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시 연재 칼럼 9 (2024년 5월)
잠재 된 승리, 혹은 유보 된 승리
여행은 늘 내면을 겸허하게 한다. 여행 전의 설렘 같은 것은 이미 퇴색해버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 양말을 챙기고 속옷을 챙기고 갈아입을 바지와 티셔츠 등을 챙겨 가방에 넣는 순간, 벌써 필자는 여행지에 도착해 있는 착각에 빠진다. 물론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고, 신선한 풍광도 아닌 풍경 속에 멀뚱하게 혼자 서있는 필자의 모습이 안스럽기도 하여 슬금슬금 자기 연민의 감상에 빠지곤 한다. 일행들과 함께 하는 여행 중에도 난 왜 늘 혼자라는 느낌을 벗어버릴 수 없었던 것일까. 이번 여행 중엔 수시로 비가 내렸다. 짙은 객수客愁에 빠질만한 분위기였음에도 이젠 여기저기 도려낸 상처들 때문인지 쉽게 여행 특유의 정서에 젖어 들진 않았다. 이렇게 늙어가는 모양이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떠난 이번 여행은 거의 가본 기억이 없는 전라도 지역을 누비고 다녔다. 말로만 듣던 그리고 수업 시간에 춘향전을 반복하여 가르치면서 뇌리에 자리 잡은 지명인 곡성, 고부, 남원, 부안 등.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은 고부 지역의 황토현 동학 운동의 시발점에 세워진 동학기념관이다. 언젠가 한 번쯤 다녀오고 싶었던 곳이었다. 우리나라의 민중 운동은 한 번도 당대에 성공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성급하게 단정 지을 수도 없다.
동학혁명은 공주 근처의 우금치 결전에서 불과 200명의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2500여 명의 관군에게 3만여 명의 동학군이 무참하게 패하여 그 세를 잃고 쇠락해 갔지만, 그 정신은 오늘날의 민주화 운동, 민중 운동, 노동 운동의 마르지 않는 에너지로 아직 타오르고 있다면 혹자는 필자의 지나친 비약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승리에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그 하나는 물론 당대의 승리이고, 또 하나는 당대에는 패배로 보이지만 그 정신은 시퍼렇게 살아남아 경우에 따라서는 몇백 년이 흐른 뒤에 실현되는 승리이다. 이러한 승리를 잠재된 승리, 혹은 유보 된 승리라고 부르는데 이 잠재 된 승리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예수의 생애이다. 예수께서 끔찍한 십자가형을 받으신 당대에는 끔찍한 패배였지만, 공적인 삶이 3년에 불과한 예수님의 생애는 수천 년을 이어오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종교적 승리의 상징으로 성경과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승리는 눈앞에서만 결정 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주변엔 유보된 승리는 수없이 많다. 빈센트 반 고흐, 뭉크,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연암 박지원 등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당시 우금치 전투의 동학군의 전멸은 동학군의 현실적 감각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3만여 명의 병력으로 불과 2700여 명의 정예부대에 전멸했다는 것, 이는 어떤 변명으로도 동학군 지도부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보와 전략의 무모함, 오직 격앙된 정신 만을 밑천으로 몰아붙인 것은 아니었을까. 영국제 신형 대포를 비롯한 현대식 무기로 중무장한 정예부대와 맞선 동학군의 무기란 고작 죽창과 쇠스랑 등에 불과했고 실전 외에 제대로 된 군사 훈련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농민들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부의 첫 승리 이후 파죽지세로 몰아온 3만여 명의 동학군의 열기를 단숨에 재워버린 관군 정예부대 2700여 명의 위력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힘으로 정리해 버리기엔 좀 답답한 구석이 남는다. 작전 상 후퇴도 있을 법하고, 충분히 후퇴할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금치 전투의 생사의 기로에서 마치 신앙의 순교처럼 타협하지 않은 이 순결한 정신이 곧 유보 된 승리, 잠재 된 승리로 오늘날 재평가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미치자 지금도 분명 어딘 가에 잠재 된 승리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혹시 끊임없이 피비린내 나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 중에 있진 않을까? 아니면 우크라이나, 아니면 방글라데시, 혹은, 아프리카, 혹은 남미, 아니면 아직도 굶주림을 벗지 못하고 있는 필자와 같은 피부색의 중앙아시아 어딘가에. 아니면 바로 이 땅 어느 곳 필자의 측근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함께 한다는 것
그러니까 너는 네가 옳다는 것이고, 나는 너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므로 너의 성격을 이해는 하지만 함께하긴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너는 네 자리에서 잘 살아가면 되고,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여기에서 이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혹시나 하고 너를 기웃거리지 않겠다는 말이다. 사람이란 변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은 내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나는 결코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함께 한다는 것은 요구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시에 대해
매일 매일 시를 쓴다는 것은 매일 매일 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사는 것이다. 산다는 것이 그저 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오만해 보이겠지.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시가 훌륭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내게 있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시를, 인생을 살아내고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필자에겐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음악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내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음악과 함께 숨 쉴 때 행복하냐 아니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