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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 본 문 : 마가복음 6장 30절 - 34절 (신약성경 63쪽)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아멘!
서로 축복 / “잘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잘 될 줄로 믿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앞으로는 더 평안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축복합니다. 앞으로는 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따라서 선포하겠습니다.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여러분! 아멘입니까?
신문, 방송, 인터넷 뉴스 등을 보면, 국가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이라고 끊임없이 보도됩니다.
경기가 안 좋다는 말입니다. 하기야 코로나, 전쟁, 지진 등, 안 좋은 일만 계속 터지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요.
경기가 안 좋으니 하지 말라고 했지만 할 수밖에 없는 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의식주의 걱정이 앞서고, 그러다보니 더 바쁘게!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그래서 쉼은 생각도 못합니다.
우리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이 그랬습니다. 물론 우리처럼 의식주 문제 때문은 아니지만 정말 바빴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간 쉬어라.”
이 말씀을 요즘 말로 표현하면 “우리 휴가 가자! 우리 휴가 가서 좀 쉬자!”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현대인의 생활은 편리해졌으나, 날마다 스트레스와 긴장감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육체적 노동보다 훨씬 더 많은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고 합니다.
결국 그 피로감은 결국 육체적인 질병은 물론, 정신적인 질병, 가정파괴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지금 당장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쉼” - 성경적인 용어로는 “안식” 입니다.
적절한 쉼을 갖지 못하면 일의 능률도 오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능력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휴가는 정신적, 육체적 피곤과 스트레스를 쉼을 통해 풀고 에너지를 다시 보충하는 기회입니다.
때문에 적당한 쉼은 일의 능률과 생산성을 올리며, 건강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보약이 됩니다.
볼티모어의 실업가 존 싸이즈모어씨는 회사원의 노동과 능률 분석연구에서 휴가를 가지 않고,
돈으로 환불을 받거나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일만하는 사원들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병가가,
늘어날 뿐 아니라 퇴사율이 높다는 결론을 내놨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회사에 더 많은 손실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쉴 때는 잘 쉬는 사람들이 일의 능률을 올린다는 말입니다.
하워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맥시 몰츠비 박사는, 휴가를 단축하거나 직장 일을 집에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들에게 심장마비나 위장병과 같은 성인병이 많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몰츠비 박사는 “그들은,
자기 인생의 넓은 그림을 보지 못하고, 언제나 좁은 터널만 바라보는 시야를 가졌다.” 고 지적했습니다.
쉼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하고, 멀리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야 더 큰 일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자기 일에 지나치게 몰두할 때 보다는,
적당한 쉼을 통해서 여유를 갖거나, 자연과의 만남 속에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위대한 작곡가 바흐의 웅장한 오르간 음악들은, 그가 바쁘게 음악활동을 할 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깊이 잠든 밤에 숲속을 산책하며 별과 나무들과 대화하는 시간에 악상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유명한 화가 그랜트 우드씨도 “나의 좋은 작품은 소의 젖을 짤 때 이미 만들어졌다.” 고 말했습니다.
잠시 일손을 놓고 뒤로 물러나 있을 때 걸작을 생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창출해 냈다는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바쁜 공생애 일정 중에, 잠시 쉬는 시간을 자주 가졌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제자들에게 쉼을 말씀합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간 쉬어라.”
오고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조차 먹을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일하는 제자들을 바라보시던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간 쉬어라.” 휴가를 함께 갖자고 제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더운 여름입니다.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시기입니다. 짜증이 더할 때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에게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간 쉬어라.”
예수님의 이 말씀에 그렇게 말씀하실 분도 있습니다. “요즘처럼 불황기에 휴가는 생각도 못 합니다.”
“휴가 갈 돈이 어디 있습니까?” “나이가 들어 내 한 몸도 움직이기 어려운데 어딜 휴가를 갑니까?”
잠간 쉼을 가지는 따로 한적한 곳을 찾아 멀리 떠날 수도 있지만, 가까운 곳에도 쉴 곳은 있습니다.
돈이 있어야 쉼을 가질 수 있다고만 생각하는 분들! - 돈이 안 들고도 얼마든지 쉼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쉬었던 곳은 먼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돈 드는 곳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바빠서 쉴 수가 없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 여러분! 며칠 쉰다고 인생이 무너지는 것 아닙니다.
