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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계를 배우기 위해서 연습해 보는 글입니다. 많은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전 김향원은 시민명상교실의 한 반인 불교 수행반에 갔습니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서 바깥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한 어린이가 다가왔습니다. “아저씨는 착한 사람이세요?” 김향원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어린이는 사탕 한 봉지를 건네면서 “앞으로 착한 사람 되시라고 드리는 거예요.”하고는 사라졌습니다.
시간이 되자 지도 스님께서 십악업과 십선업을 법문하시면서 살라의 바라문들 경(M41)을 읽어주셨습니다.
1. 그릇된 행실 : 생명을 죽임, 주지 않는 것을 가짐, 삿된 음행을 함 / 거짓말을 함, 중상모략을 함, 욕설을 함, 잡담을 함 / 간탐함, 마음이 악의로 가득 차 있음, 삿된 견해을 가짐(보시도 없고, ...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없고 과보도 없다. ...)
2. 올바른 행실 :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 멀리 여윈다,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 멀리 여윈다, 삿된 음행을 버리고 ... 멀리 여윈다, / 거짓말을 버리고 ... 멀리 여윈다, 중상모략을 버리고 ... 멀리 여윈다, 욕설을 버리고 ... 멀리 여윈다, 잡담을 버리고 .. 멀리 여윈다, / 간탐하지 않는다(‘오, 저 사람 것이 내 것이라면’ 하고 남의 재산과 재물을 탐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에는 악의가 없다(그는 ‘이 중생들이 적의에서 벗어나기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해악에서 벗어나기를, 그들 스스로 행복하게 지내기를!’하고 타락하지 않은 생각을 품는다.), 바른 견해를 가진다(‘보시도 있고 ... 선행과 악행에 대한 결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
김향원은 생각했습니다. ‘아, 열 가지 그릇된 행실을 버리고 멀리 여위며, 열 가지 바른 행실을 실천하는 것. 이것이 착한 행위이고, 이렇게 살아가면 그를 착한 사람이라 하겠구나.’ 그러면서 지난번에 배운 오계를 외우고, 포살일에 행한다는 여덟 가지 계행도 떠올려보았습니다. (생명을 해치지 말라. 주지 않는 것을 갖지 말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 술을 마시지 말라. 순결하지 못한 성적 교섭을 떠나라. 밤에는 때 아닌 때의 음식을 먹지 말라. 화환을 걸치지 말고 향수를 쓰지 말라. 적당한 깔개를 깐 바닥이나 침상에서 자라. (전재성 박사 역주, 숫타니파타, 14. 담미까의 경)
지도 스님께서는 보시에 대해서도 법문하셨습니다. 도중에 한 회원이 재물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보시를 실천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스님께서 답변하셨습니다.
“세 가지 보시가 있습니다.
①재시(財施) : 물질적인 베풂,
②법시(法施) : 가르침을 베푸는 것(해탈, 열반으로 이끄는 가르침 등), 행복한 삶으로 향상되도록 법을 베푸는 것,
③무외시(無畏施) : 오계를 지키는 것 (오계를 지키면 남에게 두려움 없음, 원한 없음, 증오 없음을 베푸는 것이 됨).
거사님. 보시에는 스스로 계를 지켜서 남이 자신을 만났을 때 (생명의 위험이나 재산 등의 손실을 당할까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아내나 딸들에게 접근할까 걱정하지 않고, 나쁜 일을 같이 저지르자고 꾀일까 걱정하지 않고 ... 등으로) 내가 그에게 두려워하지 않도록 원한 없도록 증오 없도록 베풀 수 있다면 이것도 보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다른 회원이 질문했습니다. “공덕을 짓는 데는 계를 지키거나 보시를 하거나 하는 일 말고 또 있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또 있습니다. 바로 수행입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사무량심을 닦는 것이지요. 자애, 연민, 함께 기쁘함, 평온이라는 네 가지 거룩한 마음을 닦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께서 사무량심을 닦고 계시겠지만 오늘 여기서도 해보자시며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모두 같이 자애의 마음을 연습했습니다. 먼저 정형구를 함께 읽었습니다.
