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살려오는 기별
최 인 학
여기는 머언 남쪽 바다 건너 제비 왕국입니다. 금빛 무늬로 아로새긴 진주 구슬이 달린 면류관을 쓰신 제비 임금님이 왕좌에 앉으시고 좌우편으로는 제비 시녀들이 임금님을 호위하고 있었읍니다.
반질반질한 대리석으로 깔린 대궐 안은 마치 이세상이 아닌 별세계였읍니다.
제비 임금님이 앉으신 왕좌 앞에는 남루한 옷을 입은 늙은 제비와 시골뜨기 같은 시골 제비와 날씬하게 옷을 입은 신사 제비들이 연신 허리를 굽히며 무엇인가 임금님에게 차례로 사뢰는 것 같았읍니다.
제비 임금님은 이들이 사뢰는 말을 귀담아 들으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어흥, 그래서, 그 영이라는 아이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말해보게.”
“네, 네, 이제 말씀드리을까 하읍니다.”
늙은 제비가 허리를 굽히며 영이에 대한 이야기를 제비 임금에게 시작하였읍니다.
영이의 집은 서울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었읍니다.
오목하게 패인 산기슭에 초가집이 몇 채 있고, 이 마을 앞에 기찻길이 있었읍
니다.
영이는 종일 기찻길에서 놉니다. 점심때가 되었어도 집에 돌아갈 줄 모르고 사뭇 기찻길에서만 놉니다.
가끔 기찻길에 귀를 바싹 대고는 멀리서 기차가 오는지를 듣곤 합니다.
동네아이들이 마을 앞에서 뛰놀며 소란스럽게 해도 영이는 아이들과 같이 놀려고 하지 않고 홀로 철로가에 앉아서 애타는 마음으로 무엇인가 기다리는 것이었읍니다.
영이네 집은 퍽 가난하였읍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영이뿐이었읍니다.
어머니는 농촌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바구니에 이고 다니시며 파는 방물 장수였읍니다.
매일 저녁 해질녘이면 어머니는 통근열차를 타고 오십니다.
영이는 바로 어머니가 타고오실 통근열차를 아침부터 기다리는 것이었읍니다.
“삐익------”
하고 기적소리가 나면,
영이는 벌떡 일어납니다. 그리고 작은 정거장으로 마구 뛰어갑니다.
기차가 플랫폼에 다다르면 영이는 두리번거리며 어머니를 찾습니다.
“엄마!”
저쪽에서 어머니가 내리십니다.
“영이냐! ”
어머니가 영이를 부르십니다.
영이는 어머니께 단숨에 뛰어가서는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우는 것이었읍니다.
“영이야 울지마.”
“싫어, 싫어, 난 싫어, 이젠 엄마 가지 마.”
영이는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내어 웁니다.
“영이야, 엄마가 왔는데 우니? 자, 어서 울음 그치고 집으로 돌아가자.”
영이는 종일 기다리던 어머니를 만나 너무 기뻐서 눈물이 절로 흐르는 것이었읍니다.
영이는 점심을 먹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아침 새벽에 어머니는 밥을 지어놓고 아직 곤히 잠자는 영이를 남겨 두고 물건이 잔뜩 담긴 바구니를 이고 기차를 타러 가야만 했읍니다.
영이가 어머니를 보는 시간이란 다만 저녁때 잠깐뿐이었읍니다.
영이는 밥을 먹지 않아도 좋으니 어머니와 같이 있기만 했으면 제일 좋겠다고 생각했읍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돈을 벌어야만 했읍니다. 어머니가 그처럼 고생하시며 돈을 버는 것도 영이를 위해서였읍니다. 영이 옷을 사 입혀야 되고 공부도 시켜야 하겠기 때문이었읍니다.
어느 늦가을이었읍니다.
이날도 영이는 종일 기찻길에서 놀았읍니다. 금빛으로 물들인 논에는 벼이삭들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읍니다.
“삑-----”
기적소리가 울립니다. 영이는 간이 정거장으로 뛰어갔읍니다.
