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집 제1권 / 공사(控辭)
승문원 제조(承文院提調)와 교정청 당상(校正廳堂上)의 사직을 청한 소
삼가 아룁니다. 신이 마침 병이 들었기에, 신의 현직(現職)과 겸대한 승문원 제조의 직책에 대한 사직 단자(辭職單子)를 갖추어 위에 올린 결과, 말미를 주어 조리하게 하라는 천은(天恩)을 곧바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만 교정청 당상의 명이 다시 계하(啓下)되었다는 말을 듣고 보니, 신은 마치 사죄(死罪)를 범한 듯 황공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생략
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계하(啓下)되기에 이른 것은 아마도 신이 《주역(周易)》 공부를 많이 했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신은 《주역》이라는 하나의 책에 대해서는 소년기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그 책을 펼쳐 본 적이 없었다가,
요즘 들어 나이 육십이 되면서부터 비로소 읽어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고 망녕된 생각에,
괘(卦)ㆍ효(爻)ㆍ단(彖)ㆍ상(象) 등은 모두가 성인(聖人)의 글인 만큼, 범상한 사람의 수준에서 성인의 글을 읽을 때에는
처음부터 무작정 의리(義理)를 탐색하는 작업을 서둘러서는 안 되리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오직 마음을 비우고 숙독하면서 성인의 문사(文辭)가 조금씩 친근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문리(文理)가 자연히 체계적으로 드러나 보일 수 있도록 한 뒤에,
정전(程傳)과 본의(本義)를 참고하여 상(象)과 점(占)을 분석하고 여기에 구결(口訣)을 가차(假借)해서
대략 합당하게 되도록 노력을 하였습니다.
[ 정전(程傳)과 본의(本義) : 정전은 송유(宋儒) 정이(程頤)의 주역 해설을 말하고, 본의는 주희(朱熹)의 주역 해설을 말한다.]
그리고 정전(程傳)의 해석에 의심할 것이 없으면 정전을 따르고, 본의의 해석에 의심할 것이 없으면 본의를 따랐으며,
정전과 본의의 해석 모두에 의심이 일어나면서 혹시라도 다른 숨겨진 뜻이 있지 않나 생각될 때에는
어리석은 신의 견해를 덧붙여 놓았는데, 이것 역시 감히 제멋대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모두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성인의 본지(本旨)에 합치되도록 노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신은 또 주자(朱子)가 정전(程傳)을 따르지 않는 것까지도 혐의로 여기지 않았고
시배(時輩)들과 문의(文義)를 강론할 때에도 무턱대고 전배(前輩)의 해석을 외경(畏敬)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그 정신을 나름대로 체득하려고 노력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그래도 성인의 본지를 어그러뜨리는 구렁에 빠지지 않으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씩 터득이 되는 대로 기록해 나간 결과 그런대로 조리가 있게 된 것이 열에 예닐곱 정도는 되기에 이르렀는데,
몸이 쇠해져서 해서(楷書)를 할 수도 없고 집안이 가난해서 계속 종이를 댈 수도 없어 그 초고(草稿)를 아직껏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조만간 신의 분수에 맞게 벽촌(僻村)의 한 수령으로 보임되는 은혜를 입어 서기(書記)와 지필(紙筆)을 옆에다 둘 수만 있다면,
깔끔하게 다듬어 마무리 지을 수 있으리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신이 삼가 성학(聖學)이 고명(高明)하신 시대를 만난 만큼, 구구하나마 미천한 충성심을 발휘하여 근폭(芹曝)이라도 바쳐 올려 한번 보답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광망(狂妄)하고 참람(僭濫)되다고 꾸지람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들어 어찌해야 할지를 모른 채
오랜 시간을 마냥 흘려보냈는데, 신이 《주역》 공부를 많이 했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진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이런 몸으로 신이 교수(校讎)하는 자리에서 종사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신의 망녕된 소견으로는, 성인(聖人)께서 문자를 세우셨을 때에는 본디 하나의 의리밖에는 없었을 텐데,
오늘날처럼 정전(程傳)을 따르기도 하고 본의(本義)를 따르기도 하여 두 종류의 구결(口訣)이 있게 된 것은 실로 온당치 못한 일이라고 여겨지기에, 이런 마음을 끝내 어길 수 없어 책임을 메워 보려는 의미로 신 나름대로의 구결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어찌 이런 사실을 천위(天威)의 아래에서 감히 숨길 수가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본분을 지키려 하면서도 자신의 소견을 고집하려는 신의 우직한 충정을 굽어 살펴 주소서.
그리하여 신이 겸대한 승문원 제조와 교정청 당상 등의 직책을 우선 먼저 해면(解免)시키고 나서 죄의 경중을 따져 묻도록 하소서.
신은 삼가 거적을 깔고 명을 기다리면서 머리를 두 번 조아리고 아룁니다.
겸사논평 : 최립의 호가 간이인데 ... 이간을 거꾸로 ... 겸손이 지나치신분
주희는 주역의 바다라고 칭송받음 상수의리 반반 잘함
주희는 원형이정에서 형을 형통하다고 안 보고 제향 제사를 지내다로 봄
훨씬 그 뜻이 잘 통함 - 왜? 주역은 주나라 천자의 점법 왕실참여 아무나 점단 제사 못함 천자만이 할 수 있었음
[주-D001] 정전(程傳)과 본의(本義) : 정전은 송유(宋儒) 정이(程頤)의 주역 해설을 말하고, 본의는 주희(朱熹)의 주역 해설을 말한다
.[주-D002] 근폭(芹曝) : 성의(誠意)만 지극할 뿐 식견이 모자란 예물(禮物)이라는 뜻으로,
《주역》에 대한 자신의 저술을 가리킨 겸사(謙辭)이다. 옛날 미나리 맛이 기막히다고 윗사람에게 바쳤다가 조소를 당한
헌근(獻芹)의 고사와, 따뜻한 햇볕을 임금에게 바치면 중상(重賞)을 받을 것이라며 기뻐했다는
헌폭(獻曝)의 고사가 있다. 《列子 楊朱》 《博物志》
[주-D003] 교수(校讎)하는 자리 : 교정청(校正廳)을 말한다. 교(校)는 한 사람이 독자적으로 교정을 보는 것을 말하고, 수(讎)는 두 사람이 돌려가며 교정을 보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