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고영민
슈퍼에 가 ‘설레임’ 아이스크림 있냐고
묻는다는 것이
망설임 있어요, 라고 잘못 말했는데
가게 주인이 아무 망설임 없이
설레임을 꺼내다준다
영화관에서 단적비연수 두 장 달라는 것을
단양적성비 두 장 달라고 말했는데
단적비연수 표를 내줬다는,
형식과 내용이 합일하는 이런 경이로움을
나는 사랑한다
문득, 비 오는 바다가 보고 싶어
아침 일찍 오도리 해변에 나갔다가 돌아와
밀란 쿤데라가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뉴스를 본다
시간당 60mm,
비가 저렇게 오면 바다도 넘치지 않을까
이름이 ‘나보라’인 신입 직원에게
영문 이름을 지어줬다
Look at me!
해피 투게더를
햇빛 두 개 더,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후배 시인이 아는 할머니 한 분은
헤이즐넛 커피를 해질녘 커피로
알고 있다
립싱크
—노래는 입술을 기억하고
이 노래가 어떻게
내 입술에 왔을까
입에 붙은 노래가 떠나지 않고
온종일 입가에 맴도네
애인이 자주 부르던
눈물을 사가던
애인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를 때면
애인 속에 살던 노래는
애인의 몸을 돌고 돌아
입술에 돋고
울새 둥지 위에 앉고
아, 애인은 노래의 내부
노래의 숙주
홀로 입술에 올려놓고 키우며 돌보던
애인이 죽어
노래마저 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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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외 1/ 고영민
장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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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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