“그는 자애[慈]가 함께 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자애가 함께 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
법문을 마칠 쯤 숫타니파타의 8. 자애의 경도 읽어주셨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김향원은 양 대리 일행에게 다가갔습니다. 전에 본 젊은이 다성도 있었습니다. 서로 환담을 나누고 양 대리가 다성에게 말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어요? 호흡 수행은 좀 진전이 있으셨나요?” 다성이 말했습니다. “처음에 너무 어려워서 몸의 부정관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책을 보니 부정관 수행은 초선 밖에 못 든다고 나와 있어서 지금은 망설이고 있습니다.”
양 대리가 말했습니다. “예, 우리는 자신에게 알맞은 명상 주제를 잡기가 좀 어려운가 봐요.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일묵스님의 부정관을 닦으면 탐욕이 버려진다>는 동영상 법문을 들었어요. 그 법문을 들으니 부정관을 수행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법문 내용을 말씀드려 볼게요. 이렇게 일묵 스님께서는 법문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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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묵 스님 : 몸에 대한 애착을 버릴 때는 부정관(不淨觀)이 굉장히 효과적이고, 느낌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는 괴로움으로 관찰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마음(의식)에 대한 애착을 버릴 때는 무상함을 관찰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나 법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는 무아를 관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십니다. ...
우리가 제일 쉽게 ‘나’라고 하는 것이 몸입니다. 몸에 대한 애착이 워낙 오래 동안 형성되었고, ... 그래서 수행에서 몸에 대한 애착을 끊어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
(겉으로 보기에) 혐오스러운 것을 혐오스럽지 않게 보도록 마음을 훈련시키고 (겉으로 보기에) 혐오스럽지 않은 것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부정관은 (겉으로 보기에) 혐오스럽지 않은 것을 혐오스럽게 보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몸을 그릇된 시각으로 본다는 뜻이 아니고 몸이 가지고 있는 아름답지 않은 면도 같이 보는 것으로 이해합시다. 부정관은 몸이 ‘싫어’하면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고, 몸에는 혐오스러운 특징이 있구나, 아름답지 않은 특징이 있구나. 하고 지혜로써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자기 몸에 대한 애착도 버리고, 타인의 몸에 대한 애착도 버리기 위함입니다. ...
눈으로 볼 수 있는 부위도 있고, 피부 밑에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없는 부위도 있습니다. 머리털 하면 머리털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를 겁니다. 머리털에 대한 ‘색깔, 모양, 위치’, 이 세 가지 정도는 아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와 같이 몸털도 ...
이 몸은 피부로 가려져 있을 때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피부를 걷어내 보면 위속에 소화되는 음식물 찌꺼기들이 있고 똥오줌이 있고 ... 타인의 저 몸도 아름답게 보이지만 실제로 피부를 걷어내 보면 깨끗하지 않은 것들이 가득합니다. ...
이 32부위를 모두 다 관찰하는 경우도 있고, 한 가지 것만, 예를 들어 뼈를 관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수행을 오래하면 저기 사람을 보면 ‘뼈 무더기’로 보인다고도 합니다. 부정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 내가 그쪽으로 마음을 기울이면 언제나 부정의 인식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
그런데 부정관 수행으로 선정에 들 수도 있습니다. 하루는 머리털을 가지고 선정에 들고, 하루는 뼈를 가지고 선정에 들 수도 있다고 합니다. ...
보통 한 가지를 정해서 하는 수행을 많이 하는데, ...
뼈를 가지고 하는 백골관이 있습니다. 두개골 뒤쪽은 흰색인데, 뼈무더기로 수행하는데, 두상의 뒷 부분은 백색인데, 아름답지 않다고 우선 보고, 그렇게 부정관을 닦으면 나중에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백골에 대한 이미지, 그것도 니밋따입니다. 백골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부정에 대한 인식도 닦고, 아름답지 않음으로 선정에 들면 그것이 초선입니다. 부정관은 아름답지 않다는 ‘일으킨 생각’이라는. 표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부정관 수행은 초선밖에 못갑니다. 그러나 색계 초선을 얻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
몸의 애착을 버리는 방법에는 영원하지 않다는 무상을 관하면서 버리는 것이 있고, 이렇게 부정관을 통해 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내 몸에 대해서도, 타인의 몸에 대해서도 부정을 관찰하기도 합니다. ...