통근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서자, 두세 사람 내랄 뿐 기차는 다시 떠나갔읍니다.
영이는 가슴이 두근거렸읍니다.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었읍니다. 기차는 다시 가버렸읍니다.
“엄마!”
산울림만이 영이의 작은 귀에 들려올 뿐,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읍니다.
“엄마 엄마!”
아무리 불러봐도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았읍니다. 영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울었읍니다.
해는 기울고 여울진 어둠이 찾아왔읍니다.
얼마 동안이나 앉아서 울었는지 모르겠읍니다. 뒤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려서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캄캄한 밤이었읍니다.
“영이야! 왜 여기서 울고 있니 ? 엄마가 집에 계시단다. 어서 가봐라.”
“제 엄마가 집에요?”
“그래 아마 몸이 불편하신가 보더라.”
영이는 집으로 뛰어갔읍니다.
어머니가 방에 누워 계셨읍니다.
“엄마!”
영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어머니를 불렀으나 어머니는 꿍꿍 앓으시면서 대답도 하지 못하셨읍니다.
늙은 제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읍니다.
“어허 울지 말고 끝까지 말해보아라. 그래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
“네 불행하게도 영이 엄마는 이세상을 떠나고야 말았읍니다.”
“저런! 가없게도.”
제비 임금님도 가엾은 생각이 떠올랐읍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제비들도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읍니다.
늙은 제비는 눈물을 닦고 나더니 다시 무거운 입을 열었읍니다.
“워낙 가난한 동네라 어찌 할 수가 없어서 영이 엄마 시체는 동네사람들이 뒷산에 묻어주고 영이는 서울 어떤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뿐 더 알 수가 없읍니다. 소인이 영이네 집에 더 머물면서 영이가 어디로 가는지를 끝까지 보고 오려고 했으나, 때가 늦어지면 이 늙은 몸이 바다를 건너오지 못할까봐서 그대로 온 것이었읍니다.”
제비 임금님은 늙은 제비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나더니 무엇을 생각하는지 잠시 아무말이 없었읍니다.
“너희들은 그 영이라는 아이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제비 임금님은 앞에 서 있는 제비들에게 물었읍니다.
“임금님! 좋은 수가 있사읍니다·”
신사 제비가 말을 했읍니다.
“무슨 수가 있단 말이냐, 말해봐라.”
“네, 저는 작년에 서울에 있다가 왔나이다. 제가 있던 집은 부자집인데, 범식이라는 사내아이가 있나이다.”
“그래서.”
“영이를 고아원에 두지 말고 범식이네 집으로 오게 해주셨사오면 감사하겠나이다.”
“범식이네 집은 아이들이 많지 않은가?”
“네 아무도 없고 그 큰 집에 부모님과 범식이뿐이옵니다.”
“어흥, 그렇다면 생각해볼 일이지.”
제비 엄금님은 한참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늙은 제비와 신사 제비에게 분부하시는 것이었읍니다.
“영이는 불쌍한 아이야. 한국에는 이 같은 아이들이 많아, 그러므로 늬들은 봄과 같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거든 내 말을 꼭 명심해 듣고서 그대로 행하라. 특히 영이라는 아이를 찾아서 범식이네 집으로 가도록 해보아라.”
“네,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금 지체하지 말고 어서들 돌아가거라. 모두 떠날 차비는 되었는가?”
“네, 벌써 되었나이다.”
“그럼 좋아,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이 제비 왕국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선물로 갖다 주어라. 그래서 한국 어린이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평화의 사절, 한국으로 갈 제비들은 분주히 대궐을 나왔읍니다.
영이는 무궁화 고아원에서 겨울을 지났읍니다.
3월달이 되었읍니다.
고아원 원장님은 영이를 2학년에 들게 했읍니다.
영이는 공부를 잘했읍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에게 귀염을 받았읍니다.
영이에게 한 가지 흠이 있으면 어머니 생각 때문에 늘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었읍니다.
따스한 봄이 왔읍니다.
영이의 마음에도 따스한 봄이 왔읍니다. 고아원 아이들도 가슴을 활짝 펴게 되었읍니다.
