부지청장에게 수사를 편파적으로 하지말고 정확하게 중립적으로 하라고 편지까지 보낸적이 있다. 그때 보낸 편지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산지검 박용석 동부지청장님께 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서경석목사가 편지드립니다. 부산 문현동의 금괴도굴사건에 대한 동부지청의 수사에 대해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어 이렇게 편지드리게 되었습니다.
거의 매일 정충제씨가 찾아와 제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도 지금 동부지청의 수사에는 심각한 결함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현재 담당검사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동굴은 일제치하의 굴이 아니고 박수웅씨가 판굴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여러가지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 저의 관측입니다.
--우선 이 굴이 일본굴이라는 발파전문가들의 계속된 증언이 묵살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문제의 굴이 박수응씨가 판 굴이라면 박수웅씨가 판 굴 입구에서부터 이 굴까지 연결되는 길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길은 왜 못 찾았는지가 궁금합니다.
둘째로 문제의 굴이 일본굴이라는 발파전문가의 계속된 증언이 있는 이상 정충제씨의 증언의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물을 전부 퍼내면 굴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면 우선 잠수부가 굴 안에 들어가 조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경우에는 퍼낸 물을 어떻게 처리할까를 고민한 필요가 없습니다.
--정충제씨는 W자 형으로 되어 있는 이굴의 바다 반대방향에 반드시 어뢰공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도굴범들이 이 입구를 잡석포대로 막아놓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굴이 박수응씨가 판 굴이라면 이렇게 잡석을 담은 포대를 굴 양쪽에 쌓아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이버가 이 굴 안에 들어가게 되면 W자 형의 코너부분 바다반대쪽에 쌓여있는 서너군데의 잡석포대를 위에서 5-6개만 내려놓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정충제씨는 그렇게 하면 반드시 동굴안의 어뢰창고로 연결되는 길이 발견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 따라서 다이버가 들어가 이 점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만일 이렇게 해서 정말로 어뢰공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발견된다면 그리고 그 속에 중국에서 약탈한 보물들이 있다면 한국의 입장에서도 큰 득이 될 것입니다. 더욱이 그 공장 안에서 인부들의 유해가 발견된다면 이는 정말로 커다란 국제적 사건이 됩니다.
셋째로 이렇게 다이버가 내려가 일을 해도 아무 성과가 없다면 앞으로 정충제씨는 일체의 불평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다이버가 굴안에 들어가 잡석더미를 걷어내 보는 것이 이 사건을 가장 빨리 종결짓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청컨대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5월 21일
서경석목사
| 이랬는데도 아무소용이 없었고 떠벌리고 다니는 나를 더 이상 방치할수 없었는지, 그해 9월6일 동부지청에 의해체포되어 억울한 욕살이 44개월을 살게 된것이었다. 출옥후에도 더욱 분주하게 뛰어다니다가 만난것이 앞에서의 피해자연합회 공동대표 김인성씨였다. 이 분이 앞장서 다시 항쟁위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일제피해자 연합회 이름으로 정식공문을 세번이나 연속으로 접수시켰던것이다. 그때 접수시킨 공문의 제목은 처음에는 '부산 문현동 피 징용자 학살 진상규명 및 유해발굴 탄원서'였고 두번째부터는 ' 부산 문현동 피 징용자 학살 진상규명 및 유해 발굴 지원요청' 이 었다. 제목이 바뀐것은 혹시라도 예산 배정에 문제가 있다는 핑게를 댈 우려가 있기에 소요되는 비용전부를 피해자 연합회가 부담할것이니 2002년 3월2일 문현동 현장에 정충제가 완성했던 수직구 속으로 들어 갈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핵심 주문사항이다. 도굴단이 점유하고 있는 현장땅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딱 한가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항쟁위의 설치규정에 규정되어 있었다. 어떤 사유지라도 항쟁위에서 협조요청을 요구 했음에도 불응한다면 국가공권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밀고 들어갈수 있다는 조항이 그 것이다. 다시 말해 항쟁위에서 의지만 있다면 문현동 지하를 얼마든지 살펴조사해 볼수가 있는 일이였다.
