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권 기독론
제1장 기독론 논쟁-4
제2절 기독론 논쟁
1. 아리우스 논쟁(이오타논쟁)
1)아리우스
아리우스는 3세기 중반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서 4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장로이며 신학자였습니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늘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가 아니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 전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無)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분인데, 존재하지 않았던 아들을 無에서 만들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은 피조물이며, 따라서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므로 아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진정한 말씀이나 진정한 지혜가 아니며, 다른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로써 만들어진 하나의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말씀은 하나님의 본질과는 다른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실 때 그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 아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주와 우리를 창조하실 계획이 없었다면 그 아들인 말씀도 창조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아리우스는 그 글 중의 ‘말씀은 하나님의 본질과는 다른 것이다’라는 말에서 본질과 다르다는 것을 헬라어로 호모이우시오스(ὁμοιούσιος - homoiousios)라고 했습니다.
homoi는 비슷하다는 말이고, ousios는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homoi-ousios는 비슷한 본질 즉, 유사(類似) 본질이라는 말입니다. 아리우스는 이 단어를 사용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 아니라 본질에서 비슷한 것뿐이니까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주후 318년에 알렉산더의 감독이 아리우스에게 그런 주장을 철회하라고 권유했지만, 아리우스가 거절하자 320년에 지방 감독회의를 열어서 아리우스를 추방하는 결정을 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콘스탄틴 황제가 325년에 318명이 참석한 세계 최초의 교회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황제의 별장이 있는 니케아에서 이 회의가 열렸기 때문에 이 회의를 니케아 종교회의라고 말합니다.
2)아타나시우스
이 회의에서 당시에는 집사였던 아타나시우스라는 사람이 아주 간단하면서도 혁신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homoi-ousios(ὁμοι-ούσιος)에서 homoi의 i(ι)를 빼는 것이었습니다. homoi에서 i를 빼면 비슷하다는 뜻이 동일하다는 뜻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homo는 동일(同一)하다, ousious는 본질(本質)이니까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라는 뜻으로 바뀝니다.
[*주: 헬라어에서 모음 위에 붙이는 부호 중에서 쉼표(,)를 좌우로 180도 바꿔서 모음 위에 붙이면(ὁ처럼) 모음에 ㅎ을 넣어서 발음합니다. 예를 들어서 ὁ는 ‘오’가 아니라 ‘호’로 발음합니다.]
이 회의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 본질의 하나님이시라는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이 인정되었고 아리우스는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가 주장한 말에서 빼자고 한 i(ι)의 헬라어 이름이 이오타인데, 이오타 한 글자를 넣느냐 빼느냐는 논쟁이라는 면에서 이 논쟁을 ‘이오타 논쟁’이라고도 말합니다.
이 논쟁을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일 점’은 헬라어로 ‘이오타’인데 가장 작은 글자인 ι이고, ‘일 획’은 ‘케라이아’인데 글자 위에 붙이는 윗 첨자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일점일획이라는 말은 헬라어 철자 중에서 가장 작은 철자인 이오타와 아주 작은 첨자인 윗 첨자를 말씀하신 것으로서, 그렇게 율법에 있는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율법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것인데, 그 가장 작은 ‘일 점’이라고 말씀하신 이오타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호모우시오스 즉 동일본질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주장했던 아타나시우스 집사는 젊은 나이에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이 되었지만, 그는 말년에는 유리 걸식을 해야할 만큼 그의 생애는 파란만장했다고 합니다. 그런 중에서도 아타나시우스는 이단을 배척하고 니케아 신앙고백을 지키기 위해서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가 지킨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2. 신앙고백
니케아 회의에서는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니케아 신조를 작성하였습니다.
신조와 신앙고백은 대개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사도신경은 주후 107년의 안디옥 감독인 교부 이그나티우스가 보낸 편지에 처음 나옵니다. 180년경에는 폴리캅의 제자인 교부 이레니우스가 이 신경을 이단 반박이라는 책에 소개했습니다. 325년 니케아회의,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 415년 에베소 회의, 451년 칼케돈 회의를 거치면서 조금씩 수정을 했던 사도신경은 8세기에 지금과 같은 내용의 사도신경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신앙고백으로 말하는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만든 신앙고백서라고 전해오던 것을 이렇게 여러 번 수정해서 지금 같은 신앙고백서가 된 것입니다.
사도신경이 개신교 이전의 천주교에서 만들어서 사용해오는 것이니까 개신교에서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지금까지 여러 번 수정해서 확정되고 천주교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개신교는 성경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을 다시 수정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니케아 회의 이후에 기독론 논쟁이나 삼위일체 논쟁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 본다면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니케아 신앙고백서를 채택한 것으로부터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진리가 정통신학으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