한 걸음 더 나아가 몸의 32부위를 가지고 4대 수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단담함의 성질이 있는 것-땅의 요소. / 액체는 물의 요소, / 몸을 따뜻하게 하는 열, 늙어가게 하는 열, 타는 열, 소화 열은 불의 요소 ‘/ 트림, 방귀(?), 창자를 움직이게 하는 움직임, 창자 밖의 바람, 사지를 움직이게 하는 것, 들숨날숨 등은 바람의 요소. 이렇게 20가지 땅의 요소, 12가지 물의 요소, 4가지 불의 요소, 6가지 바람의 요소가 있어요. 이 4대 수행도 몸의 애착을 버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
부정관 수행은 4대 수행으로 확장할 수도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32부위는 각자 고유의 색깔이 있습니다. 피는 붉은 색, 소변은 약간 노란색, 지방은 약간 노란색, 머리털은 검은 색, 두개골 뒤쪽은 흰색. 그래서 백골관은 그것으로 까시나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까시나는 보통 지름은 30센티미터 정도. 이미지를 가지고 선정에 드는 것인데, 흰색 까시나는 32부분 중에서 두개골의 모양은 동그랗게 되어 있어서 흰 색 까시나로 변환시켜서 초선에서 제4선까지 들 수 있고, 초선은 몸의 부정(깨끗하지 않다)으로 들어가고 제2선부터는 두개골의 흰색 까시나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
까시나는 ‘확장’이라는 뜻이 있어서, 까시나는 의식적으로 확장을 하는 것이니까 의식이 닿는데 까지 무한정까지 확장할 수 있어요. 전 우주로 확장될 수도 있어요. 선정에 들 때 작은 까사니보다 확장된 까시나가 더 안정적입니다.
이렇게 32부위를 가지고 색깔 까시나로 전환할 수 있어요. 피는 붉은 색 까시나로, 머리털은 검은색 까시나로 할 수 있어요. 그 중에서 흰색 까시나가 수행하기가 좋습니다. 백골관-흰색 까시나.
이 까시나 수행은 무한정 공간으로 대상을 바꾸어서 들 수도 있습니다. 색깔 까시나를 우주 까지 확장한 그것을 공간으로 전환하면 공무변처 선정입니다. 이렇게 해서 까시나는 무색계 선정으로까지 갈 수 있어요.
처음 초선에 들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부정관으로 초선에 들기가 좀 쉽다고 합니다. 참고로 죽은 시체는 인상이 아주 강렬합니다. ...
요약하면 백골관으로 초선에 들고, 그 다음에는 흰 색 까시나로 전환하여 제2선, 제3선, 제4선까지 들고, 그 다음에는 공간으로 전환해서 무색계 선정까지 갈 수 있습니다. ...
부처님께서도 성도하시고 난 뒤에 먼저 설하신 것이 부정관 수행입니다. 그런데 일부 비구들이 몸의 부정이라는 특성을 관찰하는 데서 지나쳐서 몸을 ‘싫어’하는 성냄을 일으키는, 수행법을 잘못 이해해서 자살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안전한 수행법으로 효과가 많은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 수행을 설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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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성은 매우 기뻤습니다. 몸의 부정관을 바르게 닦으면 몸에 대한 애착을 버릴 수도 있고, 초선에 들 수도 있고, 4대 수행을 할 수도 있고, 색깔 까시나로 전환하여 제2선 이상을 들 수 있고, 나아가 공간으로 전환하여 무색계 선정에 들 수도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띠 수행을 할 때 사띠가 기억과 관련되었다는 것은 ‘지금 사띠하는 이런 법들이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라는 가르침을 기억해놓고 사띠하는 뜻이라고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다성은 사띠의 듯 하나를 또 배우게 되었습니다.