그런데 이 조항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공동대표 김인성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이 조항에 의문을 품고 이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 앞에서의 집회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그 것은 초대 사무국장이었던 변호사 최봉태가 한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2005년 6월에 최봉태에게서 김인성이 직접들었다고 했다. 항쟁위 사무국장방에 피해자 연합회 간부들이 여럿 모여있는데 최봉태가 들어오더니 투덜거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부산문현동에 접수된 민원 (어뢰공장 유해발굴) 을 확인하기위해 항쟁위 직원 두명을 부산현장에 출장보냈다는 것이다. 그들이 돌아와 복명을 하는 내용에 따라 문현동에 일제가 만든 저하어뢰 공장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보고서를 만든것이었다. 그리하여 상부관청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올렸다는 것이었다. 결재만 내려오면 지하어뢰공장에 내려가는것이다. 당연히 결재가 내려와야 될텐데도 불구하고 청와대에서 잘랐다는말이다. 더욱 민정수석이 최봉태에게 전화까지 직접걸어왔는데 '문현동에 손대지 말라'는 엄명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최봉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청와대에서 자른 이유를 이해할수 없었기에 여러사람앞에서 투덜댄것이다. 당연히 해야될 의무가 있는 기관에서 당연한 보고를 했음에도 이례적으로 민정수석이 전화까지 하며 막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때 민정수석이 바로 문재인이다. 여기에 의문을 품고 문현동지하어뢰공장 찾는 일에 뛰어들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분이 바로 김인성씨 였던것이다. 그때(8월12일) 발표문 내용이다.
발표문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일제강점기 국내 강제동원 징용자는 648만8000여명으로 국외 강제동원 103만여명의 6배가 넘는 규모로 확인되고 국내 작업장만도 6956곳이며 강제동원 노역장은 탄광, 광산, 섬유, 피혁, 금속, 재련 등의 공장과 철도, 도로 등의 작업장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지원위원회는 국내 수 많은 군사기지 건설에 동원된 규모는 밝히지 않고 있다. 우리 전국일제피해자연합회는 2010년 3월18일 부산 문현동 피 징용자학살 진상규명 및 유해발굴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 | </ |
첫댓글 위의 내용이 진실이라면 정말 초 대형 뉴스네요....그곳에서 희생된 징용 피해자들의 해원(解寃)은 물론이고 일제의 간악함도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고, 또 혹시라도 대륙조선 관련 유물이나 책자 같은것이라도 나온다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의 역사적 기반이 흔들릴수 있으니 ....... 정말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합니다...
중국 국보급문화재가 다수 있다니...대륙조선의 소중한 증거물일 것이죠...정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는요.
문제는 영혼님 말씀대로 그 문현동 지하에 대형 동굴이 존재한단 과학적 증거물까지 정씨가 제시했는데도...첨엔 적극적이던 관에서...상부의 제지로 발굴불허가 났는데...그 당시엔 어김없이 청와대 민정수석 문재인씨가 캇트했다는 내용이고...그래서 제기되는 비자금설이란 겁니다.
이 사건이 사실이라면 정말 무서운 대한민국이네요. 박근혜가 부정선거로 당선 되었다라는 글들을 김xx위원이 호남출신인데요. 왜 야당에서 힘을 쓰지 못 했을까요? 여당이나 야당이나 둘다 같이 비슷한 급의 비밀스러운 행적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호남쪽에서도 눈치를 채고서는 중도로 돌아선 것은 아닐까요? 안철수도 이런 사실을 알고 절때로 문제인이 대선후보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랬다가는 임기 끝나고 안철수가 뒷치닥거리를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거나 팽 당하거나 둘중에 하나 같아서 물러선 것은 아닐까요? 이제 여도 야도 믿을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 가는 듯 합니다. 큰일이네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가 만나고 다닌 정신세계 사차원이신분들 주장으론...금이란 것은 함부로 유통할 수 없는게...세계를 통치하는 유력인사들 위의 권력이 금을 다스리는 암흑정부세력으로 함부로 만졌다간 죽는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그 예인듯 싶고...명박이는 캄보디아에서 이 비자금을 세탁했고 현재진행형이라 보이는데...아직 다치지 않는것을 보면...그들의 철저한 하수인이 된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