어느 날 영이가 학교를 파하고 고아원으로 돌아와서 양지쪽 마루에 앉았을 때 였읍니다.
“지지배배.”
제비가 영이 앞으로 날아가더니 잠시 후에 다시 짹짹거리며 날아왔읍니다.
“제비다!”
영이는 마음 가운데 제비를 불러보았읍니다.
바로 그때였읍니다. 영이는 시골집 생각이 문득 떠을랐읍니다.
영이가 살고 있던 그 집에는 제비집이 있었읍니다. 그리고 제비가 한 마리 살
고 있었읍니다.
‘그때 우리 집 제비는 참 불쌍했지. 나와 같이 놀지도 못하고 늘 빈 집을 지켜주느라고 심심도 했을 거야. ’
영이는 종이를 꺼냈읍니다. 그리고 제비에 대해서 글을 지었읍니다.
‘……그리고 제비야, 참 미안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너와 같이 놀아주었을 걸, 남쪽 갔던 제비들이 돌아올 때 너도 오겠지. 넌 우리집에 가서 깜짝 놀랄 거야. 이상한 사람들이 산다면서, 난 고아원에 와 있단다. 그리고 지금 나는 너를 생각한단다.,
영이는 길게 썼읍니다. 생각나는 대로 숨김없이 썼읍니다.
다음날 영이는 제비에 대해서 쓴 작문을 선생님에게 갖다드렸읍니다. 선생님은 영이의 작문을 끝까지 앍으시더니 잘 지었다고 칭찬해 주셨읍니다.
며칠이 지난 뒤였읍니다.
영이의 작문은 어린이 신문에 〈제비와 우리집〉이란 제목으로 크게 발표되었읍니다.
원장님은 기쁜 낯으로 큼직한 신문을 들고 영이의 방으로 들어오셨읍니다.
“영이야! 참 잘 썼다. 이것 봐.”
영이는 신문에 발표된 것을 보고 무척 기뻤읍니다.
영이의 작문 밑에는 신문기자가 덧불인 글도 있었읍니다.
이 글은 올해 2학년인 김 영이양이 쓴 것이다. 김 영이양은 작년 가을 어머니를 여의고 현재 무궁화 고아원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문학에 천재적 소질을 타고난 소녀이기도 하다.
영이는 원장님으로부터 받아 든 신문을 가슴에 안고 눈물을 흘렸읍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이 신문을 보았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었읍니다.
일요일 아침이었읍니다. 원장님이 영이를 찾았읍니다. 영이는 원장님 방으로
들어갔읍니다.
좋은 옷을 입은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손님으로 와 계셨읍니다.
“영이야! 여기 앉아라.”
영이는 부끄러워 앉지 않으려고 하였읍니다.
“영이야 이분들에게 인사해라 앞으로 너를 길러주실 부모님이 되실 분이란다.’
영이는 가슴이 덜걱 내려앉았읍니다.
“왜 놀래? 너무 기뻐서 그러니?”
영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읍니다.
“바로 이 아이가 그 〈제비와 우리집〉이라는 글을 지은 아이랍니다.”
원장님은 손님에게 영이를 소개하는 것이었읍니다.
“네 이름이 영이라지? 우리 집 범식이가 네 작문을 읽고 영이가 고아원에 있으면 우리가 데려다 공부를 시키자고 하두 졸라서 그렇게 하기로 했단다. 어떠냐 갈 마음이 없니?”
나이 듬직한 신사 아저씨가 부드럽게 말씀을 하셨읍니다.
“영이야 고맙다고 인사해라. 아무래도 넌 고아원에 있을 몸이 못돼. 다른 아이들도 다 새부모님을 맞이해서 가지 않니?”
원장님은 영이에게 승락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읍니다.
“뿌웅 뿌웅.”
창밖에서는 범식이가 택시 안에서 클랙슨을 누릅니다. 빨리 영이를 데리고 나오라는 신호였읍니다. 영이는 새봄을 맞이해서 새부모님 집으로 가게 되었읍니다. 새오빠도 맞이했읍니다. 범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