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년 1월 31일 금요일[설]
행복하여라, 주
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루카 12,35-40)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시리라 이르신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지켜 주실 것이며 은혜와 평화를 베푸실 것이다(제1독서). 야고보서는 인간의 오만에 대해 경고한다. 생명은 한 줄기 연기와 같아서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서 좋은 일을 해야 한다(제2독서). 주인이 언제 오든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종은 행복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생각하지도 않은 때 올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의 제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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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설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넉넉하게 하는 명절입니다. 추운 날씨로 얼어붙은 마음도 조금씩 온기를 찾고, 어렵게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의 처지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설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연말연시의 바쁜 분위기에 휩쓸려 제대로 하지 못한 신앙생활의 다짐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한 해의 시작을 또다시 할 수 있는 선물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고 감사합니다. 새해의 신앙생활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다가 지난 가을의 사제 연례 피정을 지도하신 신부님의 말씀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표상들인 소금과 누룩의 공통점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선(善)을 이루고 난 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사라질 줄 안다는 사실입니다. 소금은 맛깔스러운 젓갈을 가능하게 하지만 거기에서 더 이상 흰 소금의 형체를 볼 수 없습니다. 먹음직한 빵과 떡을 위해 사용된 누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선 자체를 보는 것으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보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신앙인의 모습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요. 신학생 시절 어떤 책을 읽다가 꽃이 아니라 뿌리와 거름이 되어 주는 삶의 위대함에 대한 이야기에 사로잡힌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꽃이 되어 느끼는 흐뭇함에 많이 젖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저에게 채찍을 가하는 게 있습니다. 이 명절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남들을 기쁘게 하는 데서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의 덕이 곳곳에 묻어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한 분들에게서 기운을 얻어, 보이지 않는 소금과 누룩과 거름의 삶을 배우는 것을 올해의 결심으로 삼아 봅니다. 교우님들도 넉넉한 명절을 보내시는 가운데 나름대로 좋은 결심을 하시기를 빕니다.
아직도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 있을 때에는 따뜻해서 그랬는지 몸이 무척 좋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저께 오후부터 몸살과 오한으로 감기가 더 심해졌습니다. 하루 이틀이면 충분히 떨어질 감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길게 갑니다. 여러분들도 감기 주의하세요.
아무튼 이렇게 감기몸살로 힘든 상태였지만, 어젯저녁에 초등학교 때 성당 친구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실내 온도를 높여도 으슬으슬 추운데, 밖은 얼마나 추울까를 생각하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감기 핑계를 대고 모임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저 생각한다고 제가 사는 답동 근처에 모인다니 안 나갈 수가 없었지요.
결국 두꺼운 옷을 한 벌 더 껴입고, 털모자에 목도리 그리고 장갑까지 끼고 단단히 무장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춥지 않습니다. 오히려 얼굴에 닿는 찬바람이 상쾌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식사만 하고 얼른 제 방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옛 친구들과의 만남을 오랜만에 가질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포기를 했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쉽게 포기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포기하면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에 반해 포기하지 않으면 결과가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 모두는 한 살을 더 먹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렇게 나이 먹는 것을 반갑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할 수 없는 이유에 ‘나이’를 하나 더 추가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없어.”
우리 모두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늘 나라라는 최종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최종 목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나이 들어서, 아파서 등등의 이유를 들어서 포기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서 준비할 때 주님께서 약속하시는 하느님 나라에 더욱 더 가깝게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할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날과 그때는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올 새해에는 핑계를 대지 않는 나를 만들어 봅시다. 즉, 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기에 급급한 나의 모습이 아니라,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만들어 주님의 나라에 가까이 다가서설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분이 되길 오늘 새해에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간절히 원했지만 무엇도 얻지 못했대도 상관없다. 그것도 하나의 인생이 된다(김연수).
포기 기념일
언젠가 정호승 시인의 글을 읽는데, 글쎄 12월 31일을 자신의 실패 기념일로 삼는다는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다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다가올 새해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 저는 저의 실패를 기념합니다.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면서 그 해의 실패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제 인생 전체의 크고 작은 실패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합니다. 실패를 기념하는 12월이 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1월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실패를 기념하는 일이 곧 성공을 기념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
저 역시 이 글을 읽으면서 지난 시간의 실패를 기억하여 봅니다. 그러면서 이 실패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새해를, 새날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그리고 올 새해에는 실패의 숫자를 더욱 더 줄여 나갈 것을 다짐하여 봅니다.
행복한 힘 얻으시는 명절이기를 기도 드립니다
-김대열신부-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12,40) ---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것이 우리네 삶인가 보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기에 끝을 아름답게 맺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이 없다. 하지만 희한하리만치 알면서도 제대로 살지를 못한다.
모든 것은 한평생 진행형일 수밖에 없나 보다. 훗날의 시간은 현재가 되어봐야 깨닫게 되는 우리의 어리석음. 과연, 우리의 어리석음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설날이다. 한(恨)도 많고 정(情)도 많고, 아픔도 많고 죄도 많았던 민족. 쇠심줄처럼 질긴 그 사연 많은 민족의 설날이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부자 되세요”라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인사말이 덕담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돈으로, 권력으로 치장된 배부른 송장들의 구역질 나는 향연이 아니라, 힘내라 토닥여주고, 함께 울고 웃으며, 보듬어주고 어깨동무 그리워하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배고픈 이웃 생각에 따스한 밥 한 술 뜨기가 미안해하던 그런 고향을 잃어서는 안 된다. 불의가 그 극을 달려도, 선한 양심들의 의기투합을 끝없이 보여준 역사를 망쳐서는 안 된다.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지 230년, 조선팔도 순교자의 피가 산하를 흐르고 있고, 그 넋이 살아있다. 올바른 세상을 위해 죽음을 마다 않았던 숭고한 영혼들을 가진 민족. 그들의 피, 그들의 얼을 더 이상 더럽혀서는 안 된다.
이 설날,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 못된 인간들이 나라 망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선한 사람들이 선한 마음 많이 보일 수 있어서 인정이 넘치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한다. 성실하게 일하고 땀 흘리는 이들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한다. 민족이 화해하고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기심 때문에 온갖 구실 붙여대며 편을 가르는 그런 세상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뒤틀린 민족주의, 국수주의, 차별주의가 없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
설날 인사 올립니다. 가족, 이웃들과 잘 보내시고 행복한 힘 얻으시는 명절이기를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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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