오히려 잠시 뒤로 물러서서 쉼을 갖다보면, 그 동안 터널 비전만 갖고 있어서 보지 못했던 새 길이,
지금 내 삶의 어두운 터널 밖의 밝은 내 삶이 보이게 됩니다. “쉼” 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영어로 휴가를 “리트리트 - retreat” 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잠시 뒤로 물러서서 힘을 모은 다음,
더 멀리 뛰는 준비가 휴가라는 것입니다. 멀리뛰기나 높이뛰기를 할 때 더 높이, 더 멀리 뛰려면,
제자리에서 뛰는 것 보다 뒤로 물러가서 달려갑니다. 이것을 육상용어로 “도움닫기” 라고 말합니다.
휴가는 도움닫기와 같습니다. 더 높이뛰기 위해서, 더 멀리 뛰기 위해서 잠시 뒤로 물러서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쓰는 말이 있습니다. “일보 후퇴! 이보 전진!” - 쉼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입니다.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휴가를 가져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휴가는 가정을 세우는 쉼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온전한 쉼의 자리는 가정입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내가 건강합니다.
가정이 평안해야 내가 평안합니다. 가정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합니다. 가정은 내 모든 삶의 근원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산업화 핵가정을 이루면서부터, 가족들이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서로 바쁘게 살다보니까, 가족 간의 만남이 줄어들었고, 대화가 줄어들었고, 스킨십이 줄어들었습니다.
최근에 가정 바로세우기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요. 반드시 해야 할 운동입니다.
가정이 살아있어야 건강한 삶이 나옵니다. 부부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함께 가정을 세워가는 것은,
이 땅에서 경험하는 천국입니다. 온갖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 수 있고 재충전할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바쁜 삶 때문에 가족과의 만남과 대화가 줄어든 것을, 보충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휴가입니다. 휴가를 통해 가정을 되찾고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하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하워드 페인이라는 사람은 가정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면서, 평생을 혼자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아가면서 혼자 사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지, 점점 가정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가정 없이 살아온 자신의 지나간 삶을 후회하며 “홈 스위트 홈”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그가 쓴 “홈 스위트 홈” 이라는 시를 직역하면 바로 이렇습니다. “이 세상의 쾌락과 궁전 가운데,
내가 돌아다닐지라도 나를 언제나 겸손하게 하는 곳은 나의 집이니, 내 집 같은 곳이 다시없도다.
하늘로부터의 아름다움이 거기 내 집에서 우리를 신성하게 하고, 온 세상을 온통 다 찾아보아도,
이런 아름다움을 다른데서 찾을 수 없네. 가정, 감미로운 가정, 내 집 같은 곳이 다시없도다.”
그런데 이런 직역보다도, 우리나라에서 불려지는 노랫말이 훨씬 더 우리 마음에 와 닿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내 집 뿐이리. /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 뿐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할 수만 있으면 어린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실수 할 시간도 줘봐야 합니다. 잘못된 행동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실수한 일이나,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때에 자신의 등 뒤에 믿음을 가진 든든한 부모가 있음을, 알게 해주고 의지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서, 가정이 있음을 감사하면서 가정을 다시 세워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휴가는 치유와 회복이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복잡한 삶을 떠나서 들로 산으로 자연을 찾아 나서면, 바라만 보아도 심령이 치유된다고 합니다.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며 밀려오는 바닷바람을 흠뻑 마시다보면, 마음에 찌꺼기들이 씻겨 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맑고 순수한 자연 앞에서 서고 보면, 자연적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0절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주신 이 말씀처럼 벌써 생각이 단순해지면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쉼이 자연 앞에서 일어납니다.
모든 복잡한 문제들, 근심거리들을 내려놓게 됩니다. 내일 일은 내일로 미루어 놓고 오늘을 삽니다.
지금까지 아등바등 대며 살아왔던 어제까지의 모든 일들은, 어제의 일로 다 떠나보내게 됩니다.
유명한 종교 철학자 키에르케골은, 우리 인간에게는 두 가지 경이로움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요. 다른 하나는 날마다 자신을 변화해가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에, 이미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계심을,
발견하게 되고, 그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참 놀라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모두 맡기고 단순한 마음으로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이 주간에 우리 중고등부가 여름수련회를 서울로 가는데, 성경과 Q.T 자료를 꼭 갖고 가게 하십시오.
물론 가족끼리 여름휴가를 떠나는 분들도 반드시 가족이 함께 말씀을 읽고 Q.T하는 시간을 가집시오.
그리고 쉼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래 전에 텔레비전에서 “백 투더 퓨처” 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몇 번 봤어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 마이클 폭스는 젊은 나이에, 60세 이후에나 흔히 발병하는 노인성 퇴행성 질병인,
파킨슨병을 얻어 고통을 받으며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 가족과 함께 어느 해변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해변가에서 모래 위에 앉아 홀로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앓고 있는 그 질병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다. 다만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축복이니라.”
