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언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단어는 'man(영)'이나 'human(영)', 'homme(불)', 'hombre(서)', 'uomo(이)' 들이 있다. 이 낱말들은 모두 라틴어 'homo, -minis'에서 유래하는데, 이 또한 라틴어에서 흙을 뜻하는 단어 'humus, -i'에서 기원한다는 설이 있다. 신화나 성경에서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었다는 믿음에 기초한 단어인 셈¹인데, 그렇다면 한국어 단어 '사람'은 어떨까. '사람'의 어원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살'이라는 말에서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
¹히브리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단어인 'adam'이 흙을 뜻하는 단어 'adama'에서 기원한다는 사실과 유사하다.
'살'이라고 하면 "살이 빠졌다.", "살이 쪘다." 할 때 몸의 구성 물질인 '살'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물살', '햇살' 할 때 '힘'이나 '기운'을 나타내는 '살'도 있다. 기운이 뻗어나가는 모양에서 기인하여 '부채살'이나 '바퀴살' , '화살'을 말하는 '살'도 있으며, 한 해의 기운을 더 얻었다는 뜻에서 "한 살 먹었다."라든지 "스물네살이다."라고 하듯 나이를 세는 단위인 '살'도 있다.
우리말의 조어법을 보면 '품 → 품다', '신 → 신다'처럼 명사에 '-다' 어미를 붙여 쓰는 용언이 많다. 따라서 '살다'라는 단어는 '살'에 ''-다'를 붙인 말이라 분석할 수 있는데, "힘 또는 기운을 내다." 내지는 "목숨을 이어가다."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사동접사 '-우(으)-'를 붙이면 불을 피워 에너지를 방출케 하는 행위를 말하는 '(불)사르다'라는 단어가 되고, 여기에 다시 '-아(어) 지다'를 붙이면 불타올라 없어진다는 뜻의 '사라지다'가 되는 것이다.
한편 원시시대에 수확한 나물이나 곡물, 고기를 날것으로 먹거나 불에 굽는 것 다음으로 발달한 요리가 '죽'이다. '죽'의 사전적 정의는 '곡식을 오래 끓여 무르게 만든 음식'이며, '죽'이 된 곡식이나 고기는 이미 생명이 끊어져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상태²이다. 즉, '죽다'는 "생명 활동이 정지하다."라는 뜻이 된다. 또한 음운론상으로 분석하면 자음 'ㅈ'이 ㅿ(
²출처: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장승욱 저; 하늘연못; 2004)
³출처: http://www.cysys.pe.kr/zbxe/2359
요컨대, 몸의 구성물질인 '살'과 그것을 오래 끓여 무르게 만들어 생명력을 없앤 '죽'에서 '살다'와 '죽다' 두 동사가 유래한다. 사는 일을 '삶'이라 하고 죽는 일을 '죽음'이라 하는데, 명사화 접미사 '-(으)ㅁ' 대신에 '-엄/암'에 결합하여 나온 명사가 '사람'과 '주검'이다. 말뿌리대로 '사람'의 의미를 되짚어보면 '기운을 뿜어 생명을 이어가는 이'가 되며, '주검'은 "생명이 끊어진 이" 되는 셈이다. 결국 '살', '살다', '삶', '사람'과 '죽', '죽다', '죽음', '주검'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생명력'의 유무인 것이다.
-
1. 이는 공교롭게도 '생명(anima)를 가진 이'를 뜻하는 영어 단어 'animal'과 조어 원리가 유사하다. 다만 서양 언어에서는 같은 계통인 단어들이 '짐승'을 가리키는 반면에 우리말에서는 '인간'을 가리킨다는 차이가 있다. 재미난 점은 '죽음(morte)를 가진 이'를 뜻하는 영어 단어 'mortal'도 종교적 의미로 불사신을 뜻하는 'immortal'에 대응하여 '인간'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2. 라틴어에서 '사람'을 가리키는 또 다른 말인 'vir'도 '힘이나 기운'을 나타내는 말인 'vis'와 관련이 있다. 영어 단어 'vital'의 어원이 되는 이탈리아어 단어 'vita(생명)'와 프랑스어 단어 'vie(생명)'에 있는 '-ta'와 '-e'도 동사에 붙어 '~하는 이'라는 뜻을 더하는 명사화 접미사이다. 이들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동사인 'vivere'인데, 'vivere' 동사와 'vir', 'vis' 사이에 어원적 공통점은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