다성은 집에 돌아와서 몸의 부정관을 연습했습니다. 먼저 백과사전을 펼쳐놓고 몸의 31(또는 32)부위를 외웠습니다.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 살갗 /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 염통, 간, 근막, 지라, 허파 / 큰창자, 작은창자, 위속의 음식, 똥, (뇌) /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담, 굳기름 / 눈물, 피부의 기름기, 침, 콧물, 관절활액, 오줌.
그리고 숫타니파타의 11. 승리의 경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걷거나 또는 서거나 혹은 앉거나 눕거나 몸을 구부리거나 혹은 편다. 이것이 몸의 동작이다.
몸은 뼈와 힘줄로 엮어있고, 내피와 살로 덧붙여지고 피부로 덮여져 있어,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내장과 위, 간장, 방광, 심장, 폐장, 신장, 비장으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콧물, 점액, 땀, 지방, 피, 관절액, 담즙, 임파액으로 가득 차있다.
또한 그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나온다. 눈에서는 눈꼽, 귀에서는 귀지가 나온다.
코에서는 콧물, 입에서는 침이나 가래, 몸에서는 땀과 때가 나온다.
또 그 머리에는 빈 곳은 뇌수로 차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무명에 이끌려서 그러한 몸을 깨끗한 것으로 여긴다.
또 죽어서 몸이 쓰러졌을 때에는 부어서 검푸르게 되고, 무덤에 버려져 친척도 그것을 돌보지 않는다.
개들이나 여우들, 늑대들, 벌레들이 파먹고, 까마귀나 독수리 같은 날짐승이 쪼아 먹는다.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수행자는, 깨달은 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분명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그는 있는 그대로 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있는 것처럼 저것도 있고, 저것이 있는 것처럼 이것도 있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몸에 대한 욕망에서 떠나야 한다.
이 세상에서 욕망과 탐욕을 떠난 그 지혜로운 수행자만이 불사와 적멸, 곧 죽음을 뛰어넘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한다.
인간의 이 몸뚱이는 부정하고 악취를 풍기므로, 가꾸더라도 온갖 오물이 가득 차, 여기저기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몸뚱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생각하건대 거만하거나 남을 업신여긴다면, 통찰이 없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yunsdd&logNo=60209605035 )
한편, 김향원은 낑수까 나무 비유 경(S35:245)을 읽었는데, <여섯 개의 대문>과 <문지기>라는 말씀을 기억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십악업을 행하려는 기미가 있으면 ‘아차, 문지기’하면서 자꾸 문지기를 세우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양 대리 일행과 헤어질 때 어린이에게서 받은 사탕을 나누어주니, 양 대리와 동료들은 지금은 때가 아니라서 나중에 먹을게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어린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아저씨는 착한 분이세요?” 이번에도 김향원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어린이가 '이것 드시고 착한 사람 되세요?" 하면서 사탕 한 봉지를 주고 떠나갔습니다.
첫댓글 -()-~~
“아저씨는 착한 분이세요?”
내가 착한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보라는 문장이네요...^^
아래의 문장도 사띠를 놓치고 있다가 다시 사띠를 챙기도록 돕는 문장입니다.
"지금 내마음이 무엇을 하는가?"
"지금 내 몸의 자세는 어떤가?"
"지금 무슨 마음인가?"
"지금 내 마음이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지금 여기로 돌아와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미 사띠를 놓쳤다가도 사띠를 다시 챙기는 질문입니다.
아, 예. 말씀을 들으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내가 그냥 <힘을 기르자>고만 하면 간략하게 말한 것이 되는데, 실제로 힘을 기르려면 자세하게도 말할 수 있어야 하는구나. 즉, 지금은 팔 힘을 길러야 할 때라면 팔굽혀 펴기를 하자, 철봉에서 매달리기를 하자(턱걸이를 하자) 물통을 나르자 등으로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 그런 것이네요. 그냥 ‘아차, 원위치’ 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들려주신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가?"
"지금 내 몸의 자세는 어떤가?"
"지금 무슨 마음인가?"
"지금 내 마음이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등의 말씀처럼 적절한 질문을 하면서
마음챙김을 계발해나가야 하는 것이었네요.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거의 고려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듣게 된 ‘안과 밖’이라는 새로운 질문은 앞으로 제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배우게 되어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