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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해 시집-왼쪽의 심장(작가마을시인선33) 발간 ◉시집 서평
차분하고 정제된 시 쓰기로 잘 알려진 이진해 시인이 새 시집 『왼쪽의 감정』을 펴냈다. 이진해 시인은 2016년 《불교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이미 ‘모시올’ 동인 등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시집 『왼쪽의 감정』에서 일례로 “봄비가 물속을 깨우고” 그 비의 생명력이 나아가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의 중심인 사물들은 언젠가 사라지기에 “비의 바투는 까칠한 껍질이 된다”는 철학적 이미지를 통해 자연만물과 우주질서의 오묘함을 시적으로 잘 표현해내고 있다. 그만큼 이진해 시인의 시는 단순한 탐미성에서 벗어나 우주질서의 미묘한 복합관계들을 서정적으로 잘 승화해내고 있다 하겠다.
시집 『왼쪽의 감정』은 전체 5부로 구성되어 65편의 시가 담겨있다. 특히 이진해 시인은 시작산문에서 “방향을 잃은 두 눈이 멍텅구리가 된다/이상은 날개를 갈구했고 나는 후미진 바닷가 그려진 날개가 생각났다/(---)/누군가 써버린 싯귀 한 줄/나도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스스로의 부족한 예술성을 자책한다. 자책(깨달음)은 곧 보다 더 나은 작품을 쓰지 못했다는 갈구이다. 이진해 시인은 좋은 시집을 펴내고도 스스로 부족하다는 인식을 통해 보다 더 확장된 앞으로의 문학이 기대된다. 또 보통 시집 표지 뒤의 표4는 문학평론가들이나 선배 시인들이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진해 시인은 그녀의 딸(이승하)에게 쓰게 했다. 물론 전문적인 문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 작품을 논한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바라 본 엄마, 이진해 시인의 모습을 독자이자 팬의 입장에서 담담히 써놓은 것이 특이하다. 그만큼 이진해 시인은 유명인의 글보다 가족의 글이 좋다는. 문단의 권위나 겉치레에 물들지 않은 시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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浮氷에 몸을 기댄 북극곰 얼음덩이와 얼음덩이 사이로 시간이 지난다
그냥, 존재하는 그대로
2018년 여름이 지나고 있다 이 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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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진해는 부산에서 태어나 2008년 《새시대문학》, 2016년 《불교문예》 신인상을 수상했다. 영남여성문학회(모시올)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시집으로는 『쉼표는 덧니처럼』, 『사라지는 틈』이 있다.
chas-5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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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피의 변론 F.W. Nietzsche 그림은 언어나 시였다 이상의 집 기억이 너무 멀다 꽃을 지나는 시간 길이 벗겨진다 말 그대로 볶음 자서전 끝 꿈 하나 엔딩으로 노란 프리지아 한 다발 주세요 왼쪽의 감정 유리벽에 갇힌 아가미 일어나는 길, 물집이 터진다
제2부 봄 숲속에 숨은 모닝 꽃 꽃의 그늘이 붉다 겨울비 길은 눈물이다 그리움이 펄펄 물을 새기다 봄 굿 아득하다 사랑 저녁놀 아래
제3부 쓰레기통에는 부고장이 있다 샤갈을 좋아하지 커피 꼰빠나 세모 거리마다 부뚜막이다 그대로, 그렇게 궤적 낡은 풍경 기울다 기우는 달을 부른다 촌발스럽게 민들레 아무렇지도 않다 붉은 제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은 저녁상
제4부 반 고흐 거미가 사는 집 별이고 싶다 꿈 봄 안부 폐선-피안이다 사막 어디쯤 소리의 뒤편 詩의 팩토리 후박나무 아래 어느 이름 하나 명자야, 명자야
제5부 가지 않는 길 밥상 딸꾹질 독주곡 杳然 이방인에 의한 이방인을 위한 꼬리가 없다 개사이다 일반적인 관심은 사양할게 엉키는 스텝 동굴 속으로
시작산문 : 詩는 내 속에 잠재된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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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보았던 그녀의 독서하는 모습, 자연을 보아도 남들보다 더 감탄하는 모습 자식보다 길가의 불쌍한 동물들에게 측은해 하던 모습 친구들의 어머니와는 더 감성적인 모습에 한때는 그 모습이 싫었던 적도 있었다. 오로지 나만 봐주리라는 기대에 말이다. 내가 어른이 되어 어머니가 글을 쓰신다고 하셨을 때 난 그렇게 기대 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였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그때의 어머니 나이만큼 먹어보니 눈물 나게 고마운 것들이 많았다. 남들보다 더 자신감이 있는 사람으로 남들보다 더 감성적인 사람으로 남들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그녀의 시를 읽으면 아련함이 숨어있는 듯 하다. 그리고 뭔가 모를 기다림이 있는 듯 하다. 그 기다림의 끝에는 웃음과 자유가 함께 하기를 이제는 그녀의 시를 읽으며 웃고 울 수 있는 내가 되어 기쁘다.
[날들이 향기롭다. 날들이 환하다.]
그녀의 시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그녀의 시는 향기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 그녀의 생을 환하게 비춰 주리라.
그녀의 딸이자 팬으로서
-이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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