“아! 이 질병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쓰시려 하는구나. 감사합니다. 하나님!” 그리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렇게 깨닫는 그때부터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주님이 자신을 쓰시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파킨슨병 치유를 위한 기금재단을 설립하는 등, 이전의 화려했던 배우생활보다 더 열심히 살며,
병마와 싸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집필하여, 고통 받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휴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치유와 회복이 있는 쉼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휴가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쉼은 더 멀리 뛰기 위해 뒤로 물러서는 “도움닫기” 와 같은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인생은 장거리입니다. 그런데 쉼이 없는 삶은, 마치 장거리 달리기를 단거리 뛰는 사람과 같습니다.
만일 장거리 달리기 선수가 100m 달리듯이 한다면, 얼마가지 못해서 지쳐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장거리 인생을 달리려면 힘과 속도의 조절이 필요합니다. 숨고르기부터 단거리와는 달리 해야 합니다.
장거리 운전을 하는 사람들도 잠시 휴게소에 내려서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하고, 머리도 식히고,
이렇게 사람도 쉬고, 자동차도 쉬면서 기분전환을 해야 멀리까지 안전하게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러시아나 중국에 비교하면, 우리나라 고속도로는 먼 것도 아닙니다. 미국의 고속도로,
주변에는 쉼을 위한 호텔들이 있고, 그 호텔에는 반드시 체력단련을 위한 휘트니트센타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장거리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이 전쟁입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의 쉼이 절대 필요합니다.
이 쉼은 결코 낙오하는 것도, 낭비하는 것도 아닙니다. 더 멀리 뛰기 위해 도움닫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쁘고 피곤하게 일하셨던 주님도 말씀합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간 쉬어라.”
안데르센의 동화 중에 어렸을 때, 정말로 재미있게 읽었던 “분홍신” 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분홍신은 너무나 예뻐 누구나 신고 싶은 신인데, 한번 신으면 춤을 멈출 수 없는 저주받은 신입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 분홍신을 신고 춤을 추다 보면, 나중에는 멈추지 않는 춤이 지겹고 피곤합니다.
멈추려야 멈출 수 없는 저주받은 인생을 살다가 비참하게 인생을 끝냅니다. 눈앞에 보이는 세상 것에,
욕심 부리며 사는 삶이 분홍신을 신고 춤추는 삶이요. 욕심은 결국 죄를 낳고, 죽음의 춤을 추게 합니다.
최근에 일본에 유행하는 말로 ‘가로시’ 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도 나와서 인기를 끈답니다.
우리말로는 ‘과로사’ - 일만 하다가 지쳐 쓰러져 병원이나 집에 누워 있다가 죽는 것이 ‘가로시’ 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과로사라는 이 가로시를 과도한 경쟁과 충성심에서 나오는 직업병이라고 말합니다.
가로시라는 책의 결론은,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쉼도 열심히 가져야 함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나 이 땅에 사람들을 보면, 비전이 없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뭔가 먹고 살기 위해서, 자녀들 뒷바라지를 위해서, 그냥 열심히! 정말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바쁘고 피곤하게 살아요?” 답은 뻔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자녀들 뒷바라지를 위해!”
“왜 그 일을 하세요?” 이에 대한 답도 뻔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일 밖에 더 있나요?”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자녀들 뒷바라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일 밖에 없어서!” 가 아니라 “이 일을 통해 주님의 비전을 보길 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정신없이 바쁘고 피곤하게 삶아가는 삶에서 잠시 쉼의 시간을 통해,
먹고 노는 휴가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새로운 비전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능력도 얻게 되고, 창조적인 새로운 아이디어도 하나님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오늘 본문과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충분히 은혜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간 쉬어라.” 하는, 쉼에 대한 오늘 본문 말씀 다음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쉼의 시간을 가진 다음에,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는 기적을 나타내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은 기적은 쉼의 결과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멀리 떠나시든지, 아니면 잠깐 떠나시든지,
아니면 집에서 조용히 방콕 - 쉬시든지, 가까운 산이나 골짜기, 가까운 거리의 여행지에서 즐기시든지,
여러분에게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을 만나 능력을 얻고, 새로운 비전을 갖는 쉼을 가지시므로,
가정을 세우는 가족 간의 회복과 치유가 이루어지고, 육신도 마음도 영혼도 치유되고 회복되어져서,
여러분의 후반기의 삶에 오병이어와 같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