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aver.me/xfbkfXHq
여기서 사진을 약간 틀어서 보면 마산무학산이 다 보입니다.해발 760m 정도입니다.
지도를 클릭하고 화면을 키운후 360도 해전해서 주변 경치를 보면 되고 또 길따라 내려가서 창원시 천체를 볼수 있는데
이것은 좀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https://blog.naver.com/chs064/223965646176
아래 그림은 옛날 옛적에 내가 살던 고향집입니다. 우리집 옆쪽으로 가서 담이 있는데 거기서 보면 서당이 보입니다.
옛날 옛적에 그러니까 1970초에 서당에서 한학을 많이 했는데 인원이 6~7명이 되었읍니다.한학선생님은 초빙되어온 분이고요 또 봄이 되면 하양일대 유림에 계시는 분들이 봄에 와서 한시를 읊조리고 있었읍니다.그대 우리 누님이 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저 늙은이들이 하릴이 없으니까 또 콩죽먹고 배앓는 소리를 한다고 이야기를 자주 하곤했읍니다.모두들 그 소리르듣고 웃었지요 우리 누님은 일자 무학입니다. 당시에 여자들은 공부를 못하게 했읍니다. 아주 선진화된 곳에서나 여자들이 공부를 했지만 촌같은 곳에서는 엄두도 못내던 일입니다. 그토록 세상이 어더웠지요 운좋게 가정이 서양문물이 베인곳에서나 신문학이 허용되던 그런 시대였읍니다.ḟ
https://youtu.be/1NtP3Odns0s?si=LNFj_dk5FNorBU_b
https://youtu.be/Ta7NxqJCznk?si=W93HTmWTMur6B6b0
https://youtu.be/c06CC_qKvpI?si=Orbptu06v5XdWdW4
옛날에 이 동숙의 노래가 한창 유행했다. 내 친국가 아래마을 까지 가서 노래를 불렀는데 2등을 했다. 내가 보기엔 일등인것 같은데 주최즉에서 1등을 가져가고 대곡2동이 2등 서사동이 3등을 했다.그날 노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벼가 누뤟게 익었는데 거기에 달빛이 떨어지니 정말 옥구슬을 뿌려 놓은것처럼 반짝였다.당시에 18세였으니 감수성이 예민할때라 만감이 교차했다.그리운 이성은 다 어디로 가고 남자들만 우두커니 산골에 남았으니 당시는 고향이 그립지 않고 언제라도 기회가 오면 떠나야 하는 그런 뼈아픈 가난한 고향이 였다.박대통령이 다른것은 다 잘했넷는데 농촌은 완전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누구나 고향을 버리고 타향인 도시로 도시로 갔으니까 새마을 노래가 아무리 좋아도 당시는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가는게 꿈이였다. 가난이 싫어서 도시로 도시로 그래서 새마을 운동은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박대통령이 너무 오래 대통령을 했고 유신까지 하면서 영구 대통령을 하려고 하니 부마향쟁이 터졌고 부하였던 김재규가
박대통령을 죽이고 재판에서 한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의 유언은 이렇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겨눠서 쏘았다.이런 충직한 부하가 어떻게 자기 상관인 대통령을 죽였는냐고 하니까 나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숨통을 겨누어서 쏘았다고 김재규가 법정에서 최후 진술을 했다. 그 말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역사의 메아리같은 깊고 깊은 여운으로 아직도 생생히 살아남아 숨을 쉬고 있다.
https://youtu.be/Ejx89Jwx7L0?si=0M6a_6BiclXJ0sQU
신비의 사찰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