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1 나해 연중16주일
사무 하 7:1-14 / 에페 2:11-22 / 마르 6:30-34, 53-56
성전(聖殿)에 대하여
동양의 전통건축물 이름 뒤에는 전(殿), 당(堂), 재(齋) 등과 같은 글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그 건물의 위상과 기능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경복궁에 있는 건물 중 근정전(勤政殿)은 왕의 즉위식을 비롯해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진행되는 장소이며, 평소에는 국정 회의를 하는 왕권을 상징하는 건물입니다. 이를 통하여 殿은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서당(書堂), 신이나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祠堂)에 사용하는 堂은 가족이나 마을의 종교적 공간이자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공장소를 지칭할 때 사용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서울교구 주교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양이재(養怡齋)는 원래 왕실의 자제들을 가르치던 곳이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齋가 붙은 건물은 학문과 인격을 수양하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과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대부분의 서양 글은 한자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때 선교사들과 기독교 지식인들은 Church를 어떻게 번역할지 고심했습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위엄이 깃든 곳을 강조할 때는 성전(聖殿)으로, 신도들이 모여서 종교예식과 활동을 하는 곳을 가리킬 때는 성당(聖堂), 예배당(禮拜堂), 교당(敎堂)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 선교사들과 우리 조상들이 1900년 강화도에 최초로 한옥교회 건물을 세운 후, 축성할 때 이곳을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고 명명했던 의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이곳을 온 세상의 주재자이신 하느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으로 명명했습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통해서 믿음의 조상들이 이곳을 얼마나 거룩하고 존귀한 곳으로 여겼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 저는 여러분에게 성전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고 초대합니다.
먼저, 성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다시 말해 성전은 물리적으로 세워진 영적이고 거룩한 곳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느님께 제사 지내고, 하느님께 우리의 바람을 전하고, 하느님의 현존은 느끼고 그분의 은총을 받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러한 하느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릴 공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다윗왕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아 국가의 기틀을 다진 후, 국가의 종교적 구심이 될 성전을 세우고 싶어 합니다. 이에 하느님은 예언자 나단을 시켜서 장차 그 아들이 성전을 지어서 바칠 것이라고 암시해 주십니다. 이 말씀은 다윗 왕국이 아직 완전히 공고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것이며, 그보다 우선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들에 더 집중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하느님은 다윗왕과 함께해 주실 것이고, 그런 기틀 위에 마침내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는 열매가 맺을 것이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눈에 보이는 성전은 사람들의 정신을 하나로 모아주는 구심점이자 넓게는 국가, 좁게는 지역과 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묶어주는 가시적 상징인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내가 친히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사무 하 7:14)”라는 말씀처럼 성전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느끼는 곳입니다.
다음으로 성전은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의미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온 건물은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여러분도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함께 세워져서 신령한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에페 2:20-22).” 사도 바울이 언급한 성전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성전을 의미합니다. 만일 우리가 눈에 보이는 장소만 성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종교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혼과 육신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성전 역시 눈에 보이는 건물과 눈에 보이지 않는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영혼이 떠나면 육신은 살덩어리에 불과하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이 없어지면 눈에 보이는 성전은 우리가 흔히 보는 일반 건물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이야말로 눈에 보이는 성전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혼의 성전을 구성하는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룩한 하느님과 인간 간의 재결합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다시 하나 되고, 하느님 안에서 온 세상 사람들과 형제자매로 연대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전은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 즉 교회(敎會)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성전은 생명을 지니고 활동하는 개별존재에게도 해당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배에서 내려 군중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여러 가지로 가르쳐주셨다(마르 6:34)”고 합니다. 또한 주님은 단지 가르쳐 주신 것뿐만 아니라, 당신을 통해 사람들에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구원의 통로가 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당신의 존재와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깨달음과, 치유와, 구원과, 축복의 통로가 되셨습니다. 신학에선 이것을 ‘성사(Sacrament)’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당신을 통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친히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역사를 통해서 당신의 제자들인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이 성사(聖事)를 증거하도록 초대하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전이란 근본이 되시는 예수님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들 한 사람 한사람도 모두 주님의 살아있는 성전이 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아시다시피, 우리가 매 주일 감사성찬례를 드리는 이 건물은 1999년 8월 15일 축성되었습니다. 이 성전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이 주시는 은총에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은 우리 신앙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영적 성전으로서의 도봉교회는 그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것은 1973년 1월 14일 미아리에서 신자들이 신학을 공부하고 자신을 양성하고자 교리학원으로 모인 것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도봉교회는 배움과 양육의 신앙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적 성전을 통해 도봉교회는 주님의 진리를 배우면서 신앙을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시적인 건물과 영적 공동체를 통해서 성전은 이제 이 성전을 이루고 있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하나의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졌고, 세워지고 있고, 세워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성전들을 통해 나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 나의 일터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어둠을 밝히고 부패를 방지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는 구원과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전을 만들어주시고, 우리를 불러서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주시며, 우리 각자를 당신의 살아있는 성전으로 세워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